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의 문화톡톡] 낭만적 유토피아의 발명과 로맨스, 가부장적 결혼에 대한 대응전략
1. 로맨스와 여성 그리고 가부장제
이제, 로맨스는 여성의 서사로 확고하게 굳어졌다. 로맨스로 분류되는 드라마와 영화, 웹소설 등에 대한 감상평에는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청자나 독자들의 글로 넘쳐난다. 더욱이 여성 작가의 작품에 대한 공감적 평가는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반응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월등히 높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로맨스 특유의 낭만성을 좋아하는 남성들이 있는가 하면 로맨스물을 즐기지 않는 여성들도 많다. 때문에 로맨스를 즐기는 독자나 시청자가 모두 여성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로맨스를 여성 서사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로맨스의 지각변동은 여성 독자들의 폭발적인 증가와 더불어 각 시대 여성들의 취향과 감정을 반영한 새로운 유형의 로맨스물이 등장했던 독서시장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적 반응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신여성들이 독서시장에 대거 진출했던 빅토리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까지 남성의 취향과 감정에 충실한 중세 기사도 로맨스나 낭만주의 로맨스에서 탈피하여 여성들이 직접 낭만적 사랑을 찾아나서는 새로운 유형의 로맨스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1979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7천만 권이라는 엄청난 양이 팔렸던 ‘할리퀸 신드롬’은 결혼에 대한 환상이 소거된 채 연애에 집중하는 현대로맨스의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 들어 연애에 대한 환상마저 꿈꾸지 않는 밀레니얼세대 여성 독자들이 증가하는 추세에 따라 애초부터 연애가 불가능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는 의미)’의 현생을 포기하고 다음 생에 다른 몸으로 태어나 연애에 성공하는 새로운 유형의 로맨스판타지가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로맨스의 지각변동을 관통하는 핵심에는 여성과 가부장제의 함수관계가 작동하고 있다. 여성들이 로맨스의 생산주체이자 소비주체로 대거 등장한 빅토리아시대에 여성작가와 여성독자들이 공유하는 가부장제 대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여성 중심의 플롯과 서사를 전개하는 ‘낭만적 유토피아(romantic utopia)’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 새로운 로맨스의 플롯과 서사는 오늘날까지 로맨스의 장르관습으로 굳어져 시대와 사회 변화에 따라 변주를 거듭하고 있다.
2. 낭만적 유토피아는 어떻게 발명됐는가?
결혼은 남녀의 결합을 사회적으로 승인하는 제도이다. 미국의 여성운동가 루시 스톤(Lucy Stone)에 따르면, 성과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8세기 낭만주의 소설의 영향과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서 비롯됐다. 당시 결혼 성립 요건의 핵심은 경제적 여건이었지만 성과 사랑을 결혼의 이상조건으로 결합시켰다.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은 세계 최초로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등장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순결한 성과 순수한 사랑의 상징이자 결혼의 이상적 모델로 기호화됐다.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은 경제발전과 도시화를 촉진시켰고, 신사사회(gentry society)와 중산 지주층으로 구성된 부르주아의 대약진을 가져왔다. 새롭게 부상한 신사사회는 귀족들과 혈연이나 결혼으로 인맥이 형성된 계층이며, 막강한 재력을 축적한 중산층은 신사사회와 혼사를 통한 유대관계를 맺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처럼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 결합된 근대적 일부일처제가 등장했다. 이때 낭만적 사랑의 이상은 결혼에 성과 사랑을 동반한 운명적 만남이라는 특별하고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변화에 따라 그 이전까지 전해오던 낭만적 사랑은 결혼을 위한 신사의 예절과 구애의 법도로 변질됐다. 기사도 로맨스에서 유래한 gallantry는 아름다운 여성을 찬미하고 위기에 처한 여성을 구해주는 의협심 강한 신사도의 주요 항목으로 미화됐다.
그러나 당대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회화에는 신사의 경솔한 구애에 넘어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 여성들이 단골소재로 등장했다. 또한 여성들에게 유독 성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차별적인 일상의 폭력은 신여성들을 정신적 고통으로 내몰아 템즈강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는 여성들의 자살이 사회문제로 급부상할 정도였다.
