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진실’을 이길 수 없는 ‘지식’의 조악함 -영화<나는 부정한다>(Denial, 2016)

2020-05-19     지승학(영화평론가)

“홀로코스트는 없었다.“ 이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이 명제를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실화(true story)를 토대로 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실존인물 데이비드 어빙(티모시 스폴)은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로서 이 명제를 ‘앎’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의 이 집착적인 ‘지식’은 판사의 눈에조차 편향적이고 맹신적인 믿음으로 비친다. 하지만 법적 판단 앞에서 순수한 믿음은 죄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반유대주의자로서 반유대주의자의 태도에 위배되지 않는 지식은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신념(belief)을 언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대목에서 판사는 오히려 그 신념과 증거 조작은 구분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명백하게 발생한(happen) 역사적 사실이 부인(denial)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와이즈)의 변호인단은 편향적인 주도면밀함에 의한 증거 조작과 맹신적인 믿음은 결국 일맥상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항변하고 결국에는 재판에서 승소한다.

하지만 여전히 여운은 남는다. 데이비드 어빙은 영화 끝까지 아니 실존인물로서 지금까지도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자신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그의 홀로코스트를 일관되게 부인하는 태도는 바로 그 판사의 질문 속에서 힌트를 얻어 더욱 견고한 신념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진실공방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어떤 사실을 향한 신념에 대한 물음이 더 근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고 보면 이 신념은 역사적 진실 앞에서 지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게 해준다. ‘진정으로 믿고 있다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는가?’라는 문제를 역사적 사실 앞에 불러 앉혀 놓으면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신념으로 연결되는 이 질문은 무거운 진리론을 우선 마주하게 한다. 이에 대한 간략한 내용을 언급하려면 먼저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의 '지식의 조건'에 대해 말해야한다. 사실 ‘지식’은 3가지 조건에 부합될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다. 그 조건은 첫 째 어떤 사람이 주어진 명제를 믿어야 하고, 둘 째 어떤 사람이 주어진 명제를 믿는 것이 정당화되어야 하며, 셋 째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그 명제는 참이어야 한다. (이를 JTB조건(Justified, True, Belief)이라고 한다)

이런 여러 조건을 토대로 데이비드 어빙이 믿고 있는 ‘홀로코스트는 없다’라는 명제를 살펴보면 정황상 지식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누군가의 ‘지식’은 그저 한 조각의 ‘지식’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다시 말해서 신념으로 점철된 '지식의 민낯'을 드러냄으로써 '지식'과 '진실'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사회문화 속 역사적 진실은 ‘지식의 조건'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문제임을 보여주려 한다. JTB조건을 근간으로 하는 '지식의 문제'와 '역사적 진실을 다루는 문제'는 결코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

이를테면 역사적 진실이란 지식을 뛰어 넘어 소위 새로운 대중적 에너지로 발산되어 사회구성원들끼리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소위 ‘정신정치학’(Noopolitics)적 차원의 대상인지 모른다. 나는 데보라 립스타트가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손을 조용히 잡아주는 것에서 바로 이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이해하고 보니, 우리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 시도 역시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들의 태도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두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 혹은 부인하려는 자들은 조악한 조건(게티어 문제는 이런 JTB조건의 한계를 지적한는 대표적인 반례이기도 하다.)의 '지식'을 동원하여 역사적 진실에 대응하려는 무모함을 보이는 사람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지식’이 곧 ‘진리’가 되려는 편향된 모든 망상적 시도는 결코 역사적 가치를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역사적 가치와 진실은 지식과 달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중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게 하는 공통된 힘이지, '부인'이나 '왜곡'만으로 손쉽게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강렬함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을 전해줌으로써 우리나라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데서 드러난다.

어쨌든, 그 5월의 힘은 역사적 진실로서 우리만의 역량으로, 에너지로 그렇게 또 다시 도착한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