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의 부흥사가 된 한국 보수 개신교

2020-08-31     강인철 l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2019년 6월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의 만남은 평소 미국 보수당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고 맹렬하게 반공을 제창해온 한국의 보수 개신교 진영에 혼란을 선사했다.

 

2020년 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한국 전역에서 확산세를 보이는 위기국면에, 복음주의·보수 개신교(이하: 보수 개신교 혹은 개신교 우파)는 매일 같이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현장 종교집회 일시중단과 온라인 영상 예배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정부 권고를 무시했다. 불교나 천주교와 달리, 보수 개신교는 종교의 자유를 앞세웠다. 더군다나 위기를 기회 삼아 문재인 정부를 ‘사회주의 중국에 굴종적인 정부’로 비난하는 이념 공세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는 그동안 좁아진 입지를 만회하려는 열망이 담겨 있다.

2016년 가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양분됐다. 탄핵에 찬성하는 쪽은 ‘촛불집회’를 시작했고, 반대하는 쪽은 ‘태극기 집회’를 시작했다. 탄핵반대 집회에서 개신교인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두 진영의 세력 대결은 1,700만 명을 동원해낸 촛불집회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결됐다.(1) 2017년 3월 10일 탄핵안이 통과되면서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됐고, 여러 죄목으로 구속 수감돼 정식재판을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촛불집회를 대변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태극기 집회는 새 대통령이 선출된 후 크게 위축되긴 했지만 계속 이어졌다. 태극기 집회에 참여했던 개신교인들은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 냉전적 대립구도의 급격한 해체 조짐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미국 보수 개신교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해빙에 핵심주역이 됐다는 사실은 한국 보수 개신교인들의 당혹감을 가중시켰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당시 여당이던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에서 황교안이라는 인물이 2019년 2월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혼란과 실의에 빠진 보수 개신교인들은 생기를 되찾았다. 박근혜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극단적 반공주의자인 황교안의 등장으로, 보수 개신교는 태극기 집회로 대표되는 극우정치의 확고부동한 주축으로 평가받게 됐다. 하지만 그는 결국 지난 4·15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오랫동안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개신교인들은 사회문제나 정치에 관여하기를 꺼려온 편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약 30년 전부터 다양한 사회적 쟁점들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까지 진보적이었던 개신교

20세기 이후, 한국 사회는 무종교인 비율이 이례적으로 높으면서도(인구의 절반 이상) 종교 다원주의적 환경에서 치열한 종교 간 경쟁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였다.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1945년 당시 남한의 개신교 신자 수는 약 1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5%에 불과했다. 그러나 1950년대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개신교는 불교 다음으로 많은 신자를 거느린 제2의 종교로 급성장했다. 2015년의 통계청 조사는 개신교 인구가 967만6,000명으로 총인구의 19.7%를 차지해 사상 처음으로 한국 최대 종교의 지위로 올라섰음을 확인시켜줬다. 1995∼2005년 한국인 중 무종교인의 비율은 49.3%에서 46.9%로 감소했지만 2015년에는 56.1%로 급증했다. 현재 한국 개신교는 6곳의 텔레비전방송국과 109개의 대학, 631개의 초등 및 중등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259개의 사회복지법인을 보유하고 있다.(2)

지난 20여 년 동안 국회의원 중 개신교인 비율도 31∼41%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 개신교의 가시성은 국제무대에서도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인 개신교 해외선교사 숫자는 1980년대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현재는 미국과 함께 개신교 세계선교를 이끌어가고 있다. 2009년에는 2만 명을 넘어섰으며, 10년 이상 지난 현재 3만 명에 육박한다. 1990년대 초에 이르면 신자 수 기준 세계 최대 개신교회 50개 중 절반 가까이가 한국 교회들로 채워졌다.

