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바의 불투명한 미래

2020-03-31     미레유 쿠르트 외

지난해 10월 미군이 시리아 북부에서 철수함에 따라, 터키는 로자바를 침공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사실상 로자바는 그동안 쿠르드인과 아랍인이 민주적 공동체주의의 원칙을 실현하는 장이 돼왔다. 하지만, 이제 이 지역의 운명은 터키, 시리아, 러시아 간 흥정에 달려있다.

 

2019년 10월 9일, 터키군이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 병력을 배치한 데 이어, 접경도시인 텔아비야드와 라스알아인(쿠르드어로 세레카니예) 사이에 펼쳐진 길이 150km, 폭 30km 규모의 안전지대를 관리해오고 있다.(1) 터키군은 이미 2018년 1월에도 아프린과 그 일대를 포위하며 그보다 서쪽에 위치한 지대도 앞서 점령한 바 있다. 이로써 터키는 2013년 이후 정치적 자치권을 누려온 일명 로자바(쿠르드어로 ‘서부’를 의미) 혹은 북시리아민주연방으로 불리는 쿠르드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마침내 쿠르드족 영토의 연속성을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 

다시 말하면 터키 정부는 자국 내 분리주의 테러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시리아 분파로 통하는 쿠르드 민주동맹당(PYD)과 로자바 지역의 다른 두 세력인 시리아의 아랍계·기독교계 간의 정치적·군사적 연대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한 셈이다. 구체적으로 시리아민주군(FDS)으로 통칭되는 한편, 시리아민주평의회(SDC)라는 정치조직도 갖춘 이 연합세력은 현재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부군 위협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군은 2012년 이 지역에서 철수한 이래 언제든 다시 지역 통제권을 회복하려는 뜻을 포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은 인종 구성을 바꾸려 한다”

창당 7년이 지난 지금, 쿠르드 민주동맹당(PYD)이 꿈꾸던 다원주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미래는 어디까지 왔을까?(2) 먼저 취재진은 터키·이라크 접경지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데릭의 네브로즈 난민 캠프를 출발지로 여정을 시작했다. 난민촌에서 만난 레일라 엠은 2018년 이후 무려 6차례나 반복된 피난 여정에 대해 증언했다. 

“우리 가족은 본래 아프린에서 살았다. 하지만 터키의 공격으로 하밥으로 피난을 떠났고, 이후 알레포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이어 코바니로 이주했고, 아들이 라스 알아인에 일자리를 구하자 그곳에 정착했다. 하지만 터키가 다시 공격을 하는 바람에 맨발로 탈타미르로 탈출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 난민촌에서 지내고 있다.” 텔아비야드의 소농인 데르비치 에프도 지난 가을 피난길에 오른 사연을 들려줬다. “우리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다. 정치시스템도 원활히 운영됐다. 하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터키 군대가 우리를 공습해왔다. 모든 쿠르드인이 피난길에 올랐다.”

10월 22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소치에서 만나 총 10개항으로 구성된 합의안에 서명했다. 터키군의 시리아 북동부 점령을 승인하는 한편, 터키 점령지에서 쿠르드 민주동맹당(PYD)의 군사조직인 인민수비대(YPG)를 철수하는 등의 내용이 골자였다. 합의안 체결 이후 터키 정부는 기존의 쿠르드 인구를, 다른 시리아 지역의 전쟁을 피해 터키로 유입된 수니파 아랍인 2백만 명으로 대체하며 인종청소를 벌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에르도안은 자국 군대가 점령한 지역의 인종구성을 바꿔놓으려 한다. 2018년 터키 침공 전만 해도 아프린 인구의 85%는 쿠르드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 20%에 불과하다.” 쿠르드 자치정부의 압델카림 오마르 외교장관이 지적했다. 이런 변화는 로자바가 꿈꾸던 정치적 기획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일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터키군과 시리아 민병대(이곳에서 ‘갱’(깡패)을 의미하는 ‘체테’로 불림)가 영토 확장을 시도했다가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으니 말이다.

취재진은 카미실리를 떠나 다시 코바니로 행선지를 옮겼다. 코바니는 2015년 1월 이슬람국가(IS) 무장세력이 쿠르드 군대를 상대로 처음으로 대패하는 수모를 당한 역사적 현장이다. 북시리아민주연방의 안보 병력이 운영 중인 대형 검문소에서 취재진은 차량을 돌려 예정된 경로를 벗어났다. 이 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M4 고속도로는 너무 위험해 보였다. 불과 140m 지점에 친터키 성향의 민병대가 배치돼, 주기적으로 기습 공격을 벌였다. 더욱이 터키군이 띄운 드론들이 지역 상공을 활보하고 다녔다. 2019년 10월 12일, 카리스마 넘치는 유력 정치인 헤브린 칼라프가 터키의 지원을 받은 무장조직의 괴한들에 붙들려 고문과 살해를 당한 것 역시 바로 이곳 텔아비야드 인근 M4 고속도로 구간에서였다.(3)

