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를 택한 런던 금융 특구 ‘시티 오브 런던’

2020-12-31     마를렌 벙케 외

2016년 6월 24일 아침, 전 세계인들이 ‘영국이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남느냐, 떠나느냐’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를 접했다. 영국 유권자 51.9%는 결국 ‘탈퇴’를 택했다. 이런 투표결과가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전 세계 금융패권을 장악해온 런던금융 특구 ‘시티오브런던’의 금융회사들은 잔류를 압도적으로 지지한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정이 있었던 걸까? 과연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금융자본들이 의지를 관철할 만한 수단이 없어서 향방을 좌우하는 문제를 수수방관했을까?

‘시티’의 금융회사들이 노골적이고 대대적으로 주도한 ‘잔류 캠페인’ 뒤에는 상당수의 ‘탈퇴론자’가 있었다. 영국 선거 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자료를 분석한 관련 기록을 토대로 우리는 세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브렉시트 캠페인 지원금 중 산업부문이 ‘탈퇴’ 운동에 쏟아부은 지원금은 절반에 못 미쳤지만, 금융부문은 지원금의 2/3를 ‘탈퇴’ 운동에 집중했다. 둘째, ‘탈퇴’ 캠페인 수익금의 57%가 금융부문에서 나왔지만, ‘잔류’ 캠페인 수익금에서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6%에 불과했다. 금융권이 ‘잔류’에 더 호의적일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셈이다. 셋째, 금융계의 두 부류가 각기 다른 입장을 취했다.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브렉시트’에 자금 지원

한쪽 부류는 은행, 보험사, 자산 운용사, 중개, 환전 및 기관 투자사(연금 기금 포함)와 같은 제도권 금융기관이다. 이들 기관은 예금을 중심으로 취득한 자본을 주식시장에 단기 투자한다. 금융기관의 지배권은 주주가 행사하지 않는다. 주식을 가진 주주는 간접적인 선에서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지배권은 경영자에게 위임한다. 두 번째 부류는 대체 투자금융이나 사금융으로 불리는 사모 펀드나 헤지 펀드다. 대체 투자금융은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사모 방식으로 조성한 자금을 주로 장외에 투자해 자금은 운용한다. 전통적 금융 투자자산이 아닌 비상장 주식과 주식시장 같은 고위험 상품에 투자해 자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대체금융으로 분류한다. 양측 캠페인의 자금조달 자료를 살펴보면 명확한 그림이 보인다. 제도 금융권은 ‘잔류’ 캠페인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대체 금융권은 ‘탈퇴’ 캠페인 전체 자금의 94%를 지원했다.

유럽연합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유럽연합의 규제가 신자유주의를 합법화하고 국민주권을 박탈해 금융이익을 보장하는 장치이자 유럽 금융부문에 득이 되는 제도라고 묘사하지만, 대체 금융권은 그럼에도 유럽연합의 규제를 그다지 호의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대체 금융계 사람들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해 각종 감시의 굴레를 벗어나 규제의 제약 없이 마음껏 투자를 벌이는 자유를 꿈꾼다.

토스카펀드자산운용(Toscafund Asset Management)의 수석 경제학자 사바스 세이보우리는 2016년 5월 14일자 <르몽드>에서 국민투표 캠페인을 장악한 “브렉시트 반대 구호가 지겹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반대론자들이 계속해서 내세우는 위협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우리는 영국의 부동산과 기업에 5억 파운드를 투자했다. 브렉시트는 오히려 국가발전을 보장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금융계에 불어 닥칠 위험은 유럽연합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본다. 거시경제 자문 회사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창립자이자 영국 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 Daily Telegraph>의 칼럼니스트 로저 부틀도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전 세계로의 시장 개방을 의미한다. 지난 20년 동안 유럽이 기록을 참담한 경제성과를 우리 영국이나 미국, 여타 세계와 비교해보자.” 부틀은 유럽연합이 초래하는 비용과 제약을 비판하고 브렉시트가 영국의 금융 규제 완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본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경제학자(Economists for Free Trade, 이전 명칭은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경제학자·Economists for Brexit-역주)’의 회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금융가들은 런던을 일종의 역외 금융지구로 탈바꿈시키고자 한다. 은행가이자 전직 주식 투자가 마크 피오렌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부 금융가들은 런던이 유럽연합의 규제와 제약에서 완전히 해방돼 ‘글로벌 싱가포르’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개발 도상국이나 금융 강국들이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런던에서 자유롭게 사업을 벌이면서 합법적으로 절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영국 언론은 이런 모델을 ‘템스강의 싱가포르(Singapore-on-Thames)’라고 부른다.

