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백색지대의 사람들

2019-10-01     쥘리앙 브리고 l 기자

 

지하철을 타려면 휴대폰을 스캐닝하고, 교통편 예약이나 세금 납부에 인터넷을 사용해야 한다. 디지털화된 세상이 훨씬 편리하다고, 다들 익숙해질 테니 문제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의외로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감자밭과 아마밭, 고딕양식 교회의 종탑, 저 멀리 보이는 벨기에 국경, 대규모 인공 부화장, 주유소, 담배 가게, 초콜릿 가게. 프랑스 노르 주에 위치한 인구 4,000명의 옹드슈트 지역이다. 2개의 주요 도로 교차점에는 2명의 공무원이 일하는 복지센터(MSAP)가 있다. 20km 이상 떨어진 덩케르크 주민센터까지 가기 어려운 주민들을 위한 곳이다. 

2019년 5월 9일 오전 11시. 마리클로드 클라리(65)가 두꺼운 서류뭉치 2개를 들고 센터로 들어섰다. “평생 문서업무를 하면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인터넷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하게 되니 꼭 바보가 된 기분이다.” 이곳에는 온라인 민원업무에 실패한 사람들이 몰려든다. 과거에는 쉽게 처리하던 일들인데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참고로 MSAP는 예전에 ‘푸앙컴(Point Com.)’이었다가 ‘서비스연계지점(Point Relais Services)’으로 바뀐 후, 현재 2,000개에 달하는 주민센터(Maisons France Services)에 속하게 됐다. 

 

인터넷이 불편한 1,300만 프랑스인

‘디지털화’ 때문에 이곳 농촌마을의 삶이 복잡해졌다. 한때 부동산업과 판매업을 했던 클라리는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그녀에게 온라인 세금 신고는 ‘악몽’이다. “우리 마을이 세상의 끝에 있는 것도 아닌데, 인터넷 서비스는 최악이다! 서비스센터에 전화하면 껐다 켜라는 말만 반복한다. 정말 지겹다.” 클라리의 마을은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는 ‘백색 지역(2018년: 600개)’의 하위분류인 ‘그림자 지역(인터넷이 보급되기는 하지만 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지역-역주)’에 속한다. 그녀도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받지 못하는 1,280만 명의 프랑스인 중 한 명인 것이다.(1) 클라리를 맞이한 지방공무원 크리스토프 리케부쉬가 그녀를 달래며 세금신고에 필요한 개인고유번호와 비밀번호를 물었다. 클라리는 서류뭉치를 이리저리 들추며 샅샅이 뒤져보곤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크리스토프가 다시 물었다. “아멜리(의료보험공단 사이트) 계정은 있으시죠? 모든 민원사이트에서 사용하실 수 있어요.” “네? 아멜리요?”

휴대폰, 컴퓨터, 이메일 등 비밀번호의 홍수 속에 허우적대는 클라리다. 크리스토프가 물었다. “그럼 이메일은 있으시죠?” “아, 그럼요. 있을 겁니다.” 클라리는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 손 편지나 얼굴을 보고 하는 대화를 선호한다. 이윽고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코드를 바꿔드렸어요. 새 코드는 이메일로 확인하세요.” 결국 클라리는 코드를 알아내기 위해 손녀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2018년 기준 프랑스인의 75%가 소유한 스마트폰이, 그녀에게는 없다. 

마지막으로 크리스토프는 이렇게 안내했다. “그 코드를 받아서 재방문하시면 새로운 번호를 발급해드릴게요.” 운이 좋으면 국세청 메일을 무사히 받게 될 것이다. 종종 스팸함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ID, 비밀번호, 캡차(CAPTCHA, 사람과 로봇을 구별하기 위한 이미지 인지 테스트), 메일 확인 등 클라리에게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바보가 된 기분이다. 인터넷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포기할 때가 많다. 이제는 은행 업무도 전부 인터넷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얼굴을 직접 보고 말하는 편이 안심이 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을 “불편하다”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인은 1,300만 명에 달한다. 18세 이상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수치다.(2) 인터넷 친숙도가 가장 낮은 인구의 66%가 노년층이며, 70세 이상 인구의 55%가 집에 인터넷이 없다. 35세 이하 청년층의 20%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가 없거나, 있어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거나, 인터넷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 ‘디지털맹(Illectronisme)’이라는, 다소 적나라한 용어도 생겨났다. 인터넷 미사용자 중 절반이, 옹드슈트처럼 인구 2만 명 이하 지역에 산다. 크리스토프는 설명했다. “디지털맹은 퇴직자보다는 50대에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퇴직자들은 오히려 인터넷 사용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인터넷을 할 시간도 많고, 손주들과 통화하는 등 인터넷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인터넷 교육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아직 예정된 교육 과정이 없다.”

