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약’의 유혹
우수한 학업을 위한 처방
리탈린은 원래, 비교적 희귀한 병인 ADHD(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과잉행동장애) 아동을 위해 개발된 의약품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아이가 조금만 산만해도 이 약을 처방받는다. 암페타민 계열 의약품인 리탈린은 대학캠퍼스 내에서도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공부 잘하는 약’은 미국 시장을 점령한 데 이어 어느새 프랑스에서도 널리 전파되고 있다.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모 대형호텔의 팀장으로 일하는 클레르 르블롱 부인이 11세 아들 닐스를 데리고 파리의 한 소아정신과 대기실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몇 분 후 부인의 아들은 의사를 만나 ‘학업 성적’이나 ‘행실’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얌전히 앉아있던 소년은 금방 다리를 덜덜 떨기 시작했고, 급기야 일어났다 앉았다 부산을 떨었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스마트폰을 덥석 집어 들고는 여러 도시의 정경이 담긴 사진들을 훅훅 넘겨보기 시작한다. 가로등, 쓰레기통, 트럭에 이어 요즘 소년은 도시 사진 구경에 푹 빠져 있다.
소년이 퍽 하고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르블롱 부인이 짜증이 섞인 목소리를 높인다. 부인은 아들의 이런 모습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제어하기 힘든 아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몇 년 전 이런 자기 아들을 설명해줄 적절한 단어 하나를 찾아냈다. ‘과잉행동장애(ADHD)’. ADHD 환자를 아들로 둔 르블롱 부인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말썽을 부리는 아들 닐스 때문에 삶이 너무나 고되다.
‘공부 잘하는 약’, ‘아동용 코카인’
어느 날 르블롱 부인은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녀가 취재진에게 “이 분야 최고의 명의”라고 소개한 의사 가브리엘 발은 국영라디오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는 유명 소아정신과전문의다. 그는 의학전문매체와 일반매체에도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평소 관심 있는 여러 분야에 대해 다수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분야가 학업 실패, 조숙증, 그리고 그 유명한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다. 그에게는 마법의 명약이 하나 있다. 바로 리탈린이다. 리탈린은 1944년 이탈리아 화학자 리안드로 파니존이 합성한 물질로 만든 의약품이다. 일설에 의하면, 파니존은 ‘리타’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아내 마거릿이 테니스 시합에서 더욱 집중력 있게 백핸드를 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마음에 약물을 개발했다고 한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에도 발 박사의 환자들은 전부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전을 품에 안고 돌아갔다.
리탈린은 메틸페니데이트염산염이 함유된 약인데, 사실상 메틸페니데이트는 뇌의 도파민 생성을 높이는 효과를 지닌 암페타민 계열에 속하는 약물이다. 리탈린은 사람들을 온갖 골치 아픈 문제로부터 해방시켜주는 명약으로 알려져 있다. 지루한 과제를 진득하게 앉아 수행하지 못하는 경향은 물론, 모든 종류의 권위에 무조건 반항하는 태도, 집중력을 잃고 산만해지는 성향까지 모조리 단방에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리탈린은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판매 중인 주력상품 중 하나(2018년 매출액 520억 달러를 기록)다. ‘공부 잘하는 약’, ‘말 잘 듣는 약’, ‘아동용 코카인’ 등 다양한 별명을 지닌 이 정신자극제는 환자의 지적 능력을 향상해주는 한편, 부모나 교사 앞에 유순한 아이를 대령해준다. “리탈린은 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닙니다. 리탈린은 치료제가 아니라 억제제거든요. 주의력 결핍과 같은 증상들을 사라지게 하는 효과만 있죠. 우리는 ADHD를 고칠 수가 없어요. ADHD는 유전학적 요인으로부터 비롯된 생물학적 성격의 장애이니까요.”(1) 발 박사가 설명했다.