2019년 보리스 존슨이 총리직에 오르면서 시대의 징후처럼 대체 금융권의 경영진들이 영국 정부의 자리를 꿰차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금융부문 출신 인사들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정부 요직에 진출해왔다. 2020년 2월까지 에너지부 차관을 지낸 앤드리아 레드섬은 과거에 바클레이스 은행(Barclays)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사지드 자비드는 도이치뱅크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새로운 금융계의 인사들과 어깨를 겨뤄야 한다.

2019년에는 부동산 투자회사 출신 리처드 타이스가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운동단체 ‘리이브 민스 리이브(Leave Means Leave, 탈퇴는 탈퇴다)’ 공동회장을 지낸 타이스는 같은 해에 나이절 패라지의 임명을 받아 브렉시트당 의장을 맡았다. 헤지 펀드 서머싯 캐피털 매니지먼트 (Somerset Capital Management)를 공동 창립한 제이컵 리스모그는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또 다른 헤지 펀드 TCI펀드(The Children’s Investment Fund Management)를 운영했던 리시 서낙이 사지드 자비드의 뒤를 이어 영국 재무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브렉시트에 영향을 준 자유지상주의

브렉시트 움직임은 유럽 건설을 뒷받침하는 신자유주의 이념보다는 자유 지상주의 이념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 자유 지상주의는 사유재산의 보장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국가개입을 제한하고 집산주의와 국가주의를 부정하는 경제논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이념은 국가 간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유 지상주의 옹호론자들은 보호주의가 아닌 고립주의를 취한다. 국가규제를 거부하듯, 국가 간 관계에서도 제도화에 반대하며, 경제적 이익에 상응하는 통상 협정은 당사자의 재량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자유 지상주의론자들은 개인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방편으로 아무런 규제가 없는 자본주의를 유일한 사회체제로서 옹호하며, 사회관계에서도 모든 강제권을 금지해야 한다는 정책적 대안을 편다. 더 나아가 개인의 도덕, 정치, 경제 주권의 틀 안에서만 사회적 집단성이 성립해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1975년에 설립된 자유주의 싱크탱크 프리마켓파운데이션(Free Market Foundation)의 연구원 크리스 해팅은 2019년 12월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무역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급진적인 정책이다. 아무런 규제 없이 사업체 설립을 허용하는 것도 급진적인 결정이다. 사람들을 저마다의 합리적 의사결정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는 개별 주체로 이해하는 시각도 급진적이다.”(1)

질 도스탈레르가 다음의 글에서 설명하듯이 자유 지상주의론자들은 신자유주의자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시설이나 운송설비 등 특정 기반시설 구축뿐 아니라 화폐를 발행하는 역할에서도 국가를 배제하자고 한다. 프리드먼 밀턴의 아들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경찰, 사법부, 군대를 민영화하자고 말한다. 무정부 자본주의는 모든 기능을 민영화해 국가를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고 보기에, 애덤 스미스가 국가의 역할로 남겨 둔 군대, 경찰, 사법부까지 민영화 대상에 포함하고자 한다.”(2)

하지만 자유 지상주의는 개인의 행동과 공동선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자유주의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주권적 개인들이 실현한 이익의 총합은 곧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같다고 본다. 밀턴 프리드먼이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주장한 신자유주의는 경제 영역 내에서만 공동선을 논했지만, 경제 논리의 지평을 지속해서 확장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통해 사유재산과 부의 축적을 철저히 옹호했으나, 그 안에는 사회 전반의 부의 증대를 가져와 사회적 진보로 이어진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반면, 자유지상주의는 자유가 공동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유에 대한 윤리적 접근만을 옹호하며, 결과가 무엇이든 자유 증진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자유방임식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자본주의가 우월하고 다른 어떤 생산 방식보다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자유 지상주의 윤리와 양립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 체제라는 이해에 근거한다. 자유를 결과론적으로 해석하는 자유주의자나 신자유주의자들과는 달리, 자유 지상주의자들은 의무론적인 해석을 한다. 그 결과, 부를 축적할 자유는 그 자체로 당위성을 획득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축적의 정치’

