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과 화해한 이탈리아 극우의 본심은?
3년 전 동맹당(Lega)이 이탈리아의 주요 정당 중 하나로 부상했을 때, 이 극우 정당은 유럽연합(EU)의 긴축정책을 매섭게 비난했다. 그럼에도 동맹당은 올해 2월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 마리오 드라기 총리 정부에 합류했다. 동맹당이 입장을 뒤집은 이유는 무엇일까?
마리오 몬티 총리와 그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정부가 이탈리아를 이끈 지 10년 후, 또 한 명의 골드만삭스 투자은행 고위 간부 출신 마리오 드라기가 이탈리아 총리 관저 키지궁에 입성했다. 드라기는 전임 총리 주세페 콘테처럼, 그리고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의 에마뉘엘 마크롱처럼 좌우 대립을 초월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예산안과 신자유주의라는 EU의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면서도, 정당을 초월해 통찰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전문가를 자처하고 있다. ECB 총재를 역임한 드라기는 좌파에서 극우파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의 모든 정당을 성공적으로 규합했다.
심지어 EU의 지침에 맞서며 성공을 거둔 정당들까지 결집시켰다. 실제로 긴축정책과의 단절과 EU의 일방적인 결정 거부를 공약으로 내세워 3년 전 총선에서 승리한 오성운동(M5S)과 동맹당은 드라기를 공동 지지했다. 다른 유럽 정부와 언론은, 드라기 내각에 극우 장관들이 포진해 있다는 사실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언론은 이 거국적 연정을 상식적인 내각 구성 모델로 보도했다. 이 너무나 독특한 이탈리아의 민주주의를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었다. 2018년 3월 총선에서 이탈리아 국민 대다수는 EU가 강요한 긴축정책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런데 2021년 2월, 선거를 다시 치르지 않고도 이 긴축정책을 지지하는 정부가 들어섰다. 이처럼 이탈리아 정부의 급격한 방향 전환의 역사는 3막으로 나뉜 한 편의 정치극이다.
2011년 8월, 이 정치극의 1막이 올랐다. ECB 총재에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드라기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에게 서한을 보냈다. 그는 이 서한에서 이탈리아가 ECB의 지원금을 받기위해 실행해야 할 일련의 조치를 명시했다. 공공지출 및 연금 감축, 서비스 분야 자유화, 해고관련 규정 개정, 공무원 임금 삭감이 여기에 포함됐다. 당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를 거부할 여력이 없었다. ECB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국채 금리가 재상승하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ECB가 제시한 조치들을 실행하기에는 우파 다수당의 분열이 극심했다. ECB의 서한을 수령한지 3개월 후, 베를루스코니가 제안한 예산안은 이탈리아 의회에서 부결됐다. 그리고 무소속 ‘전문가’ 몬티가 베를루스코니에 이어 총리에 취임했다.
이후 몬티에 이어 엔리코 레타, 마테오 렌치, 파올로 젠틸로니까지, 이탈리아는 7년간 4명의 총리를 거쳤다. 신자유주의 성향의 제도 개혁에만 열중한 이 정부들의 정책은 중도좌파 민주당(PD)과 베를루스코니가 이끈 우파간 합의를 기반으로 했다. 상류층과 상당한 비중의 중산층이 좌우대립에 입각한 정치 진영을 초월해 이 정부들을 지지했다. 이들이 형성한 사회적 동맹이 바로 ‘부르주아 진영’이다.(1) 이 진영은 몇 년 후 프랑스에서 마크롱이 응집시킨 사회적 동맹과 유사하다.