닐스는 2016년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한 프랑스 20세 이하(대다수가 6~17세 남아) 아동 6만 2,000명 중 한 명이다.(2) 대부분의 ‘과잉행동장애환자’가 그렇듯, 닐스도 학교 가는 날에만 복용하고 있다. 그가 먹는 약은 정확히 8~16시간 동안 효과가 지속되게끔, 몸속에서 서서히 유효성분을 방출하도록 개발된 서방형 제제(ER·몸 안에서 서서히 유효성분이 방출되는 정제약을 의미-역주)다. “반에 문제아 한 명만 있어도 전체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법이죠.” 발 박사가 강조했다. 그가 처방한 이 ‘마법의 명약’ 덕분에 교사들은 이제 벌을 주거나 교육학적 기술을 동원해가며 흥분한 아이를 힘들게 제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한편 남아와 달리, 전통적으로 얌전하게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고 자라난 여아는 과잉행동장애 증상은 보이지 않는 단순 주의력결핍장애(ADD)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
81만 상자가 팔린 약, 부작용은?
최근 프랑스에서는 메틸페니데이트 처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늘날 메틸페니데이트의 복용량은 처음 이 약이 시판되기 시작한 1996년 대비 약 30배로 치솟았다. 2017년 메틸페니데이트는 81만 상자가 판매됐는데, 2005년에 비해 4배가 증가한 수치다. 더욱이 일각에서는 아직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르피가로>지는 “2014년 아직 치료를 받는 아동은 4만 명 정도로 미흡한 수준이다”라고 지적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아동이 수십만 명에 이른다”(3)고 개탄했다. 의학정보사이트 <알로 독퇴르>에서도 “리탈린 처방은 아직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2017년 9월 5일)고 경고음을 울렸다.
르블롱 부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는 평화를 얻기 위해 아이에게 약을 줘요. 우리 아들이 말도 잘 듣고, 수업도 잘 받고, 우수한 성적을 받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정말이지 수도 없이 학교에 불려 다녔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약효가 잘 듣지 않는 것 같고, 무엇보다 아이가 약을 먹은 뒤 불안증을 호소해서, 이제는 그만 약을 끊어야 할 때가 온 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메틸페니데이트의 장기 복용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연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4) 르블롱 부인도 그 점을 우려한다. 하지만 발 박사는 ‘명의’라는 지위에 걸맞게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약품의 부작용 문제를 조목조목 해명했다. “맞아요. 이 약은 수면장애, 식욕감퇴, 복통 등의 증상을 일으키기도 하죠. 하지만 현재 75개국에서 널리 처방되는, 이미 개발된 지 70년도 넘은 약이에요. 세상에 사람과 관련된 일치고 위험성이 전혀 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의존증도 일으키지 않죠. 오히려 메틸페니데이트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줬어요. 특히 집중력이 약하거나 학업 부진을 겪는 수많은 이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했다고요.”
그는 대표적으로 ‘지능지수가 매우 높은’ 한 초등학교 여학생의 예를 거론했다. 그 여학생은 도무지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 했는데, 약을 먹은 후 ‘순식간에’ 평균 성적이 9점에서 16점으로 급상승했다는 것이다. 발 박사는 ‘리옹 출신의 한 명의’의 사례도 덧붙였다. 그 명의가 “내 아들이 리탈린을 복용하지 않았다면, 의학 공부와 이후 외과의 전공 과정을 잘 마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는 것이다. 발 박사의 무용담은 끝이 없었다. “제 환자들은 말이죠. 추우면 난방을 틀고, 비가 오면 우산을 펴고,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듯, 치료를 받습니다. 환자들에게 켄터키주가 어쩌니, 사회보장제도가 어쩌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줘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들은 척도 안할 겁니다.”
