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시대 여성의 진실을 밝히다

2020-10-05     마리렌 파투마티스 | 프랑스 국립과학원 연구소장

만약 여성 선조가 라스코 벽화를 그리고 들소를 사냥하며, 도구를 갈았다면 어떨까. 초창기 선사시대 전문가들은 19세기 가부장제와 그 성스러운 질서를 연구 대상에 투영해 당대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지위가 낮았다는 신화를 구축했다. 과학적 접근법을 통해 이런 전제에서 벗어나 인류 진화에서 ‘제2의 성’인 여성의 역할을 재고해보자.

 

구석기시대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보다 낮았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논거는 전무하다. 반면 고고학자들은 여성적 재현물이 다양하다는 점을 근거로 신앙의 중심부에 있었던 여성들이 당시 사회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었을 것이라고 시사하기도 한다.(1) 적어도 일부 여성들에게서 그 점이 확인됐지만 고작 그런 사례가 전부일까? 당시 사회가 모계사회, 더 나아가 모권사회였다는 설을 지지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보통 여성이 사회적, 법률적 권한을 갖는 모권사회와 어머니를 중심으로 혈통을 잇는 모계사회를 혼동하기 쉽다. 어원(그리스어 ‘ἄρχειν’는 ‘지도하다’ ‘지배하다’를 뜻함)을 살펴보면 ‘모권’이라는 용어는 여성의 지배를 암시한다. 지배적인 여성과 그 후손을 중심으로 한 서열은 여러 동물 종, 특히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 보노보 등에서 관찰할 수 있고, 중국 윈난성의 외진 골짜기에 자리 잡은 티베트계 소수민족 모쒀(摩梭)도 1990년대까지 모권사회였지만,(2) 현재 모권제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모계중심 사회가 있었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고대부터 대다수 문명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경제적, 사회적 권력을 가졌고, 수많은 전문가는 인류 기원부터 남성 중심의 사회였으리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19세기 현자들이 제기한 부권제 이전에 모권제였다는 견해를 반박한다. 선사시대 사회에서 모권제가 존재했다는 학설은 한 세기 반 전부터 논의돼왔고, 여전히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본원적 형태의 모권제’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반면 신석기시대부터 부권제 등장 전까지 실재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3)

씨족의 잡거 특성을 고려할 때 아이의 아버지를 확신할 수 없기에 어머니를 통해 혈통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폴란드 인류학자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1884~1942)와 스위스 법률가 요한 바흐오펜(1815~1887)은 초기 인류사회에서 모계 혈족이 중시됐다고 여긴다. 바흐오펜은 1861년부터 고대 신화와 여행기, 특히 북아메리카(캐나다) 식민지 누벨 프랑스로 선교 활동을 떠난 조제프 프랑수아 라피토 예수회 수도사의 기행문을 참고해 ‘선사시대’는 모권을 행사하는 ‘여권 정치’의 시대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들이 ‘고귀한 여신’ 숭배를 중심으로 모성의 ‘신비’를 활용해 부족을 조직하고 권력을 엄마로부터 딸로 계승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시시대 모권제의 존재, 아니 최소한 사회적 양성평등의 성립은 19세기 말 많은 인류학자와 철학자가 주장한 내용이다. 그들은 경제의 축이 포식(수렵-채집)에서 생산(농축산)으로 이동하면서 남성이 권력을 쥐고 부계 혈족과 부권제를 정착시켰다고 생각한다. 소수 인류학자들로 인해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이 주장은 1930년대부터 다시 주목을 받았다. 선사시대 사회의 구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습이 바뀌었다. 씨족으로 시작해 정주적인 가모장제로, 다시 유목식 가족(부부) 중심제로 이어졌을 것이다. 러시아 고고학자 프오트르 에피멘코가 제안한 이런 선형적 계보는 몇몇 오류로 인해 완전히 폐기된 상태다.