2018년 3월 총선 후 2막이 올랐다. ECB의 로드맵을 따랐던 정당들은 이 선거에서 매우 참담한 성적을 거뒀다. 부르주아 진영은 서민층으로 지지기반을 확대하지 못하고 붕괴했다. 중산층조차 부르주아 진영을 이탈했다. 10년 전 70%에 달했던 베를루스코니의 전진이탈리아당(Forza Italia)과 민주당의 득표율은 32%로 추락했다. 반면 야당은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당이 최초로 우파와 극우파의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다. 전체 득표수의 약 1/3을 획득한 오성운동은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2021년 2월, 3막이 시작됐다. 2018년 3월 총선 이후 의회의 균형 상태는 그대로였지만 3기 정부를 구성해야하는 시점이 왔다. (동맹당과 오성운동 연정에 이어 오성운동과 민주당 연정으로 구성된) 1,2기 정부는 각각 1년여 만에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부르주아 진영의 지침서인 ECB 서한에 서명한 드라기가 차기 정부 구성을 맡았다. 놀랍게도 드라기는 구세주처럼 환영받았다. 드라기가 ECB 총재 시절 제시한 계획을 실행하다 선거에서 참패한 정당들뿐만 아니라, 이 계획에 반대하며 정치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정당들까지 드라기의 등장을 반겼다.(2)
드라기 개혁안에 빈곤 가구 지원은 뒷전
드라기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재개할 것이라는 신호를 여러 번 보냈다. 몬티 정부에서 공공지출 감축 부문의 선별 작업을 책임졌던 ‘전문가들’ 중 한 명인 프란체스코 지아바치를 경제수석으로 선택한 것도 그 신호 중 하나다.(3) 드라기는 2월 17일 첫 상원 연설에서 곧 개혁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경쟁강화, 세제 ‘단순화’, 세금경감, 행정 효율성 제고를 추구하고, 연구 분야에서는 우수연구센터의 출현을 장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회복기금인 ‘차세대 EU 계획’에 예정된 EU 지원금은 선별적으로, 재량에 따라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은 2,000억 유로 이상을 언급하고 있지만, EU의 지원금이 결코 그 정도 거액은 아닐 것이다. 이 금액은 EU 기금에서 지급되는 보조금과 EU 집행위원회가 이탈리아 대신 도입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차관을 더한 (경제적으로 무의미한) 계산법에 따라 의도적으로 부풀려진 것이다. EU 기금의 경우 다른 회원국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도 분담금을 내야하며, 차관의 경우 EU 집행위원회를 통하면 직접 도입할 때보다 이자가 적을 뿐이다. 따라서 실제 지원금은 최상의 경우 660억 유로로 6년에 걸쳐 지급될 것이다.(4) 즉, 이탈리아가 한해 수령하는 지원금은 110억 유로다. 이는 2020년 9% 가까이 감소한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0.7%에도 못 미친다.
이 보잘것없는 액수의 지원금은 경제 침체 규모에 상응하지 않으며, 경제활동 재개에 기여하지도 못할 것이다. 보조금과 차관 활용은 EU 기관들과 협상을 거쳐 수립해야 하는 계획이므로 철저한 제약을 받을 것이다. 드라기는 상원 연설에서 이 협상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가 구상한 “효율적인” 지원금 활용안이 EU 집행위원회의 안과 모든 부분에서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EU의 지원금은 우선 기업들에 돌아갈 예정이다. 생산의 기록적인 감소로 빈곤에 처한 가구들을 위해 드라기가 내놓은 방안은, “고용창출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 노동자와 실업자 대상 교육을 강화한다”라는 통상적인 신자유주의적 전망뿐이다. 반면, 드라기는 ‘기업의 선별적 부양’에 대한 설명에는 공을 들였다. 즉, 경제활동 급감으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 중 파산할 기업과 경쟁력·혁신력을 갖춘 기업을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후자에 속한 기업들만 부양책의 혜택을 누릴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렇게 ‘디지털 전환과 생태학적 전환 촉진’이라는 명목으로 이탈리아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개혁은 법률개혁이 아니다. 비숙련 노동자를 고용하고, 국내시장에 치중하며, 과도한 노조분쟁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들의 생산구조를 청산하는 개혁이 될 것이다. 이것이 이 3막 정치극의 (잠정적인) 결말이다. 2011~2018년 이탈리아 정치의 방향을 결정했던 전략은 2018년 총선에서 광범위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런데 이 전략이 의회의 거의 만장일치 지지를 받으며 다시 선거를 치르지도 않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 기상천외한 결말을 설명하려면,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좌우대립 종식… 새로운 정치 실험의 길
‘민주주의 국가들 중 가장 완전한 정치적 안정성을 갖춘 사례’라는 이탈리아의 명성은, 1990년대 초부터 퇴색하기 시작했다. 1948년 이후 이탈리아에 수립된 모든 정부를 지탱한 기둥은 기독교 민주주의였다. 이 중도주의 정치 기조가 1990년대 초에 무너지고 사라졌다. 이 기조 아래 연합했던 정당들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기독교 민주주의의 몰락은 정치계의 쇄신을 위한 부패 척결운동의 결과라는 의견이 당시에는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위기의 원인은 훨씬 더 근원적인 데 있다는 사실이 이후 증명됐다. 기독교 민주주의의 위기는 공공부채 증가와 임금 노동자 계층의 불이익을 용인하는, 적어도 1970년대 말부터 존재했던 특정한 사회적 타협의 파기와 관련이 있다.(5)
같은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언제나 야당으로 머물렀지만 오랫동안 서유럽의 주요 공산주의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지켜왔던 이탈리아 공산당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독트린 수정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명을 수차례 변경했으며,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6)가 이론화한 ‘제3의 길’을 점차 추종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도 기든스의 이론을 정치 노선으로 채택했다.
