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그를 그 정도로 좋아했었다!
시간은 산(酸)보다 더 강력하게 열정을 부식시키지만, 기억도 용해시켜버린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채 2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제도권 언론의 힘으로 민주주의 영웅의 반열에 올라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당황스러울 정도다.
2017년 당시, 영향력 있는 언론인들과 칼럼니스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의 승리를 위해 힘을 모으고 2차 결선투표에 오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 펜 당수를 반대하며 기권이나 기권표와 무효표를 막고자 했다. 2차 결선투표가 있기 전 2주 동안 “마크롱에게 투표합시다!” 또는 더 정확하게는 “마크롱에게 투표하세요!”라는 구호가 나왔다.
2017년은 2002년 장마리 르 펜이 2차 결선 투표에 올랐던 때만큼 언론에 의해 분열된 정도가 극심하지 않았다. 2017년에는 대중매체(TV, 라디오)가 일종의 중립성을 보이는 것 같았다. <프랑스2> 채널의 2차 결선투표 개표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을 보면 편중된 모습은 거의 없었다. 마크롱 지지를 촉구하는 이들은 도미니크 드 빌팽, 세골렌 루아얄, 프랑수아 베이루, 제라드 콜롬과 프랑수아 바루앵 등 총 5명이었고, 르 펜을 지지한 이는 니콜라스 듀퐁-에냥 혼자였다.
2002년 상황과 달리 2017년에는 국민전선(FN)에 반대하는 사람을 모으기 힘들었고,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전 경제산업부 장관이었던 마크롱의 승리를 의심하게 됐다(하지만 그의 승리는 확실했다). 예를 들어 파리정치학교의 올리비에 듀하멜 교수는 4월 29일 <Europe 1> 라디오 방송에서 “2차 결선에서 마린 르 펜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 전날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 라디오 방송에서 미디어 철학자인 앙드레 콩트-스퐁빌은 “모든 사람이 에마뉘엘 마크롱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린 르 펜이 이길 위험도 있다!”고 탄식하듯 답변했다. 청취자들은 이 말을 듣고 놀란 나머지, 마땅히 의심할 법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에드위 플레넬도 모든 가능성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더 선거에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 즉 민주주의적인 투표 결과로 사실상 반민주주의적인 세력이 집권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2017년 5월 1일, 플레넬은 자신이 소속된 <메디아파르(Mediapart)>에서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분노와 분열, 권태로 좌파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고, 우파 유권자들도 에마뉘엘 마크롱에 반대해 극우인 르 펜에게로 대거 이동할 경우, 극우파 유권자들도 함께 동원돼 국민전선의 후보자인 르 펜이 승리하고 말 것이다.” 이후 마크롱은 66%의 지지를 얻어서 당선됐다.
표심의 변화가 확실해 보이자 ‘전진하는 공화국(La République en marche)’당의 마크롱 후보가 크게 이길 것으로 예측됐고, 출구조사(저널리스트와 유명 정치학자들이 항상 선호하는) 결과를 보더라도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비현실적면서도 무시무시한 시나리오를 상상하기도 했다. 기권표에 따른 괴리(Abstention différenciée: 설문조사에서 밝힌 유권자의 지지의사와 실제 투표와의 차이-역주)’를 보여주는 시나리오였다. 이 이론을 주장한 사람은 ‘사회물리학’ 전문가인 물리학자 세르주 가람으로 며칠째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4월 26일 주간지 <렉스프레스>에서는 자신의 ‘방법론’을 전개했다. “마린 르 펜에 대한 지지의사가 42%이고 그녀를 찍겠다고 말한 사람들 중 90%가 실제로 그렇게 투표를 한다면, 마크롱을 지지한다고 밝힌 사람들 중 실제로 그를 찍은 사람들이 65.17% 미만이면 마린 르 펜이 당선된다. 만약 65%만 마크롱을 찍는다면 마린 르 펜은 지지율 50.07%로 이길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은 계속 반복해서 등장했다. 일간지 <리베라시옹>과 <르피가로>, 주간지 <르푸앵>의 웹사이트 및 24시간 뉴스 채널과 종합편성 채널에서는 ‘사회물리학자’인 가람의 예시와 그래픽을 내보내고 또 내보냈다.
이유는 달라도, 마크롱이라는 결론은 같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한 가람 스스로도 르 펜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고백했다. 많은 유권자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부동층 유권자들, 이를테면 올랑드에게 실망한 사람들, 2002년 4월 21일 대선 이후 무감각해진 사람들, 사회당의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제에서 기만당한 사람들(1), 불평하는 반자본주의자들, 화가 난 탈세계주의자와 항의의 의사표시를 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언론 및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협력했다.
협력의 한 예로, 많은 이들이 사설을 기고했다. 그중 소설가인 장 도르메송은 <르피가로>(‘나는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투표할 것이다’)에, LVMH 그룹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는 자신이 소유한 일간지 중 한 곳인 <레제코>(‘왜 나는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투표하는가’)에, 정치칼럼니스트인 크리스토프 바르비에는 <렉스프레스>(‘물론 마크롱이다’)에, 저널리스트인 라파엘 글룩스만은 <롭스>(‘저지하다’)에 글을 기고했다.