미국인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 개신교인의 대부분은 신학적 보수주의자 혹은 근본주의자가 됐다. 1950년대부터 개신교 교단은 일련의 분열이 일어나면서, 신학적 보수성은 정치적 보수성, 신학적 진보성은 정치적 진보성과 결합됐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완료될 즈음인 1970년대 초에 신학적-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은 전체 개신교인의 20%에도 미치지 못했다.(3) 소수파인 진보 그룹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로 단단하게 결집한 채 한국 민주화운동과 독재정치 타파를 주도해나갔다. 덕분에 1970∼1980년대에는 개신교의 대외적 이미지도 진보적인 편이었다. 1980년대에는 일부 개신교인들도 사회참여 대열에 새로 합류함으로써 한국 개신교의 진보 이미지가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1989년 말, 지리멸렬했던 개신교 보수 그룹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고, CCK는 오랫동안 고수해온 성속이원론을 버리고 재빨리 사회참여 노선으로 갈아탔다. CCK는 신자·교회 규모와 재정동원 능력 측면에서 처음부터 NCCK를 압도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중반에는 보수 교단들이 재정위기에 빠진 NCCK를 사실상 장악했고 NCCK 특유의 진보성을 지워버렸다. 2000년대 이후 한국 개신교는 대외적으로 뚜렷한 보수 이미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한국 정치무대에서 보수 개신교 세력, 다시 말해 정치화된 개신교 우파(이하: 개신교 우파)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2020년 7월 현재 CCK에는 55개 교단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NCCK의 회원 교단은 9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2003년 1월에 CCK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 우파세력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수만 명이 참여하는 시국기도회를 단독으로 두 차례 거행한 데 이어 3월 초에는 기존 우익단체들과 공동으로 약 10만 명이 참여한 정치집회를 개최했다. 대규모 집회의 스펙터클을 연거푸 창출해내면서 개신교 우파가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하자, 우익 정치·사회단체들이 열광적인 환영으로 반응했다.

 

친미, 반공, 반북… 

개신교 우파세력 일부는 개신교 정당을 결성해 직접 선거에 뛰어들었고, 다른 개신교 우파세력은 이른바 ‘뉴라이트 운동’을 개척해나갔다. 2003∼2007년 약 5년 동안 개신교 우파의 정치활동은 성공적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 정적은 개신교였다”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개신교 우파세력은 노무현 정부(2003~2008)의 주요 개혁정책들을 대부분 좌절시켰다. 노무현 정부를 김대중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우호적인 친북-좌파 정부”로 간주했다. 

그들은 열정적인 선거운동을 통해 서울 초대형교회 장로였던 이명박을 대통령(2008~2013)으로 당선시킴으로써 보수 정부로의 정권교체도 이뤄냈다. 2010년대에는 ‘인터넷 전사’ 양성을 표방하면서 주로 청년들로 구성된 극우적 개신교 NGO들이 다수 등장했다. 이를 계기로 개신교 우파는 훨씬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이 극우 개신교 NGO 중 일부는 주요 선거를 전후해 은밀하게 국가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거나, 우익 정당 후보 선거캠프에 참여하는 등 공작정치에도 종종 관여해 ‘가짜뉴스’를 수시로 대량 생산·유포하기도 한다. 

개신교 우파는 다양한 영역에서 정치적 활동을 펼쳐왔는데 이를 몇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①반공-반북-친미라는 3대 가치를 지키거나 강화하기 위한 활동 ②퀴어, 무슬림, 양심적(종교적) 병역거부자, 이주민, 난민 등 사회적 소수자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조례나 정책·제도의 도입을 저지하는 활동 ③지지하는 정권을 창출·재창출하려는 활동(주로 선거운동으로 나타난다) ④개신교 계통 학교와 복지기관의 지배구조, 성직자 납세, 교회재정 운용 투명성 등과 관련된 개신교회의 제도적 이익을 방어하거나 증진하려는 활동 등이다. 

반공주의가 1930년대부터 ‘사회교리’라는 형태로 한국 개신교의 사회교리 일부로 편입돼 있었다면, 2013년부터 개신교 우파는 혐오를 조장하는 ‘종북 게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런 신조어에는 성 소수자들 상당수가 좌파 성향이라거나, 좌파 세력이 자유주의적 성 윤리를 매개로 성 소수자들과 연대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2007년 7∼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한국 개신교인 23명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고 그 중 2명이 살해된 후 또 다른 음모론이 대두됐다. 무슬림과 좌파의 연대에 의한 ‘한국의 이슬람화’가 그 내용으로 정책 측면에서 명백히 중도 혹은 중도우파인 정부들조차 타도돼 마땅할 좌파 정부로 간주하곤 했다. 이런 주장은 한국 인구 5,100만 명 중 무슬림 수는 약 15만 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슬람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극히 미미한) 영향과는 무관해 보인다. 오히려 한국 개신교의 메시아사상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 개신교는 북한에 대한 집착을 절대 져버리지 않는다. 한국 개신교 우파는 ‘복음에 의한 북한 정복’을 1990년대 중반부터 20년 이상 준비해왔고, 그들이 선호하는 시나리오대로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면 10년 이내에 1만 개 이상의 교회를 북한에 신설할 계획을 세웠다. 이미 수천 명의 선교사를 중국-북한 국경지대에 파견해놓고 있으며, 개신교 우파의 지원을 받는 탈북자 단체들이 휴전선 인근에서 북한체제 비난 선전물을 대형 풍선에 날려 보내는 일도 빈번히 벌어진다. 