경제적 측면의 자유 지상주의를 정치적 측면에서 봐도, 대체 금융권이 표방하는 축적의 정치체제는 독선적이기만 하다. 축적의 정치체제는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건강, 교육, 안전)을 보장하는 재분배 메커니즘에 반기를 들며, 사회질서 확립에 필요한 이동과 표현을 통제해 사회적 이동과 공공의 자유를 억압한다. 

이런 조치는 자유지상주의 이념에 명백히 어긋난다. 자유지상주의 원칙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실제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인구 일부의 불평등과 빈곤을 보상하기 위한 체계의 당위성과 물질적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남는 것은 사회의 흐름을 규제하는 무력의 사용뿐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소유와 축적의 원칙을 도모하느라 자유를 희생한다.

이런 생각은 특히 2010년대에 런던 웨스트민스터가에 밀집해 통상 ‘터프톤가(Tufton Street)’로 불리는 싱크탱크들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55번가와 57번가 사이에는 애덤스미스연구소(Adam Smith Institute), 납세자연맹(TaxPayers’ Alliance), 리이브 민스 리이브(Leave Means Leave), 지구온난화정책재단 (Global Warming Policy Foundation), 정책연구센터(Centre for policy studies), 경제문제연구소(The Institute for Economic Affairs)가 들어서 있다. 이런 싱크탱크들은 주로 대체 금융권과 여타 경제 부문 연맹(건설 및 토목, 화석 에너지, 담배 산업 등)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다. 이 연계망은 영국 안에서 그치지 않는다. 

‘터프톤가(Tufton Street)’는 사실 애틀러스 네트워크(Atlas Network)의 일부다. 애틀러스 네트워크에 속한 400여 개 조직은 자유 지상주의와 영국의 친 브렉시트 보수주의, 미국의 알트라이트(alt-right·대안우파)와 연계돼 있으며, 정치적으로 일관된 하나의 연합체를 형성한다. 아울러 이들 조직은 자유 지상주의, 대처주의 후속 과제, 유럽 회의주의, 친미주의, 권위주의, 기후변화 회의주의 등 대체 금융권의 정치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각종 이념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대체 금융권을 지향하는 이들이 이 세상에 군림하는 데 민주주의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이들은 민주 공화국이 부르주아 지배에 가장 적합한 정부 형태라고 본 마르크스주의 사상마저 거부한다. 신흥 지배계층의 권력 행사를 저지할 만한 다른 엘리트 집단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19세기에 접어들 무렵, 신흥 부르주아지는 일부 지방에서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봉건 세력과 귀족에 맞서 피의 정당성이 아닌, 또 다른 정당성을 획득해야만 했다. 부르주아지는 약 천년에 걸쳐 지배권을 유지해온 지주 귀족과 농민 계급이 합심해 연대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주권적 국민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혁명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부르주아지와 경쟁하는 권력 계급이 없다. 군주제나 사회주의라는 위협요소가 사라진 마당에, 부르주아지가 민주주의에 달리 관심을 쏟을 필요가 뭐 있겠는가? 

 

 

글·마를렌 벙케 Marlène Benquet
테오 부르주공  Théo Bourgeron

사회학자. 이 기사는 두 사람이 공저한 『La Finance autoritaire. Vers la fin du néolibéralisme 권위주의 시대의 금융.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향해』(Raisons d’agir, 2021)에서 발췌한 것이다.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Chris Hatting, ‘Le capitalisme, seule solution pour sortir de la pauvreté et être libre 자본주의, 빈곤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유일한 방법’, <Counterpoints>, 2019.12.30, www.contrepoints.org
(2) Gilles Dostaler, 『Capitalisme et libéralisme économique 자본주의와 경제 자유주의』, Renaud Chartoire(편저), 『Dix questions sur le capitalisme aujourd’hui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관한 10가지 질문』, Éditions Sciences humaines, Auxerre,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