1990년대 초 이후 이탈리아의 정치사는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 건설 시도의 역사다. 이 역사는 실패로 기록됐다. 우파를 지지한 사회적 동맹은 시작부터 분열됐다. 한편에서는 이탈리아 북부의 중소기업들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찬성하며 유럽 통합 과정에 동참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주로 중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서민층과 빈곤층이 EU의 조약들이 강요한 긴축정책으로 고통 받았다. 중도좌파를 지지하는 사회적 진영의 존재는 가설에 불과했다.
‘제3의 길’은 생활환경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을 우선시하고 자유로운 시장의 혜택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규범에 따른 좌파 쇄신은 서민 임금 노동자 계층으로 구성된 진영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 두 사회적 동맹을 약화시킨 모순은 1994~2011년 동안 들어선 모든 정부의 실패로 이어졌다. 이 정부들은 내부 불화로 약화되다가 임기 말미에는 철저한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잦았다. 2011년 11월 의회 다수당의 지지를 잃은 베를루스코니 4기 정부까지 이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이 시기 이탈리아는 양극화된 정치 체제를 존속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좌파인 민주당에서는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의 정책 방향을 추종하는 노선이 월등히 우세했다. 노동자들의 기대는 경제 현대화 여정의 장애물로 여겨졌다. 우파는 신자유주의 노선과 공조했고 ‘부르주아 진영’이라는 실험이 시작됐다.
이처럼 부르주아 진영은 과거 좌우대립으로 분열됐던 중상위 계층을 연합시켜 신자유주의 개혁을 지지하는 사회적 동맹만을 추구한 전략이 아니었다. 이는 정치적 영역을 완전히 재편성하기 위한 문화적·이념적 계획이기도 했다. 많은 국가가 시도했던 이 계획은 이탈리아에서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제 정치적 주체의 입장과 유권자의 기대가 좌파와 우파로 분극화되는 대신 유럽통합지지자와 민족주의자, 세계주의자와 정체성주의자, 연방주의자와 자국주권론자의 대립으로 나뉘었다. 언론은 줄곧 ‘책임감 있는’(즉,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부합하는) 정치 강령과 ‘포퓰리즘적인’(전자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색을 지칭) 입장을 갈라놓았다.
부르주아 진영의 복귀냐?, 완전한 실패냐?
2018년 3월 총선에서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승리했다. 부르주아 진영은 선거에 패배한 대신, 반대진영의 전략 방향을 결정할 힘을 얻었다. 동맹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反)유럽·민족주의 정당이라는 가면을 내세웠다. 오성운동은 의회의 ‘특권계급’과 ‘엘리트’ 특권층에 반기를 들었다. 두 정당은 이런 행보를 통해 자신들은 좌우대립을 뛰어넘는 정치적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이 정치적 영역은 바로 부르주아 진영과 일치한다. 이 영역의 한쪽 극단에는 개방, 친(親)EU주의, 진보주의를 자처하는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동맹이 존재한다. 이 동맹은 그들의 계획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핵심적이라는 사실을 감추곤 한다. 이 동맹, 즉 부르주아 진영은 사회적 소수에 불과하다.