 

태극기, 성조기, 그리고 이스라엘 국기

개신교 우파의 군사주의에 가까운 과도한 공격성은 특히 1990~2000년대에 소개된 미국식 영적 전쟁 이론, 예컨대 삶의 모든 차원에서 선(우리)-악(테러리스트)세력 간의 치열한 투쟁이 진행 중이라는 영적 전쟁 개념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예수가 재림해 사탄을 진압하고 천년왕국이 시작될 것을 믿는 교리)에 기초한 종말론적 믿음이 두루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세계 지배, 선과 악의 최후 결전이라는 관념은 신자들에게 전사(warrior)라는 정체성을 제공한다.(4) 

‘유대인에 의한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이라는 종말론적 주제 또한 아마겟돈 전쟁의 전조(前兆)로 간주한다. 2017년부터 우파 집회에서 태극기, 성조 옆에 이스라엘 국기가 종종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회에서 단상의 목사가 영어로 기도를 하기도 하고, 북한정권 붕괴를 위해 노력하는 미국 대통령에게 바치는 감사의 메시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이에 화답해 2003년 4월에는 리언 라포트(Leon LaPorte) 주한 미군 사령관이 세계 최대 개신교회이자 한국 개신교 우파의 강력한 지도자인 조용기 목사를 방문하기도 했고, 같은 해 8월에는 부시 대통령이 CCK에 서한을 보내 “개신교 우파의 시국기도회에 드러난 한미 우호 정신”을 치하하기도 했다.(5)

한국 복음주의·개신교 우파의 친미주의는 한국 우익의 전통적인 한-미 ‘동맹’ 담론을 넘어선다. 미국은 개신교를 전해주고 양육해준 ‘신앙의 아버지 나라’일 뿐 아니라 이중적 의미에서의 ‘구원자’이기도 하다(1893~1983년 국내에서 활동했던 개신교 선교사의 87% 이상이 미국인이었다). ‘한국의 구원자’로서의 미국은 감사와 보은의 대상이며 ‘세계의 구원자’로서의 미국은 추종과 협력의 대상이다. 한국 개신교는 세계를 구원할 섭리적 사명을 지닌 기독교 국가 미국의 충직한 파트너이자 조력자가 돼야만 한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 우파는 미국과 한국을 위계적인 관계로 인식하는 종교 식민주의적 멘털리티로 미국식 ‘선민사상’과 종교 민족주의를 수용하고 있다. 반면 미국 개신교 우파에게 ‘친(親) 한국’은 주변적이거나 중요치 않은 가치다.

이런 불균형에도 한-미 보수 개신교 간의 끈끈한 유대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4,000개 이상의 미국 내 한인(韓人) 개신교회가 한-미 개신교를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한-미 개신교 우파 인사들 간의 상호 방문과 만남도 빈번하다. 개신교 우파에 우호적인 대형교회들의 담임목사직과 신학대 교수직은 대부분 미국 보수 신학대를 졸업한 이들로 채워진다. 이들을 통해 근본주의, 전천년설적 종말론, 영적 전쟁 이론 같은 미국 신학이 한국 개신교 안에서 확산했다. 이렇다 보니 한국과 미국의 개신교 우파가 쌍둥이처럼 닮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높은 투표율과 표의 결집력, 세속적 우파 정치세력과의 연대, 반공주의, 동성애 반대, 난민·이주민에 대한 불관용, 친(親) 이스라엘, 반(反)무슬림 등이 양자의 공통점이다. 특히 사형제도에 대한 지지는 한-미 개신교 우파를 다른 대부분의 서구 개신교회들과 선명하게 구분 짓는 요소다.

