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노동자들의 처우를 보장하라!
보건위기로 타격을 입은 문화·예술계가 시장의 역동성과 밀접한 수익모델의 한계에 봉착했다. 참정권과 마찬가지로 실업급여도 평생 누릴 수 있도록 수급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그들의 지위를 확고히 다진다면 자본과 정부보조금에 의존해야만 작업 활동이 가능한 환경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난관에 봉착했다. 공연장과 영화관이 문을 닫았고, 상영과 수금절차도 중단됐다. 미술관과 박물관도 관람객 입장을 중단해야 했다. 서점의 불빛도 몇 주째 꺼져있다. 그 결과 여러 형태의 예술노동자들이 실업 상태에 빠졌다. 예정작도, 돈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들 중 수만 명은 현재 수입이 전혀 없다. 기껏해야 지난 4월부터 예술가들도 신청할 수 있게 된 ‘소기업 노동자, 독립 노동자, 초소형 기업가들을 위한 연대기금’ 등 빈약한 대안에 기대고 있다. 예술·문화 노동자들의 경제활동이 고용 및 시장의 상황에 좌우되는 만큼, 이들의 사회보장제도 또한 위태롭다.
위기는 약자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보건 위기는 재앙이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깨우는 기폭제이기도 하다. 예술가, 프리랜서, 급여노동자들은 임금의 한계에 대한 실험대상이 되고 있다. 직위나 성과 등 변동적인 요소에 좌우되는 임금의 한계를 유례없는 방식으로 입증하는 중이다. 매 순간 변화하는 시장의 역동성에 따라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이 구태의연한 논리는 ‘고용’과 ‘매출’이라는 명목으로 부작용을 일으키고, 노동자들을 자본주의의 악습에 노출시킨다.
고용보험 제도를 지지하는 기간제 노동자 단체들이 최근 벌인 ‘파업 중인 예술’(1) 같은 운동으로 인해 문화경제의 ‘정상적인 흐름’으로 인식돼왔던 고통과 불평등이 이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상황을 악화시켜 노동자들의 지위와 함께 자금조달, 기획, 조직 및 상연 등 업계 전반이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무임금 노동, 불안정 계약, 모욕적 보수
문화예술 노동자 중 일부는 정규직(출판사 직원, 오케스트라 단원 등등)이지만 대부분 프리랜서나 기간제 노동자(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 초소형 기업가, 견습생, 학생이다. 빈약한 소득과 사회보장제도 때문에 이들은 종종 부업에 나선다. 그리고 이 때문에 더욱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다. ‘파업 중인 예술’, ‘가면을 내리자-예술과 문화’(2) 같은 운동을 중심으로 연합한 많은 이들은 카셰(Cachet: 공연계 노동자들의 임금 지급 단위, 1카셰=12시간-역주)의 숫자, 원고지 매수 등에 좌우되는 소득모델의 부당함을 주장한다. 흔한 무임금 노동, 불안정한 계약 기간, 모욕적인 수준의 보수…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상당히 매력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실제 혜택으로 이어지려면 ‘최저소득’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기본소득은 매월 정부에서 지급되는 500유로 이상의 가치, 즉 참정권을 통해 얻은 평생급여로 예술노동가들을 창작에 몰두할 수 있게 하고 자본과 정부 후원금에 매인 경제활동에서 해방시키는 수단인 것이다.
물론 기존의 틀 안에서 최고의 노동조건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급여 또는 프리랜서의 수익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현시점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간제 노동자의 실업급여 수급체계를 처음부터 재검토하고, 고용보험 제도를 개정해 예술가들과 공연 기술자들의 급여를 ‘다음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보전시켜 주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연속된 급여’의 힘을 보여준다.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고용주가 아닌 사회보장제도 분담금에서 출자한 기금을 통해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기간제·임시직 연합(CIP)에서 이미 지적했듯 이 제도는 문화계에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간헐적인 고용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 제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이는 공연계 직업군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일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모든 노동환경에 적용시킬 수 있는 문제다. 즉,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실업급여 수급체계의 확장이다. 프리랜서, 임시직 노동자 등을 통합하는 수평적 확장과 진입장벽을 (현행 507시간에서) 250시간 노동으로, 이후에는 0시간으로까지 낮추는 수직적 확장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활동, ‘노동자’는 신분
임금의 일부를 사회보장 분담금 형식으로 공제한 후 노동자들에게 재분배하는 것을 ‘사회적 급여’라 한다. 신생 직업군이나 나아가 전반적인 불안정 고용상황의 해소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고용보험으로 재분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적 급여’는 여러 가지 과제를 남긴다. 일례로 현대예술계에는 이 사회화 급여의 기준인 ‘가입자격 평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 시장, 국가로 구성된 제도권이 평가를 대체하는 즉 예술작업을 인정하는 특권을 지닌다.
