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죽음 강요하는 사회
㉙청년 자살
“미안하다. 먼저 간다.”
“열정이 사라졌다. 정체된 느낌.”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이렇게 좋은 가정은 없을 거야. 엄마, 아버지, 동생 사랑한다.”
2012년 4월 17일 오전 5시 40분경 또 한 명의 청년이 우리 곁을 떠났다. 자신의 방 벽에 유서 형식의 포스트잇 두 장을 남기고 떠난 김철수(22ㆍ가명)는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원) 4학년생이었다. 2007년에 입학한 전산학과 학생으로, 대학 측에 따르면 외견상 자살할 만한 이유는 발견되지 않았다. 학교는 그가 “졸업을 앞두고 학업이나 진로에 의욕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카이스트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는 김철수가 처음이 아니다. 학생 네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난 지 막 1년이 지나던 참이었다. 2011년 1월 초 ‘로봇 영재’라 불리던 조 아무개(19)가 자살한 이후 학부 재학생 3명과 교수 1명이 잇달아 자살했다. ‘카이스트 사태’라 불린 그들의 연이은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잘하는 것’ 대신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자유
카이스트는 이공계 연구중심의 특수대학이다. 2010년 7월 카이스트 최초로 총장직 연임에 성공한 총장 서남표는 ‘카이스트 사태’ 당시 두 번째 임기를 3년가량 남기고 있었다. 서남표가 총장으로 부임한 이후 카이스트는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다. 2008년 세계대학평가 공학-IT분야 순위에서 34위였던 것과 비교해 이듬해에 13위나 오른 21위를 차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언론은 카이스트가 내보인 결과에 환호했고 공은 총장에게 돌아갔다. 일부 언론은 그가 추진한 차등 수업료(등록금), 100% 영어 강의 제도를 대학 개혁의 모범이라 치켜세웠다.
카이스트 학생은 ‘대한민국의 이공계 인재 양성’이라는 국가 목표하에 수업료와 기숙사 비용을 전액 지원받았다. 그러나 2006년 서남표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연간 220만 원이던 학부 등록금을 1,575만 원으로 대폭 인상했고, 그가 실시한 ‘대학 개혁’으로 인해 성적이 낮으면 수업료를 지원받지 못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징벌적 제도에 따라 학점이 3.0 이상 3.3 미만이면 기성회비 157만5,000원을 내고, 3.0 미만이면 0.01학점당 6만3,000원을 내야 했다. 학점이 2.0 이하가 되면 한 학기에 787만5,000원이나 하는 등록금을 전액 학생이 냈다.
언론은 카이스트 학생들의 죽음이 차등 수업료 제도로 인한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연쇄적인 자살은 과도한 경쟁 스트레스를 유발한 서남표식 ‘개혁’의 부작용이라는 지적이었다.
카이스트 재학생들의 생각은 언론과 제삼자의 의견과는 결이 달랐다. 수업료와 영어 강의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닌 ‘잘하는’ 공부를 할 것을 간접적으로 강요당했다는 점이다. 학점이 수업료와 직결되면서 호기심만으로 수강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학생들은 듣고 싶은 과목 대신 성적이 잘 나올 만한 과목을 수강했다. 100% 영어 강의도 상황 악화를 거들었다.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자 학생들은 기초지식이 있는 전공과목을 주로 듣고 생소한 인문학 교양과목은 피했다. 그렇게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할 자유’를 박탈당했다.
성적에 따른 차등 수업료 제도는 수업료를 면제받지 못한 학생에게 패배자,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장학금 잘림’이라는 뜻의 ‘장짤’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장짤’당하면 낙오자가 된 것 같아 친구들에게 말도 꺼내지 않는다”는 당시 재학생의 고백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학점에만 몰두해야 하는 시스템은 교우 관계를 삭막하게 만들 뿐 아니라 동아리 등 다양한 교내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당시 인터뷰 결과 학생들은 두 제도의 장점은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개선을 원했다. 학구열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쟁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면서도 너무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남표식 ‘개혁’에 대한 학생과 교수의 부정적인 평가는 서남표의 총장 연임이 확정되기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교수협의회 또한 총장의 개혁이 ‘단기적이고 외형적인 팽창에만 주목’하는 형식이라며 비판했다.