다만 미국 개신교 우파와 유사한 입장이면서도 한국 개신교 우파가 정치적으로 공론화하는 빈도나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쟁점들도 있다. 배아줄기세포연구, 마약, 낙태, 페미니즘, 포르노그래피 등이 그런 사례다. 한국 개신교 우파는 학교에서의 창조론 교육이나 공립학교에서의 기도 문제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 개신교 우파가 9·11 이후 이슬람과의 대결에 중점을 둔다면 한국 개신교 우파는 북한과의 대결에 몰입한다.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이 개신교 우파에게 얼마나 당혹감을 안겨줬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국의 보수 개신교 단체들은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을 환영한다는 뜻을 표명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한겨레신문>의 박찬수 논설위원이 지적했듯 “북한을 혼내주리라 기대했던 트럼프가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함께 북한 땅을 밟는 깜짝 이벤트까지 선보인 것은, 보수 진영에 짙은 배신감을 안겨줬다.”(6) 박찬수 논설위원은 이에 덧붙여 일부 극우 지식인들의 “이제 대한민국 보수는 트럼프나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노선을 하루빨리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했다. 한국의 개신교 우파에게도 ‘트럼프나 미국 개신교 우파에 의존하지 않는 노선’이 필요하게 된 것일까?

 

평화 협정을 가로막는 ‘풍선 사역’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들의 멋진 판문점 만남은 트럼프의 선거운동용 사진촬영 행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이후 미국-북한, 남한-북한 관계의 의미 있는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반도에 만연했던 흥분과 희망의 분위기는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한국의 개신교 우파에게는 다행스러운 상황 전개였고, 트럼프에 대한 배신감은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2019년 10월부터 CCK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가 주도해 설립한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는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 앞에서 천막을 친 채 철야농성을 이어감과 동시에 도로를 막고 매일 예배 형식의 정치집회를 4개월 이상이나 계속했다. CCK 인사들은 이 농성장을 ‘광야교회’라고 불렀다. 

2020년 1월부터 한국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연이어 발생함에 따라 CCK의 반정부 집회와 장기농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더욱 증폭됐다. 이런 여론에 편승해 서울시가 2월 중순 농성장을 강제철거하면서 사태가 비로소 종결됐다. 지난 4월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전광훈 목사는 단념하지 않고,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수 우파 개신교가 만들어낸 적들 가운데 좌파, 이단(타 종파를 포함), 동성애자라는 세 집단을 소환해 이른바 ‘이념적 십자군 전쟁’을 재개했다.

우파 정당이 4월 총선에 패배한 후, 개신교 단체들은 북한에 대형 풍선을 통한 비방 전단을 살포하는 활동을 재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보수당이 북한과의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는 만큼 ‘풍선 사역’ 활동에 더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2020년 6월, 탈북자 단체인 북한자유운동연합(Fighters for Free North Korea), 개신교 단체인 한국순교자의소리(The Voice of the Martyrs Korea) 등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대북전단 살포 작업을 또다시 강행했다. 북한은 대형풍선을 통한 비방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2018년 판문점 선언에 따라 개성공단에 설치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6월 16일 폭파했다.(7) 

개신교 우파 인사들은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이 자신들의 신앙에 부합할 뿐 아니라, 사회·정치적 영향력과 존재감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사회적 고립을 점점 심화할 따름인 그들의 극우정치와 혐오정치로 인해, 한국 개신교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9월호 14~15면에 실린 것으로, 역자가 한국어로 번역함. 

 

 

글·강인철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중심, 2007), 『저항과 투항: 군사정권들과 종교』(한신대 출판부, 2013)등이 있다.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성일권, ‘Révolution des bougies à Séoul 한국의 촛불혁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월호.
(2)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 문화체육관광부 보고서, 서울, 2018.
(3) 강인철, 『저항과 투항: 군사정권들과 종교』, 한신대학교 출판부, 2013.
(4) Ibrahim Warde, ‘Il ne peut y avoir de paix avant l’avènement du Messie 메시아가 출현하기 전에는 평화가 도래할 수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2년 9월호.
(5) CCK 웹페이지에 게시된 보도자료, 2003년.
(6) 박찬수, ‘‘친미 보수’에서 ‘친일 보수’로’, <한겨레>, 2019년 7월 11일.
(7) Martine Bulard; 성일권, ‘La politique du rayon de soleil 김정은의 ‘파격’과 트럼프의 ‘변덕’이 빚은 롤러코스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6월호.

