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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그들에게 사랑이란 : <러브씬넘버#>
[문선영의 문화톡톡] 그들에게 사랑이란 : <러브씬넘버#>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1.03.08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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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 OTT 플랫폼 웨이브는 ‘23, 29, 35, 42’ 숫자와 각 숫자에 해당되는 네 명의 여성 인물을 담고 있는 드라마 <러브씬넘버#> 포스터를 공개했다. 각 연령대의 여성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이 포스터는 그리 색다른 주제는 아니지만 20~40대의 사랑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숫자가 의미하는 나이만으로도, 다양한 의미망을 구축할 수 있고, 수용자 층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더군다나 드라마 <러브씬넘버#>는 우리 사회 각 연령대 여성이 겪는 연애, 결혼, 사랑에 대해 솔직하고 대담하게 그리기 위해 19금이라는 연령제한을 내세웠다.

<러브씬넘버#>는 2021년 2월 1일부터 MBC와 웨이브에서 방송된 8부작 옴니버스 드라마이다. 웨이브에 에피소드 8편이 전부 독점 공개되었고, 비록 두 편의 에피소드(23, 42세)로 제한되기는 했지만, 지상파 방송 MBC에서 19금의 파격적인 드라마를 방영했다는 점도 화제가 되었다. 화제성보다 이 드라마에서 주목해봐야 할 점은 ‘각 연령의 수용자의 공감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일 것이다. <러브씬넘버#>은 나와 별개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낯선 이야기가 아닌, 나의 현실이자 일상의 한 부분으로 읽혀질 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출처: '러브씬넘버#'공식홈페이지
출처: '러브씬넘버#'공식홈페이지

삶의 전환점에서 ‘사랑’을 돌아보다.

 <러브씬넘버#>의 기획의도에 따르면, 이 드라마는 “인생 터닝 포인트를 통해 연애, 사랑 가치관에 혼란을 겪는 23, 29, 35, 42세 여자 주인공들의 복합적인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드라마는 각 연령의 여성 인물들이 갑작스러운 사건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사랑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3세 에피소드에서 인기 많은 대학생 남두아(김보라)는 비독점 다자성연애주의자이다. 그녀에게 연애는 정서적 소통, 안정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메리트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한 사람과의 연애는 메리트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그녀는 다수와의 연애를 즐긴다. 폴리아모리(Polyamory)가 다수 연애 상대자에게 서로를 공개하고 합의하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볼 때, 23세 남두아는 그녀의 연애 대상자들에게 서로의 존재를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해 이기적인 자유연애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연애에 대한 가치관에 소신이 있어 보이던 대학생 남두아는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그녀의 실체를 폭로하는 글이 게시된 사건을 통해 혼란에 빠진다. 그녀의 연애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성 게시글로, 그녀는 자신의 연애가 공개될까봐 두려움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녀는 게시글을 공개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옛 애인이자 현재 남사친인 도한울(안정훈)에게 의지하게 된다. 또한 그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23세 에피소드는 사랑이 주는 불완전함을 회피하기 위해, 연애의 효율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20대 주인공이 특정한 사건을 통해 사랑의 진정성을 고민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23세가 연애 자체에 몰입되어 있다면, 29세 에피소드는 삶의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는 결혼을 앞둔 여성의 심리를 포착한다. 결혼을 앞둔 초등학교 교사 이하람(심은우)은 모범적이고 착한 딸로 29세까지 살아온 평범한 여성이다. 아빠 없이 홀로 자신을 키운 엄마를 속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착하게 살아온 그녀는 열정적 사랑은 아니지만, 적당한 나이에 예산으로, 적당한 남자인 중학교 수학교사 정석(한준우)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성실하고 좋은 남자지만, 예의와 규칙에 따라 스킨십하는 정석과의 미지근한 관계에 지루함마저 느끼는 이하람에게 삶의 전환이 되는 사건은 우연히 목격한 낯선 남녀의 정사 장면이다.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데 몰입된 남녀를 본 후 이하람은 결혼식 당일 결혼식장에서 도망친다. 하람은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채감, 어머니의 슬픔을 자신이 보태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 등으로, 자신의 삶에 솔직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연애나 결혼은 자신의 감정보다는 사회적 인식이나 평판에 기댄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혼이 주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했던 하람을 뒤흔든 사건은 열정 없는 삶을 버티고 있던 그녀의 위태로운 인내심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29세 에피소드에서 하람은 결혼이나 직장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했던 이유가 모두 엄마라는 핑계를 무기로 주저했던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지루한 남자였던 정석의 진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고, 그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30대 여성의 사랑 이야기인 <러브씬넘버#-35>는 빈곤한 현실에서 일과 사랑 모두 탄력을 잃어버린 주인공 윤반야(류화영)의 위태로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윤반야(류화영)는 수차례 영화 관련 상을 받으며 주목받던 영화감독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현재는 마이너스 통장과 보증금 천만 원의 낡은 오피스텔에 거주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잊힌 감독이다. 대학 시간강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유부남 애인의 아내가 폭로한 상간녀 고발로 학교에서 실직된 후, 반야는 다섯 달째 미납된 전기 요금으로 전기마저 끊긴 집에서 각색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녀는 영화인 모임에서는 현재 자신의 삶이 드러나지 않게 오히려 더 도도하고 날선 모습으로 자존심을 지킨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그녀의 현실을 벗어날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은 잘 나가는 유부남 영화감독 성문(김승수)과의 위태로운 만남이다. 반야는 재력, 명예 등 모든 것을 갖춘 성문이 자신에게 매혹된 것을 알고, 그를 빈곤한 현실의 탈출구로 생각하고 이용한다. 성문과의 만남으로 반야는 안정된 생활을 얻을 수 있었고 충분히 그와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삶을 위해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5세 에피소드는 사회적으로 안정적 생활을 위해 위태로운 연애를 선택한 윤반야를 통해, 현실적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해당이 되는 <러브씬넘버#-42>는 40대 여성 정청경(박진희)의 이야기이다. 청경은 20년 지기 고향친구 우운범(지승현)과 결혼하여, 함께 가구공방을 경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다. 두 사람은 아이 없이 친구처럼, 사업 파트너로 살아왔다. 사업이 힘들어서 빚을 갚느라 여유가 없었던 시기를 지나, 안정된 사업으로 두 사람의 일상도 여유를 찾은 시기는 40세부터였다. 부부 사이에 특별한 문제는 없지만 청경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돌아봤을 때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녀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한 지 기억조차 나지 않은지 오래되었고, 나이 듦에 따라 변해가는 자신의 신체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조차 싫을 만큼 부부관계에서의 만족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무덤덤하게 일상을 받아들인 그녀의 허전한 삶을 도발한 계기가 된 사건은 남편의 외도로부터 비롯된다. 새벽마다 무음으로 울리는 전화기를 확인하고, 때론 누군가의 호출에 몰래 외출하는 운범을 뒤쫓은, 청경은 그가 선배 언니 권화란(차수연)에게 달려간 것임을 확인한다. 육체적 관계를 맺은 사이는 아니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선배 권화란의 사과를 들은 순간, 청경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결국 남편의 정신적 외도를 용서할 수 없었던 청경의 선택은 정화란의 남편이자 선배인 한명운(현우성)의 유혹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에피소드 42는 40세 여성 청경이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후에도 자신이 남편을 떠나거나 결혼을 파기할 수 없다는 절망감, 그리고 다시 결혼이라는 일상을 유지하는 현실에 대해 다룬다.

