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보수 정권, ‘내부의 적’을 향해 발포
민중의 저항을 폭력으로 진압한
볼리비아의 독재자 자니네 아녜스가 자국 법정에서 심판을 받게 되자, 이에 분개한 유럽의회는 아녜스의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유럽의회는 5월 내내 콜롬비아 시위대가 겪은 폭력 진압에 대해 침묵했다. 수십 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나왔음에도, 유럽의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세제개혁으로, 콜롬비아 정치사의 새로운 장이 열릴 뻔했다. 콜롬비아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세수입이 2번째로 낮은 국가다. 보수주의 성향의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은 4월 15일 세제개혁안을 발표했다. 그의 개혁안에 따르면, 234억 페소(약 64억 달러)의 세수 확보, 예산 적자(2021년 국내총생산 GDP의 8.6%로 예상) 해소, 280만 명의 극빈층 탈출, 기후변화 퇴치 기금 마련 등 가히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모든 세제개혁이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두케 대통령 개혁안의 경우 (가장 불평등한 세금인) 부가가치세(VAT)를 지금껏 면세 대상이었던 상품까지 확대하고, 소득이 너무 낮아 그동안 납세 대상에서 제외됐던 급여생활자에게도 세금을 부과하며, 코로나19 위기로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은 중산층이 혜택을 누렸던 많은 면세 조치를 철폐하는 계획이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전 대통령이 속한 국가연합사회당(약어로 U 또는 PU당으로 불림)과 자유당(PL)을 비롯한 중도 정당조차 이 개혁이 실현되면 가장 취약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정부기구(NGO) 국제진보주의기구는 “외채 상환과 국가신용등급 유지를 위한 퇴행적인 개혁”이라고 평가했다.(1)
“시위대는 시민이 아니라 표적”
개혁안 발표 다음 날, 콜롬비아 최대 노동조합연맹인 중앙노동조합(CUT)은 4월 28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사회운동단체도 대거 연합해 CUT의 파업 결정을 지지했다. 파업은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켰다. 개혁안에 대한 불만은 그동안 쌓인 다른 많은 불만에도 불을 지폈다. 정부통계청이 4월 29일 발표한 한 보고서에 의하면, 콜롬비아 국민 45%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는 2010년 대비 10%나 상승한 수치다. 극빈층에 속한 인구는 15%로 집계됐다.
점점 더 많은 시민이 운집했다. 두케 대통령은 시위 통제력을 상실했다. 5월 2일, 대통령은 결국 개혁안을 철회했다. 다음날에는 알베르토 카라스키야 재무장관이 사임했다. 정부의 화해 제스처는 민중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찰이 시위대를 폭력 진압하는 동안 개혁안에 대한 항의는 정권의 치안 전략에 대한 고발로 이어졌다. 콜롬비아의 거리는 여전히 시위대로 가득 차 있다.
메데인대학의 페드로 피에드라히타 정치학 교수는 “콜롬비아의 치안 기구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반공산주의와 ‘내부의 적’ 주의에 기초해 운영된다. 그 결과 시위대를 시민이 아니라 군사적 대응의 정당한 표적으로 간주한다”(2)라고 설명했다. 폭동진압 기동대(ESMAD)가 시위대를 공격하는 장면들은 곧 전 세계 소셜 네트워크상에서 홍수를 이뤘다. 2021년 5월 12일,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콜롬비아 평화발전연구소(INDEPAZ)는 경찰 자료를 인용해 사망 39명, 구금 1,055명, 성폭행 피해자 16명으로 집계했다.
콜롬비아 경찰이 자행한 폭력은 전 세계적인 비난의 물결을 일으켰다. 5월 4일,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사무소(OHCHR) 대변인은 이 사건들로 인해 “극도의 경각심을 느끼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은 “폭력과 기물파손 행위는 (평화적으로 시위할) 권리의 남용”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인명피해의 추가발생을 막기 위해, 경찰은 최대한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이 성명이 발표된 날, 제51회 워싱턴 아메리카대륙 연례회의(Washington Conference on the Americas)에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베네수엘라, 쿠바, 니카라과, 아이티 등 국가의 인권 침해와 민주주의 결핍에 대해 언급했다. 한편, 콜롬비아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를 제외한 남미 국가들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쿠바는 한 쿠바 외교관을 “비엔나 협약 위반활동”(3) 혐의로 추방한 콜롬비아의 결정에 항의하면서, “수십 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콜롬비아 군대와 경찰의 폭력적인 시위대 진압에 대해 국제사회의 시선을 돌리려는”(4) 시도로 평가했다.
