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데스가 부활시킨 아르헨티나 좌파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당선됐다. 4년 전 대선에서 우파에 표를 던졌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우파정권에 대한 실망과 회의감으로 다시 좌파성향의 정권을 택했다. 페르난데스가 키를 잡은 아르헨티나호는 어디로 갈 것인가?
2019년 5월 18일 오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10분도 되지 않아 그의 왓츠앱 메시지 창은 100여 개의 새로운 메시지로 넘쳐났다. 왓츠앱의 메시지 수신음과 문자 수신음이 계속 뒤섞여, 마치 메트로놈이 박자를 맞추는 듯했다. 바로 그날, 약속이라도 한 듯 10월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던 ‘페론주의’ 진영 예비후보들은 줄줄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그때까지 침묵하며 예의주시하던 주지사들은 하나둘씩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위원장들, 경영계 인사들, 유명 지식인들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를 지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페르난데스의 휴대전화는, 지지자들이 보낸 메시지들로 요란하게 울렸던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한 성명발표 직후 이뤄졌다. 선거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이 성명의 주인공은 바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알베르토 페르난데스와 혈연관계는 없음)였다. 그녀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 재임, 2010년 사망)의 부인으로, 아르헨티나 최고의 유력 정치인이다. 2007~2015년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페론주의 진영의 최강 지도자가 된 그녀는 트위터 비디오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저는 우리 선거연합의 대통령 후보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를 지지합니다. 그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다면, 저는 부통령 후보로 출마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대통령 선거는 2015년 선출된 현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페론주의 진영의 지도자로서 유권자 1/3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었으나, 반대편 유권자 1/3의 지지도 얻어내야만 했다. 유권자들이 양측으로 분열(또는 ‘균열’)된 이 상황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2008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농축산업계와 갈등을 빚었다. 행정부를 성공적으로 장악한 직후인 2008년 3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곡물 변동수출세 인상을 발표했다.(1)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여러 국가와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의 수출품 역시 원자재가 대부분이다. 곡물 중에서도 대두의 수출규모는 세계 2위다. (2019년 9월 기준 약 300달러인) 콩 시세가 1톤 당 600달러를 넘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농장주들이 가져가는 ‘과도한 지대’의 큰 부분을 가져올 시기라고 생각했다. 이는 아르헨티나가 사회정책을 펼치고 허약한 산업의 기반을 닦기 위한, 새로운 수단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봉건적 구습을 타파하는 정책이라는 굳은 믿음 탓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당시 대통령은 그 결정이 초래할 반발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실수였다. ‘엘 캄포(El campo)’라 불리는 농축산업계는 이미 변화했기 때문이다.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엘 캄포’는 세계화 메커니즘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며 국제자본의 흐름에 맞물려 있다. 이 산업은 더 이상 소수 대가족으로만 구성되지 않으며, 나아가 민영언론과 금융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농촌 중산층으로만 구성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엘 캄포’는 파업을 통해 3개월 동안 도시로의 물자수송을 막았고, 도시는 물자부족의 위기에 빠졌다. 이 갈등은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부결됨으로써 종결됐다.
‘탱고 추는 레이건’을 쓰러트린 ‘제인 오스틴’
그 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지지도를 안정적으로 회복해 2011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분열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세제개편 계획은 오랫동안 이어진 역사적 갈등을 새로운 형태로 표출할 뿐이었다. 페론주의 제 1기(1845~1955)에서부터 내려온 세력은 이후 키르치네르주의로 표현됐다. 도시 외곽지역, 북부와 파타고니아 지방의 빈곤지역, 노동자와 빈민층, 나아가 청년층과 진보적 중산층의 지지까지 업은 이 정치세력은 공업 중시, 내수시장 성장, 임금상승, 국가의 강력개입을 골자로 하는 경제모델을 추진했다.
