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선동한 '포르노 부동산' 세계의 종말
불과 몇 달 새에 번쩍거리던 부동산 마차는 파산한 은행들, 폐쇄된 부동산 사무실들, 용도 변경된 작업장들과 도산한 수천세대의 정원에 방치된 '호박' 신세로 다시 전락했다. 몇 년간 현기증나게 상승하던 가격이 붕괴됐다. 예컨대 2007년 여름부터 2008년 사이, 미국 부동산 가격은 16.6%나 빠졌다. 프랑스 정부는 2008년 3분기에 판매가격이 44%나 폭락하자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다. 이 같은 폭락은 스페인 등 다른 곳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전까진 모두가 상승을 부채질해왔다. 전문가들은 거품을 조장했고, 미디어들은 스페셜 리포트들을 수없이 쏟아냈고, 정치 지도자들은 그러한 선택들을 하도록 밀어붙였고, 금융 기관들은 황당한 조건으로 대출을 해줬다. 영국에서는 TV도 앞다투어 부동산 방송에 뛰어들어 대중을 상대로 "주택은 가장 필요한 재산이라기보다는 투기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
21세기 벽두부터, 알 수 없는 (부동산)종족이 영국의 TV 화면들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그들이나, 거실을 점령한 시청자들이나 모두 초기 탈모 증세와 약간의 과체중 증세를 보이고 있어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닮았다.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을 구분해주는 유일한 것은 '벽돌을 황금으로 바꿔주는 힘'에 있었다.
그들의 조언 덕분에 모두가 부동산 가격 폭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TV-리얼리티'방송 제작팀의 밀착 감시 속에 직접 사람들이 실물 거래(예를 들어 집을 사고 팔거나 혹은 리모델링하는)를 중계했다. 이미 케케묵은 형식이지만, 돌멩이에다 투자한다는 이러한 주제가 횡행했다.
언론, '부동산 신화' 부추기는데 혈안
부동산 초보자들은 투자하기 전에 방송 '매입할 것인가 혹은 매입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시청하곤 했다. 그들은 자리를 잡고, 자신들의 새로운 둥지에 현대적이고 세련된 포인트를 주기 위해서는 방송 '수석 디자이너'가 하는 조언을 경청하기만 하면 됐다. 아이디어가 궁할 때는? 텔레비전은 그들에게 '이웃집' 프로그램을 통해 집을 구경시켜줬다. 그리고 팔아서 한 몫 챙길 시기가 됐다 싶으면, 또다른 프로그램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어떻게 더 큰 집을 매입할 수 있는 지를 설명해 줬다. 몇 년 뒤, 한 방송은 아예 시청자들의 '해외 투자'를 돕겠다고 나섰다. 이제 누구나 복잡하고 고위험이 따르는 작전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정작 이 방송들이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유일한 주제는 매월 상환해야 할 돈을 상환하지 못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이 프로그램들은 영국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부동산붐을 서핑하고 다녔고, 그 기간 동안 부동산 시세는 매년 약 20%의 상승을 보였다. 일간지들은 정기적으로 시장 변화에 관한 앙케트와 함께 이를 톱기사로 다뤘다. 그러나 거품이 극에 다르고, 시즌마다 20여 개가 넘는 프로그램들이 부동산을 주제로 편성되면서, 그 첫 희생자는 텔레비전이었다.
영국인들은 주중 매일 저녁마다 부동산에 취해 귀가했다. 그들의 집값이 바로 그날 자신들이 노동해서 번 돈보다 더 상승했는데, 왜 취기에서 깨고 싶어 하겠는가? 그들은 긴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부유층 소유자들을 겨냥한 조언들에 계속해서 취했다. 게다가 케이블 채널들은 밤새 재방송을 해댔다.
이들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은 TV스타들도 아니었고, 취재 기자들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부동산중개인, 프로모터 혹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이었다. 이 '전문가들'도 거품 팽창의 혜택을 보는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고유 업무를 지속했고, 일부는 최근에 얻은 명성을 내세워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기도 했다. 그들은 방송 내내 "매입해라. 리모델링 해라. 되팔아라. 이익을 챙겨라...그리고 다시 시작하라"고 조언 이상의 '교리'를 설파해댔다.