바이든, 플랜 콜롬비아 극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언제나 콜롬비아와의 관계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앞으로도 콜롬비아를 “미국의 대(對)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정책의 주춧돌”로 여길 것이다. 바이든은 대선기간 동안 콜롬비아 치안정책의 핵심인 ‘플랜 콜롬비아(Plan Colmbia)’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플로리다주의 라틴계(특히 콜롬비아 출신) 유권자의 표심을 잡고자 노력했다. 바이든은 당시 플로리다주 한 지역 신문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나는 플랜 콜롬비아를 처음부터 지지했으며 이 정책이 초당적인 지지를 받도록 노력했다”면서, “플랜 콜롬비아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성공적인 미국의 대외정책 중 하나”(5)라고 극찬했다.
바이든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1999년 빌 클린턴이 구상해 조지 부시가 확대하고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가 이어받은 플랜 콜롬비아는 미국과 콜롬비아의 치안 협력을 지휘하는 계획이다. 콜롬비아는 이 분야에서 미국이 가장 굳건한 양자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들 중 하나다. 콜롬비아가 수십 년 전부터 미대륙 내 미국의 군사원조 최대 수혜국이자, 미국산 전투장비 주요 구매국 중 하나인 이유다. 양국 군대는 꾸준히 협력을 강화하며 합동작전을 진행해 왔다. 미국의 군대는 물론, 사설 경비업체와 치안 전문가도 콜롬비아에 진출해 있다. 미국이 제공한 탄환유도시스템 덕택에 콜롬비아는 ‘스마트 포탄’으로 반군을 공격할 수 있게 됐다. 미국 국가안보국(NSA)도 도청 및 첩보 분야에서 (남미 유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협력국’인) 콜롬비아를 지원 중이다. 콜롬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공관들 중 하나다.
바이든이 트럼프의 대외정책과 단절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최우선시 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미국과 콜롬비아의 관계는 재검토될 것이다. 바이든은 또한, 2016년 콜롬비아 정부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체결한 평화협정을 지지하므로 두케 대통령의 입장에 무조건 동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케 대통령은 평화협정의 실행을 방해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인물이다.
무장단체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입증된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임기 2002~2010년)의 정치적 비호를 받는 두케 대통령은 처음부터 FARC와의 협상에 반대했다. 트럼프는 콜롬비아의 평화협정 진척에 무관심했다. 덕분에 두테 대통령은 마음 놓고 평화협정과 그 체제를 방해할 수 있었다. 두테 대통령이 더더욱 미국에서 자유로웠던 이유는 베네수엘라에서 수차례 발생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정권 전복 시도에서 콜롬비아가 핵심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마두로 정권 붕괴는 트럼프가 오랫동안 중점을 둔 과제였다. 이 모든 상황은 인권 분야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작년 한 해 콜롬비아에서는 91건의 학살이 발생해, 총 384명이 사망했다.(6) 2021년 3월, 국제연합(UN)은 FARC의 안위를 보장한 콜롬비아 정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평화협정 체결 후 FARC 전직 전투원 262명이 살해당한 사실을 규탄했다.(7)
폭력의 악순환, 발암물질을 흠뻑 뿌려라!
트럼프는 국내에서 마약 문제에 강경하게 대처하는 이미지를 쌓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에 코카 재배 근절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도록 촉구했다. 콜롬비아가 제초제 글리포세이트(Glyphosate)의 살포 재개를 추진하자, 트럼프는 “흠뻑 뿌려야 한다!”(8)라고 외쳤다. 글리포세이트는 세계보건기구(WHO)가 2015년 유전독성 및 발암성 추정물질로 분류한 제초제다. 두케 대통령은 트럼프의 요구를 들어주려 했으나, 콜롬비아 헌법재판소는 살포 조건을 부과했고, 많은 정치·사회주체들이 이런 살포방식에 반대했다. 글리포세이트의 위험성을 공식인정한 2016년 평화협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4월 12일 수십 개 단체가 결집해 반대했으나, 두케 대통령은 살포 재개 명령을 발동하며 헌법재판소의 기준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두케 대통령은 과거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했듯이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하려 애쓰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평화협정이 마약 거래상들의 운신 폭을 넓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콜롬비아에 깊이 뿌리 내린 멕시코 카르텔을 포함해, 범죄조직이 창궐한 데는 다른 원인이 있다. 바로 반군 철수로 생긴 공백을 메우지 못한 콜롬비아 정부의 무능함이다. 두케 대통령은 코카 불법재배 척결에 치중했지만, 대체 작물재배 지원사업을 축소했다. 농부들은 강력 범죄조직을 업고서라도 코카 재배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한마디로 폭력의 악순환이다.
