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젊은이들’의 고독한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가
앨런 실리토의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은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 시대의 종말, 그리고 다수가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복지사회 건설에 들어간다. 그러나 1945년에 대한 기대감은 1951년 보수당의 집권으로 멀어져간다. 1950년대 중반에 등장한 젊은 세대의 작가들을 가리켜 비평계에서는 ‘성난 젊은이들’이라고 불렀다. <성난 젊은이들>은 존 옵스본의 희곡 제목이기도 하다. 동시대 영국에 대해 환상을 잃어버린 후 반항적이 된 청년을 등장시킨 이 희곡 작품은 영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문단에서 ‘성난 젊은이들’은 서민 계층 출신의 작가들, 특히 사회의 현실을 그리며 영국 문단에 흐르는 획일주의를 털어내려는 작가들을 가리킨다. 존 웨인(1), 키스 워터하우스(2) 등이 ‘성난 젊은이들’ 작가를 대표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이라는 매력 넘치는 소설을 내놓은 작가가 있으니, 바로 앨런 실리토다. 이 소설은 중부지역의 노팅엄쇼에 사는 청년 노동자 아서 시튼의 삶을 그린다. 소설에서 가장 길게 다뤄지는 부분은 토요일 저녁이다. 여기서 토요일 저녁은 너무 느릿느릿 돌아가는 1년이라는 커다란 바퀴에서 그나마 영광의 52일에 속하는 날로 그려진다. 여기서 말하는 영광의 52일은 펍에서 시간을 보내며 진탕 술을 마시는 날이다. 술에 취하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펍에서 술을 마시다보면 같이 즐길 수 있는 여자를 찾을 수도 있다. 상대가 동료의 아내든, 걸핏하면 화를 내는 군인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바람을 피우려는 유부녀든 상관없다.
그러던 어느 날 아서는 혼자 사는 젊은 여자를 만나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계를 맺게 된다. 일요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 낚시를 하러 가는 날이다. 아서는 낚싯밥을 살펴보면서 지난 세월과 최근에 겪은 일을 생각한다. 아서는 지주, 현장감독, 경찰, 군대, 정부, 그리고 모순되고 ‘정신 나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반항심을 느끼면서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버틸 수 있다면 세상도 조금은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서는 이 넓은 세상에서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실제로 앨런 실리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앨런 실리토의 소설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은 카렐 라이츠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져 성공을 거두었고 60년 동안 영국의 많은 영화감독과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 되었다(특히 <The Queen Is Dead 여왕은 죽었다> 앨범의 스미스, <Whatever people say I am, that’s what I’m not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은 내가 아니다>로 유명한 악틱몽키스 밴드). 앨런 실리토가 첫 번째 소설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 이후에 발표한 단편집 <장거리 주자의 고독>은 비행 소년의 내적 감정과 윤리를 훌륭히 묘사한 작품으로 동명의 제목으로 토니 리차드슨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은 독자들에게 이유 없는 반항자의 경험담 혹은 현재보다 세대 차이가 컸던 시대에 인생의 첫 발을 들이는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글·샤를 자키에 Charles Jacquier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번역위원
(1)John Wain, Hurry on Down(프랑스어 번역본의 역자는 Anne Marcel), Les Editions du Typhon, 마르세유, 2019.
(2)Keith Waterhouse, Billy le menteur(프랑스어 번역본의 역자는 Jacqueline Le Begnec), Les Editions du Typhon, 마르세유,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