2018년 9월, 무니르 마흐주비 디지털부 장관은 7,500만~1억 유로(약 988억~1317억 원)를 투자해 프랑스인 1,300만 명에게 인터넷 교육을 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해 교육 대상자가 약 150만 명이니, 갈 길이 까마득하다.(3) 

 

“디지털화가 친환경적이라고?”

인터넷 미사용자들은 늘 숨통이 조여드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2017년 11월, 운전면허증과 자동차등록증 온라인 신청이 의무화됐다. 각종 납세, 고용청 가입, 가족수당기금(CAF) 가입, 건강보험 및 퇴직연금 가입, 전기사용 신청, 학생장학금 신청 등도 마찬가지다. 납세신고의 경우,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이들에게 1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레스토랑·호텔 예약, 공연·스포츠경기·영화관·교통편 예매, 병원진료 예약, 테니스대회 신청, 행정업무, 마트 셀프계산대까지 날로 디지털화가 확산되고 있다.(4) 

파리 지하철의 경우, 2020년부터 종이티켓 발급이 중단되고, 충전식 교통카드나 휴대폰 결제로 대체될 예정이다. 2021년부터 의료보험카드(Vitale)도 ‘apCV’라는 모바일앱으로 대체된다.(5) 이에 따라 건강보험공단(CPAM) 사무소들도 대거 사라질 예정이다(이제르 지역의 CPAM 사무소도 차례로 문을 닫고 있다). 병원, 기업, 영화관, 관공서 등에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시스템 전면 디지털화’를 발표한다. 애플과 영화사 파테-고몽도 마찬가지다. ‘비접촉’ 사회가 도래했고, 시민 수백만 명이 스크린을 마주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까지 공공서비스를 전면 디지털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제적 전망은 장밋빛이다. <프랑스 앵포>에 의하면, “연평균 민원처리 건수가 시민 1명당 6건임을 감안하면 계산은 간단하다. 전면 디지털화를 통해 국고재정을 사용자 1명당 64유로(약 8만 4,000원), 총 4억 5,000만 유로(약 5,928억 원)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빠뜨렸다. 전면 디지털화 사업에 90억 유로(약 11조 8,560억 원) 이상이 투입된다는 것이다.(6) 2018년 1월 22일, 회계감사원(CDC) 앞에 선 마크롱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개혁을 위한다면 관행을 모조리 바꿔서라도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 (…) (국가는)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릴 부근의 롬 마을에 사는 전기기술자 다비드 르콩트(49)는 “우리는 자유국가에 살고 있지만,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바람에 선택권이 점차 줄고 있다”라며, “나는 결코 이런 상황을 원했던 적이 없기에, 디지털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계획의 문제다. 한 번에 한 가지씩 진행했어야 했다”라고 덧붙였다. 공연관련 전기기술자인 르콩트는 디지털화가 중구난방으로 진행된 탓에 인터넷 및 IT 기기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디지털화는 친환경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한 채 인간 간의 접촉을 없애고 있다. 종이의 90%는 재활용 가능하지만, IT기기는 불가능하다”라고 비판했다.