두케 대통령이 민족해방군(ELN)과의 평화협상을 종식시킨 것도 같은 논리다. 2019년 1월, ELN이 경찰학교에 설치한 폭탄으로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케 대통령은 이 폭탄테러가 콜롬비아 전역에 부른 공포를 협상종식의 기회로 삼았다. 뒤이어 그는 ELN을 테러혐의로 기소하기 위해 협상 보증국 쿠바에 ELN 대표단을 콜롬비아에 인도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쿠바는 이를 거절했다. 모든 협상 당사자가 서명한 협상 의정서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협상 보증 국가 중 하나인 노르웨이는 쿠바의 결정을 지지했다. 트럼프는 즉시 쿠바를 미국의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다시 올렸다(앞서 오바마는 쿠바를 이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재선을 위해 플로리다주의 라틴계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 애쓰던 트럼프에게는 뜻밖의 행운이었다.
두케는 바이든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두케와 트럼프의 관계는 굳건했다. 두케가 소속된 민주중도당은 2020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의 선거유세에 초대된 우리베 전 대통령은 “카스트로·차베스주의”의 위협을 설파했다. 때마침 플로리다주의 공화당 지지자들이 민주당은 미국을 사회주의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경고하던 시점이었다. 대선 투표 며칠 전, 결국 필립 골드버그 콜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나섰다. “오래전부터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미국과 콜롬비아의 관계는 초당적인 지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 콜롬비아의 모든 정치 지도자에게 촉구한다. 미국 선거 관여를 자제하라.”(9)
바이든의 당연한 지원군 중 일부(인권단체와 평화협정에 대한 두케의 태도에 비판적인 몇몇 싱크 탱크)는 시위대에 대한 콜롬비아 정부의 무자비한 대응에 우려를 표하며 바이든의 대(對)콜롬비아 노선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도 점점 더 적극적으로 이에 동참하고 있다. 2020년 7월 6일, 미국 하원의원 94명은 당시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콜롬비아 평화협상 진척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 중 일부 의원은 현재 콜롬비아의 시위대 진압을 단호한 어조로 규탄했다.
두케 정부는 시위를 콜롬비아를 겨냥한 국제적인 음모의 징후로 몰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클라우디아 블룸 콜롬비아 외교장관은 최근 영어로 된 영상을 발표하며 2022년 선거에서 좌파 후보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구스타보 페트로 상원의원을 공격했다. 블룸 장관은 이 비디오에서 “페트로 의원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마약·테러조직의 지원을 받아 시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테러를 조직하고, 사람들을 매수해 테러, 기물 파손을 사주했다”(10)라고 주장했다.
특히 두케 대통령은 여전히 미국 지도층 상당수가 당면 과제로 여기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 전복과 ‘마약조직 반군’ 해체에 있어 바이든을 자신의 가장 결정적인 지지자로 남기기 위해 노력중이다. 5월 17일, FARC의 반체제 인사 헤수스 산트리치가 피살당했다. 콜롬비아는 마두로 정권 붕괴를 위해, 베네수엘라를 관통하고 있는 위기의 해결책을 찾는 협상 방해에도 전력을 다할 것이다.
글·롤라 알랑 Lola Allen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워싱턴 D.C.) 연구원
기욤 롱 Guillaume Long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워싱턴 D.C.) 연구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SOS Colombia’, 국제진보주의기구(Progressive International), 2021년 5월 5일, https://progressive.international
(2) Joe Parkin Daniel, 다음 기사에서 인용, ‘UN condemns violent repression of Colombia protests after at least 18 die’, <가디언>, London, 2021년 5월 4일.
(3) 콜롬비아 외교부 성명, Bogota, 2021년 5월 7일.
(4) 쿠바 외교부 트위터 계정 게시물, 2021년 5월 7일.
(5) Joe Biden, ‘Colombia is the keystone of US policy in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Sun-Sentinel>, Fort Lauderdale, 2020년 10월 7일.
(6) ‘Informe de masacres en Colombia durante el 2020 y 2021’, 콜롬비아 평화발전연구소(INDEPAZ), 2021년 5월 2일, www.indepaz.org.co
(7) ‘United Nations Verification Mission in Colombia’, 유엔 사무총장 보고서, 2021년 3월 26일, https://colombia.unmissions.org
(8) ‘Colombia will have to restart aerial spraying to destroy coca: Trump’, <Reuters>, 2020년 3월 2일.
(9) Tracy Wilkinson가 다음 기사에서 인용, ‘Colombia’s far-right wing backs Trump, aiming to help him in crucial Florida vote’, <Los Angeles Times>, 2020년 11월 1일.
(10) Laura Gil, ‘La Canciller Blum circula video que acusa a Petro de terrorismo’, La Línea del medio, 2021년 5월 8일, http://lalineadelme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