반대편 극단에는 특권계급 및 유로화에 대한 거부감과 적대감, 또는 외국인을 혐오하는 성향의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결집한 다양한 사회적 다수가 존재한다. 2018년 총선에서 승리한 오성운동과 동맹당의 연정으로 수립된 주세페 콘테 총리 1기 정부는, 이 이질적인 사회적 다수를 결집할 중재전략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1기 정부 못지않게 고전했던 콘테 총리의 2기 정부(오성운동과 민주당 연정)는 좌우대립의 타당성을 부정하도록 유도하는 주도권 다툼이 존재하는 한, 아무리 긍정적으로 계산해도 좌파 재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부르주아 진영의 이데올로기로 세워진 정치적 영역에서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부르주아 진영의 전략뿐이다. 사회적 소수인 자유주의자와 친(親)유럽주의자의 계획을 중심으로 국가 통합을 추구한 이탈리아의 3막 정치극이 의외의 결말로 이어진 이유다. 하지만 이 결말은 아직 잠정적이다. 다음 막들이 계속해서 쓰여질 것이고 구조개혁으로 과거에 희생된, 그리고 앞으로 희생될 이들이 주연을 맡을 것이다. 이들은 어떤 형태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다. 2018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고도 드라기를 총리로 수용했던 결과에 환멸을 느낀 이들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길을 모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이 정치극의 다음 막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맞서는 주체들의 역량에 달렸다. 이들은 고용관계의 불안정화, 불평등의 급격한 증가, 사회 보장제도의 축소, 공공 서비스 악화에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미친 구체적인 영향을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복귀시킬 수 있을까? 부르주아 진영의 주도권에 대한 이의가 다시 제기될지, 나아가 부르주아 진영이 완전한 실패로 끝날지는 이 질문의 답에 달렸다.
글·스테파노 팔롬바리니 Stefano Palombarini
파리 8대학 경제학과 조교수. 저서로 『La Rupture du compromis social italien: Un essai de macroéconomie politique 이탈리아의 사회적 타협 파기. 정치적인 거시경제 실험』(2001), 『L’économie politique n’est pas une science morale 정치경제학은 윤리학이 아니다』(Bruno Amable와 공저, 2005)가 있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Bruno Amable, Elvire Guillaud and Stefano Palombarini, 『L’Économie politique du néolibéralisme. Le cas de la France et de l’Italie 신자유주의 정치 경제학.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사례』, Éditions ENS - Rue d’Ulm, Paris, 2012.
(2) 이탈리아 정당들의 전략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 참고. ‘Avec le gouvernement Draghi, le retour paradoxal du bloc bourgeois 드라기 정부와 함께 복귀한 부르주아 진영의 역설’, <Contretemps>, 2021년 2월 21일, www.contretemps.eu
(3) 이탈리아 경제학자의 로렌조 잠포니의 시사하는 바가 큰 기사 ‘Il governo dei Giavazzi’, <Jacobin Italia>, 2021년 2월 25일, https://jacobinitalia.it
(4) 2021~2026년, 이탈리아는 EU 기금으로부터 820억 유로의 보조금을 수령할 예정이다. 이탈리아는 이 기금에 400억 유로를 기여해야 하므로, 실질적으로 이탈리아가 수령할 보조금은 420억 유로다. 차관(1,270억 유로)을 통한 지원금의 경우 이자 비용 경감 규모에 상응한다. 이는 이탈리아가 직접 또는 EU 각료이사회가 이탈리아 대신 차관도입 계약을 체결할 경우 각각 다르게 적용되는 금리 차이에 좌우된다. 모든 가설을 검토할 때, 이자 부담을 줄여 확보 가능한 금액은 240억 유로를 넘지 않을 것이다. 이 계산은 다음 기사를 참고했다. Emiliano Brancaccio and Riccardo Realfonzo, ‘Draghi’s plan needs less Keynes, more Schumpeter’, <Financial Times>, London, 2021년 2월 12일.
(5) 『La Rupture du compromis social italien. Un essai de macroéconomie politique 이탈리아의 사회적 타협 파기. 정치적인 거시경제 실험』, CNRS Éditions, Paris, 2001.
(6) Anthony Giddens,『Beyond Left and Right : The Future of Radical Politics』,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