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신중의 의무’는 어디까지?
지난 10월 중순, 되세브르주(州)의 교사 4명이 그들이 근무하는 학교의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개혁 반대 집회에 참가해 공무원이 지켜야 할 ‘신중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다. 흔히 언급되는, 경계가 불분명한 이 개념은 공무원의 자기 검열을 강화한다.
오랫동안 당국은 공무원에게 단순히 ‘신중함’을 초월해 말과 행동을 최대한 삼가도록 요구해왔다. 역사학자 프랑수아 뷔르도에 의하면 19세기에는 “국가의 녹을 받기 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양도한 이들은 투표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까지 여길 정도였다. 공무원의 사적인 자유는 검토의 대상이었다. “1880년 상업부 장관령에 의하면 여성 우체국장이 결혼을 할 경우 상관에게 미리 알려야 하며 해당 결혼의 적절성을 평가할 권리를 행정부에 부여했다.”(1) 1941년의 공무원신분법도 여전히 배우자 선택권을 통제했다. 비시 정부는 이 법의 제안 이유서에서 공무원의 엄격한 의무는 “사생활까지 확대‧적용된다”라고 경고했다.
세계 2차대전 중 나치 독일 점령군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또 다른 모델이 도입됐다. 공산주의자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1946년의 공무원신분법으로 ‘직업’ 공무원이라는 직위가 생겨났다. 이들은 경쟁시험으로 능력을 평가해 선발됐으며 평생직장을 보장받았다. 정권이 교체돼도 공무원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임명권을 가진’ 도지사, 대사 같은 직책은 예외였다. 모든 공무원은 장관의 권위를 존중해야 했다. 공무원은 장관에게 보고하고, 장관은 의회에 보고했다. 하지만 사상을 표현할 권리는 공무원과 거리가 멀었다.
존재 이유가 불분명한 신중의 의무
1983년, 현재도 시행 중인 공무원신분 일반법의 도입과 함께 자유가 일부 허용됐다. 이 법의 제6조는 공무원에게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 당시 공무원부 장관이었던 아니세 르포르에 의하면 ‘신하 공무원’ 시대의 막이 내리고 ‘시민 공무원’ 시대가 시작된 전환점이다. 원칙적으로, 직업적인 영역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신분’은 공무원에게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공직에서는 직무수행 시 ‘복종’과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중립’의 의무가 지배적이다. 공무원은 직무수행 시 “중립성 및 제도에 대한 충성심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는 모든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2) 직무 외적으로는 전단을 배포하고, 선거에 입후보하고, 정치 관련 매체에 기고하는 등의 표현과 사회참여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1983년의 공무원 신분 일반법에는 예외에 속하는 ‘신중의 의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3) 민간분야의 경우 계약서 조항으로 고용주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임금 노동자에게 강요할 수 있지만, 공무원에게 부여된 신중의 의무를 명시하는 어떤 법률도, 규정도 없다. 행정 판례로 확립된 신중의 의무에 대한 정의는 같은 단어만 반복하고 있다. 이 의무를 최초로 언급한 최고행정법원인 국사원(Conseil d’Etat)의 판결에 의하면(부장케 사건, 1935년), 신중의 의무는 공적인 발언이나 처신에서 행정부를 상대로 “지켜야 할 신중함”을 위반한 공무원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이 의무가 어떤 내용으로 이뤄져 있는지 이해하려면, 국사원의 최초 언급 이후 법원들이 내린 판결 속 제재의 규칙성이나 비례성을 참고해야 한다. 시청의 부서 책임자는 지역 신문에서 시장에 대한 ‘과격한 비판’을 할 수 없으며, 공무원은 금지된 시위에 참여할 수 없다. 부지사는 프랑스나 외국의 유력인사를 ‘강한 논쟁적’ 어조로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기병대(Gendarmerie)의 내무부 배속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장교를 제명할 수 없다. 이처럼 신중의 의무는 행정 판례에 따라 그 경계가 변하지만 위의 결정에서는 세 가지 일정한 법칙이 드러난다. 첫째 신중의 의무는 직책에 비례한다. 둘째 신중의 의무는 징계의 성격을 띤 제약으로 본인 관련 사건 조사기록 열람권처럼 권리의 보장을 동반한다. 셋째,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소한 판결들로 ‘신중의 의무’에 대한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실제 적용 시 이 의무에 ‘후광’을 부여한다. 특히 간부가 그 대상이 될 경우 의무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석해 사회참여 자체를 비난하는 경우가 잦다. 2020년 1월 ‘잠입자들(Les Infiltrés)’ 이라는 이름의 단체가 일간지 <리베라시옹(Libération)>에 연금제도 개혁에 반대하는 기고문을 게시했다.(4) 이 단체의 회원들은 자신들의 학력(이공과대학, 국립중앙공예학교, 파리정치대학 등 그랑제콜)과 직책(주로 고위 공무원)을 공개했지만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억견이 지배적인 환경에서, 파업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공개 토론 참여는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이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이 단체(또는 다른 익명의 단체들)의 우려가 보여주듯 행정부 내부에서는 승진 기회를 놓치거나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업무 관련 발언이 무시당하는 등의 손해를 입지 않으려면 공무원은 정치적 성향을 표출하거나 본명으로 기고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내부 검열을 강화시키는 신중의 의무