대학교는 사회에 나가기 전 준비단계에 있는 청년을 돕는 울타리이다. 서남표의 카이스트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보여주기식의 대학 개혁으로 청년들을 낭떠러지로 내몰았다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011년 비극적인 ‘카이스트 사태’ 이후 기존 학사 제도의 폐해가 드러나며 폐지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학교 측은 차등 수업료 제도와 100% 영어 강의 제도를 완화했다. 그러나 이듬해에도 김철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자유를 박탈당한 채 좋은 성적 내기만을 강요받은 학생들이 벼랑 끝에 내몰린 듯한 절망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자살공화국 코리아, 심각해진 청년 자살 문제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2003년부터 2019년까지 한 해를 제외한 16년간 자살률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 당 26.9명으로, 전년 대비 0.3명이 증가했다. OECD 평균은 11.3명이었다. 자살 사망자는 1만3,799명이었다. ‘자살 사망률 1위’ 고착과 함께 주목할 부분은 청년 자살 문제이다. 2019년 자살률이 70대와 ‘80세 이상’ 연령대에서 각각 5.6%, 3.4% 감소했지만 10대와 20대의 자살률은 각각 2.7%, 9.6% 증가했다. 10대~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청년층의 자해 시도 비율 또한 전 연령에서 가장 높았다. 다른 연령대의 자해 시도 비율이 3~16%인 데 비해 ‘19~29세’의 자해 시도 비율은 42.5%로 가장 높았고 ‘29~39세’가 21.5%로 뒤를 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20여 년 OECD 회원국의 25~34세 자살률이 감소세에 접어든 반면 한국의 25~34세 자살률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청년의 자살은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우리 사회는 자살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지만, 상대적으로 청년의 죽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했던 것은 아닐까.
청년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회는
자살은 한순간의 충동적인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자살 관념으로 시작해 자살 시도, 자살 사망으로 연결되는 연속적인 ‘자살성(suicidality)’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따라서 자살과 관련한 행동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자살을 유발한 원인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살 관념을 생성하는 요인부터 강화 및 지속원인, 약화요인이 존재하며 서로 다른 이유로 끝내 자살을 선택할 수도, 혹은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재구성할 수도 있다. 청년의 자살 관념 또한 개인에 따라 생성과 강화ㆍ약화 요인이 모두 제각각이다. 그러나 특정한 인구 집단으로서 청년층이 공유하는 어려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1) 안전장치의 부재와 불확실한 미래
청년은 사회적인 불안전성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함께 진로 선택의 부담을 경험한다. 연령 특성상 진로와 직업, 장래 희망의 불확실성은 거의 모든 청년이 경험하는 삶의 요소이다. 특히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게 진로를 설정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일은 청년기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런데 청년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지지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면 자살 충동을 느끼기 쉽다. 카이스트 사태가 대표적인 예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당연하다. 따라서 사회는 그들이 정체성을 탐색할 자유를 침해받지 않도록 역할을 다해야 한다. 청년이라면 누구든 사회가 그들을 위해 마련한 제도적 안전장치 하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보다 벼랑 끝에 내몰린 듯한 불안에 더 자주 노출된다. 사회에 대한 불신, 회복되지 않는 피로 속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두려움은 그들의 불안을 훨씬 가중했다.
2) 고용 불안정과 외적 요소로 인한 연이은 구직실패
청년층은 취업을 준비하는 인구 집단인 만큼 구직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심각하다. 취업 시장이 ‘동맥 경화’에 걸린 채 나아질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자살 관념은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외적 요소 때문에 좌절감이나 무기력을 느낄 때 주로 생성된다. 연구에 따르면 취업자, 미취업자 모두 각각의 자살충동집단에서 구직횟수와 최종면접 횟수가 비(非)자살충동집단과 비교해 월등히 많았다. 자살충동집단은 구직에 실패한 원인을 인맥 및 배경, 나이와 같이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외적 요소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렇게 외적인 요소에 부딪혀 구직실패를 경험할수록 자율감을 잃고 무기력을 경험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자살 관념이 강화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취업준비생인 청년이 구직에 실패할 가능성은 고용이 불안정한 사회일수록 더욱 높아진다. 한국 사회는 IMF 사태 이후 ‘노동시장 유연성’을 명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수를 대폭 늘렸고, 이로 인해 고용 안정성이 낮아졌다. 임금노동자 10명 중 3~4명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더는 ‘안정적인 직장’을 기대할 수 없다. 연구에 따르면 OECD 국가에서 고용 불안정 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청년(25~34세) 자살률이 높게 나타났다. 고용 불안정 정도는 실업률과 고용 보호 법제(EPL) 지수를 바탕으로 측정됐는데, EPL 지수의 값이 작을수록 고용 안정에 관한 정책적 조치와 법률이 덜 갖추어졌음을 의미한다.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 고용 불안정 변수(실업률, EPL)의 효과가 특히 두드러졌다. 즉 한국은 고용 불안정과 자살률의 상관관계가 다른 OECD 국가보다 훨씬 강했다.