르콩트는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알릴 트위터 계정도, 종일 ‘좋아요’를 누를 페이스북 계정도, 하루에 몇 보 걸었는지 알려줄 스마트폰도 없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이메일 주소도 없다. 그는 말했다. “인터넷이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 제공되는, 그런 진정한 공공서비스가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나도 인터넷을 사용할 의향이 있다.” ‘그날’을 기다리며 그는 ‘예전 방식’으로 모든 업무를 본다. 기차표는 매표소에서 구매하고, 민원업무를 볼 때도 관공서를 직접 방문한다. 르콩트는 그런 가운데 겪은 “터무니없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최근 산업재해를 입었다. 고용청에서 산재보상명세서를 제출하라기에 건강보험공단을 찾아갔다. 위치가 우리 마을이라서 가는 길이 번거롭진 않았다. 그런데 서류 양식을 요청했더니, 창구 직원이 그럴 필요 없다며 이메일 주소를 달라고 했다. 나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크게 당황하며 자신은 서식을 출력하거나 고용청에 바로 전송할 권한이 없다면서, 상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결국 그 상사가 가짜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서 서류를 발송한 다음 출력해줬다. 이 과정에서 옥신각신하는 데 최소 두 시간을 소모한 것 같다. 뭐, 그래도 여기에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2019년 봄, 다비드는 세금신고를 위해 랑베르사르 지역의 세무서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또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세무서 직원들이 인터넷으로 신고해야 한다기에, 공용 컴퓨터가 어디 있는지 물었더니 없다는 거다. 이건 좀 심한 것 같다. 세금신고를 무조건 인터넷으로 하게 만들어놓고는 말이다. 결국 자비로 컴퓨터를 장만해서, 기계가 구식이 되면 2년마다 바꾸고, 인터넷을 신청하고, 개인정보까지 공개하란 말인가? 나는 싫다. 사절이다.” 관공서, 교통, 은행, 마트까지…. 다비드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세세한 부분을 모조리 건너뛰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포유동물이 아닌가. 언어가 달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시선을 마주치면서, 감정을 전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모니터를 거쳐야 하니,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서로를 마주할 수 있을까? 눈을 통해서만 자연스레 알아챌 수 있는 암호들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들을 도와줄 권리가 없다”

사람이 없는 빈 창구와 무인민원처리기 앞에 홀로 서 있는 방문객. 이미 수많은 관공서에서 목격되는 모습이다. 예전 섬유공장 부지에 새로 지어진 덩케르크 고용청에는 “매일 아침 IT기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만 들끓는다.” 22세의 카미유 S.(가명)는 노동계약 없이 이곳에서 시민 자원봉사자로 일한다. 정식 일자리를 찾지 못한 그녀는 이곳에서 최저임금의 절반을 받으며 주당 28시간 일하도록 ‘고용’됐다. 카미유가 맡은 업무는 구직자를 무인민원창구로 안내하는 것까지다. “민원업무를 대신해주는 것은 금지사항이다. 그런데, 이곳에 오는 구직자들 대부분이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서 사실상 대신해줄 수밖에 없다.”

2019년 5월 2일, 한 젊은 남성이 고용청 재가입 서류를 힘겹게 작성하고 있다. 테디 N.은 “개인정보 업데이트를 깜빡해서 계정이 삭제됐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넷으로 재가입하지 않으면 “RSA(Revenu de Solidarité Active: 능동적 연대소득, 실업수당보다 낮은 급여를 받고 재취업하는 실업자에게 정부가 보전해주는 차액-역주)에서 100유로(약 13만 2,000원)가 삭감된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파란 옷을 입은 젊은 애(영화에서 직원들이 자원봉사자를 이렇게 부른다)” 10명 중 1명이 설명을 시작한다. 매일 아침(오전에만 문을 연다) 이들은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ID 있으시죠? 먼저 ‘마이 페이지’로 들어가세요. ‘고용청과 주고받은 메일’로 들어가서 ‘이메일로 서류 보내기’를 누르세요. 그런 다음 ‘스캔’, ‘페이지 추가하기’, ‘제출’, ‘확인’, ‘새로운 서류 보내기’, ‘확인’, ‘제출’을 차례대로 클릭하세요. 서류가 다 전송될 때까지 반복하시면 돼요.”

시민 자원봉사자라면 ‘유용한’ 업무를 수행해야 할 텐데, 이들에겐 그런 의무감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또 한 명의 자원봉사자가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 개방형 공유 사무실)로 사용 중인 공장의 굴뚝 밑에서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결국에는 신청을 못해서 돈을 못 받는 겁니다. 그게 문제죠. 우리는 그들을 도와줄 권한이 없어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대부분이 여성인, 굽은 어깨에 피곤한 낯빛의 자원봉사자들은 무기력함을 토로했다.