근래 들어 공공분야에서 관찰되는 두 가지 내부 동태가 이런 자기 검열을 강화시켰다. 첫 번째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임기의 특징으로 행정부가 정치에 동원하고 있는 현상이다. 2016~2017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부터 정치 참모 선발과 사상의 표명이라는 정당의 주요 두 기능을 행정부가 수행하고 있다. 장관 비서실의 규모 축소로 이런 경향이 더욱 짙어졌다. 2017년 5월 법령은 장관 1명이 거느릴 수 있는 고문의 수를 최대 10명으로 제한했다. 장 카스텍스 총리 임명 이후 제한 인원수가 소폭 상승하기는 했다. 하지만 행정부처가 발언 내용의 초안 작성처럼 보통 장관 비서실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정치적인 업무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두 번째는, 공무원이 타의 ‘귀감’이 되도록 윤리헌장과 윤리위원회가 행정기관 내부에 보편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윤리위원’의 수가 점점 늘고 있으며 이들의 권고사항이 신중의 의무의 후광을 강화시키고 있다. 금지할 수 없다면 틀을 만들어 이해의 충돌을 예방하는 것이 물론 낫다. 하지만 공무원의 공개적인 의사 표현을 장황한 규범이나 ‘올바른 실천법’으로 제한하는 것이 진정 직업윤리의 영역에 속할까? 때로는 판례를 뛰어넘어 모든 의견 표명을 견제하면서까지 말이다.
노동조합통일연맹(FSU)의 프랑세트 포피노의 설명에 의하면 “(2019년 신뢰할 수 있는 학교를 위한 법 제1조에 나오는) ‘귀감’이라는 단어의 도의적이고 주관적이며 모호한 개념 때문에 이제 모든 교사가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거나 관행을 이야기할 때 ‘귀감’이 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있다.”(5) 두 명의 법관은 2017년 행정재판소들(행정법원, 고등행정법원, 국사원)이 내부적으로 채택한 윤리헌장에 문제를 제기했다. “헌장이 전제하는 바는 이론의 여지가 상당하다. 사회참여가 특별히 부패를 조장한다고 간주하고, 개인의 의견이 기관 자체의 의견을 내포한다고 의제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비판적인 시각을 표현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는 행사할 수 없는 법관의 권리를 견제하고 있다.”(6)
한편으로는 행정부가 정치에 더 많이 개입하도록 강요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직업윤리를 명분으로 내세워 이유를 따지기도 전에 공무원의 사회참여를 직업상의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이 명백한 모순으로는 공무원의 자유에 대한 전반적인 침해를 감추지 못한다.
모든 공무원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을까? 현재 공무원부 장관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보리스 멜무외드는 몽테뉴 연구소 발주로 공동작성한 보고서에서 행정부가 “기업 친화적”(7)이 되도록 촉구했다. 기고문이나 싱크탱크 의견서에서 행정의 ‘현대화’나 공공지출 감소의 ‘필요성’에 대해 여전히 진실을 말하는 ‘국가 귀족’도 있다.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신중의 본질과 수위가 적어도 이념적인 세력 관계만큼이나 법률상의 규정에 근거하길 권고하고 있다.
고위 공무원들은 지배적인 의견을 표출할 때 언제나 더 많은 자유를 누려왔다. 많은 이들이 지지하는 목표의 경우 목표의 달성 방안에 대한 논의가 목표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보다 더 많이 허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행정부 내에서는 전통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피력하는 것은 업무의 연장으로 여겨지는 반면, 이단적인 발언은 정반대 대접을 받는다. 탈세로 인한 재경부 장관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고위 공무원이 있을까? TV 스튜디오에 출연해 “사회보장급여 부정수급 방지 노력이 부족하다”라고 비난한 법관 샤를 프라츠처럼 말이다.
공적 행위, 민주적 토론에서 예외가 될 수 없어
특히, 지배적인 이념의 표현은 그 특성상 더 우세한 인식과 결부된 ‘실용주의’의 지배를 받는다.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전체에서는 공공부채의 제한(8) 또는 치안 당국의 무장화처럼 행정부가 추구하는 목표를 반대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부정한다. 좌파 또는 우파의 공공정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정책과 나쁜 정책만 존재할 뿐이다. 솔직한 공무원들은 도출된 합의에 반하는 당돌한 의견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수밖에 없다. 반대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더 힘들어지고 신중의 의무의 후광은 강화된다.