3)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견고화
청년의 취업 불안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노동시장이 임금, 일자리 안정성 등 노동조건에서 질적 차이가 있는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노동시장은 대부분이 선호하는 대기업 정규직, 공무원 등을 포함한 1차 시장과 중소 및 영세기업, 비정규직 일자리로 구성된 2차 노동시장으로 나뉜다. 1ㆍ2차 노동시장 간 노동자 평균 임금이나 안정성의 격차가 뚜렷하다 보니 소득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한국 노동시장은 시장 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노력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자신이 속한 노동시장에 따라 보상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특성을 보인다. 청년들은 2차 노동시장보다 1차 시장에 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1차 시장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비율을 늘리는 데 일조하고 결국 청년 실업 문제 또한 심해진다.
무엇보다 현재 상황에서는 2차 노동시장에 속한 청년이 1차 노동시장으로 이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소득 불평등 문제는 심화하고 상대적 빈곤을 체감케 만들어 또 다른 자살 관념 강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회는 끊임없이 중소ㆍ영세 기업에 대한 청년 인식을 바꿔 실업 문제를 해결하지만, 열악한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4) ‘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
2021년 한국에 사는 우리는 더는 개천에서 난 용을 찾아볼 수 없다. 청년은 ‘수저계급론’에 따라 자신을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나누고 평가한다. 동그라미 개수가 많을수록 흙수저에 가깝다는 ‘흙수저 빙고 게임’까지 나왔다. 최근에는 금수저를 뛰어넘는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 ‘다이아몬드 수저’가 등장했다. 수저계급론은 “노력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자조가 깊게 깔린 20~30대의 주관적 계층의식으로서 가구의 소득이나 자산이 사회의 계층을 결정한다는 인식을 포함한다.
한국에서 개인이 평생 혹은 그의 자녀 세대에서 현재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다고 보는 사회적 이동 가능성에 관한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통계로 확인된다. 세대 내, 세대 간 이동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 비율이 2009년 각각 35.7%, 48.4%에서 2019년 23.1%, 29.4%로 하락했다. 특히 30세 미만 연령집단은 세대 내 사회이동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인식한 정도가 최근 10년간 모든 연령층 가운데 가장 낮았다. 이들은 한번 노동시장에 진입해 경제활동을 시작하면 계층이동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고 평가했다.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 질 좋은 취업으로 이어지지만, 가구 소득이 낮으면 자녀의 교육과 취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높은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없게 한다는 인식이다. 자신의 노력 여하와 무관한 외적 원인, 즉 가구의 사회・문화 자원과 경제적 자원에 따라 사회 계층이 이미 정해진 구조는 청년이 현재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동기를 찾기 힘들게 한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실현된 상황에서 희망과 의지를 갖고 미래를 향해 능동적으로 움직이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20대 여성에게 가혹한 사회, “겨우겨우 살아요”
고용불안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인한 취업 스트레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이 시대의 모든 청년에게 해당한다. 그러나 청년이 전반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어려움은 여성에게서 도드라진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이현정은 “20대 여성을 정신질환 여부나 자해, 자살 기도 여부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모집해 인터뷰해도 기본적으로 우울, 강박,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 경험 비율이 굉장히 높다. 이들은 지금 사회에 디스토피아적 관점을 갖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모습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 당 남성 38.0명, 여성 15.8명으로 남성이 2.4배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그동안 남성의 자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근 젊은 여성층의 자살이 크게 늘어 주목된다. 2019년 남성의 자살률이 전년 대비 1.4% 감소했지만, 여성의 자살률은 6.7% 증가했다. 같은 해 응급실에 내원한 전체 자살시도자의 16%가 20대 여성이었으며, 이듬해인 2020년에는 20.4%로 높아졌다.
왜 점점 더 많은 20대 여성이 자살을 결심하게 될까? 그 이유로 20대 여성이 경험하는 사회·경제적 좌절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막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기본적으로 삶의 기반이 취약한 상황이다. 개인적 자원의 부족은 청년 대부분이 경험하지만, 이 문제는 청년 여성에게서 특히 심각하게 나타난다.
20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성 교육이 확대되고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노동시장에서 성차별이 과거보다 개선됐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교육 확대와 높아진 대학 진학률이 노동시장의 지위를 포함한 사회적인 지위로 이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동시장에서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와 동등한 참여자로 인정받는 대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차별’을 받고 있다.
