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목소리
[청년의 죽음, 역사의 눈물] ㉗ 강남역 살인사건
2016년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상가 건물 1층과 2층 사이의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22세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가해자 김성민(34)은 인근 식당 종업원으로 사건 발생 9시간 만에 검거되었으며 검거 당시 오른쪽 주머니에 32.5cm의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는 16일 저녁 식당 주방에서 흉기를 갖고 나와 배회하다가 밤 11시 40분쯤 범행이 일어난 상가 건물에 들어갔다. 피해 여성은 건물 1층 음식점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던 중 화장실에 들렀다가 변을 당했다.
일상의 삶 한 가운데서 일어난 황망한 죽음
공개된 CCTV에 따르면 김성민은 밤 11시 40분쯤 화장실 앞에 나타나 이후 그곳에서 50여 분을 1층 상가 입구 쪽을 바라보며 서성였다. 그러는 동안 6명의 여성과 9명의 남성이 이 화장실을 이용했다. 가해자가 화장실 안에 들어간 시각은 밤 12시 33분. 김성민이 화장실에 들어가고 6명의 남성이 무사히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왔다. 그러나 일곱 번째 이용자이자 첫 번째 여성 이용자인 피해자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10여 차례 칼에 찔렸다.
가해자는 남자 용변 칸의 양변기 위에 앉아 있다가 여자 용변 칸에서 피해자가 물을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있던 용변 칸에서 나와 피해자를 기다렸다. 피해자가 문을 열고 나오려 하자 피해자를 용변 칸으로 밀어 넣고 왼쪽 가슴, 어깨, 팔 부위 등을 준비한 칼로 찔렀다. 피해자는 심장과 폐동맥 등에 치명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자리를 비운 피해자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대학 선배가 피해자를 찾으러 나섰다. 그가 피해자를 발견한 시각은 오전 1시 25분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건을 저지른 김성민은 “피해자와는 모르는 사이이며,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해서 범인을 저질렀다”라고 진술했다. 또한 사건 담당 형사는 가해자가 범죄 대상을 정확히 여성이라고 특정했다고 밝혔다.
가해자는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로 밝혀졌다. 그는 2003년부터 노이로제 증세로 병원치료를 받았고 2009년 8월경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2016년 1월 이후 약을 끊었고 범행을 저지르기 두 달 전인 3월에 가출했다. 서초경찰서는 권일용 프로파일러 등 5명의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심리 분석을 진행했다. 프로파일러 권일용은 가해자가 왜곡된 망상에 대한 뚜렷한 자기 확신이 있으며 범행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다. 프로파일을 담당한 전문가들은 가해자가 범행을 실행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고, 범행이 쉽도록 범행 대상을 약자로 선택했다고 보았다. 또한 가해자는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 위해 여성들이 자신을 비하했다고 발언한 것으로 분석했다.
김성민은 현장 검증에서 재판까지 모든 과정에서 태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여상스럽게 자신의 범행을 재연했고 기자들이 심경을 묻자 “그냥 뭐 담담합니다”라고 말했다. 범행을 후회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했고 법정에서 “제가 만약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강남에서 터를 잡고 잘 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어쨌던 뭐 자연스럽게 이어진 거니까 지금은 뭐 만족하고 있다”고 했고 재판 직후에는 “세상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검사는 김성민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가해자의 정신병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아 범인에게 30년 형을 선고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사건 바로 다음 날부터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쪽지들이 붙기 시작했다. 며칠 사이 강남역 10번 출구는 메모지로 뒤덮였다. 5월 18일부터 7월 15일까지 약 4만 장이 넘는 포스트잇이 붙었다. 특정 단체가 주도한 집단적 움직임이 아니었다. 한 네티즌으로부터 시작한 움직임이었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추모의 공간을 찾았다. 다음은 당시 10번 출구에 붙은 쪽지 내용이다.