'집주인 되기'와 '어떻게 부동산 대출을 1년 만에 갚을 것인가'의 진행자, 사라 비니는 그런 현상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매주 400만 명 TV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집주인 되기'의 비법은 아주 단순했다. 비니는 최근 집을 매입해서 리모델링한 다음 되팔아 한 몫 챙기려는 커플(항상 커플들을 대동했다.)을 자기 양쪽에 즐겨 세우곤 했다. 이들 '행운의 커플'의 투자금액과 기대 수익금액이 화면에 굵은 글씨체로 화려하게 새겨져 둥둥 떠 다니기도 했다.
'오너십 사회'에 대한 추종 확산
그렇다고 TV채널들이 경이로운 '돌멩이 세계'에 영국인들이 점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한 순간에 착안한 것은 아니다. 비니와 그녀의 공모자들이 TV에 얼굴을 내밀기 이전, 텔레비전에서 관심끄는 부동산 관련 내용은 고작 인테리어와 집수리 정도였다. 그 분야의 명실상부한 대가는 베리 벅크넬이었다. 그의 전문은 아름다운 빅토리아 양식 문위에다 흉한 떡갈나무 송판을 대는 것이었다. 마가렛 대처가 1980년대에 공공주택을 판매하기 시작했을 때, 주택 소유자는 인구의 60% 미만이었으나, 2000년에 그 비율이 70%를 넘어섰다.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주택은 오랫동안 가장 필요한 재산으로 인식되어, 국가가 전반적으로 배분하고 관리를 책임졌다. 이후 주택은 평범한 상품, 개개인이 수입의 일부를 나날이 늘려가며 쏟아 부어야만 하는 외적인 부의 상징이 되었다.
노동당이 그 흐름을 놓칠 리 없었다. 조지 부시가 주창한 '오너십 사회'의 충실한 추종자였던 고든 브라운은 수상이 되기 바로 직전, 영국이 "각자 자기 집을 소유할 수 있고, 투자를 현실화 시킬 수 있으며, 수익을 만끽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권자들한테는 그 세 가지 약속이 혼돈스러웠다. 주택이 이제 단순히 주거지라는 개념보다는 풍족한 배당금을 안기는 투자의 원동력처럼 간주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퇴직에 대한 걱정이 컸던 영국인들은, 2000년에 터진 테크놀로지 거품과 엔론(Enron)사와 월드컴(Worldcom)사의 스캔들 이후, 그들의 모든 희망을 '벽돌과 시멘트'에 투자했다. 그런 가운데 부동산은 그 첫 번째 임무인 거주 기능을 점차 상실해 버렸다.
비니의 인기가 그 진화를 잘 반영해줬다. 그녀는 개인적인 자신의 부동산 성공사례를 모델로 내세우며, "사실, 우리 모두는 부동산 업자가 되고 싶어 한다"고 즐겨 말하곤 했다. 매주 그녀는 온갖 감언이설로 섭외에 성공한 출연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모든 지식을 설파했다. 그러나 빈번이 이들 '미래의 백만장자'들은 시대착오적 감상주의에 함몰되어 되팔아서 수익을 극대화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집을 그들의 취향에 맞게 재정비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패러디하며 주택이 기계, 지폐를 찍어내는 기계로 전락됐다. 결국 비니의 '학생'들, 즉 출연자들도 결국엔 그녀의 논지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들도 부자가 되고 싶어 그녀와 함께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우리가 그 집(출연자)들을 방문했을 때, 선반에는 어떻게 1년 만에 백만장자가 되는 지를 설명해주는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음"을 상기시켰다.
투기 부추긴 '포르노 부동산' 프로그램
날로 주택의 모습도 바뀌었다. 런던의 한 동네에서 25년 넘게 부동산 업자로 일하고 있는 다비드 폴록씨는 방송에 출연, 거품이 커지면 커질수록, 거리들이 하나같이 똑같아진다는 점을 자주 보여줬다. "집들은 장미 빛 목련, 회색 유향 수지(乳香樹脂) 혹은 계란껍질색으로 다시 덧칠되었다. 선명한 파랑색이나 혹은 전통적인 붉은 벽돌색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모든 것들이 칙칙하고 진부하고 특징이 없어져 버렸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집을 꾸미기를 포기했다. 그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집을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되팔기 위해서 정비했다." 텔레비전에서 본 대로 따라 한다는 것이다.
