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에 관한 ‘근거없는’ 편견
[도시에] 공장의 오래된 미래 1970년대 이래 선진국들의 상황을 보면, 제조업이 경제에 미치는 방식이 두 가지, 때론 세 가지로 분화됐다. 선진국은 자연스러운 발전과정을 거쳐 이런 현상에 도달했다.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 경제는 자연스럽게 공장에서 사무실로 넘어갔다. 한편 탈공업화가 정치적 선택 때문에 발생했다는 견해도 있다. 경영자를 위해 비용이 낮은 후진국으로 공장을 이전시켰다는 말이다. 제조업은 여전히 주요 일자리 창출원이지만, 그런 제조업을 살리는 것은 이념적·기술적·환경적 논란을 일으킨다. 과연 시장의 법칙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편견1: 제조업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서비스산업 시대다.
역사의 흐름에 저항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제조업은 그저 농업이 앞서간 길을 따라갈 뿐인데 말이다. 선진국은 1차, 2차, 3차 산업으로 이어지는 발전과정을 거쳐 현재 “공장 없는 회사”(세계적 통신업체 알카텔의 세르쥬 취릭 회장이 2001년에 사용한 표현)가 이끄는 서비스 기반의 비물질적 경제로 나아가고 있다. 반면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업무강도가 높은 제조업은 인건비가 낮은 국가로 이전하는 추세다.
사실 제조업과 서비스는 상반된 관계가 아니다. 이 둘은 서로 단단히 얽혀있는 상호보완적 관계다. 20년 전부터 제조업계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던 급식, 청소 심지어 회계업무까지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제조업계의 직접고용이 줄어든 반면 서비스업계의 직접고용이 늘어난 요인 중 하나다. 반면 유지보수, 설비설치, 임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조업체가 늘고 있다. 한 예로 미쉐린은 타이어 렌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구의 경우, 제조업 전반이 무너졌었다. 특히 섬유, 신발, 가전, 화학, 목재, 플라스틱, 고무 업계가 심한 타격을 입었다. 30년간의 소극적 정책에 따른 결과는 제조업 찬양론자들이 약속하던 장밋빛 미래와는 전혀 달랐다. 프랑스는 2004년부터 대외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서비스무역 흑자로도 상품무역 적자를 만회하지 못했다. 공장폐쇄는 지방 공동화와 기술 유출을 초래했다. 서비스산업이 경제성장의 배턴을 이어받았다고 하나, 임금수준은 제조업보다 20% 낮은 실정이다.(1)
그러나 유로존 최대 경제강국이자 제조강국인 독일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추구하지 않았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로시놀, 쿠스미 티, 파라부트, ‘르꼬끄 스포르티브’ 등 해외로 이전했던 제조업체들이 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역행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프랑스에서보다 미국에서 훨씬 강한데, 그 배경에는 에너지가격 하락, 유통경로 단축, 기술집약화(필요 노동력 감소) 등의 원인이 있다. 이에 따라 애플, 제너럴일렉트릭, 캐터필러, 레노버, 월풀 등 제조업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줄이고, 인건비가 상승한 신흥국가를 떠나 리쇼어링을 꾀하고 있다. 신흥국가들도 이제는 “세계의 작업장”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자체적인 연구 및 특허 개발에 투자하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편견2: 정부는 개입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좋은 주주도, 능력 있는 관리자도 아니기에 제조업 정책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 그저 경쟁의 법칙을 준수하고, 경제성장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미래인력을 키우는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그러면 시장의 법칙에 의해 충분히 경쟁력 있고 혁신적인 주체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역대 프랑스 정부들은 유럽연합 헌법에 명시된 자유경쟁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1980년대 중반부터 어떤 지원정책도 펼치지 않은 채 국내 제조업 기반의 쇠퇴를 지켜봤다. 그렇게 페시네(알루미늄), 아르셀로(철강), 불(IT), 라파지(시멘트), 알카텔(통신업) 등 귀한 산업체들이 외국 투자자의 돈주머니로 굴러 들어갔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쳐서야 심각한 구조적 무역적자가 금융불안정을 야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제야 정부도 제조업 재건의 필요성을 통감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스톰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2) ‘영광의 30년’ 시절에 등장한 프랑스의 ‘국가 챔피언들(기간산업체)’은 국가개입 없는 자유주의 신화를 반박하는 사례로 남았다.