미국이 10월 6일 이후 이 지역에서 철군(터키가 공격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줬다)할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시리아민주군(FDS)은 시리아 정부군에 의지하는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졌다. 러시아와 시리아의 소치 합의 이후, 시리아군은 터키군 점령지를 제외한 나머지 코바니에서 이라크 접경지대에 이르는 구간에 대해 병력을 파견했다. 주둔이라고 해봤자, 10km 지점마다 작은 초소를 설치하는 것이 전부다. 취재진이 만난 이들에 의하면, 이것은 예방조치에 속한다. 터키군이 더 이상 영토를 확장하지 못하게 저지하려는 것이다. 

 

시리아 정부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치적 차원의 상징적 주둔이라고 보면 된다.” 마즈룸 압디 시리아민주군(FDS) 사령관이 취재진에게 설명했다. 터키 정부에 의해 현상금이 목에 걸린 이 고위 장교는 시리아민주군(FDS)이 관리하는 지역들에 다른 시리아군이 배치되는 일은 없다고 덧붙였다. 취재 내내 우리는 지역도로를 관리·통제하는 것이 항상 시리아민주군(FDS) 산하 아랍·쿠르드 경찰인 아사이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는 압디 사령관에게 로자바 연방과 시리아 정부의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물었다. 그는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시리아 헌법으로 정치적 자율성을 보장받기를 원하며, 시리아민주군(FDS)이 시리아 전역의 안보를 함께 책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점은 양보할 수 없다. 이 같은 합의만 이룰 수 있다면, 시리아 북부의 안보를 시리아민주군(FDS)이 책임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는 정말 그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아랍의 단일 정체성을 표방하며 수십 년 이어온 일체주의와 중앙집권주의의 전통을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여하튼 시리아 정부는 현재로서는 변화를 향한 움직임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취재진은 쿠르드군이 벌인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퇴역군인인 폴라트 칸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봤다. 시리아민주군(FDS) 사령관이자 작가이기도 한 그는 오랫동안 이슬람국가(IS)의 손아귀에 들어 있던 데이르에즈조르 지역을 해방시키기 위한 작전을 진두지휘한 인물이었다. 

“로자바는 2010년 이전 상황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쿠르드족이 권리를 빼앗기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시리아의 기독교인이나 아랍인들과 맺어온 관계 역시 결코 쉽게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다.” 폴라트 칸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외 자치조직의 명칭이나 국경출입 통제방식 등 나머지 부문에 대해서라면 언제든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쿠르드인은 텔아비야드에서 라스 알아인에 이르는 지역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쓰라린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들은 특히 아무도 지역 영공을 보호해주지 않은 것에 깊은 원한을 느낀다. “러시아는 터키가 우리 민간인들, 우리 아이들, 우리 군인들에게 마구 폭격을 퍼붓도록 방치했다. 드론은 이탈리아산, 레오파드 탱크는 독일산이었다.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우리 군대를 향한 공습만 피할 수 있다면, 우리 시리아민주군(FDS)은 단 일주 만에 로자바 지역 밖으로 터키군을 능히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쿠르드 결집 효과를 부른 터키 침공

취재진은 코바니로 가기 위해 락까를 경유하기로 했다. 무려 6시간이나 길을 돌아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는 경로였다. 석유를 가득 실은 유조차가 쉴 새 없이 드나들며 매캐한 공기를 뿜어대는 통에 여간 숨을 쉬기가 힘든 게 아니었다. 시리아 북동부에서 채굴한, 싸구려 원유의 일부는 로자바 연방에 사는 주민들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나머지는 중개상을 통해 시리아 정부에 판매되기도 한다. 자치정부는 석유판매로 얻는 소득과 이라크 접경지역을 드나드는 물품에 매기는 관세 수입을 기반으로, 공공서비스 운영과 인프라 공사에 드는 비용을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석유채굴 상황은 영 시원찮다. “시리아 북동부 유전 가운데 제대로 돌아가는 곳은 단 2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전쟁과 시리아산 석유에 부과된 금수조치로 인해 채굴이 중단된 상태다.” 자치정부 산하 에너지위원회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지아드 류스템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2014~2017년 한시적으로 이슬람국가(IS)의 수도 역할을 했던 락까는 현재 시리아민주군(FDS)이 관리하고 있다. 참혹한 전쟁의 현장이 됐던 도시는 여전히 폐허로 가득하지만, 어느새 조금씩 재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도심에는 ‘아이 러브 락까’라는 큼지막한 글자들이 방문객을 맞아준다. 예전에 이슬람국가(IS)는 이곳에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할 목적으로 참수된 머리를 꽂은 말뚝들을 박아놓았다. 