“안녕. 나랑 동갑인 친구야. 너는 고작 그 자리에 너가 있었다는 이유로 끔찍한 일을 당하고. 나는 살아남았다. 미안해 (…) 하늘에서 꼭 지켜봐줘.”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은 과거와 달리 행동주의라는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였다.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꾸준히 있었지만 오프라인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같은 집단적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추모의 시작은 SNS였다. 각종 SNS에 추모 페이지가 만들어졌다. 피해자에 대한 추모와 본인이 겪은 차별을 나누는 것에서 시작하여, 오프라인에서의 추모와 연대로 이어졌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시작한 추모는 부산 대구 울산 등 전국 각지로 확산하였다. 추모의 공간이라는 개방된 공간에서 같은 두려움을 공유하는 여성들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여성들이 유독 이 사건에 크게 분노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소식을 접한 후 하루 종일 깊은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져 있었어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회사에 다니는 등 내가 생존을 위해 하는 일들이 다 부질없이 느껴졌었거든요. 이렇게 열심히 살다가도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길을 가다가 살해당할 수 있는 세상, 살해가 아니더라도 여자이기에 언제든 누군가에게 맞거나 강간당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 때문에”
사건을 대하는 가장 즉각적인 반응에서 압도적이었던 부분은 두려움과 무력감, 공포와 슬픔의 표출이었다. “주말이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오던 곳”, “몇 시가 되어도 사람이 바글거려서 안전할 줄 알았던” 바로 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었다는 사실은 잠재된 위협의 정체를 자각게 했다. 그래서 많은 추모자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웠다”고, “내가 죽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서 너무 억울하고 아프고 서러워 눈물이 계속났다”고 고백한다.
수많은 쪽지 중에 가장 많이 발견된 문구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죽음이 너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여성들에게 추모의 공간은 미래에 닥칠 죽음이 현실화한 공간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수많은 여성의 몸에 내재한 공포와 분노, 두려움과 슬픔, 울분과 무력함 등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추모공간에 참여한 이들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평범한 20대 여성’이라는 자신의 생애서사가 모순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피해자의 죽음을 낯선 타자의 개별적 죽음이 아니라 성차별적 구조 속에 위치한 ‘여성됨’의 집합적 경험 및 삶의 조건과 연결했다. 또한 지속되는 여성혐오와 성폭력 문화에 대한 인식은 추모의 장에 접속한 여성들을 공통의 감각으로 연결하는 기제가 되었으며 여성들이 사건에 관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에서 나아가 정치적 삶을 재구성하는 비판적 동력으로 작동했다. 결국 추모행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특정 사건을 통한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연결됨을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성차별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로 나아가고, 이를 통해 페미니스트로 정치화한 인식과 대항적 주체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성균관대학교 교수 천정환은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공간의 설치와 여성들의 거리 행진을 ‘포스트잇 민주주의’로 명명하며, 여성들의 새로운 공론장이라고 하였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2021년 3월 3일 런던에서는 ‘영국판 강남역 살인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평범한 33세 여성 세라 에버라드는 저녁 9시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친구 집을 나섰다. 이후 그는 일주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영국 현직 경찰 남성 웨인 쿠전스(48)였다. 런던 경찰은 사건 브리핑 과정에서 “여성들은 밤늦게 혼자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여성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영국 여성들은 여성을 보호하라는 요구를 하며 런던 클래팜 커먼 공원에서 추모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서 ”I am Sarha(내가 세라다).’라는 문구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추모객들은 “How many women? How many more?(얼마나 많은 여성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얼마나 더?)”라는 구호를 외쳤다. 온라인에서는 ‘#shewaswalkinghome’는 해시태그를 붙이며 추모의 뜻을 전했다.
“학교 주변에서 알바를 하는 중에 진상 손님이 온 적이 있어요. 제게 막말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적 폭력까지 가하려고 할 때 남자 직원이 나와서 겨우 저지했어요. 지금은 멕시코에 있는데 길을 가면서 운전자가 차를 멈추고 말을 걸거나 지나가면서 클락션을 울리는 것도 일상입니다. 여행지에서도 신체적 접촉을 시도하는 일도 항상 일어납니다.”
“밤에 혼자 집에 갈 때 뒤에 누가 따라오면 핸드폰을 꺼내서 누구랑 통화하는 척해. 혼자 갈 수 있는데 왜 데리러 나왔냐고 핸드폰에 대고 혼자 말해. 내 남동생한테 밤길에 여자가 혼자 가면 뒤에 따라가지 말고 얼른 지나쳐 주든지 아니면 멀리 떨어져서 걸어주든지 하면 그 사람이 속으로 많이 고마워할 거라고 가르쳐줬어.”
