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로의 회귀
아무도 끝을 알 수 없는 싸움
1989년, 이란의 최고성직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작가 살만 루슈디에게 선포한 ‘파트와(어떤 사안이 이슬람법에 저촉되는지 해석하는 권위 있는 이슬람 판결-역주)’ 때문에 소설 『The Satanic Verses 악마의 시』는 스캔들의 대상이 돼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문제작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작가 로랑 비네에 의하면, 현실과 꿈속의 모험들이 혼재된 700페이지짜리 이 작품이 신성 모독이라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좋은 소설은 경전과는 성격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했다. 언제? 많은 이들이 짐작하는 2001년 9월 11일은 아니다. 그때는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후였다. 아민 말루프는 『문명의 침몰』(1)에서 1979년을 ‘대격변’이라 칭했는데, 이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1979년에는 마거릿 대처가 영국 총리로 당선됐고, 이란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중국을 시장경제로 이끈 덩샤오핑이 정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메카 대성전에서 유혈 인질극을 벌였다. 연속된 이 사건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비상과 공산주의 몰락, 이슬람주의 출현 등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상으로의 개편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반박할 여지없이, 1979년에 세상은 새로운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변화를 돌이킬 수 없는, ‘회귀 불가능’ 시점에 이르기까지는 10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1989년, 사람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가 역사적 순간임을 분명히 인식했다. 그러나 같은 해, 아무도 그 위력을 짐작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이란의 이맘 루홀라 호메이니가 소설 『악마의 시』를 발표한 살만 루슈디에 대해 '신성 모독'죄로 사형 선고를 내리는 ‘파트와’를 선포한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의 놀라움과 비난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우리가 ‘시대착오적인 극악무도함’이라고 비판했던 것은 사실 이제 막 터져버린 둑 같은 것이었다. 혜안을 지닌 자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던 그 사건의 함의를 알아챘다. 그들은 분노(그보다는 당황)했다가 금방 망각해버린 군중들과는 달리, 탁월한 통찰력으로 이 문제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예상했다.(2) 1993년, 밀란 쿤데라는 “아무도 그 끝을 볼 수 없는 싸움”이라고 쓰기도 했다.(3)
움베르토 에코의 배신
루슈디에 대한 사형 선고,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뮈엘 파티 피살. 쿤데라는 세상을 너무 순수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소설 한 편, 그림 몇 개, 중학교 수업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를 공격으로 인식한 이들은 전투에 나섰고 적을 패배시켰다. 모든 사람이 그 풍자만화들을 안다. 그리고 그들은 저속함, 불필요한 도발, 불 위에 기름 붓기, 무례함, 무책임한 미숙함,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이슬람 혐오라는 이유를 들며 그 풍자만화를 비난한다.(4) ‘마호메트와 정서적인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무슬림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는 궤변까지 등장했다.(5)
하지만 늘 그렇듯,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해지는 타격이 가장 충격이 큰 법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겸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마호메트의 풍자만화를 그린 것은 ‘무례’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인기소설『Il nomme della rosa 장미의 이름』의 작가에게서 나온 입장 표명이었기에 더욱 당혹스러웠다. 이 이탈리아 작가의 위대한 소설 내용 전체가 종교적 광신, 특히 교리에 어긋나는 것에 대한 금지를 비판하고 있었기에 놀라움은 더 컸다. 에코의 이 소설은 14세기 한 수도원에서, ‘웃음을 장려하는 악마의 책’으로 평가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도사들이 서로를 죽인다는 내용이었다.
(에코의 허락 하에) 소설을 영화화한 장자크 아노 감독은, 숀 코너리가 연기한 베스커빌의 윌리엄이 풍자화 앞에서 넋을 잃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그 풍자화는 당나귀가 주교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모습, 교황을 여우로, 그리고 사제를 원숭이로 표현한 채색화들이었다. 에코는 자신의 이런 명백한 모순을 이렇게 설명했다. “타인의 종교 감수성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도덕적 원칙이다.(...) 내가 <샤를리 에브도>였다면, 무슬림이나 기독교의 감수성을 (심지어 불교의 감수성까지도) 우롱하지 않았을 것이다.”(6)
종교를 비판할 자격을 크게 제한해버리는 이런 허술한 논리에 대해 지적할 사항이 많지만, 가톨릭만이 가톨릭을 조롱할 권리가 있고, 개신교만이 개신교를 조롱할 수 있다는 식의 비판 원칙을 일단 수용해보자. 하지만 루슈디는 인도 무슬림 가정 출신인데도, 이 암묵적인 원칙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희한하게도 움베르토 에코는 ‘신성 모독’의 경우, 내부적 요인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 했다).