글룩스만은 4월 26일 <레쟁록큅티블(Les Inrockuptibles)>와의 인터뷰에서 “투표 결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할 것이다”라고 덧붙였고, 이 인터뷰는 곧 <프랑스 앵테르>의 뉴스 다이제스트에서 중계됐다. 대규모의 공격이 이어지긴 했지만 그 논증이 정교하지는 않았다. 4월 30일 파스칼 리쉐는 <롭스> 웹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마크롱의 득표율이 높을수록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것은 그의 공약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극우를 저지하는지 눈에 보일 것이다. 극우를 저지하는 것은 에마뉘엘 마크롱과 그의 공약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투표가 가진 힘일 것이다.” 마크롱이 많은 표를 받을수록 그의 정당성은 낮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노래는 계속 반복되고 악기만 바뀌었다. 4월 26일 리스는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린 르 펜의 득표율이 18%를 확실하게 넘긴다면, 예를 들어 25%에서 35% 사이가 된다면 우리는 정치적 대격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은 (…) 프랑스인 중 거의 1/3이 극우파 대통령이 유럽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중 하나를 이끌어 가기를 원한다는 뜻일 테니까.” 리스는 마크롱에게 투표할 것을 옹호함으로써 기성 질서를 비판하는 <샤를리 엡도>의 정신(그중에서 남아 있는 게 있다면)을 지워버렸다.
4월 26일 크리스토프 바르비에는 <렉스프레스>에서 열광적으로 고등사범학교(ENS) 출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이미 제5공화국에서 가장 놀라운 정치적 모험을 구현했다. (…) 이제 마크롱의 효과에 힘입어 프랑스 정계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투표해야 한다.” 이틀 후 로랑 조프랭은 <리베라시옹>에서 똑같이 고양된 어조로 기권에 대해 경고했다. “실제로 공화국의 정신이 달린 문제다. (…) 지금, 프랑스는 민족주의적 감금 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 모든 게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는 공화국이란 르 펜에 반대투표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크롱에 찬성하는 투표를 하는 게 낫다.”
여기에 부드러운 프로파간다가 결합했다. 그리고 4월 28일 토마스 르그랑은 <프랑스 앵테르>에서 “마리 르 펜과 에마뉘엘 마크롱 중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일부 극좌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마크롱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고백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은행가와 파시스트를 두고 둘 사이에 같은 비중을 둔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우리는 지금 너무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단순화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극단적인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사회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노사 관계 모델 중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한 것은 스칸디나비아식 사회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미셸 로카르 전 총리와 프랑스민주노동동맹(CFDT)의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고, 최악의 것은 규제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인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마크롱은 마가렛 대처가 아니며 전직 대통령들과도 다르다.”
그러나 그로부터 18개월 후 부유세 폐지, ‘고용창출을 위한 세금공제(CICE)’ 제도 유지, 법인세 인하, 퇴직 연금 및 가족 수당 동결 등 이제까지 마크롱이 취한 조치를 보면 그는 ‘사회자유주의자’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토마스 르그랑이 마크롱의 선거공약만 제대로 읽어봤어도 알아챘을 수 있었을 텐데….
파트릭 코헨은 공영라디오에서 자신이 진행하는 아침정보프로그램에 <메디아파르>의 책임자인 에드위 플레넬을 초대해 마크롱에 대한 투표 동조심을 유발했다. 1·2차 투표 기간 언론에 출연할 수밖에 없었던 <르몽드>의 전 편집국장 플레넬은 (겸손하게) 마크롱에게 투표하자고 권유했다. “가끔 마크롱의 일부 지지자들보다 내가 유권자를 더 잘 설득하는 것 같다.”
이밖에도 토론 프로그램과 라디오방송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등에서 동일한 입장의 사설이 10여 개 넘게 쏟아져 나왔다. 해당 사설을 쓴 사람들은 마크롱에게 투표할 것, 특히 국민전선에 맞설 것을 거리낌 없이 촉구했지만, 1·2차 투표 기간의 특수 상황에서 다양한 의견이 부족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관점의 다양성’이라는 말은 교과서에서만 존재하는 걸까?
글·마티아 레몽 Mathias Reymond
미디어감시시민단체 아크리메드(Acrimed)의 공동진행자. 2월 8일에 아곤(Agone)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인 『Au nom de la démocratie, votez bien !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잘 투표하세요!』의 저자. 본 기사는 이 책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글임.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2017년 1월, 사회당과 정치연합의 대선후보를 정할 때 표심이 갈렸다. 최종적으로 브누아 아몽이 경선에서 승리했다. 1차 경선에서 탈락한 프랑수아 드 뤼지와 2차 대선경선에서 대패한 마뉘엘 발스는 명예를 걸고 경선 당선자를 지지할 것을 서면으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마크롱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