“남자친구랑 자주 싸우는데 서로 감정이 격해지다가도 나는 어느 순간 멈춰야 해. 얘가 더 화나면 이성을 잃고 나를 때리거나 죽이지 않을까 겁이 나는 순간이 생겨. 나는 얘를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나도 죽일 수 없지만 얘는 마음을 먹으면 나를 죽일 수 있잖아. 나도 화가 나는데. 그런 생각이 들면 모든 걸 멈추게 돼.”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20대 여성들이 한 말이다. 남성이라면 겪기 어려운 경험이자 느끼기 힘든 감정임은 분명하다. 2021년 3월 23일 서울 노원구에서는 어머니와 두 딸이 집에서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23세 남성 김태현이다. 그는 자신이 스토킹한 여성의 집에 들어가 스토킹한 여성의 동생을 먼저 살해했다. 뒤이어 나중에 귀가한 스토킹 대상과 자매의 어머니를 차례로 죽였고 체포되기 전까지 세 모녀의 시신이 있는 집에 머물며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기도 하였다. 그는 추적을 피하려고 범행 도구를 구매하지 않고 훔쳤다. 휴대폰으로는 ‘급소’, ‘사람 빨리 죽이는 법’을 검색했다. 가해자는 피해자 자매 중 언니를 수개월 스토킹했다. 그러다 교제를 거부하자 당사자와 그의 어머니, 동생까지 살해하였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과 같은 흉악 범죄는 3만5,066건. 이 가운데 남성 피해자는 3,527건으로 전체의 10% 정도에 그친 반면 피해자가 여성인 사건은 2만9,304건으로 전체의 80%를 웃돌았다. 6.4%는 피해자의 성별이 확인되지 않았다.
데이트 폭력은 연간 약 7,000건씩 발생한다. 경찰청의 2011~2015년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가해자가 연인이거나 헤어진 연인)으로 살해당한 사람은 645명이다. 여성들은 길에서 스쳐 가는 사람이 무섭다는 말을 흔히 하고 더러 남자친구도 무섭다는 이야기를 한다.
여성에게 일상이 된 공포와 여성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여성혐오 사회임을 방증한다. ‘여성이 안전할 수 없다’는 메시지는 여성의 행동반경을 제약한다. 그렇다고 범죄를 모면하기 위해 여성이라는 속성을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안전해지기 위해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상황에서 여성은 무력감을 느낀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는, 세라 에버라드 사건에 관한 런던 경찰의 브리핑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 ‘다음은 네 차례가 될 수도 있어’ 라는 공포의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산출한다. 여성을 무력화하고 여성의 종속적인 위치를 재확인함으로써 여성혐오에 기반한 가부장제는 스스로를 지켜내게 된다.
글
- 송하은: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3학년 재학. 넘치는 열정을 따라가 주지 못하는 체력 탓에 고생이지만 이마저도 즐기면서 살고있다.
- 안치용: 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 사회책임과 지속가능성 의제화와 영화·문학·신학 공부가 관심사다. 바람저널리스트들과 '청년의죽음역사의눈물'을 함께 진행한다.
- 노수빈: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 영화와 소설을 좋아하며 무엇이든 읽고 보고 쓰는 것에 열심이다. 요즘은 늦은 밤 홀로 걷는 것에 빠져있다.
<참고문헌>
1. 기사
강남역 한복판서 ‘여자들이 나를 무시했다’ 묻지마 살인, 스포츠경향, 2016-05-18.
“강남역 화장실 살인, 여성혐오 동기 아니다” … 경찰, ‘정신분열 범행’ 입장, 뉴시스, 2016-05-19.
강남역 살인’ 수사에 프로파일러 추가 투입 … 추모열기 이어져,매일경제, 2019-05-31.
2. 논문
허민숙(2015), “젠더폭력과 혐오범죄”, 『한국여성학 제33권』,77-105쪽.
정용림, 이나영 (2018),.“포스트 강남역” 『페미니즘 연구』, 181-228쪽.
허민숙 (2017), “젠더폭력과 혐오범죄”, 『한국여성학』, 제33권, 77-105쪽.
천정환 (2016),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메갈리아 논쟁까지 페미니즘 봉기와 한국 남성성의 위기”, 『역사비평』, 353-3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