 

계시

우리는 미국 기독교인으로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환영합니다. (…)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가 이스라엘과 우리의 유대인 형제들을 위해 행하거나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미 대사관이 이전된 일에 대한 복음주의자 운동가인 로리 칼도자-무어의 발언, <하아레츠(Haaretz)>, 2017년 12월 6일


신념 

우리는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이는 복음주의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놀라운 이야기죠. 복음주의자들은 유대인들보다 더 기뻐합니다. 맞습니다, 놀랍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위스콘신주 오쉬코쉬의 선거운동에서, 2020년 8월 18일.

 

첫 번째 ‘순교자’

1820년 레바논 산의 젊은 마론교도(시리아·레바논 지역의 그리스도교-역주)인 아사드 시디아크는 미국인 선교사 조나스 킹을 만나 개신교로 개종했다. 당시 개종은 위험한 일이었다. 복음주의자로 개종한 사람들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있던 중동 곳곳에 퍼져 있었다. 그들은 다양한 기독교 교회를 분열시키고자 했던 오스만 제국의 암묵적인 후원을 받아 학교를 열었다. 이에 대응해, 마론교의 총대주교 유세프 호바이치는 다른 종교로 개종하면 자동으로 파문하겠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아사드는 공동체에서 추방됐고, 1830년 죽을 때까지 칸누빈 수도원에 몇 년이나 갇혀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마론교 종교 지도자들이 아사드를 동굴에 유폐했다고도 한다. 아사드는 굶어 죽기 전에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여하튼, 서구의 복음주의 교회들 중 많은 곳에서 아사드 시디아크를 중동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로 인정하고 있다. 아사드의 형제 아흐마드 파리스 치디아크는 아사드가 죽자, 레바논을 떠나 다른 지중해 국가(이집트, 몰타, 튀니지)로 갔다. 아흐마드는 파리에 체류하면서 빅토르 위고와 친분을 맺기도 했다. 그는 작가, 저널리스트, 번역가, 대학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가 이스탄불에 완전히 정착했다. 

 

석방된 목사

2018년 10월 터키 법원은 미국인 목사 앤드류 브런슨에게 ‘스파이 활동’와 ‘테러 단체 지원’ 혐의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여기에서 테러단체는,  쿠르드노동당(PKK)과 펫훌라흐 귈렌(터키 출신의 이슬람 성직자이자 정치인-역주)의 네트워크였다. 브런슨 목사는 2016년 체포된 후 장로파 복음주의 교회 전도사의 집에 가택연금을 당했고, 이 사건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터키 수출에 경제제재를 가할 만큼 터키와 미국 간 외교위기가 심각해졌다. 브런슨 목사는 3년 1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는 점과 “나는 결백하다. 나는 예수를 사랑하고 터키를 사랑한다ˮ라는 발언 등 소송기간 내내 보인 태도가 참작돼 곧바로 석방됐다. 며칠 후 백악관에 초청받은 브런슨 목사는 고개를 숙인 트럼프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큰 소리로 “이 나라를 선으로 이끌기 위한 지혜를, 그에게 주시기를 주님께 요청합니다”라고 기도했다.

 

비극적 임무

2018년 11월, 미국인 존 차우(26)는 센티넬이라는 원시 부족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살고 있는 아다만 제도의 섬에 도착했다. 신오순절파 선교사였던 차우는 부족민들로부터 화살 세례를 받았고, 그 중 하나는 그가 들고 있던 성경책을 관통했다. 그는 전혀 낙담하지 않고 며칠 후에 다시 그 섬을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치명상을 입고 죽고 말았다. 미국의 여러 복음주의 교회는 그를 ‘순교자’라고 칭하며 경의를 표했다. 미래의 선교사들을 단련시키는 단체 올 네이션스(All Nations)에서는 “복음을 나누는 은혜는 종종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라고 말했다. 존 차우가 거쳐갔던 단체는 “존의 희생이 적절한 시기에 성과를 거두기를 기도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패트릭 차우 역시 신오순절파였지만, “아들은 순수한 아이였다 (…) 그의 죽음은 극단적인 기독교 비전으로 인한 필연적인 비극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