내부 비판만 가능하다는 이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으니, 다른 비난들은 어떤지 살펴보자. 루슈디는 ‘무례하고’, ‘저속하고’, ‘불손하고’, ‘무책임’했을까’? 그것을 어떻게 알 것인가? 풍자화를 본 사람은 많지만, 700페이지에 달하는 『악마의 시』를 읽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다소 과장하는) 쿤데라의 말에 의하면, 아무도 없다. 쿤데라는 『Les Testaments trahis 배신당한 유언들』에서 『악마의 시』를, ‘옹호자들도 읽으려 노력하지 않는 신념의 작품’이라 칭하며, ‘신성 모독’ 논란이 어떻게 소설의 생명을 끝냈는지 설명한다. 그런데 대체 그 소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왜 『악마의 시』인가?
소설은 볼리우드(미국 헐리우드에 빗댄 인도 영화계)의 유명한 배우 지브릴의 이야기다. 지브릴은 런던에 사는 친구 살라딘과 비행기를 탄다. 함께 노래하고, 대화하며 다투기도 하는 사이인 두 사람은 비행기가 공중에서 폭파되는 바람에 추락한다. 그러나 기적처럼 다친 곳도 없이 영국의 한 해변에 착지한다. 그 후 살라딘은 영국 내 인도인 사회에 숨어 지내고, 고난을 겪으며 서서히 악마로 변해간다. 한편, 지브릴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지브릴은 히라산에 자리한 대천사 가브리엘(지브릴)이다.(마호메트는 히라산 동굴에서 명상 생활을 하다가 대천사 지브릴로부터 알라의 가르침을 계시 받은 후 이슬람교를 확립했다고 함-역주)
하지만 마호메트가 그에게 다가와 신의 말씀을 거두려 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지역 권력자들이 요구한 것처럼 알라의 새로운 종교에, 보조신의 지위가 부여된 신전의 세 여신을 받아들여야 할지 마호메트가 묻자 가브리엘인 지브릴은 당황하고, 확신하지 못한 채 일단 긍정의 대답을 한다. 그러나 후에 마호메트를 다시 만났을 때 지브릴은 고민 끝에, 잠시 천사의 모습을 했던 악마가 자신에게 불경한 생각을 불어넣어 그렇게 대답했던 것이라고 변명한다. 이런 망설임(또는 속임수)의 표현은 루슈디가 이야기한 것처럼, 1860년 이후 ‘악마의 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한 무신론자 비방가가 마호메트 추종자들의 복수를 피해 사창가로 숨어들고, 그곳에서 매춘부들에게 마호메트의 부인 12명의 이름을 붙여준다. 현실과 꿈을 분간하기 어려운 소설 속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 실질적으로는 바로 이 두 부분이 문제가 됐고, 파트와를 정당화했다. 알라신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마호메트에 대해서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더는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헤아릴 수 없는 풍요로움을 지닌 이 소설이 『거장과 마르가리타(Мастер и Маргарита)』(미하일 불가코프의 장편소설. 선과 악, 예술의 불멸성, 지식인의 양심 등을 주제로 한다-역주)의 훌륭한 개작이자 미하일 불가코프와의 긴 대화나 마찬가지임을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이 소설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정치가. 마술적 사실주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함-역주)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계보를 잇는다는 언급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대 런던 생활상이 나오는 장면들에서 새뮤얼 리처드슨(영국의 소설가, 영국 근대소설의 개척자로 평가 받으며, 대표작은 『파멜라(Pamela; or, Virtue Rewarded)』 등이 있다.-역주)과 마틴 에이미스(‘영국 문단의 악동’으로 평가받는 영국의 소설가-역주)의 영향을 지적하거나, 마호메트의 행동을 표현한 부분에서 드러나는, 소설 『살랑보』에서 보여진, 플로베르식 아름다움을 지적한 사람은 쿤데라 외에는 없었다. “알라신 외에 다른 신은 없다”라고, 책을 단 한 권만 읽은 사람들은 말했다.