반면 아리안, 에어버스, 코레일(Corail), TGV, 원자력발전 프로그램, 국내 통신망 사업 등은 국가재건 및 현대화를 위한 국유화, 계획경제, 정부 관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 정부의 전략과 계획경제의 효율성을 입증했다. 물론 실패한 프로젝트도 있다. IT진흥사업(CALCUL), 콩코드, 미니텔 등은 “기술적 콜베르티슴(국가 주도의 중상주의)” 비방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사례다. 그러나 경제학자 자크 사피르는 이런 실패조차 경험을 쌓는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도 상업적 실패를 겪었지만, “프랑스 항공 산업의 장비 및 노하우 확산”에 기여했고, “이후 에어버스 사업을 성공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3)
편견3: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항상 민영기업이다.
관료주의와 나태한 공무원들로 가득한 정부는 케인즈가 말했던 “야성적 충동”을 자극하지 못한다. 오직 시장만이 혁신을 낳고, 그들이 꽃피울 만한 수단을 제공한다. 실리콘밸리가 미국 정부 소속이 아니라는 사실도 전혀 놀랍지 않다.
캘리포니아 기업가들의 개척정신 신화에는 실제 현실이 빠져 있다. 민영기업은 비용이 많이 들고 결과가 불확실한 사업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에 의하면, 최근 수십 년간 가장 큰 업적을 거둔 기술혁신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았기에 가능했다.(4)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보조금을 지원받았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은 군사프로그램 나브스타(Navstar)의 지원을 받았다.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는 미국중앙정보부(CIA)와 미국과학재단(NSF)의 지원을 받은 델라웨어 대학 연구원 2명이 개발했다. 구글 알고리즘은 NSF의 지원을 받았다.
제약 산업의 경우, “신약의 75%가 공립연구소의 지원을 받았다. 물론 빅파마(대형 제약회사)들도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투자하지만 주로 마케팅에 치중한다. 화이자, 엠젠 등 빅파마들은 연구개발보다 자사 주식을 재매입해 가격을 올리는 데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5)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이들은 주로 정부가 최대 리스크를 떠안고 대규모 투자를 하고 15~20년이 지나서야 후발대로 들어온다.
편견4: 경쟁력을 갖추려면 인건비를 낮춰야 한다.
브루노 르 메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프랑스가 독일에 비해 아직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다”며, “최저임금의 2.5배를 상회하는 경우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안을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프랑스 앵테르 라디오, 2017년 11월 26일). 이는 30년 전부터 귀에 못 박히듯 되풀이돼 이제는 매우 유명해진 주장이다. 신흥국가와의 경쟁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개방경제체제 안에서 프랑스 제조업은 ‘과도한 인건비’ 때문에 손해를 봤다. 반면 독일은 2000년대 인건비 절감 정책을 추진해 성공을 거뒀다.
이런 진단을 근거로 1992년부터 사회보험료 세액공제 정책들이 늘어났다. 한 예로 ‘경쟁력 강화 및 고용창출 세액공제(CICE)’를 들 수 있다. 생산비용을 줄이면 가격이 내려가고 시장점유율이 높아진다. 마진율과 제품의 질을 높이고, 고용과 투자를 촉진한다. ‘슈미트의 명제’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오늘의 이윤은 내일의 투자이며, 모레의 일자리다.” 무려 1974년에 만들어진 명제다.
인건비 절감 행군은 결국 대가를 치렀다. 2016년, 프랑스 제조업의 시간당 임금은 독일보다 2.10유로 낮은 수준으로 낮춰졌다. (6) 그러나 이런 절감도 제조업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건비 증가는 탈공업화의 원인이 아닐뿐더러, 높은 생산성으로 충분히 상쇄가능한 비용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을 총 노동시간으로 나누면 사실상 미국, 독일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2000년대 초부터 프랑스 제조업 생산력을 약화시킨 주범은 다름 아닌 유로화 강세였다. 2000~2010년 제조업의 시간당 임금은 달러의 경우 90% 오른 반면, 유로 상승폭은 32%에 그쳤다.(7)
프랑스 제조업이 쇠락한 또 다른 요인으로 30년 전부터 시작된 대기업의 국제화를 들 수 있다. 독일 기업들이 국내에서 생산기반을 굳게 다지는 동안, 프랑스 기업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국가로의 해외이전과 외국인직접투자에 주력했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 업계다. 2006년, 프랑스 자동차의 해외공장 생산량은 국내 생산량을 넘어섰다. 국내 생산량은 2002년부터 감소추세였다. 반면 독일 자동차의 국내 생산량은 지속해서 증가했다. 2014년, 프랑스 다국적기업의 해외채용은 600만 명에 달했다. 동기간 독일은 500만 명, 이탈리아는 180만 명, 스페인은 100만 명 이하였다.
