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치안 유지’가 문화의 동의어가 되었나
프랑스 극장 100여 곳에서 진행 중인 점거농성으로 인해, 극장장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공공 공연예술 고용주 노동조합연맹(USEP-UV)은 점거농성을 지속하고 요구사항을 단념하지 않는 것을 “의미 없는 결정”으로 평가한다. 이제 공연을 재개할 수 있는 행운, 행복, 찬란한 환희를 되찾은 상황에서 4개 주요 극장 대표들의 말에 의하면, “문화의 필수 불가결한 특성을 옹호하던 이들이 오히려 문화를 희생시키면, 문화계는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공연 연출 명목으로 저작권료를 받는 이 대규모 공연시설에서 급여를 받는 대표들은 이제 완고한 농성자들이 “다른 수단을 통해 사회운동을 이어가도록” 친절히 독려하고 있다.
어렵게 공연재개 허가를 얻은 마당에, 실업수당 지급 연장과 실업보험 ‘개혁’ 철회는 상황에 맞지 않는 요구인 것이 사실이다. 애초부터 “의미 없다”라는 단어를 사용한 선견지명을 보인 바슐로 문화부 장관은 최근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아주 멋진 시점이다. ‘문화’라는 단어가 감추고 있는 다채로운 공백을 완벽하게 드러내는 시점이다. 여기서 ‘문화’란, 모든 사회적 주장을 말끔히 지우고 현행 치안유지 기관의 수장들이 내세우는 쟁점에 온순하게 부합하는 세련된 유흥거리에 불과하다. 이는 오래전부터 외면당한 극장의 지방분산 정책의 목표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의욕적인 극장장들은 기회만 된다면 ‘행복한 날들’이라는 낡은 후렴구를 다시 선창할 것이다.
자유 침해의 가능성은 검토도 하지 않아
소위 관련 ‘조직들’은 같은 맥락의 철저한 책임의식에 입각해, 보건패스(Pass sanitaire)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이제 1,000명 이상이 공연을 관람하려면, 관객은 타인을 감염시킬 위험이 없다는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11세 이상 아동도 해당된다. 하지만 행사 주최 측과 공연 노동자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관객 수가 1,000명 이상이라도 말이다. 작금의 창의적인 시대에서 논리는 격투기 스포츠다. 코로나19 및 관련 애플리케이션의 구상 과정에는 예상대로 오랑주(Orange), 다소(Dassault)를 비롯해 ‘전문성’을 가진 민관 주체들이 참여했다.
이런 ‘전문성’에는 매월 20~30만 유로가 지급된다고 한다. 정보자유국가위원회(CNIL)는 흔히 그렇듯 섬세한 중용을 견지하고 있다. 프랑스 의회가 보건패스를 이미 승인한 후에야 의견을 요청받은 CNIL측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도 “보건패스가 1,000명 이상의 집합에 제한적으로 적용되기를 바란다”라는 소극적인 입장을 내놓는 데 그쳤다. 그나마 CNIL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집합 주최자들은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자유의 침해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말의 검토도 하지 않았다. 제니트, 올랭피아 등의 공연장은 ‘신뢰 협약’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음악축제 비에이 샤뤼(Vieilles Charrues), 프랑코폴리(Francofolies)와 연극제 아비뇽 페스티벌도 예외가 아니다. 다들 너무나 온순하다. 개인정보 수집에 너그러워질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사상 등 다른 측면에서 우리를 병들게 할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주 공식적인 성격의 한 상원 위원회에 출석한 앙투안 플라오 교수(스위스 제네바대학 국제보건연구소장-역주)는 “야외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실내의 경우 헤파(HEPA)필터의 효과가 완벽히 입증됐다”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전혀 기밀이 아님에도 군중을 보호하려는 이 열성적인 조치에는 왜 반영되지 않았을까? 대중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대신, 반항적인 예술 애호가들의 확고한 시민정신에 경의를 표하기 바쁘다.
억만장자의 탈세는 외면한 채, 예술가적 면모만 부각
최근 프랑수아 피노 회장은 파리 레 알 지구에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재단 미술관’을 개장했다. 파리시는 유적으로 지정된 이 옛 상업거래소 건물을 8,600만 유로에 사들여, 피노 회장에게 50년 간 선납 임대료 1,500만 유로와 만 3년 이후(4년째 되는 해)부터는 연간 6만 유로의 추가 사용료를 받고 빌려준다. 언론은 부단한 노력과 독특한 재능으로 프랑스 최고 갑부 중 한 명(라흐두뜨, 르프렝탕, 생로랑, 르푸앙, 구찌, 크리스티 경매 등 소유)과 세계 최고 예술품 거래상 중 한 명이 된 “브르타뉴 농부 아들의 예리한 푸른 눈빛”(<르몽드>)에 경의를 표했다. 언론은 미술관으로 변모한 장소에도, 그 속에 전시된 작품에도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
물론 그중에는 조금 충격적인 작품들도 있다. <프랑스 앵테르>와 <프랑스 앵포>가 지적했듯, ‘레드(Red)’라는 단어의 네온사인 작품은 푸른빛을 발하며 “우리의 감각과 확신을 어지럽힌다.”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상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를 왁스로 정교하게 재현한 작품도 있다. 이 거대한 양초는 6개월 동안 타올라 완전히 녹아 없어질 것이다(그렇다면 녹아내린 촛농은 어떻게 될까? 물론 이 역시 “파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의 일부다). “모든 형태의 차별을 고발하는”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들의 작품도 다수 전시돼있다. “성의 고정관념”을 고발하는(신디 셔먼) 설득력 있는 작품들도 있다. 피노 회장의 측근인 알랭 맹크가 멋지게 요약했듯이 “이 미술관은 정치적인 성명서다.
자본주의자는 세상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는 흑인, 주변인들과 함께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전시회다.”(<르몽드>) <프랑스 앵테르>와 <프랑스 앵포>는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과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에 이어 피노 재단 미술관은 “파리의 문화계에서 명품과 금융이 가지는 강력한 힘”의 표상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진보주의를 구현하는 대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주 멋지다. (피노 일가가 소유한) 케링 그룹이 “심각한 탈세 및 자금 세탁”으로 금융검찰청 조사를 받은(2019년)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피노 회장이 어떻게 14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할 필요도 없다.(1) 중요한 것은 이 억만장자의 예술가적 면모에 감탄하고, 옛 상업 거래소에 전시돼 ‘상장가’가 올라가고 있는 작품들을 음미하고, 피노 회장이 작품 선택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부당함에 대한 고발에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낙담하지 말자! 보건패스만 새롭게 도입되는 게 아니다. 문화패스(Pass culture)도 있다. 당신이 18세 이상이라면, 당장 문화패스 앱을 설치해라. 300유로만 내면 24개월 동안 마음껏 지역문화 행사를 예약하고 디지털 문화상품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민주화’인 것이다!
(하하, 이거 참!)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작가 겸 문화평론가, 극작가 겸 영화배우. 격주간지 <La Quinzaine Littéraire>에도 비평 기사를 쓰고 있다. 영화 <L’inconnue de Strasbourg>(1998)를 비롯해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Olivier Toscer, ‘Argent public, fortunes privées 공금과 개인의 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3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