그리고 소설을 덮친 공포와 그 공포를 가까이서 겪게 된 이들(7) 덕택에, 문학 비평은 아예 가로막혔다. 사람들이 할 수 있었던 질문은 출판과 관련된 것에 그쳤다. “그 책을 출판해야 했나, 회수해야 했나?”, “그리고, 지옥의 문이 다시 열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포켓북을 출간해야 했나?”(8)
좋은 소설은 ‘결정 불가능’하다
20세기 말 가장 아름다운 소설들 중 하나인 이 작품이 비교 문학 교수 자격시험에 포함될 일은 없을 것이다. 루슈디가 노벨상을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9) 다른 상황에서라면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그 이야기는, 현재의 위협이 너무 강력한 나머지 참으로 무례한 내용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진정 그 사소한 과실 때문에?
좋은 소설은 경전과는 상반된 특징을 지닌다. 즉, 소설의 주요한 특징은 ‘결정 불가능성’이다. 소설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불신의 유예는 독자가 언제라도 깨뜨릴 수 있는 단순한 계약이다. 소설은 자신이 허구임을 알고, 경전은 자신이 진리이길 원한다. 세속적이고, 반교조주의적인 소설은 본질적으로 '신성 모독'이다. “『악마의 시』에서, 비난받는 것은 소설의 기법 그 자체다.”(10) 사소한 문제로 여길 수도 있다. 자신의 말이 의심을 사기 시작할 때, 전략적 후퇴를 택했던 베스커빌의 윌리엄처럼 한 발짝 물러나면 그만일 수도 있다. “용서를 구합니다, 존경하는 호르헤 수도사님. 제 입이 제 생각을 배반했습니다. 수도사님께 무례를 범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도사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11)
하지만 윌리엄은 그러한 굴욕적인 배교(12)가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신성 모독’의 권리는 표현의 자유나 또는 자유 그 자체에 배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성 모독’은 오히려 자유의 전제 조건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문명의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동양과 서양의 해묵은 경쟁을 쫓아가지 않고, 낙인찍기와 인종차별의 함정들을 피하면서 그 죽음의 속박을 깨뜨리려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그 문제가 지닌 영토적 특성을 제거해야 한다. 무슬림 국가들에 완전히 동일한 종교심이 존재할까? 아민 말루프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그는 최근의 역사에서 쉽게 몇 가지 사례를 찾아냈다.(13) 공산당과 함께 집권한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는 미국에 의해 실각했고, 아랍 세계의 영웅인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는 무슬림 형제단에 최악의 적이었다. 야세르 아라파트는 하마스가 부상하기 전까지 홀로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을 벌였고, 터키에는 무스타파 케말 대통령이 있었다.
터키에서는 프랑스보다 더 엄격한 이슬람 베일 착용 금지법 때문에, 2008년까지 대학교에서 베일 착용이 금지됐다. 또한 말루프는, 인도네시아가 인구수에서 세계 1위 무슬림 국가가 되기 이전에, 공산당원 숫자로 (대학살 전까지) 소련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국가였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풍자와 소설의 역할
반대로 기독교에서도, 사뮈엘 파티 피살사건 이후 ‘신성 모독’죄의 재확립에 적극적인 인물들이 최근 모습을 보였다. 바로 툴루즈와 알비의 대주교들이었다. 루슈디에게 끈질기게 경멸을 표하는 이들 중 영국 켄터베리의 대주교와 뉴욕의 대주교, 잉글랜드의 대제사장도 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믿을 수 없는 발언도 있다.(14) 예상했던 대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예상대로 『악마의 시』를 강력히 규탄했었다.