덩케르크 군청 안내데스크에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 시민 자원봉사자 3명이 방문객들을 안내데스크에 놓인 컴퓨터 앞으로 인도할 뿐이다. 참고로 자원봉사자 3명의 봉급이 공무원 1명의 인건비와 동일하다. CAF, 고용청, 사회보험 등 모조리 ‘비접촉’ 사회로 전환되고 있다. 정부는 ‘절차의 간소화’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체류증을 갱신하는 일만 해도, 이런 복잡한 인터넷 절차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한 예로 파리 공항 민영화에 반대하는 국민투표 서명운동 사이트를 들 수 있다. 사용자가 결국 참여를 포기하게 할 만큼 절차를 어렵게 만드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도 난관은 존재한다.” 퇴직 후 살람(Salam) 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조제트 보쉐는 말한다. 살람은 프랑스 북부의 망명자를 돕는 단체다. “체류증 갱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넷으로 하게 돼 있는데, 모든 항목을 5분 안에 작성해야 한다(아니면 세션이 만료된다). (망명자들이) 간신히 신청에 성공해서 2, 3개월 혹은 6개월 후에 인터뷰가 잡혔다고 치자. 그러면 이메일을 한 통 받게 되는데, 만일 15분 이내에 답변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취소된다. 메일에는 아주 작게 ‘확인’이라고 쓰여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도청과 인터뷰 잡는 일이 상업화될 법하다. 센생드니의 경우, 대사관의 비자발급 협력업체처럼 도청과의 인터뷰를 알선하는 데 수십, 수백 유로의 수수료를 요구하는 업체까지 생겨났다.(7)

 

디지털화에 맞선 인권선언

“정말 지옥 같았다.” 애니(62)는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예전 고용주에게 연락해서 급여명세서를 받고, 스캐닝해서 해당 사이트에서 발송하고, 요청하고 또 요청해야 한다. 기계 사용법을 물어보는 것도 한두 번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끊임없이 묻는 데 지쳐버렸다. 분명 말하지만, 난 정말 인터넷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평생 HLM(Habitation à Loyer Modéré: 저가 임대 아파트) 청소부로 일한 애니는 몇 달간을 소득 없이 지내야 했다. “두 달간 단돈 몇십 유로로 버텼다. 정말 나락이었다.” 

그녀는 유일한 소득이었던 ASS(Allocation de Solidarité Spécifique: 특수연대수당) 500유로가 갑자기 끊겼던 시기를 회상하며 말했다. 애니는 대신 RSA를 신청하려고 CAF을 찾았다. “모든 절차가 인터넷에서 이뤄진다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곳에선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도움 대신 명함을 하나 받았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애니가 말한 ‘여기’란 카르푸 드 솔리다리테(Carrefour de solidarité: ‘연대의 교차점’이라는 뜻의 단체명) 사무소로, 군청, CAF, 노동법원, 덩케르크 법원 사이에 위치한 기관이다. 

그곳에는 풀타임 직원인 산드라와 스테파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덩케르크에서 식량을 원조하는 일에 열심이었으며, 이 지역의 인도주의적 온정 덕분에 일꾼이 곧 3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8) 2018년 7월, 카르푸 드 솔리다리테와 CAF는 인터넷 미사용자를 돕기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스테파니는 애니가 RSA를 받기 위해 이곳에 몇 번이나 왔는지 떠올렸다. “30번? 40번? 50번? 셀 수도 없다! 모든 신청은 인터넷으로 해야 하고, 답변도 이메일로 온다. 하지만 애니는 이메일 계정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애니가 인터넷을 통해 RSA를 수령하는 것과 퇴직절차를 도와줬다. 퇴직절차까지 디지털화된 상황이었다. 이제 애니는 모든 보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됐다.” 스테파니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애니는 그녀의 보물, ‘비밀 수첩’을 보여줬다. 인터넷 미사용자들이 잊어버리지 않게 카르푸 드 솔리다리테가 중요한 비밀번호들을 수첩에 적어놓은 것이다. 애니는 전면 디지털화의 과도기를 정면으로 맞닥뜨린 수백만 명의 프랑스 조기퇴직자와 청년 퇴직자를 대변한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누군가를 한 해 동안 궁핍에 빠뜨릴 수 있다. 디지털 문서를 다룰 때 항상 존재하는 불안요소다. 그러나 디지털화 덕분에 시간이 대폭 절약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인터넷에 끌려다니지 않고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 소규모 조직의 수장인 산드라가 말했다.