미국에서 환자가 가장 많은 켄터키주
그는 여기서 왜 켄터키주 얘기를 꺼낸 것일까? 현재 미국에서 과잉행동장애로 진단을 받은 아동이 가장 많은 주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부모들이 신고한 자료를 토대로 집계한 결과, 아동 과잉행동장애 진단률은 무려 14.8%에 달한다. 게다가 10%가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5) 심지어 헨더슨 카운티를 비롯한 켄터키주 서부에 위치한 일부 카운티의 경우, 취학 아동의 무려 1/4이 학교에 ADHD 진단을 받았다고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결과, 현재 인구 450만 명 규모의 켄터키주는 ADHD 치료를 받는 아동의 수가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2017년 정신자극제를 복용한 미국인은 2,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그중 1,600만 명이 성인, 400만 명이 아동이었다.(6) 농촌과 산업지대로 이뤄진 서부와 남부의 주들은 타지역보다 훨씬 더 상황이 심각했다. 사실 리탈린이나 혹은 에더럴(제약회사 샤이어가 제조 중인 약)과 같은 경쟁 의약품들은 2급 마약으로 분류되는 규제 약물이다.
2019년 9월 29일 일요일 켄터키주 렉싱턴. 고속도로 나들목과 줄줄이 들어선 상점을 지나자, 주택가 안쪽에 보몽 도서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시 듄 부인과 어린 두 자녀가 일주일 동안 읽을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터였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39세의 약리학자인 그녀는 말했다. “솔직히 켄터키주가 세계적인 기록을 보유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에요. 켄터키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주거든요. 이곳에서는 절대로 아이들의 감정이나 기분에 관해 이야기하는 법이 없어요. 일단 약부터 주고 말죠. 그것이 훨씬 쉬운 방법이니까요. 반면 캘리포니아주는 달라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창의력이 높고 활동력이 과할 정도로 넘치는 아이들을 환자로 보지 않아요. 하지만 켄터키주에서는 그런 아동을 너무 쉽게 장애로 분류합니다. 특히 남아의 진단율이 높아요.”
그날 아침, 그녀의 곁에는 인형처럼 얌전한 11세 소녀 엘리자베스가 있었다. “제 딸은 뭐든지 빠른 아이예요. 글도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일찍 깨우쳤죠. 딸애는 항상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요. 하지만 저녁이 되면 구제 불능으로 돌변하죠. 한시도 제 엄마, 아빠와 함께 조용히 식사하는 일이 없었지요. 저는 주당 50시간씩 일을 했고 업무도 몹시 고돼서, 저녁때면 녹초가 돼 뻗었어요. 게다가 큰 문제는 딸이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엄마, 저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아요”라는 식의 말을 종종 했죠. 그 말을 듣고는 가슴이 찢어질 듯했어요. 결국, 여러 의사와 상담을 받았고, 딸이 7세가 되던 무렵 콘서타(리탈린의 경쟁 의약품) 처방을 받았지요. 이후 아이는 줄곧 약을 먹어왔어요. 심지어 방학이나 주말에도 약을 먹었지요. 물론 약을 끊어보려 시도했었지만, 순식간에 성적이 떨어지더군요. 사실 부모가 아이에게 암페타민을 먹인다는 건 정말 못할 일입니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요.”
매달 듄 부인은 약 처방을 받으러 의사와 상담 예약을 했다. “1회 처방받을 수 있는 약이 30일분으로 한정돼 있어요. 매달 처방전을 다시 받으려면, 번거롭지만 의사를 만나야 해요. 4일 전에 약국에 전화해서 알려야 하고, 약을 탈 때도 신분증을 보여줘야 해요. 절차가 꽤 까다롭죠. 약을 빼돌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암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2008년 미국 남동부의 한 유명 대학에서 실시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미국 대학생의 34%가 공부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7) 경영학도인 섀넌은 이 수치가 적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말요? 정말 그게 전부라고요?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훨씬 많아요. 우리 학교만 해도 70%는 복용했을 거예요. 제 주변 사람들도 거의 복용 경험이 있어요.”
