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은 어떻게 패배했는가?
지난 12월 영국에서 열린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노동당은 참패했다. 잉글랜드 북동쪽 티스강변에 자리한 레드카 구역은 12월 12일 이전에는 단 한 명의 보수당 의원도 배출한 적이 없던 곳이었다. 조금 더 북쪽에 있는 선거구 블리스 밸리는 1950년부터 줄곧 노동당의 표밭이었지만, 이곳 역시 표심은 보수당으로 기울었다.
예로부터 노동당 의석수 분포는 영국의 사회·경제사를 반영해왔다. 잉글랜드 북동쪽 타인사이드 지역은 해양산업과 광업 덕분에 노동당이 득세하는 곳이었다. 그보다 동쪽에 있는 리버풀, 맨체스터, 셰필드와 같은 산업화된 대도시들은 좌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마찬가지로 버밍햄의 산업 지역과 미드랜드 지방에는 사회주의 성향의 유권자들이 대거 집중돼 있었다. 지역의 선거 지도는 ‘붉은 장벽’ 그 자체였다. 이 장벽을 경계로 노동당을 지지하는 북부 지역과, 널리 ‘홈 카운티스(Home counties)’로 불리며 우파를 지지하는 부유한 잉글랜드 남동부지역을 포함한 남부지역으로 나뉜다. 그러나 특유의 사회학적·정치적 생태계를 지닌 런던은, 여느 유럽의 대도시 수도처럼 이에 속하지 않는 예외지역으로,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 지지층의 중심지다.
역사적으로 영국 노동자 계층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해온 세 단체가 있었다. 비국교주의 교회(혹은 ‘분파’라고도 불린다)와 노조, 그리고 노동당이다. 1906년, 교회와 노조가 함께 노동당을 창당했다.(1) 그 후 20세기에 걸쳐, 특히 1940년대 현대적 형태의 공공부문이 탄생한 이래로(공교육은 1944년, 의료제도는 1946년에 도입됐다), 영국 사회는 정치 활동뿐만 아니라 경제적, 혹은 문화적 영역까지 규제하는 여러 제도기관을 중심으로 구조화됐다.
수십 년간 영국 노동당은 고유의 행동 양식과 지식을 바탕으로 보수파와는 전혀 다른 고유의 세계를 구축했다. 예컨대, 특정 직군에 취직하려면 노동당 당원카드를 보여야 하는 등의 관행이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좌파성향의 이탈리아 토리노 교외 지역이나 프랑스 노르파드칼레 같은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국 타인사이드나 위럴 지역의 일상생활도 좌파 공동체를 중심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그 후 상황이 변했다.
‘Swinging sixties’라 불리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거침없이 표출하고,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던 60년대 신세대 청년들은 비국교주의 교회의 성향이나 노동당 창당의 핵심 이념인 좌파적 신앙심에 반기를 들었다. 그 후에 찾아온 70년대 말은 탈산업화가 시작되며 노동계의 근간을 흔들리던 뼈아픈 시기였다. 극작가 앨런 블리스데일은 1982년 BBC에서 방영한 드라마 <Boys from the Black Stuff>를 통해 이를 매우 감동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당시 마거릿 대처(1979~1990)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구시대적 산업사회를 빈껍데기로 바꿔놓았다. 경제구조와 생활양식이 송두리째 바뀌면서 공장은 폐허가 됐고, 실업자들은 ‘서비스 직군’이라는 새로운 경제구조의 요구사항에 자신을 맞춰야 했다. 극심한 사회변화에 노동조합도 무사하지 못했다.
“지금 노동당은 죽어가고 있다”
비국교주의 교회와 노동조합의 위기에 이어서, 2019년 12월 총선의 패배는 영국 좌파의 바탕을 이루는 세 단체 중 마지막인 노동당 자체의 위기를 의미한다. ‘블루 레이버(Blue Labour)’는 사회문제에 관해선 보수적이지만 신자유주의에는 적대적인 노동당 내부의 분파로, 그 중심인물인 모리스 글라스만은 “지금 노동당은 죽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글라스만은 2019년 총선이 당이 대변하고자 하던 바로 그 노동자 계층과 당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고, 극복할 수 없는 단절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2019년 11월 말, 총선을 2주 남긴 시점에 사회운동가이자 작가인 오웬 존스는,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지려는 노동자 계층의 표심을 잡지 못한다면 노동당의 승리는 불가능하다”라고 경종을 울렸다.(2) 존스는 동쪽 해안가에 위치한 그림비 선거구를 예로 들었다. 그림비는 1945년부터 줄곧 노동당의 표밭이었지만, 조사 결과에 의하면 오랜 노동당 지지자들은 대거 브렉시트당의 나이젤 패라지에게 투표할 준비가 돼 있었다. 결국 보수파가 선거구에서 이길 것이 유력했다. 존스의 눈은 정확했지만, 약간 늦은 감이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런던 거처에 칩거하며 가디언지에 기고한 여러 기사를 통해 노동당의 반브렉시트 입장을 오랫동안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노동당의 사회학적 변화, 그리고 당과 노동자 계층 간의 깊어진 갈등의 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변화의 기원은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이끈 신노동당의 승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승리는 서민층과 중산층의 때맞춘 동맹 덕분이었다. 2000년대에 걸쳐 많은 이들이 영국독립당(UKIP)의 약진이 우파 유권자들의 변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연구원 로버트 포드와 매튜 굿윈은 영국독립당 또한 실망한 좌파 유권자들의 표를 가져왔음을 증명해냈다.(3) 창당 때부터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패라지의 브렉시트당은 영국 노동시장, 특히 유럽연합이 동유럽까지 외연을 확장했던 2004년 이후의 상황을 비판했다. 패라지는 노동당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주제들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번 선거의 주요 화두를 최우선으로 다뤘다. 바로 유럽연합 덕분에 유입된 주요 도시의 외국인 체류자 문제다.