20대 여성 다수가 서비스, 단순 노무 성격의 업무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종사하고 있다. 성별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을 보면 남성은 전체의 29% 정도가 비정규직 종사자인 데 반해, 여성은 이미 10년 전에 40%를 훌쩍 넘어섰으며 남성보다 1.5배가량 비정규직 비율이 높았다. 비정규직에도 취직하지 못하는 등 비자발적인 원인으로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여성이 많다. 비정규직보다 더욱 열악한 일자리에 속하는 아르바이트는 더는 대학생이 용돈 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20대 대학졸업자나 고등학교 졸업자가 다른 활동과 병행하기보다 생활비 등 당장의 수입이 필요해서 불안정한 아르바이트에 종사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에 종사하는 여성 비율은 약 65%로, 비정규직의 여성 비율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며 증가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89% 정도가 고용계약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채 일하고 있으며, 생계유지를 위해 단순 노무, 판매 및 서비스업 직종에서 단시간 시간제로 노동한다.
정규직은 어떨까. 정규직 분야별 성별 분포 비교자료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는 단순노무직과 서비스판매직에서 일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정규직에서 여성 노동자 비율의 평균이 24%인 가운데 단순노무직과 서비스판매직의 비율은 각각 65.5%와 31.7%였다. 반면 남성 노동자 비율은 단순노무직을 제외한 사무관리직, 연구기술직, 서비스판매직, 생산기능직 모두 60%를 훌쩍 넘겼고, 특히 연구기술직에선 81.5%에 달했다. 여성 노동자 분포 비율을 보면 여성에게는 육체적이거나 보조 업무 성격 일을 많이 주며, 노동시장에서 양질의 일자리에서 밀려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전히 한국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노동력은 잉여인력으로 인식되곤 한다. 남녀임금 격차 실태조사 결과 여성 노동자의 31%가 ‘여성은 주로 지원부서에 배치되기 때문에’ 우등 고과를 받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라서’ 설명할 수 없는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지위의 한계가 사회적으로 구조화한 외적 요소 때문이어서 절망하고 나아가 노력과 의지에도 앞으로 미래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무망감(hopelessness)에 빠지게 된다. 여성 청년 자살률이 상승하는 이유 중 분명히 설명되는 하나이다.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자 강제된 죽음
한국 사회는 오랜 시간 자살에 관해 연구하며 예방책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정책은 단순히 자살 ‘행위’를 막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표면적인 대안에 그쳤다. 자살 관념을 약화하는 요인은 한 생명을 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생각보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직업 생활이나 자원봉사 등 사회참여, 가족의 존재, 전문가 상담 같은 것들이 누군가의 자살 충동을 막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2018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자살 관념에 ‘저지요인이 있는 것 같다’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34.2%였다. 일본 자살 예방 전문가인 다카하시 요시토모는 자신의 저서 『자살 예방』에서 “자살은 결코 자유의사로 선택한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결과로 ‘강제된 죽음’”이라 밝혔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 25년을 일했지만 내 앞에 나타났던 자살 위험성이 높았던 사람들 중에서 죽겠다는 의지가 100% 굳은 상태였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청년이 가족 또는 주변인과 나누는 깊은 대화로, 심리상담이나 다양한 활동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자살 ‘행위’를 막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변함없는 현실이 언제든 그들을 다시 벼랑 끝으로 몰아갈 수 있다.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결국 단단한 사회안전망 마련이 답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개인이 홀로 감당해야 한 문제를 국가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한 믿음이 사회 전반에 퍼지고 단단해질 때 사람들은 비로소 여유를 갖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 함께 살아갈 여유가 생긴다. 반대로 사회안전망이 빈약할수록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타인의 괴로움에 공감하고 이해하며 도울 여유가 없다. ‘혼자라는 생각’은 자살 관념을 강화하는 주된 요인이다. 반대로 ‘가족’, ‘사회적 활동’은 자살 충동을 크게 낮춘다. 우리는 혼자이기보다 함께일 때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되지만, 함께하기 위해서는 개인 삶에 대한 기본적인 보장이 필요하다. 그것은 국가의 몫이다.
글
박수빈ㆍ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한강의 '파란 돌'을 읽고 용기있는 삶을 꿈꾸게 됐다. 고통과 상처를 묻어두지 않고 자꾸 꺼내어 이야기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우리가 더 사랑하며 사는 게 가장 큰 바람!
안치용ㆍ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 사회책임과 지속가능성 의제화와 영화ㆍ문학ㆍ신학 공부가 관심사다. 바람저널리스트들과 ‘청년의죽음역사의눈물’을 함께 진행한다.
신다임ㆍ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졸업. 살아있는 모든 것에 애정이 있지만 요즘은 특히 식물에 빠져 몬스테라 키우기에 열심이다. 글로써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 기자 지망생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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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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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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