그 프로그램이야말로 '포르노 부동산'이라 불릴 만 했다. 이는 전 BBC 예술 전문기자였던 로지 밀라르가 만들어낸 용어다. 그런데 그녀는 정작 '돌멩이 시장'의 대단한 거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포르노 부동산이 중독성을 키운다"며 "사람들은 우선 런던에 위치한 자신의 집값이 얼마나 하는지 계산부터 한다."고 말했다.
온 천지에 허망한 한탕 투기, 전문가 및 TV 선동도 큰 몫
영·미 등 집값 반토막, '벽돌·시멘트'에 쏟아부은 돈 거품으로 실종
"그 다음엔 신문에 실린 작은 광고들을 훑어보기 시작합니다. 그 때마다 묘한 죄의식이 그들을 엄습하는 것은 어쩔 수 없죠. 그리고 세 개의 별채가 딸린 옛 농장, 혹은 방 12개가 딸린 영주의 저택, 과수원과 연못이 딸린 신고전주의 저택은 어떨까라고 자문하게 됩니다."
만약 런던 사람 모두 그렇게 했다면 수도와 지방간의 가격차가 금세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밀라르나 그녀의 독자들은 경제의 기본 원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매주 신문들은 수많은 도표를 동원해 남동부 지역의 가격이 저항선을 뚫고 상승 궤도에 진입했다고 확실히 보여주곤 했죠. 그 여파로 영주 저택으로 이사 드는 것이 그렇게 좋은 생각이 아닌 것처럼 보였어요. 만약 여러분이 집을 처분했는데 집값이 계속 상승한다면? 여러분은 집을 매입하기 위해 집을 세놓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시민들, 세놓고, 새집 구매·임대
그러다 보니 '임대 붐' 즉 '부동산 히스테리'가 최고조에 달했다. 한번 매입과 되팔기 사이클에 중독된 모든 사람들에겐, 매입을 해서 최고가로 세를 놓고, 다른 매입을 위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철칙처럼 보였다. 투자금액도 몇 배로 늘었다. 거주 목적으로 방 두 칸 짜리를 찾아 나선 젊은이들은, '황금알을 낳는 닭'을 찾아 나선 나이 많은 구매자들과 경쟁을 해야 했다. 새 집들은 그 아마추어 임대인들의 타깃이었다. 그들이 2006년 런던에서 신축된 집의 60% 이상을 싹쓸이 했다.
예전에는 소수의 전문가와 부유층만이 할 수 있었던 그 작전은 필연적으로 고위험이 뒤따랐다. 실제로 2008년, 부동산 대출 전문 은행 중 하나인 '브래드포드 앤 빙글리'(Bradford & Bingley)가 파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는 그런 부동산 투자가 전혀 문제될게 없다고 여기도록 했다. TV 진행자들은 로지 밀라르가 꿈꾸었던 것처럼, 런던에 집을 소유한 집주인들에게 집을 세놓고, 그 자금으로 시골에 별장을 매입하라고 부추겼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전문가들'은 TV시청자들에게 미래시장 도르도뉴, 토스카나, 크라코우 등지에 투자하라고까지 조언했다.
'포르노 부동산'은 이런 거품에 어떤 책임이 있을까? 부동산 전문 구호단체인 셀터(Shelter)의 회장이 되기 전, 애덤 삼손은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그는 이것과 부동산, 두 영역이 서로 유사한 점이 크다고 봤다. "포르노그래피는 용납할 수 없다고 간주되던 감정과 행동을 정상적인 실천으로 바꿔 놓았다. '포르노 부동산'은 부동산 투기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합법화했다."
그러나 이제 잔치는 끝났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가격이 15% 폭락했다. 올해도 그 정도의 폭락이 예상된다. 아예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텔레비전 PD들은 부동산 방송 편성을 주저한다. 이들이 도약하는 유일한 길은 신속한 부의 창출을 약속해주는 것인데, PD들이 만족할 만한 사례들을 찾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더 이상 대출을 해주지 않는데다, 빅토리아 양식의 호화주택을 매입해, 그 집을 누구나 좋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꾸며 인테리어 잡지들을 혹하게 할 만큼 여유돈을 보유한 사람들도 드물기 때문이다. 더욱이 누구도 손해볼 위험을 감수하고 매도하길 원치 않기 때문에 시장이 마비되고 있다.
한 PD는 최근 일간 <가디언>지를 통해 "부동산은 텔레비전이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주제이나, 다른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 부동산 투자에 관한 조언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번역 |조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