이런 맥락에서 대부분의 중산층 여성이 처한 실존적 현실은 정숙한 숙녀가 되어 신사사회에 안전하게 진입할 것인가, 사랑하는 남자와 소박하게 살 것인가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하는 운명적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전자를 택할 경우 사랑 없는 건조한 결혼생활을 감수해야 하고, 자칫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사랑을 택할 경우 평생 가난을 모면하기 어렵게 된다.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일생 단 한 번의 운명적인 사랑과 일부일처제의 결혼을 결합한 근대적 사랑을 ‘친밀성이 결여된 낭만적 사랑’으로 규정했다. 친밀성의 낭만적 사랑은 사랑하는 남녀가 평등한 관계에서 감정적 소통을 바탕으로 자유와 자아실현을 결합시켜 동반자적 결혼으로 완성한다는 개념을 내포한다.
그러나 기든스도 인정했듯이 일부일처제의 가부장제에서 남성들은 결혼제도 바깥의 여성에게 흡수되는 열정적 사랑은 물론 사랑이 결여된 채 영혼 없는 성행위에 몰입하는 조형적 사랑도 자유롭게 즐겼다. 반면 여성들에게는 오직 단 한 번의 운명적 사랑과 신성한 결혼이라는 일부일처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엄격하게 강요했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눴거나 혹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강간에 의한 피해일지라도 여성들에게는 평생 가혹한 사회적 비난이 가해졌다. 강간으로 인해 미혼모가 된 테스를 순결한 여성으로 그려낸 토마스 하디의 작품, <더버빌가의 테스>(1891)에 쏟아졌던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판과 독자들의 맹렬한 비난은 당대 여성에게 가해졌던 순결이데올로기의 정도를 가늠케 한다.
여성들에게 가부장적 결혼이란 아버지의 집에서 나와 남편의 집으로 옮겨가는 이사에 불과하다. ‘아버지의 딸’에서 ‘남편의 아내’로 이동하기 위한 절차는 가문과 가문 간의 결정을 수용하는 여성의 사적 결단과 결혼계약, 즉 약혼으로 이어진다. 이때 틈입되는 낭만적 사랑이란 남편의 생활감각과 문화체계를 지지할 수 있는 요조숙녀로서의 자격조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낭만적 사랑은 실상 여성을 집안의 천사로 미화하여 가정 유지에 필수적인 순결과 사랑을 강요하는 가부장제의 이념이자, 엄한 남편(아버지)과 자애로운 주부(어머니)라는 이상적 모델을 내새워 여성을 가정 내에 종속시키는 모성이데올로기의 미화이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문해력을 지닌 빅토리아 신여성들은 이런 모순을 간파했고, 이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여성들도 자기 취향에 맞는 남자를 선택할 권리를 주장하며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낭만적 사랑의 모델을 만들어냈다. 가부장적 결혼제도에서 낭만적 사랑과 운명적 결혼의 결합이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을 폭로하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생활양식에 대항하기 위해 새롭게 낭만적 유토피아를 창안했던 것이다. 낭만적 사랑을 12세기의 발명품으로 지정했던 역사학자 샤를 세뇨보(Charles Seignobos)의 말을 빌리자면, 19세기의 발명품은 단연 낭만적 유토피아라 할 수 있겠다.
3. 낭만적 유토피아,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보상
유토피아는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이상향이다. 낭만적 사랑과 운명적인 결혼의 환상적 조화는 동화에서나 있을법한 판타지이다. 물론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판타지를 꿈꾸지만,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은 가부장적 결혼의 현실에서 이런 환상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이 고달플수록 환상은 더욱 달콤한 법! 이런 점에서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은 당대 여성들이 꿈꾸는 판타지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바로미터이다. 환상적인 남자 주인공과 현실적인 여성 주인공이 벌이는 낭만적 사랑의 서사는 가부장적 결혼에 피로도가 높은 여성들을 위로하는 보상물이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은 빅토리아시대 중산층 여성들에게 연애와 결혼이란 ‘열정이 배제된 이성’과 ‘냉정한 판단이 배제된 감정’ 사이를 오가는 고난도의 과제라는 점을 여성의 시각으로 생생하게 포착해냄으로써 당대 독서시장을 석권했다.