따라서 신중의 의무의 존재 이유를 다시 따져보는 것이 마땅하다. 합의의 강화에 기여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의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어쨌든 신중의 의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존재한다. 아니세 르포르 전 공무원부 장관의 주장처럼 “공익의 실현이라는 사명과 이를 위해 부여된 책임을 고려해서 공무원에게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인정하고”(9)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정치적 쟁점은 공적인 행위의 형태, 우선 과제, 수단에 결부돼 있다. 공적 행위는 민주적인 토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적 행위를 주도하는 이들의 참여는 민주적인 토론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사상의 자유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노조활동이 효율적인 방책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고,(10) 민간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행정 분야에서도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조치들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무원에게 더 많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가?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행정부 내부에 널리 퍼져있는 권위주의적인 충동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장마르크 소베가 국사원 부의장판사 시절, 10여 명의 사법관이 국가 비상사태 합헌화를 비난하는 익명의 기고문을 게재했다.(11)
장마르크 소베는 이 ‘배신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인터넷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비판한 한 교수는 대학 본부에 소환됐다. 자신들이 근무하는 의료시설의 보건위기 대처능력 부족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병원 노동자들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1983년부터 보수 세력이 끊임없이 시도해온 것처럼 신중의 의무를 법률에 명시하는 것 보다는 진보주의 정부가 직무 외적 부분에서는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법률로 보장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12) 그렇게 되면, 정부는 공무원들을 위협할 수 있는 힘을 잃겠지만 이로 인한 위험은 제한적일 것이다. 사상에 대한 속박이 완화된다고 해서 충성의 의무, 즉 모든 종류의 의도적인 방해 행위에 대한 처벌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찰청장, 재무부 이재국(理財局)장 또는 유럽연합 상임 대표처럼 정부가 임명권을 가진 고위직책에 신뢰할 수 있는 인사를 임명할 권한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 오히려 앞으로 펼쳐질 전투에서 자유롭게 의견과 반대를 표명하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다양한 사회적 영향력과 공조가 가능해질 것이다. 사회, 환경, 페미니즘, 반인종차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 진행 중인 투쟁에서는 모든 발언과 사회참여가 중요하다. 공무원조차 그 결과를 두려워한다면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의 표현의 자유, 나아가 이 나라 시민의 권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글‧그레고리 르젭스키 Grégory Rzepski
마티아스 레이몽(Mathias Reymond)과 『Tous les médias sont-ils de droite? 모든 미디어가 우파인가?』(Syllepse, Paris, 2008년)의 공저자이며, 공익 연구소(http://interetgeneral.net)의 자유기고가.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François Burdeau, 『Histoire de l’administration française du XVIIIe au XXesiècle 18-20세기 프랑스 행정부의 역사』, Montchrestien, Paris, 1994년.
(2) Marcel Pochard,『Les Cent mots de la fonction publique 100 단어로 설명하는 공직사회』(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2011년), François Gazier(당시 국사원 위원)의 표현을 인용.
(3) 사법관 등 일부 특정직에 대해서는 신중의 의무를 명백하게 명시 하고 있다.
(4) “Nous, ‘cadres sup’, aux côtés des grévistes 우리 고위 간부들은 파업을 지지한다”, <Libération>, Paris, 2020년 1월 6일.
(5) Isabelle Maradan, ‘Pourquoi les enseignants craignent de s’exprimer dans les médias 교사들은 왜 언론에 의견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 하는가‘, <르몽드>, 2020년 6월 30일.
(6) Matthieu Bonduelle and Thérèse Renault, ‘De l’impartialité à la neutralité. Critique à deux voix d’un devoir dévoyé 공정성에서 중립성까지, 정도를 벗어난 한 의무에 대한 비난의 두 목소리‘, 『Délibérée』, n° 5, Paris, 2018년 10월.
(7) ‘Pour une fonction publique audacieuse et “business friendly” 대담하고 ‘기업 친화적인’ 공직사회를 위해, 몽테뉴 연구소, Paris, 2014년 4월.
(8) ‘Faut-il payer la dette ? 부채를 갚아야 할까?’, <마니에르 드 부아르> 프랑스어판, n°173, 2020년 10-11월호.
(9) Anicet Le Pors, ‘Les fonctionnaires, citoyens de plein droit 시민으로서 전권을 누리는 공무원들’, <르몽드>, 2008년 1월 31일.
(10) 2016년 공무원들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9.1%로 민간분야의 8.4%보다 높았다. 연구조사통계부(DARES), 노동부, Paris, 2018년 10월 8일.
(11) Jean-Baptiste Jacquin, ‘Jean-Marc Sauvé, au cœur de la machine de l’État 국가기구의 핵심에 위치한 장마르크 소베‘, <르몽드>, 2018년 4월 28일.
(12) 헌법재판소는 이미 “학교의 이익을 위해서” 대학교수의 표현의 자유를 전적으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