이와 대립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세력은 이후 반 페론주의 진영의 마지막 아바타인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에 의해 실현됐다. 그의 정치적 지지층은 수출농업계와 대도시 부유층이다. 그는 낮은 세금, 작은 국가, 규제철폐와 시장영역 확대를 기획했다. 한 마디로 ‘탱고를 추는 로널드 레이건’이라 할 수 있다. 대립하는 각각의 축으로 유권자가 1/3씩 집결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결과를 좌우할 요소는, 확실한 지지세력이 없는 ‘부동층’의 향배였다. 지난해 10월 27일 치러진 대선에서 중도좌파연합 '모두의 전선'의 후보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48%, 중도우파연합 '변화를 위해 함께'의 마크리 대통령이 40.47%의 득표율을 기록해 페르난데스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다.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45%의 득표율을 얻거나 40% 이상을 득표한 상황에서 10%P 이상 앞설 경우 결선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된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지난 2015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우파 후보 마우리시우 마크리 대통령에게 정권을 내준 지 4년 만에 다시 좌파가 집권하게 됐다. 4년 전 낙선했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와 파트너로 부통령에 출마해 대통령궁으로 귀환하게 됐다(페르난데스 전 대통령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성이 같을 뿐 친인척 관계는 아니다).
온건하고 타협적인 이미지를 가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의 주된 특징은 ‘유연성’이다. 이런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2003~2008년에 키르치네르 내각과 페르난데스 내각에서 총리직을 역임했음에도 2008년의 갈등 국면 이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와 거리를 뒀다는 데 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그와의 연합을 통해 키르치네르주의 진영의 외연을 확장하는 한편. 그녀에 반대하는 페론주의 진영의 보수파 소집단을 규합하고자 한다. 작전은 성공한 듯하다. 이성(알베르토 페르난데스)과 감성(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의 조합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제인 오스틴’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 이 선거연합은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반면에 국제금융계의 성공한 사업가 출신의 마우리시오 마크리는 경제규제 완화, 자본이동 자유화, 국가역할 축소, 시장친화적 정책 등 혁신과는 거리가 먼 로드맵을 내세워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서유럽 강대국과의 지정학적 관계 개선과 결합된 일련의 조치는 ‘투자라는 단비’와 수출급증을 보장할 것이라고 그는 장담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외국인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고 수출도 정체된 상태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높은 인플레이션 비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19년 인플레이션은 55%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반 페론주의 진영, 콘크리트 지지층 무너져
마크리 전 대통령의 패착은 국제적 맥락을 오해한 데서 비롯됐다. 그가 취임할 당시 이미 세계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및 보호주의로의 회귀에 따른 성장둔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전 세계의 원자재 수요는 급감했다. 마크리 전 대통령의 계획이 실현될 여지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2018년 5월 시장에서 자금조달이 막히자, 그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금조달원인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요청했다. 마크리 전 대통령은 오랜 기간 우호관계를 유지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지원에 힘입어 약 570억 달러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IMF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재정지원이었다.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런 ‘아량’이 가져다준 경제안정은 단 몇 개월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아량’에는 조건이 붙었고, 그것은 위기를 오히려 악화시켰다. IMF가 요구한 긴축재정의 결과 빈곤율은 34.1%, 실업률은 10%에 육박했다. 현재의 혼란을 예측한 책을 쓴 바 있는 경제학자 클라우디오 스칼레타는 이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IMF는 경제적 혼란을 사회적 혼란으로, 다시 정치적 혼란으로 바꿔버렸다.”(2)
마크리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지난해 8월 11일 있었던 예비선거는 최후의 일격이 됐다. 대통령이 되고 4년이 지난 후 대선 무렵, 그의 지지기반인 반 페론주의 진영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1/3로 감소했다. 예비선거 다음날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사람들은 은행에서 예금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으며 인플레이션은 또 다시 급등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페소화를 방어하기 위해 예치금을 사용했지만, 이 예치금은 매일 10억 달러씩 소진됐다. 경제상황 개선을 내세웠던 마크리 전 대통령은 부분적 채무불이행 선언과 환율방어를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당선 전, 그는 환율 방어를 ‘포퓰리즘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1989년과 2001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화폐가치 하락은 임금하락과 경제불황, 그로 인한 사회적 불안을 낳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경제불황에 따른 사회적 불안이 폭발하지는 않았다. 슈퍼마켓 약탈도, 공공기관 점거나 경찰과의 대치도 없었다.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부에서 이룩된 사회운동 조직능력과 빈민지원 조치는 마크리 정부에서도 대체로 유지됐는데, 이것이 경제적 혼란이 폭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됐다. 시위가 거듭됐지만,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민중경제를 위한 노동자 연맹’ 소속 페드로 타피아는 대선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무능했던 마크리 정부는 끝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만요.”