렉싱턴 소재 켄터키 주립대학 안에서는 메틸페니데이트를 구하기가 무척 쉽다. “콘서타(성인 ADHD의 대표적 약제)는 놀라울 정도로 집중력을 높여줘요. 어제 저는 오후 2시에 약을 먹었는데, 새벽 1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었어요! 인터넷에서 27mg에 8달러를 주고 약을 살 수 있어요.” 창백한 얼굴에 흐리멍덩한 눈빛을 한 채 심리학 수업을 듣고 나온 19세 여학생 마야(8)가 말했다. “저희 집안에서 대학에 간 사람은 제가 유일해요. 그러니 저는 우등생이 돼야만 해요. 제가 살던 켄터키주 북부에서는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실력 있는 농구선수들도요.” 켄터키주립대학에서 학기당 1만 3,000달러(1만 1,800유로)의 등록금을 내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이 여학생은 “가능한 모든 기회를 부여잡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듯한 기세였다.
ADHD에 대한 환상, 약에 대한 찬가
이런 상황에 대해, 켄터키주립대학 정신질환치료센터의 연구의사 매튜 넬트너는 “매우 위험하다”라고 본다. “정신자극제가 중독성이 없다는 말은 오피오이드 사례를 떠올리게 해요. 그때에도 그렇게들 말했죠. 그리고 참사가 시작됐습니다! 리탈린을 끊으면 우울증과 피로감이 찾아옵니다. 종일 잠만 자거나, 매사에 의욕을 잃어버리죠.” 그를 찾아온 환자들의 상당수가 ADHD 환자를 자처한다는 것이다.
“저를 찾아온 환자들 중 자신의 증상을 ‘양극성 장애’나 ‘우울증’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렇게 말하면 섹시해 보이지 않는달까요. 학생들은 행동 치료에 대해서는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매우 확실하고 쉬운 해결책인데도 말이죠. 운동, 달리기나 산책 등 몸을 움직이는 것은 과잉행동의 특효약입니다.” 넬트너는 자신이 일하는 센터에서는 최대한 과잉처방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고 주장했다. “저희는 DSM-5(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를 진료 기준으로 삼고 있어요. 이 편람에 의하면, ADHD 환자는 대개 전체 아동의 5%, 어른의 2.5%에 불과합니다.”(9)
미국에서 ADHD는 종종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ADHD가 천재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게 하는 입장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부터 시작해, 배우 엠마 왓슨, 대기업 경영자 리처드 브랜슨,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 이제는 세상을 떠난 뮤지션 커트 코베인, 심지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사들이 ADHD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메틸페니데이트를 예찬하는 노래들도 많다. 메틸페니데이트는 이제 금융, 게임, 농구, 쇼비즈니스, 군대, 심지어 경마 경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인들의 일상에 깊이 파고든 것이다.(10)
“제 아들은 천재예요.” 11년 전 입양한 아이, 아이작을 홀로 키우는 63세의 웨이트리스, 메리 풀러 프라핏 부인이 말했다. “저희 아이는 눈을 감고도 1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지도를 아주 상세하게 그려낼 수 있어요.” 예전에 정신질환자들을 담당했던 사회복지사(그녀는 “모두 38명의 환자를 돌봤고, 매달 의약품 총 1만 개를 관리했다”고 했다)였던 그녀는 오랫동안 정신자극제 사용에 반대해왔다. 의사들은 아이작을 보자마자 곧바로 ADHD 진단을 내렸지만, 그녀만은 켄터키주에서는 ADHD의 과잉 진단이 흔하다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이작은 태어날 때부터 크랙(코카인과 탄산나트륨 등을 물에 희석해 불로 가열한 다음 냉각해 추출하는 백색 결정체, 코카인보다 약효가 몇 배 강하고 중독성이 높은 마약-역주)과 알코올에 중독된 상태였어요. 생모가 임신 중에 그것들을 복용했거든요. 저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결국 일을 그만둬야 했어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태도 문제가 있다는 말을 아주 귀가 닳도록 들어왔어요. 아이는 온종일 종알거리거나,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는 법이 없이, 늘 제멋대로 행동하곤 했죠. 아이를 맡았던 교사들은 약이라도 먹여보라고 저를 채근했어요. 교사들은 어떻게든 아이가 얌전히 앉아 입을 다물게 만들고 싶어 했지요.”