프랑스 최저생계수당 수령자가 400만 명을 넘어서고, 이중 170만 명이 RSA 수령자다. 그들 중 우리가 이곳에서 만난 보조금 미수령자와 디지털 비사용자는 빙산의 일각이다. 여론조사기관 CSA가 언론노조(SPS)의 의뢰를 받아서 2019년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디지털 포기자’가 프랑스 인구의 1/5에 달한다.(9) 산드라는 “디지털화 때문에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라며, <프랑스 인권선언>을 인용했다. “모든 사람은 기본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 2018년, RSA 미수령액은 50억 유로(약 6조 6,000억 원)를 넘어섰고, 가족수당 및 주택수당 미수령액은 이보다 조금 낮았다. 반면 보조금 부정수급은 40억 유로(약 5조 3,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10)

 

“내 어머니처럼 될까 두렵다”

덩케르크 부근에 위치한 인구 4,500명의 마을 레프랭쿠크 마을은 복지관 MPT(Maison Pour Tous: ‘모두를 위한 집’이라는 뜻)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IT교육을 실시하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2019년 5월 20일, 60대 늦깎이 학생인 미셸 뒤케누아, 클로디 르페브르, 마리즈 바타이유는 여느 월요일처럼 무료수업을 들으러 왔다. 마리즈는 말했다. “남자들은 항상 모든 걸 안다는 듯이 행동하길 좋아한다. 그래서 모르는 게 있어도 겸손하게 도움을 청하는 법이 없다. 우리는 일상에서 인터넷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러 다닌다. 좋은 취미활동이기도 하다.”

IT교육 강사 바네사 반베네덴이 말했다. “오늘은 E-티켓 예매, 바우처 구매, ‘미슈’ 예약법을 배울 겁니다. 미슈는 파리의 유명한 카바레 디너쇼랍니다.” 마리즈를 비롯한 세 학생들은 중급반으로, 이미 컴퓨터, 타블렛, 스마트폰, 프린터, 스캐너도 갖추고 있다. “지난주에는 세금신고서식 작성법을 배웠고, 다음 주에는 이메일 계정 만드는 법을 배울 겁니다.”

프랑스철도청(SNCF)에 의하면, 기차표 온라인 예매율은 2019년에 90%에 달했다. 클로디는 SNCF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 표로 예매하고 보험도 들어야 하나요? 이거 사기 아닌가요?” 그러자 우리를 동행한 실비안 토마 레프랭쿠크 부군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보험을 팔려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사기라고 밝히고 팔진 않겠죠?” 미셸도 큰 소리로 묻는다. “만약 스마트폰이 없거나 기차 안에서 배터리가 방전되면 어떻게 하죠?” 대답이 없다. 환불 불가능한 티켓, 실시간 바뀌는 요금 등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바네사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라는 조언밖에 해줄 수 없다.

두 번째 과제는 바우처 구매다. 바네사는 “후기를 자세히 보라”고 조언한다. 마리즈의 모니터에 ‘현재 접속자가 몰리고 있다’는 메시지가 뜬다. 이를 본 바네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에 속으면 안 돼요. 충동구매를 조장하려는 겁니다. 이럴 땐 사생활보호 모드로 새 창을 띄우는 게 좋아요.” 그러자 세 학생이 동시에 묻는다. “그게 뭐예요?” “쿠키가 남지 않게 하는 겁니다.” 중급반인 세 학생은 이제 쿠키가 과자가 아니라 사용자가 인터넷을 이용한 흔적이며, 판매자가 쿠키를 보고 사용자가 사이트를 재방문했음을 알아채고 가격을 올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러분이 이전에도 이 사이트에 들어왔음을 알아채고 가격을 바꾸는 거죠. 그래서 사생활보호 모드가 필요한 겁니다.” 바네사가 설명했다. 