30년 후 청동기시대(BC 2200~BC 800) 전문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는 선사시대 인도·유럽사회가 ‘여성중심(모계) 사회’(4)였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회는 약 2만7,000년 동안 지속됐다가 기원전 약 3,000년부터 중앙아시아 스텝지대에서 유목민족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바위에 인공동굴을 만들어 고인을 매장하는 전통이 있는 ‘지하’ 지중해 문명 또한 모계 혈족사회에 속했고, 기원전 3,500년경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기마 민족들은 모계사회를 구성한 원주민들에게 부권 중심의 호전적인 체제를 강요했을 것이다. 이 가설도 논란이 되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무기와 성벽 잔해를 볼 때 기마 민족들의 침략 훨씬 전에 방비를 마쳤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세력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1980~1990년대부터 몇몇 미국 역사학자들이 선사시대가 모계 혈족사회였으며 가부장제사회보다 훨씬 평등하고 평화로우면서 위계를 덜 중시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여러 연구자가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그들 대부분은 모권사회에 관한 기술이 양성 간 지배 우위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라진 ‘황금시대’의 낭만주의에서 비롯된 ‘기발한 신화적 상상물’에 불과하다고 여겼다.(5) 에마뉘엘 토드는 바흐오펜이 주장한 ‘여권 정치’가 ‘환상’이라며 “사실 여성의 지위는 모계 혈족사회보다 혈족을 구분하지 않는 제도 내에서 더 높았다”(6)고 했다. 즉, ‘본원적 형태의 모권제’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평등한 전통사회라도 남성-여성의 관계는 그렇지 못했다는 사례를 열거하며 비난하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모권제의 옹호자들도 민족지학적인 논거를 들었다. 그런 사회가 압도적으로 많더라도 양성관계가 균형 잡힌 사회(가령 남아프리카의 산족)가 존재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부정할 수는 없다.

 ‘모권제는 존재한 적이 없다!’ 전문지 <역사>의 1992년 11월호에 실린 이 간명한 선언은 수많은 연구자가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제가 본원적인 형태가 아니라 유랑하는 수렵-채집 공동체의 사회구조에 영향을 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아마도 경제적인 사유로 인해 차츰 자리 잡았다는 가설을 검토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한다. 정주생활을 시작하고 채소와 가축을 키우게 되면서 (구석기사회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재산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 재산을 지키는 활동이 필요해졌으며 이는 육체적으로 더 강한(강하다고 인식되는) 남성에게 부과됐다. 점차 수확물과 가축 무리를 소유하게 된 남성들은 자녀에게 이를 물려주기 위해서 부계사회를 형성했을 것이다. 

 

“양성 간 질서를 전복시킨 것은 남성”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논문 <친권의 기본 구조>(1949)에 의하면 부권이 확대되면서 아이들의 소속과 통제권을 아버지가 가지게 됐는데, 이 현상은 체계화된 사회에서 나타났다. 중시되는 혈통이 바뀌면서 부권사회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따라서 신석기시대에 관찰된 경제사회적 변화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크게 뒤흔들었을 공산이 크다. 철학자 올리비아 가잘레가 지적한 대로 아마도 이런 관계전복을 기점으로 가부장시대가 도래했을 것이다. “양성 간 질서를 최초로 전복시킨 것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여성들의 권리와 자유가 훨씬 더 방대하고 여성성이 존중받고 신성시되던 공존의 세상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세계,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고 속박하며, 여성으로부터 권력을 앗아갈 남성성에 기반한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새로운 문명의 서막이 오르면서 남성성이 우월하다는 서사가 시작됐고 세기를 거듭하며 신화(이미지와 상징), 형이상학(개념), 종교(신법), 과학(생리학)이 이를 공고히 다졌다.”(7)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84년부터 모계혈통보다 부계혈통이 점차 중시되면서 여성들이 지배받게 된 것이며,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역사적 참패”(8)라고 평했다. 그로부터 120년이 넘게 지난 후 에마뉘엘 토드 또한 부계우선 원칙이 복잡한 가족형태를 발전시켜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대했고(즉 이전에는 다른 원칙이 존재했다), 이런 현상의 반작용으로 여성의 지위가 하락했으며 그 결과로 문화전승에서 여성의 역할은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모권제(모계혈통을 중시하며, 데릴사위제도 정착)가 드문 이유도 남성지배의 보편화로 설명할 수 있다. 폭력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여성의 복종은 성별에 따른 노동분화의 산물이다.

구석기시대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성은 씨족의 영속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아이의 친부를 확신할 수 없기에 모계혈통이 확실했다. 여성들은 경제적 주체로서 매우 다양한 활동을 했고 아마도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상징적인 가정의 영역에서는 남성보다 높은 지위를 누렸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 미술에 등장하는 여성의 재현이 중심을 차지한다는 점이 그 근거다. 상식적으로 이들 사회에서 양성관계가 평등했다면 실상 여성이 지배하는 모권제사회나 부권제사회가 존재했다고 판단할 단서는 없다. 모계혈통 대신 부계혈통을 우선시하게 된 계기는 신석기시대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모계사회가 여전히 존재했다.