프라핏 부인은 결국 굴복했다. “학교에 가는 날에만 아이에게 콘서타를 먹이기 시작했어요. 교사들은 아주 흡족해했죠. 하지만 저는 힘들어요. 저는 가난한 데다가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매월 약값 130달러(약 118유로)는 상당한 부담이에요.”
“ADHD 진단은 18개월부터”
켄터키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아래 위치한 인구 5,000의 도시 해저드에 진입하자, 약국 몇 개와 듬성듬성 들어선 슈퍼마켓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형의 산등성이에는 석탄채굴이나 도로보수를 위해 포크레인이 여기저기 파헤쳐놓은 구덩이들이 가득했다. 취재진은 인터뷰하기로 예정된 대학 총장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돌연 운전자들이 볼 수 있도록 설치된 한 병원 광고판을 보고는 잠시 차를 세웠다. 광고판에는 ‘ADHD(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라는 영문이 깜빡이고 있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 ‘크로스로드 헬스 센터’의 광고문이 눈에 띄었다.
“여러분의 자녀가 지시사항을 잘 따르지 않거나, 과제를 잘 끝내지 못한다고요? 얌전히 앉아있거나 순서대로 줄을 서지 못하는 학생이 있나요? 다리를 덜덜 떨거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아동을 봤다고요? ADHD처럼 보이는 아동이 있는데 제대로 진단을 받게 하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바로 이 번호로 전화하세요.” 취재진은 접수처를 찾아가, 대체 이 지역에서는 몇 살 때부터 아동들이 과잉행동 장애로 진단을 받는지 물어봤다. 당직 의사가 답변했다. “18개월부터입니다.”
켄터키밸리 교육협동조합(초등학생 5만 명, 교사 2,900명) 회의실에는 데시 볼링 부대표의 요청을 받고 역내 ADHD 확산에 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최소 8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 지역의 한 명문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에밀리 K.가 말문을 열었다. “저희 반 학생은 총 20명인데, 그 중 ADD(주의력결핍장애)나 ADHD(주의력결핍및과잉행동장애)를 겪는 학생이 약 30%입니다. 교사 생활을 시작한 지 5년 차인데 상황은 늘 비슷하죠. 이 지역에서는 흔한 풍경이에요. 제가 담임을 맡은 학생들 중 오피오이드나 다른 마약중독으로 부모와 떨어져 사는 학생이 절반 이상입니다. 대부분은 조부모나 양부모와 함께 살고 있죠. 저희 반 학생들의 진짜 문제는, 이런 현실입니다.”
이 지역은 광산업의 붕괴와 마약(특히 오피오이드, 메타암페타민, 코카인) 중독으로 황폐해진 상태다. 그러나, 교사들이 상황을 개선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저희는 산만한 학생들에게는 가상 현실랩이나 목공실에서 공부할 것을 권유합니다.” 볼링 부대표가 설명했다. “그런 아이들은 드론을 제작하거나 3D프린터로 사물을 찍어낼 때는 전혀 집중력에 문제를 보이지 않아요. 아마도 그 아이들은 종이와 연필보다는 엔진이나 설계도면과 더 친숙하기 때문일 거예요. 한편 저희는 많은 교사들에게 대형 짐볼이나, 선 자세로 공부할 수 있는 특별석, 흔들의자 등을 교실에 두게끔 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약물치료를 받는 상황을 막을, 훌륭한 해법들이죠.”