출처: '러브씬넘버#'공식 홈페이지
출처: '러브씬넘버#'공식 홈페이지

사회적 나이가 주는 무게감

 드라마 <러브씬넘버#>는 20~40대 여성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하더라도 각 세대가 느끼는 사랑은 세밀한 점에서 다르다. 이들의 사랑은 나이에 따른 일상의 영역, 감정적 차이 등으로 분화되고, 사회적 기대, 사회적 시선에 대한 의식 속에서도 다양성을 띠게 된다. 김형민 감독은 <러브씬넘버#> 제작 발표회에서 23세는 혼란, 29세 불안, 35세는 위기, 42세 허무에 대한 이야기라며 각 나이의 의미를 밝힌 바 있다. 이는 나이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이는 각 연령에서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정이나 성취감 속에 사랑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연결된다. 물론 연애, 결혼, 사랑을 중심으로 다룬 이 드라마는 나이를 구분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려고 한 점에서 세대의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 과정은 필요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 <러브씬넘버#>에서 재현하고 있는 20~40대 여성의 사랑은 사회적 나이가 주는 무게감 안에 가두어져 제한되어 있다. 드라마의 기획의도가 분명 이 지점이 아니라 반대(사회적 현실의 틀에 갇힌 각 연령대 여성의 사랑에 관한 복잡한 심리를 재현 하는데 있지 않았을까?)였겠지만 20~40대의 사회적 나이의 여성에 대한 제한된 관점은 드라마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20대는 자유연애나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30대는 일과 사랑의 위기, 40대는 느슨해진 결혼 생활 속에서의 외도 문제만을 다루어야 하는가? 삶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는 사랑의 진정성을 깨닫거나, 일상의 회복으로 결론 맺어야 하는가? 갑작스런 사건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계기는 꼭 남녀의 사랑으로 인해 안정감을 찾아야 하는가? 드라마 <러브씬넘버#>는 도발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지만, 각 나이에 따른 다양한 현실이 일부분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글·문선영(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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