우리 옆에 있던 토마 부군수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우리 세대는 낙오자들이다. 나만 해도 사회보험공단에서 43년을 일했는데 아직도 아멜리 사이트(Ameli.fr)를 잘 모른다.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이제 다른 선택지가 없다. 전기세도 마찬가지다. 이제 덩케르크에는 프랑스전력청(EDF) 직원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아서, 우리 집 전기세에 관해 문의할 수가 없다. 정 궁금하면 유료번호로 전화해야 한다.” 마리즈가 “내 아이들은 내게 방법을 설명하거나 보여주지 않고, 직접 해버린다. 그럴 때면 85세가 되신 내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평생 농사만 하셨지, 컴퓨터를 만져보신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대신 모든 것을 해드린다. 20년 후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해야 하는 세상이 오면, 나도 어머니처럼 되지 않을까?” 

 

 

글·쥘리앙 브리고 Julien Brygo 
기자, 『빌어먹을 직업!: 구두닦이부터 트레이더까지 직업의 유용성과 사회적 문제에 관한 조사(Boulots de merde! Du cireur au trader, enquête sur l’utilité et la nuisance sociale des métiers)』의 공동저자.

번역·이보미 lee_bomi@hotmail.com
번역위원 

 

(1) ‘En France, 6.8 millions de personnes n’ont pas accès à Internet 프랑스에서는 680만 명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다’, <20minutes.fr>, <AFP>, 2019년 3월 21일.

(2) ‘13 millions de Français en difficulté avec le numérique 디지털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1천 3백만 명의 프랑스인’, <Mission société numérique>(pilotée par le gouvernement de M. Édouard Philippe), https://societenumerique.gouv.fr

(3) Sylvain Rolland, ‘Illectronisme: l’État prévoit jusqu’à 100 millions d’euros pour former 13 millions de Français 디지털맹 교육: 프랑스 정부가 1천 300만 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육에 1억 유로 투자’, <La Tribune>, 2018년 9월 12일, www.latribune.fr

(4) Sophie Eustache, ‘La patiente informée, une bonne affaire 독티시모는 당신의 월경주기를 알고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9년 5월호.

(5) Julien Lausson, ‘Votre smartphone pourra bientôt servir de carte Vitale 스마트폰이 곧 국민건강보험카드 기능을 대체한다’, <Numérama>, 2019년 4월 29일, www.numerama.com

(6) Olivia Ferrandi, ‘Comment faire vos démarches administratives si vous êtes allergique à Internet? 인터넷 사용이 어려울 때 행정처리는 어떻게? ’, <France Info>, 2019년 4월 7일, www.francetvinfo.fr/ 참조: Sylvain Rolland, ‘L’État 100% numérique de Macron coûtera 9.3 milliards d’euros 마크롱의 디지털 정책을 100% 실현하는 데 93억 유로가 소요된다’, <La Tribune>, 2017년 9월 26일.

(7) Julia Pascual, Corentin Nicolas, ‘Titres de séjour: le prospère business de la revente de rendez-vous en préfecture 체류증: 관할경찰서 내 대기번호 판매의 호황 비즈니스’, <르몽드>, 2019년 6월 1일.

(8) “‘덩케르크 시의 고용 연대’ 조치는 2018년에 14만 유로 이상의 기부금을 모금하여 3년 동안 ‘사회적 일자리 자금’에 사용토록 했다. Le dispositif ‘Dunkerquois solidaires pour l’emploi’ a permis de récolter plus de 140,000euros de dons défiscalisables en 2018, répartis dans le financement d’emplois ‘d’utilité sociale’ d’une durée de trois ans. www.dk-solidaire.fr

(9) https://sps.fr/illectronisme/etudes-et-infographies/

(10) Lilian Alemagna, Amandine Cailhol, ‘미승인: 분배되지 않은 수십억 유로 Non-recours: des milliards non distribués’, <Libération>, 파리, 2018년 6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