지난 20년간 미국의 학교는 학교 간, 학생 간, 교사 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교육개혁을 실시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정권 때 통과된 ‘아동낙오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이나 버락 오바마 때 추진된 ‘정상을 향한 경주(Race to the Top)’ 정책은 교육 양극화를 부추겼다. 아동들이 학업과정에 적응하도록 마약을 줘야 할 만큼, 학교생활이 혹독해진 것일까? 교사 K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유익한 사회의 일원이 될 준비를 시킬 의무가 있어요. 하지만 문제는 월요일 아침이면 주말 동안 약을 먹지 않은 아이들이 흥분상태로 한 주를 시작한다는 겁니다. 화요일이 돼서야 비로소 아이들이 차분해져서 수업을 받을 준비가 됩니다.”
광산 꼭대기에 형성된 켄터키주 최대 카운티인, 헤저드 카운티의 프라이머리 케어 센터를 방문했다. 소아과전문의 몰리 오루크가 진료실에서 취재진을 맞이했다. “여기 제 일정표를 좀 보세요. 목요일은 스케줄이 아주 살인적이랍니다. 제 환자 26명 중 12명이 과잉행동이나 주의력결핍 장애 때문에 찾아옵니다. 매월 환자들은 처방전을 새로 받기 위해 방문하죠. 때로는 전체 상담 환자의 절반이 넘는 환자가 찾아오는 날도 있다니까요.”
오루크 박사는 먼저 환자들에게 ‘밴더빌트 ADHD 진단 평정척도(VADRS)’라고 불리는 질문지를 작성하게 한 다음 진단서를 내준다. 박사는 “질문 내용이 매우 주관적”이라고 설명했다. “부모는 자녀의 행동 양태를 보고 질문지를 작성합니다. 학교와 가정에서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약 처방이 나가죠.” 평가지의 질문은 모두 47문항인데, 각 문항은 ‘0(전혀)’에서 ‘4(매우 자주)’까지 사지선다형으로 답하게 돼 있다.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평가지도 역시 응답자가 각 문항에 표시한 다음, 문항별 점수를 합산해 일정 점수를 넘으면 ‘과잉행동장애’나 단순 ‘주의력결핍장애’로 진단을 내린다. 가령 평가지에는 이런 문항들이 실려 있다. “말을 너무 많이 한다”, “자주 소지품을 잃어버린다”, “과제를 계획적으로 완수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자주 끊는다”, “자주 벌컥 화를 내는 경향이 있다”, “야밤에 가출한 경험이 있다”, “누군가를 성폭행한 경험이 있다”, “어른들과 싸운 적이 있다”. 질문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결국 아이가 얼마나 말썽을 일으키는지를 묻는 것이다.
사망자 40만을 낸 제약회사의 신약
오루크 박사는 “경우에 따라 4세 때부터 리탈린, 콘서타, 포칼린, 애더럴, 뷔반세 등을 처방하기도 한다”면서, 놀랍게도 “매달 새로운 약이 나온다”라고 경탄했다. 최근에 출시된 에드헨시아는 퍼듀 파마에서 제조되는 의약품인데, 이 제약업체는 사실, 20년 동안 무려 4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오피오이드 사태의 주범인 옥시콘틴 약을 개발한 회사다.(11)
오루크 박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최근 저는 투약량을 줄이거나, 행동 치료를 장려해 약물치료를 중단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동들이 아동답게 자라며, 자유롭게 뛰어놀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 ADHD 장애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성장 저하 외에는 본 적이 없어요. 약물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청소년의 약물중독 문제, 그리고 약품을 빼돌려 불법 판매하는 행위입니다.” 그녀는 단호했다. “분명 대다수 ADHD 장애의 책임은 TV에 있습니다. TV가 이 나라 최초의 베이비시터 역할을 하는 게 문제죠.” 대기실에서는 아직도 한 명의 소년이 뒤에 남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12세 소년 제이든은 “좀처럼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듯 보인다.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은 이 소년은 4년 전부터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어머니 타샤는 “아들이 약을 먹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학교생활은 어떨까? “학교는 지루해요. 읽는 것도 지겹고, 온종일 앉아있는 것도 지겹고. 저는 아버지와 함께 야구를 하는 게 좋아요. 아니면 사촌들과 포트나이트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NBA 2K 같은 게임을 하는 게 즐거워요.” 제이든이 대답했다.