특히 <오만과 편견>(1813)에는 당시 여성들이 취할 수 있는 세 가지 선택지가 구체적으로 예시되어 있다. 즉, 관습에 따라 평범한 신사와 무난한 결혼을 선택한 맏딸 제인, 경박하게 감정에 충실하여 가난뱅이 군인과 결혼한 막내 리디아, 냉철한 이성과 열정적 감정 사이에서 탁월한 균형을 유지하여 연애와 결혼에 성공한 둘째 엘리자벳이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 절묘한 균형감각을 발휘하여 엘리자벳이 선택한 남자, 다씨는 신분과 경제력, 친밀성의 영역인 감정과 취향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남이다. 다씨는 귀족 가문의 귀공자이며 범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재산 상속자이다. 게다가 엘리자벳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순정남이며, 감정에 사로잡혀 위기에 처한 리디아 부부를 구출하는 등 도덕심과 의협심까지 갖춘 이상적인 신사도가 소설로 형상화된 완벽한 남자 주인공이다.
제인 오스틴의 주인공들은 경제적 안정과 행복한 삶을 선물해줄 완벽남에 대한 여성판타지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해준 인물인 동시에 당대 여성들이 동경하고 추종하는 자기계발의 모델이다. <엠마>(1815)의 주인공 엠마처럼 사랑스럽고 상냥하지만 때로 교만한 결점을 보완하고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벳처럼 오만하지만 이성과 감성 사이에 고도의 균형감을 키운다면, 경제력과 가문, 순정과 외모, 친밀성의 취향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남과의 연애에 성공할 것이라는 낭만적 유토피아의 실현 가능성을 보상해준다.
다른 한편, 샤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1847)에서 낭만적 유토피아는 훨씬 현실 지향적이다. 제인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결혼 지참금을 건네줄 부모가 없는 고아 출신의 가난한 가정교사이다. 사랑보다 경제적 조건을 중시했던 빅토리아사회에서 화폐자본과 매력자본이 부족한 여성은 결혼시장에서 결격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제인은 좌절하지 않는 강인한 인성과 고아학교에서 익힌 문화자본을 토대로 귀족 출신의 사업가 남자와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고아 출신의 가정교사와 귀족 남자와의 결합은 낭만적 사랑과 이상적 결혼이라는 당대 기준에 전혀 맞지 않다. 귀족 가문에서 기숙하는 가정교사는 상류층에 걸맞은 교양이나 문화자본을 갖췄지만,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고용인 신분이다. 때문에 제인과 로체스터의 결합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지참금과 계급격차이다.
문제는 강인하고 자존심 강한 제인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런 문제점은 제인이 숀필드 대저택이 주는 아늑하고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면서도 로체스터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자제한다거나, 자신보다 20살이나 많고 추남이며 성격이 괴팍한 로체스터를 사랑하는 이중심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제인에게 아버지 연배의 귀족남 로체스터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보호자이자 사회적 안정망이다.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제인은 지참금을 제대로 갖춰 부유한 귀족과 결혼하고 싶다는 동경을 키워왔고, 화폐자본과 계급경쟁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체득하며 살아왔다. 제인이 로체스터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런 가치관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동시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유일한 남자라는 점이다. 로체스터는 가난한 목사를 사랑한 대가로 한 푼의 지원금도 없이 쫓겨나 일 년 만에 죽어 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을 뒤늦게나마 채워주고, 고달픈 환경에 굴하지 않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쌓인 결핍감을 한꺼번에 보상해준다.