앞으로도 몇 년은 재건해야 할 폐허 같은 국가의 수장이 될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지지자들의 기대치를 낮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가 첫 번째로 할 일은 IMF 및 민간 채권자들과 국가 채무 재협상을 실시함으로써 경제정책을 추진할 여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마크리 전 대통령이 서명한 조약에 의하면, 아르헨티나는 2020년 IMF에 240억 달러(약 220억 유로)를, 2021년에는 310억 달러(약 280억 유로)를 납입해야 한다. 이런 채무부담은 현재 기준으로 아르헨티나 국내 총생산(GDP)의 100%에 이르며, 이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의 경제활성화 계획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IMF와의 협상에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이전의 선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2005년, 그가 총리를 지냈던 키르치네르 정부는 전대미문의 채무조정을 통해 채권자들로 하여금 원금의 70%를 탕감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더해 새 정부는 IMF 지원 가능액의 51%가 아르헨티나에 투입됐다는 점을 들어 강력한 논증을 구성할 것이다: 은행에서 10만 달러를 대출했다면 이는 대출한 사람의 문제다. 그러나 은행에서 1억 달러를 대출했다면 이는 대출을 승인한 은행의 문제가 아닌가?
페론의 부활, 경제동력도 부활시킬까?
이 부분에서 지정학적 맥락이, 특히 IMF의 핵심부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미국과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기로 약속했는데, 마크리 전 대통령의 ‘사대주의’는 종식시키되 관계 자체는 우호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처럼, 아르헨티나 역시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의 경쟁에 끼어 있으며, 이는 ‘이중 종속’의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에 대한 종속은 미국이 아르헨티나 채권을 보유한 금융기관 및 투자 펀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에 일어나고, 중국에 대한 의존과 종속은 중국이 현지 수출업자의 주요고객이자, 아르헨티나 인프라 건설자금의 거의 유일한 공급자라는 점 때문에 일어난다.
치밀한 외교를 통해 이 양측으로부터의 압박을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까? 한 거인을 다른 거인으로 견제함으로써 각각으로부터 최선의 결과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가 이제 키르치네르(2003~2015) 시대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 각국에서는 국가 간 협력에 관심을 쏟는 좌파 지도자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 각국은 좌파와 우파,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분열돼 있으며, 합종연횡(合從連橫)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분열된 라틴 아메리카의 각국을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키르치네르 정부에서 고위 공무원직에 있었고, 현재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의 주요 조력자 중 한 명인 마티아스 쿨파스는 강조했다. “마크리 전 대통령은 경제를 망가뜨렸습니다.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동력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실질임금과 퇴직연금을 높이고 공공지출을 늘릴 것입니다. 물론 이는 노동자와 기업가의 사회적 합의 및 인플레이션이 급등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페론주의 사유체계에서 기업가는 지주계급에 맞선 노동자의 오랜 동맹이었다. 수출경쟁력을 기르지 못한 아르헨티나 공업은, 자유주의 진영의 요구에 맞서 강력한 국가와 높은 임금, 통화정책에 의존해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큰 표차로 승리를 거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는 IMF 및 민간채권자에 대항할 수 있는 탄탄한 지지기반을 얻었다. 그는 또한 스스로를 ‘거대한 페론주의 연합의 지도자’로 내세웠다. 이는 페론주의 운동이 형식화된 체계나 명확한 이념을 가진 고전적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페론주의는 북부의 보수주의 주지사들, 거대 핵심 노동조합, 도시의 진보적 청년층 등이 다양하게 뒤얽혀 서로 결합한 세력이다.
키르치네르주의는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이 정치적 용광로의 한 가운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의 공조는 그들의 정치적 성공에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다. 그들은 페론주의라는 만화경을 이해관계 조정이 가능한 연합정부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 이해관계는 자주 갈등을 빚고 때로는 모순되기도 할 것이다. 그 성공은 신자유주의 때문에 거의 4년 가까이 아르헨티나가 처해있는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의 능력에 달려있다.
글·호세 나탄손 José Natans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아르헨티나어판 편집장
번역·오규진 mrcrazyani@gmail.com
번역위원
(1) Renaud Lambert, ‘Qui arrêtera le pendule argentin? 누가 아르헨티나라는 시계를 멈출 것인가?(한국어판 제목: ‘아르헨티나, 페론 유령 벗어날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9년 1월호.
(2) Claudio Scaletta, La recaída neoliberal. La insustentabilidad de la economía macrista, Capital Intelectual, Buenos Aire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