이슬람국가의 급진 무장단체는 아랍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이 지역에서 여전히 수많은 조직원을 보유하고 있고, 암약 중인 조직들이 주기적으로 자살테러 등의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제는 어느 정도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시리아 북부를 침공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아랍인들이 쿠르드인에 맞서 봉기하기를 내심 기대했으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터키의 전술을 떠올리는 폴라트 칸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데이즈에즈조르에 거주하는 아랍 부족들은 우리에게 이곳에다 정권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쿠르드인이고 우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여하튼 우리가 수니파이니 함께 일할 것이라고 한다. 과거 정권은 우리가 시온주의자이자 무신론자이자 자본주의자라고 말하며 아랍민의 반감을 부추기려고 했다. 하지만 아랍계 인구가 100%를 차지하는 이 지역에서 시리아민주군(FDS)에 맞서 주민들이 봉기를 일으키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 터키 침공은 오히려 쿠르드 민주동맹당(PYD)의 지배에 반대하던 각종 쿠르드 조직들을 한 데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오랫동안 시리아민주평의회(SDC)에 적대적이던 나리 마티니도 지금은 그들과 합류했다. 쿠르드 민주동맹당(PYD)-쿠르드노동자당(PKK)의 영향력 확대를 막고자 터키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이란 쿠르드민주당(PDK)의 주도로 창설된 시리아국민평의회(ENKS) 소속의 모흐센 타히르도, 이제는 ‘인종 청소’에 대한 우려 때문에 쿠르드 조직과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여하튼 쿠르드 조직은 앞으로 쿠르드 민주동맹당(PYD)과 이란 쿠르드민주당(PDK)의 관계 변화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쿠르드 민주동맹당(PYD)이 로자바에 또 다른 쿠르드 병력이 주둔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로자바의 미래가 달린 코바니의 운명

락까에서 코바니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아인 이싸에서는, 러시아 순찰 차량 한 대가 군사기지에서 빠른 속도로 출동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곳에서는 러시아가 미국의 자리를 대체했다. 이미 취재진은 그보다 동부에 위치한 하사카 인근에서도 앞서 또 다른 러시아 순찰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탈타미르 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점이었다. 그런가 하면 동부 유전지대 근처에서는 미국 정찰대와 만났다. 도무지 지역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 만큼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었다.

러시아는 미국보다 더 신뢰할 만한 대상일까? 압디 사령관은 현재 “러시아 정부가 쿠르드와 시리아 정부 사이에 해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다른 인사들처럼 그도 로자바 영토가 시리아 정권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와 터키 간 흥정 대상이 됐던 사실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먼저 시리아 정부가 홈스와 구타, 이들리브 일부를 차지하는 조건으로 터키에게 아프린을 ‘내줬다’. 그리고는 나머지 아들리브 지역을 얻기 위해 라스 알아인과 텔아비야드 마저 터키에 ‘넘겼다’.” 압디 사령관이 상황을 정리해서 말했다. 아마도 장기적 관점에서 이런 종류의 거래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최대 피해자는 쿠르드인일 것이다.

코바니에서는 싸늘한 추위와 빗줄기가 취재진을 맞이했다. 이 도시와 그 일대는 계속되는 새로운 침공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일상생활이 거의 마비됐으며, 재건 작업도 중단됐다. 2014년에는 이슬람국가(IS)가 침공했다면, 지금은 터키군, 이들과 손을 잡은 민병대(여기에는 전 급진이슬람 무장단체 조직원도 일부 합류)가 도시를 위협하고 있다. 언제라도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주민들은 공격에 대비한 방공호를 파느라 정신이 없다.

2015년 1월의 승리 이후 5년이 흐른 지금, 코바니의 운명은 또 다시 로자바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인가?  

 

 

글·미레유 쿠르트 Mireille Court
크리스 덴 옹드 Chris Den Hond

프리랜서 기자. 각각 쿠르디스탄연대연합(CNSK)과 온라인 매체 <Orient XXI(오리엔트 21)> 편집위원회 소속.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Akram Belkaïd, ‘Ankara et Moscou, jeu de dupes en Syrie터키와 러시아, 시리아의 속고 속이는 게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2월호, 한국어판 2020년 1월호.
(2) Mireille Court, Chris Den Hond, ‘시리아 쿠르드족의 불투명한 미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9년 2월호. / ‘머레이 북친의 자유지상주의적 실험의 장, ‘로자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8년 1월호.
(3) Fatma Ben Hamad, ‘Enquête : des images établissent les exactions d'une milice proturque en Syrie 탐사취재 : 영상으로 본 시리아 친터키 민병대의 잔혹한 행태’, <Les Observateurs>, 2019년 10월 21일, http://observers.france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