한편, 로체스터는 사업과 유산상속을 통해 재력을 확보한 귀족이다. 그러나 신사도와 거리가 먼 파렴치한으로 보이는 로체스터는 실상 여성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고독한 남자이다. 자메이카에서 사업상 결혼한 아내는 신사사회에 진입하기 어려운 자격 미달의 국외자이고, 그가 교제한 많은 여자들은 모두 재산을 탐내는 속물들이다. 이렇게 마음이 공허한 로체스터에게 교양을 갖춘 강인한 제인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여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빅토리아시대 여성들이 창안한 낭만적 유토피아에서 결혼이 성립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평등한 관계 회복에 있다. 엘리자벳과 다씨 경우 서로에 대한 오만과 편견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평등하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결혼을 승인받게 된다. 그러나 계급격차와 비도덕성에 가로막힌 제인과 로체스터의 경우 지참금과 도덕성 회복의 문제가 해결돼야 비로소 결혼이 가능해진다. 숀필드를 떠난 제인이 우연히 친삼촌으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자마자 로체스터와의 결혼을 결심한다거나 화재로 죽어가는 아내 버사를 구하는 과정에서 눈을 잃고 팔을 다친 로체스터의 육체적 불구가 곧 도덕적 결함의 해소로 등치되는 것은, 그것이 바로 둘 사이의 평등한 관계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계급격차와 부도덕의 문제가 해결되자 비로소 제인과 로체스터는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사회적 승인으로서의 결혼이 가능해진 것이다.
빅토리아시대의 속설 중에 ‘남자의 사랑은 길어야 여섯 달’, ‘연애는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의문이 든다. 다씨와 같은 완벽남과 이상적인 결혼을 한다면, 과연 오랫동안 연애처럼 달콤한 사랑이 이어질까?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인 로체스터가 불구가 되어 전적으로 제인에게 의존하는 착한 남자로 변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경제권과 양육권 등 모든 권한을 남편에게 양도하는 가부장적 결혼생활에서 여전히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는 낭만적 유토피아에는 결혼의 현실성이 애초부터 소거됐다. 백마 탄 왕자를 만나 결혼에 이르는 해피엔딩의 동화처럼 고달프고 비루한 결혼생활은 삭제하고 오직 만남에서 청혼에 이르는 연애과정만 전경화 할 뿐이다.
신데렐라 동화에서 왕자와의 결혼은 착하고 아름다운 신데렐라에게 구두가 이어주는 우연적 포상으로 성립된다. 그러나 낭만적 유토피아에서 여주인공들의 결혼에는 몇 가지 자격조건이 필요하다. 엘리자벳이나 엠마와 같이 중산층의 여성들은 외모는 기본이고 순결한 섹슈얼리티와 순수한 사랑이라는 매력자본, 글을 쓰고 읽을 수 있고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즐길 정도의 교양이라는 문화자본, 지참금이라는 화폐자본 등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고아 출신의 제인에게는 더욱 강도 높은 헌신과 희생과 인내가 추가된다. 소설의 말미에서 로체스터를 향해 “당신의 이웃으로, 간호사로, 당신의 손과 눈이 되어 살아가겠어요. 다시는 당신을 외롭게 두지 않을 거예요”라는 제인의 선언은 이 가혹한 요구를 내면화하는 자기최면과도 같다.
빅토리아시대에 발명된 낭만적 유토피아의 주인공들은 오늘날 로맨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유형의 원조에 해당한다. 제인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이 부자남이나 알파남과의 연애에 성공하는 신데렐라라면, 제인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의 원조이다. 다씨가 완벽남의 원조라면, 로체스터는 외적 조건을 갖췄지만 성격이 괴팍한 나쁜 남자의 원조이다. 물론 무수한 작품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지만 여성들에 의해 발명된 낭만적 유토피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가부장적 결혼의 모순이 존속되는 한 낭만적 유토피아로 보상받으려는 여성독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글: 이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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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구글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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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로맨스, 여성, 가부장제의 함수관계에 대한 독자반응비평: 제니스 A. 래드웨이의 『로맨스 읽기: 여성, 가부장제와 대중문학』을 중심으로」, 『대중문학연구』 25권 3호, 2019. 8. 349-3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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