신석기시대 초창기의 농업사회를 구성하는 사회경제적 구조는 여성이 일군 것이다.(9) 여성 농부들이 채소를 가꾸고 괭이와 맷돌 등 농기구를 고안했다. 사회조직에서 변화는 기원전 6000년경 일어났는데, 식량이 풍부해지고(곡물보관 창고가 등장) 정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처음으로 마을이 형성) 지역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다. 목축이 발달하고 새로운 개간기술을 숙달하면서 농업활동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을 점차 대신했다. 양털이나 우유를 얻으려고 동물을 키우면서 여성들은 더 가사에 집중하게 됐을 것이다. 부(밭이나 방목장의 크기, 가축의 수, 식품 저장량)가 축적되면서 공동체 내에서 남성들의 입지는 점점 강해졌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사회적 관계를 재편하면서 엘리트 집단과 군인 등 특권집단을 등장시켰고, 성별 역할분담을 한층 공고히 하는 동시에 ‘시집살이’와 부계중심 문화를 확대했다. 

사회에서 여성의 입지를 전복시킨 이런 변혁은 기원전 5000년부터 부장품 구성에서 감지되기 시작했고(성별 간 차이가 심화되고, 여성의 부장품은 남성의 것보다 품목이 적다) 여성 유해의 상태에서도 이 점이 드러났다. 무거운 짐 지기, 잦은 임신 등 고된 육체노동으로 인한 질병뿐만 아니라 저단백 식단(전분질 식품과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충치가 더 많다)으로 인한 영양결핍, 폭력으로 인한 외상흔적 등이 여성에게 더 많았다. 다만 모든 여성이 이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호사스럽게 치장을 하고 질병이나 상흔이 거의 없는 여성의 묘도 있다.(10) 당시 여성들의 상황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이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 세기 반 이상, 선사시대 유물은 당대 여성들의 존재, 특히 경제 분야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해석됐다. 새롭게 발견된 유물은 인류 진화에서 남성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여성들을 재조명한다. 

 

 

글·마리렌 파투마티스 Marylène Patou-Mathis
프랑스 국립과학원 연구소장, 국립자연사박물관 인간환경부 소속. 『선사시대 인간은 여성이기도 하다. 여성 은폐의 역사 L’homme préhistorique est aussi une femme. Une histoire de l’invisibilité des femmes』(Allary Éditions, 2020년 10월 1일)의 저자로 본문은 이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번역·서희정
번역위원


(1) Piotr Efimenko, 『La société primitive 원시사회』1953, Claudine Cohen, <La moitié “invisible” de l’humanité préhistorique 선사시대 인류의 ‘보이지 않는’ 반쪽> colloque Mnemosyne, Lyon, IUFM, 2005.
(2) Cai Hua, 『Une société sans père ni mari. Les Na de Chine 아버지도 남편도 없는 사회, 중국의 모쒀족』, PUF, Paris, 1997.
(3) Ernest Borneman, 『Le Patriarcat(Perspectives critiques) 부권제사회(비판적 전망)』, PUF, 1979.
(4) Marijas Gimbutas, 『Bronze Age Cultures of Central and Eastern Europe』, De Gruyter Mouton, 1965
(5) Cynthia Eller, 『The Myth of Matriarchal Prehistory. Why an Invented Past Will Not give Women a Future』, Beacon Press, Boston, 2000.
(6) Emmanuel Todd, 『L’origine des systèmes familiaux, tome I : L’Eurasie 가족 제도의 기원, 1권: 유라시아』, Gallimard, Paris, 2011.
(7) Olivia Gazalé, 『Le Mythe de la virilité 남성성의 신화』, Robert Laffont, Paris, 2017.
(8) Friedrich Engels, 『L’origine de la famille, de la propriété privée et de l’État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1884.
(9) Jacques Cauvin, 『Naissance des divinités, naissance de l’agriculture : la révolution des symboles au néolithique신성의 탄생, 농업의 발생: 신석기시대 상징의 혁명』, Flammarion, Paris, 1998.
(10) Anne Augereau, <La condition des femmes aux néolithiques. Pour une approche du genre dans le Néolithique européen 신석기시대 여성의 조건, 유럽 신석기시대의 젠더 접근>, 박사학위 지도자격 심사 논문, 국립예술사연구소, 2019년 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