예술가들만을 위한 급여도 필요하다. 예술가들은 ‘비가시적 노동’의 전형적인 범주를 이룬다. 그들은 급여체계, 이 비인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체계를 해체하는데 일조했다. 급여체계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런 태도는 ‘사회보장’의 근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제 문화·예술 분야의 새로운 노동자들을 실업급여 체계에 포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고용보험의 ‘새로운 모델’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기간제·임시직 연합은 불연속적 직무가 존재하는 모든 분야를 위한 가입기준 즉 노동시간 0시간에 최저임금(SMIC)(3) 수준의 수입을 보장하는 별도조항이 신설된 새로운 모델을 제안한다. 가입자격 평가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모델은 사회화 급여에 대한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며 당사자들이 직접 고용보험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런 기준이 마련되면 직업군에 따른 한층 간결한 대책들이 도입돼 예술노동자들의 가입자격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연속적인 급여가 단순한 안전망에 그치거나 ‘실제로’ 작품을 생산하는(또는 그렇다고 간주되는) 노동자들과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 사이의, 즉 ‘전 직종 간 연대’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국가가 참여 및 주도하는 개인별 가입자격평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시각예술계에서는 예술가 사회보장제도 직업위원회를 바탕으로 하는 심사위원을 선정해, 예술작업 인증 및 비자본주의적 기준(직업수행 연차, 작업수행 여부, 과거 프로젝트 등)에 따른 예술가들의 급여확대 심사를 맡길 수 있다. 궁극적으로 공연예술 실업급여 제도는 ‘예술가’보다는 ‘노동자’ 중심으로 강화돼야 한다. ‘예술가’는 활동이고, ‘노동자’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자격을 통해 예술노동자들이 직장이나 수익과는 별개로 평생급여를 요구할 수 있다. 이들이 자유로운 문화·예술 조직에서 일할 수 있는 창작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베르나르 프리오의 제안
창작에 있어 투자관리에 결정적인 권한이 달려있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주주와 자금조달자들이 일할 사람을 정하고 일을 계획한다. 예술·문화계의 자금조달은 국가(주문, 보조금, 세금 감면 등등)를 통해 또는 강력한 자본가들(은행, 수집가, 기업재단 등등)의 지원으로 이뤄진다. 이 자금을 놓고 예술가들은 서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예술단체도 가차 없는 경합을 펼친다. 이런 식의 자금지원으로는 문화·예술 작업의 자립이 불가능하기에 평생급여 투쟁과 같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고용보험의 모태인 일반 사회보장제도는 의료 공무원이나 퇴직자들에 한정해 급여를 지급한다. 이는 세금 및 자금조달자들에 의존하지 않고 공공병원을 발전시킨 제도이기도 하다. 이 시도(및 경험)들을 바탕으로 공공투자기금을 조성한다면 국가 후원금 및 후원제도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언론을 위한 프로젝트’(4) 모델에 의하면 문화·예술에 대한 재정지원은 창작물 전반에 적용 가능한 사회 분담금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장 부가가치(매년 기업들이 새롭게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 2018년 기준 1만4,390억 유로)에서 0.1%, 연 14억 유로를 비상업·비영리 창작·공연 지원에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부가가치는 예술노동자 노조 대표, 예술가, 연구자, 의원 및 추첨으로 선정된 시민 등이 관리하는 기금 네트워크를 지원할 수 있다. 단계에 따른 적절한 자금지원이 이 네트워크의 임무다. 공공기관은 전국 및 도별로, 시 조직이나 지역협회 등은 지자체 및 구역별로 지원하는 것이다.
재원 혜택은 두 가지 부문, 공공기관 및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비영리 민간조직이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사회보장보험 협정을 통해 상업적 문화기업(영리 미술관, 다국적 연예 기업, 온라인거래 플랫폼, 대규모 창작기업 등), 산업·금융가 연계된 배급업자(기업재단 등)는 제외해야 한다. 사회 분담금의 일부로 “사회보장보험 협정을 맺은 식품, 주거, 근거리 교통수단, 연료, 물, 문화 전문업체들에 한정해 수백 유로를 지출할 수 있는” 생계지원 카드(carte Vitale)를 제공해 실업급여를 올리자는 사회학자 베르나르 프리오의 제안이 떠오른다.(5)
글·오렐리앵 카탱 Aurélien Catin
작가, 저서로 『Notre condition. Essai sur le salaire au travail artistique 우리의 상황. 예술노동의 급여에 관한 에세이』(Riot édition, 2020). 본 기사는 기사에 언급된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인 대중교육 연합 ‘임금 노동자 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작성했다.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번역위원
(1) https://artengreve.com
(2) www.blm-artsetculture.fr
(3) ‘Un nouveau modèle d’indemnisation du chômage 새로운 실업급여 모델’, 일드프랑스 기간제·임시직 노동자 연합, 2014년 11월. www.cip-idf.org
(4) Pierre Rimbert, ‘Projet pour une presse libre ‘자유 언론’을 다시 살리는 길은 상호부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4년 12월호.
(5) Bernard Friot, ‘Penser un monde nouveau. Une sécurité sociale des productions 새로운 세상을 생각하다. 창작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L’Humanité>, Paris, 2020년 5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