두 번째로, 역사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역사학자들의 작업이 ‘신성 모독’이 된 것인가? 종교에도, 경전에도 역사가 있다. 경전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류 탄생 이후, 1만 개 이상의 종교가 존재해왔다. 오늘날의 신들은, 미래에는 도서관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신성한 존재에 대한 묘사를 금지하는 것은, 풍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것이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화에 반대한다고 내세우는 첫째 이유이므로, 그 어떤 도덕적 계율에도 부응하지 않는다. 여러 세기를 거치며 다양한 방식으로 지켜져 온, 관습에 불과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성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풍자와 소설의 역할이다. 종교는 대부분의 경우 지극히 반동적인 이념들을(15) 정당화하는 도구이며, 이런 반동적 이념들은 자의적인 명령에 근거하는 종교의 권한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풍자를 통해 알 수 있다. 소설은 세상에 대한 세속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종교가 만들어내는 독단적 해석을 필연적으로 방해한다. 소설은 그 무엇도 강제하지 않고 모든 명령을 반박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복합적이고 불투명하며,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누가 틀렸는가? 누가 옳은가? 소설은 결론 내리기를 경계한다. 따라서 프랑수아 라블레(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의 대표적 작가-역주)의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이도, 루슈디의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이도 없다.
물론 풍자화는 도발이었다(그리고 그건 그들의 권리였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경우가 아니었다. 파트와가 선포된 이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사뮈엘 파티는 풍자를 살리기 위해 죽은 셈이다. 그리고 <샤를리 에브도>의 샤르브, 카뷔, 볼린스키와 동료들은 루슈디를 살리기 위해 죽었다. 루슈디는 아직 살아있다. 하지만 31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악마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이가라시 히토시가 살해당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어 번역자와 노르웨이 편집자는 목숨은 건졌지만 각각 칼과 총으로 공격을 당했다. 루슈디에게 걸린 현상금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상금이 인상된 때는 2016년이었다.
글‧로랑 비네 Laurent Binet
작가. 최근 출간 저서로는 소설 『Civilizations 문명』(Grasset, 2019)이 있다.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번역위원
(1),(13) Amin Maalouf, 『Le Naufrage des civilisations 문명의 침몰』, Grasset, Paris, 2019.
(2) 1989년 2월 20일, 유럽경제공동체 12개국은 이란 주재 대사들을 자국으로 소환했다. 그리고 3월 20일, 대사들의 이란 귀환을 허가했다.
(3),(10) Milan Kundera, 『Les Testaments trahis 배신당한 유언들』, Gallimard, Paris, 1993.
(4) 2005~2015년, <샤를리 에브도> 표지 중 이슬람 관련 표지는 전체 표지들 중 1.5%에 불과했다(이슬람 ‘1면’은 7건, 가톨릭 1면은 21건이었다).
(5) Sonya Faure, ‘Saba Mahmoud : “Il faut comprendre l’injure morale” 사바 마흐무드, “마음의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 <리베라시옹>, Paris, 2016년 1월 18일.
(6) Umberto Eco, ‘Da ‘Maus’ a ‘Charlie’’, <L’Espresso>, 로마, 2015년 6월 12일.
(7) 1989년 2월 14일 호메이니가 선언한 사형선고는 책의 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출간하거나 책의 내용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8) 영어판 포켓북이 나오기까지 8년이 걸렸다.
(9) 노벨 위원회가 2016년 3월 24일, 파트와를 공식적으로 규탄하기까지 27년이 걸렸다.
(11) Umberto Eco, 『Le Nom de la rose 장미의 이름』, Grasset, 1982.
(12)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선고가 거둬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루슈디가 한때 신앙을 되찾았다고 주장하며 배교의 유혹에 빠졌으나, “파트와는 철회될 수 없다”는 반박으로 인해 확실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14) “만약 당신이 내 어머니를 모욕한다면, 한 대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15) 그러나, 이런 초반동적인 이념들은 교차성 투쟁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므로 교차성 투쟁과 양립할 수 없다. 페미니즘 운동이나 LGBT 운동은 성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로 물든 이념들 속에서 어떻게 길을 열 수 있었을까? 이것은 아직 아무도 해답을 찾아내지 못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