다시 프랑스의 진료실로 되돌아가 보자. 발 박사의 진료실에서 르블롱 부인은 의사에게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리탈린은 평온한 학교생활을 위한 것일 뿐이에요. 사실 저희가 주말이나 방학까지 아이에게 약을 먹이지는 않으니까요.” 부인의 말에, 발 박사는 언짢은 기색을 보인다. 박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약물치료의 첫 번째 목적은 고통받는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에요. ADHD 아동은 항시 갈등을 일으키니까요. 낮에는 교사와, 밤에는 부모와 종일 싸움을 벌이잖아요!”
르블롱 부인이 대꾸했다. “맞아요, 선생님. 저희는 종일 그렇게 아이와 싸우는 게 이제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고요!” 이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다시 한번 자신의 소신을 강조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ADHD는 생물학적 성격의 장애에요. 부인이 어떤 엄마인지와는 무관하죠. 제가 근시인 것이 저희 부모님의 탓이 아닌 것처럼, 자제분이 ADHD를 앓는 것도 부인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 말을 들은 닐스가 난데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의사가 한 마디 덧붙였다. “게다가, 닐스는 전형적인 ADHD 환자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런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닐스는 4년째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하고 있고, 게다가 이제는 중증의 불안감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엄마가 내게 독약을 먹이고 있어요”
아이가 공권력의 문제를 취재한 ‘탐사’ 프로그램이나 각종 고발 프로그램을 너무 자주 시청해서, 누군가 자신을 납치할지도 모른다는 강박적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 것일까? “안타깝지만, 리탈린은 ADHD를 치료하는 것이지, 불안감을 치료해주는 약은 아닙니다.” 발 박사가 말했다. 사실 정신자극제를 복용하고 걱정스러울 정도로 불안감을 호소하는 환자는 닐스 외에도 많다. 7세 때부터 애드럴을 복용해온 14세 소년 가브 T.는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켄터키주의 호텔과 식당에서 일하는 23세 노동자 트레이 맥코믹도 “어릴 때 약만 먹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한 생각이 들며, 끔찍한 환각 증상까지 나타나 엄마 앞에서는 약을 먹은 척하고 몰래 화장실에 내다 버리곤 했다”고 고백했다. 건설노동자인 조 데지어도 부모님이 ‘강제로’ 자신에게 먹인 약에 대해 ‘독약’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2019년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정신자극제를 복용 중인 아동은 정신병 발병 위험이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12) 하지만 발 박사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리탈린은 중독위험이 낮을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는 정신병 발병률을 오히려 낮춰줍니다. 우수한 학교 성적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지요.” 한 마디로, 성적만 좋으면 된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파리 북부의 생프리 빌라에서 르블롱 부인과 다시 만났다. “발 박사가 리탈린 처방을 해주면서 ‘주의사항’은 읽지 말라더군요. 등골이 오싹해질 거라고요’ 명의가 하는 말이니 그대로 따랐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리탈린이 암페타민 계열의 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 후로는 슬슬 걱정이 들더군요. 더욱이 시간이 지나면서 리탈린 약효도 잘 듣지 않더군요. 그래서 결국 과감하게 약을 끊기로 했지요. 아이는 무려 4년이나 리탈린을 복용했어요. 그 정도면 먹을 만큼 먹은 거라고요. 내년이면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는데,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네요.”