프랑스가 해외이전을 선택한 요인 중 하나는 제품 중저가화 전략이다. 중저가 제품의 경쟁력은 낮은 가격이 관건이므로, 해외생산을 통해 비용을 낮춰야 한다. 반대로 독일의 경쟁력은 가격에 있지 않다. 즉, 제품의 질과 혁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 가브리엘 콜레티스에 따르면,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시절(1998~2002)의 임금억제정책은 이윤과 경쟁력, 어느 쪽도 높이지 못했다.
프랑스의 탈공업화에 결정적이었던 것은, 인건비가 아니라 자본비용이었다. 대기업들은 주주들에게 많은 배당금을 주느라 투자와 연구를 등한시했다. 30년 전, 배당금은 부가가치의 5% 미만이었지만 현재는 25%까지 치솟았다. 전체 유로 순 투자에 대한 배당금은 1978년 50상팀에서 2011년 2유로로 올랐다.(8)
기업은 주주들로부터 수익이 충분치 않은 투자를 포기하고, 수익률 15%에 달하는 비싼 금융거래를 강요받는다. 콜레티스에 따르면, “제조업 평균 수익률이 6~8%인데, 점점 더 많은 기업이 자사 주식을 재매입해 가격을 올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방법으로 현재 프랑스에도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1999~2015년 1,150억 유로가 투입됐고,(9) 2018년에 프랑스 CAC40 상장기업들이 매입한 주식은 1,090억 유로에 달한다. 이에 따른 손실은 수치화하기 어려울 정도다.
“오로지 수익성만 요구한 대가로 부와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공동체·사회·환경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대신 얼마나 많은 돈을 낭비했는가?” 경제학자 로랑 코르도니에는 이렇게 한탄했다.(10) 르 메르 장관은 프랑스가 “제조업 강국”의 영광을 되찾길 바란다면, 먼저 기업들이 금융지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편견5: 보호무역주의는 비효율적이고 위험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말했다.
“보호무역주의는 전쟁이고, 거짓이고, 후퇴다.”(2017년 4월 26일)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2대 위험” 중 하나라며, “수입제품 가격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수입품 사용률이 높은 빈곤 가정이 타격을 입는다”(11)고 주장했다.
보호무역주의는 전쟁으로 직결되고, “온화한 무역(doux commerce)은 평화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이미 역사를 통해 논파됐다. 1870년, 프랑스와 프러시아는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을 하게 됐다. 반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쳤던 ‘영광의 30년’ 동안에는 아무런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다. “보호무역주의가 국가적 후퇴와 교역의 종결을 의미한다”라는 주장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 경제학자 가엘 지로에 따르면, “1890~1914년에 영국을 제외한 모든 제조업 국가가 보호무역의 영향을 받은 교역정책을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국제무역은 연간 5%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팽창했다. 역사학자들이 ‘제1차 세계화’라 부를 정도였다.”(12)
그러면 오늘날은 어떤가? 자유무역 찬양론자들은 세계화 덕분에 선진국의 빈곤 가정이 낮은 가격에 쇼핑카트를 티셔츠, 장난감, 평면스크린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만약 보호무역 정책이 수입품 가격을 올린다면, “인건비”에 대한 집착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로서 잃는 부분을 노동자로서 얻어간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뒷일(보복, 제조업정책 부재 시의 비효율성)은 생각하지 않고 캐나다산 알루미늄이나 중국산 태양전지판에 관세 카드를 꺼내 든 것이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보호무역은 제조업 전반을 부활시키는 마법지팡이도 아니고, 그 자체가 경제정책이 될 수도 없다. 그저 보수적이고 일방적이고 공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협조적이고 친환경적이며 사회적인 정책을 보조하는 수단일 뿐이다.
“연대적 보호무역주의” 지지자들은 임금, 사회, 세금, 환경에 관한 특정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의 수입품에 대해 유럽 관세를 높이자고 제안한다. 이 경우 ‘쥬라기 공원’ 시대의 제조업을 지원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생태학적 전환기를 맞아 반드시 필요한 신생산업을 보호하고, 보다 공정하고 균형 있는 세계무역질서를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13) 그러므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보호무역이 아니다. 온갖 규제를 철폐한 현 시스템이야말로 경쟁력을 신성시하고, 노동자를 끝없는 사회경쟁으로 내모는 주범이다.
글·로라 랭 Laura Raim
기자
번역·이보미 lee_bomi@hotmail.com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