‘코비니즘’과 ‘브렉시트’, 분열을 재촉하다
그래도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노동당과 서민층의 단절이 20년 전부터 예견된 것이라면, 왜 하필 2019년 총선에서 터진 것일까? 그 답은 ‘코비니즘’과 ‘브렉시트’라는 두 단어다. 2015년부터 노동당 당수를 맡은 제레미 코빈의 정치이념인 코비니즘은 모순투성이다. 물론, 코빈은 당수로서 노동당의 이데올로기 급진화에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냈다. 이는 공공부문의 국영화와 노동자 정신 고취 등, 1970년대 이후로 더 이상 아무도 꿈꾸지 않는 사회주의적 야망으로의 회귀를 뜻했다.
코빈의 커리어 자체가 이런 이념의 산 증거로, 반제국주의 시위와 1970~1980년대 파업을 빼고서 그의 커리어를 논할 수 없다. 이 급진 좌파적 성향 때문에 노동당의 사회·문화·대중적 인식이 바뀌고, 노동운동의 중심은 북쪽의 전통적인 좌파 지역으로 옮겨갈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코비니즘은 가속화되는 ‘둥지 내몰림 현상(Gentrification)’이라는 또 하나의 사회학적 흐름을 타고 더욱 급진적으로 기울었다.
2015년부터 노동당은 수많은 신규 당원을 끌어들였다. 50만 명이 넘는 당원을 거느린 노동당은, 유럽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노동당 의원 존 크루다스가 설명하듯, 코비니즘은 단지 사상적 차원에서만 블레어 시절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실제로 영입이 계획된 인물들을 보면 코비니즘은 오히려 한층 더 블레어적이다.(4) 런던, 혹은 케임브리지나 브라이튼과 같은 대학도시에 살며, 경제활동이 활발히 이뤄지는 분야에 종사하지만,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Y세대 출신 고학력자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정 사회집단의 걱정거리를 정책에 반영하자, 일종의 급진 사회주의(재국영화, 사립학교 폐지, 개방적 성향의 새로운 외교정책)와 현대사회의 정체성 문제를 융합한 선거정책이 탄생했다. 페미니즘과 인종차별 반대, 그리고 그보다는 덜 시급한 다른 안건들과 관련해 노동당이 지키고자 하는 근본 가치는 무엇일까? 노동당은 “너무나 이분법적인” 사회가 성 정체성 문제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것을 종용하며 그 일환으로 트렌스젠더에게 차별적인 남녀화장실 구분을 없애자는 주장을 옹호한다. 하지만 이는 일부 서민층의 눈에는 이상주의적 야망일 뿐이며, 우선순위에 오르기조차 어려운 주제다.
이어서 브렉시트로 말하자면, 존 맥도웰과 같은 일부 당 간부들은 이를 선거 패인의 하나로 꼽길 주저하지 않는다. 노동당 지지층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찬반론으로 양분됐고, “브렉시트 종결(Get Brexit Done)”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보수당이 노동당 분열의 덕을 톡톡히 봤다. 이런 분열은 노동당 지지층이 각계각층의 서로 다른 사회구성원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1970년대 당시 노동당은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입장이 주류를 이루었고, 코빈도 크게 드러내진 않았지만 이에 충실했다. 그러나 당의 도시 출신 청년 운동가들에게 브렉시트 찬성은 곧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을 뜻했다. 유럽연합을 비판적으로 보던 당내 여론은 당원들이 유럽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소속감을 느끼면서 사라졌다. 친유럽파, 이는 특유의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개방적인 대외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을 뜻했고, 반대로 브렉시트 찬성파는 비열한 국수주의자로 간주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분열은 노동당의 태도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했다. 2017년 당의 선거정책에서는 ‘어떻게 브렉시트를 협상할 것인가’라는 챕터를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유럽연합 탈퇴를 요구한 반면, 2019년 선거정책은 유럽연합에 남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두 번째 브렉시트 국민투표 시행을 유럽연합과 협의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브렉시트 찬성파를 ‘인종차별주의자에 거짓말쟁이’라며 비난을 서슴지 않던 일부 당원들을 3년 동안 내버려 두고는, 이제 와서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서민층의 표심을 잡으려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태도일까?
이런 조건 속에서 노동당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총선 이후 당과 노동자들이 아직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라고 보는 많은 이들이, 재결합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회의적인 다른 이들은 서민층이 대변인을 찾기보다, 역사 속에서 늘 그랬듯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직접 나설 것을 종용한다.
글·크리스 비커튼 Chris Bickerton
케임브리지 대학교 정치학교수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Robert Trelford McKenzie, 『British Political Parties: The Distribution of Power within the Conservative and Labour Parties』, Heinemann, 런던, 1955. 노동당의 기원과 보수당에 관해 참고.
(2) Owen Jones, ‘Labour needs its leave voters too – or a Johnson era beckons’, <The Guardian>, 런던, 2019년 11월 27일.
(3) Robert Ford, Matthew Goodwin, 『Revolt on the Right: Explaining Support for the Radical Right in Britain』, Routledge, 런던, 2014.
(4) Jon Cruddas, ‘The left’s new urbanism’, <Political Quarterly>, 런던, 2019년 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