르블롱 부인은 주방에서 ‘리탈린 복용 시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를 가져와 취재진에게 내밀면서 ‘여기, 마법의 명약이요!’라고 웃었다. 주의사항 중 4번째 항목에 무려 70개가 넘는 ‘부작용’이 나열돼 있었다. 두근거림, 불규칙한 심장박동, 두통, 신경과민, 불면증처럼 ‘가장 많이 발생하는 증상’에서부터 시작해, 식욕감퇴, 열, 탈모와 같은 비교적 ‘자주 발생하는 증상’과 더불어, 심장마비, 자살 충동, 비정상적인 생각, 기분이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증상 등 ‘극히 드문 증상’에 이르기까지, 각종 부작용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졌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확 띄는 말은 ‘부작용’란에 적힌 ‘약물 의존증’이란 표현이었다.
성격이 쾌활하고 활달한 닐스는 말했다. “잠도 방해하고, 심장을 빨리 뛰게 만드는 지긋지긋한 약을 끊게 돼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저는 정말이지 제 아들이 과잉행동장애를 앓고 있는 줄로만 알았어요.” 닐스의 어머니가 고백했다. 그녀는 이어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우리가 맨정신으로 아이들의 손에 그런 마약을 쥐여줄 수 있는 걸까요?”
글·쥘리앙 브리고 Julien Brygo
기자. 주요 저서로는 올리비에 시랑과 함께 쓴 『빌어먹을 직업! 구두닦이에서 트레이더까지 직업의 사회적 효용과 폐해 Boulots de merde! Du crieur au trader, enquête sur l'utilité et la nuisance sociales des métiers』(La Découverte Poche·파리·2018)가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Gérard Pommier, ‘La médicalisation de l'expérience humaine 인간적 체험마저도 질병화하는 권력과 자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3월호.
(2) ‘Méthylphénidate(Ritaline): dernier choix dans l'hyperactivité 메틸페니데이트(리탈린): 과잉행동장애환자의 마지막 선택’, <Prescrire>, 2018년 8월 1일, www.prescrire.org.
(3) Daniel Mascret, ‘La Ritaline, entre sous-prescription et abus 리탈린, 미비한 처방과 남용 사이’, <Le Figaro>, 파리, 2017년 5월 16일.
(4) ‘메틸페니데이트의 중장기 영향을 조사한 연구가 미비한 현실’을 비판한 학술지 <Prescrire>에는 그 외에도 “많은 위험성에도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많은 논문이 실렸다. 이 학술지에 의하면, 사실상 메틸페니데이트 처방은 “아동에게 약물을 투약”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Prescrire>, 제406호, 파리, 2017년 8월)
(5) 2011년 통계자료. ‘State profiles-Diagnosis and medication treatment among children ages 4~17 year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www.cdc.gov.
(6) Amelia M. Arria, Rovert L. DuPont, ‘Prescription stimulant use and misuse: Implications for responsible prescribing practices’, <The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제175권, 제8호, 워싱턴 DC, 2018년 8월.
(7) Alan DeSantis, Audrey Curtis Hane, ‘Adderall is definitely not a drug: Justifications for the illegal use of ADHD stimulants’, Informa Healthcare, 2010년, http://www.uky.edu.
(8)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음.
(9)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편찬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는 ADHD를 비롯한 다양한 정신장애 진단 기준이 정리돼 있다.
(10) 2015년 트루스데일 연구소에 대한 감사에서, 조사원들은 과거 경주마 도핑검사에서 7개 경주마에 대한 메틸페니데이트 양성반응검사 결과가 은폐된 적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11) <르몽드>, 2019년 10월 16일. 에드헨시아는 16시간 동안 약효가 지속되는 정신자극제다. 이것은 리탈린의 2배에 달한다. Maxime Robin, ‘Overdoses sur ordonnance 약물남용 조장, 제약회사의 대량 살인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2월호·한국어판 2018년 4월호.
(12) Edith Brancho-Sanchez, ‘Young people on amphetamines for ADHD have twice the psychosis risk compared to other stimulants, study says’, <CNN>, 2019년 3월 20일, http://edition.cn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