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총재의 독재가 초래한 레바논 경제위기

2021-07-30     앙젤리크 무니에쿤 | 기자

사드 하리라 레바논 총리가 내각 구성을 위해 미첼 아운 대통령과 9개월간 협상한 끝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재앙적인 경제·사회·보건 위기 가운데 총리까지 사퇴하자, 최악의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중앙은행 총재가 레바논의 재정적 붕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레바논은행(BdL) 관련 과거 자료들을 보면, 암담한 현실을 읽을 수 있다. 2018년 여름, 레바논은행은 설립 55주년을 맞이했다. 리아드 살라메 총재가 수장 자리에 오른 지 25주년이 되는 해다. 레바논은행 총재직은 정부가 6년마다 재임명하는 걸 감안할 때, 중앙은행 총재로서는 임기가 상당히 긴 편이다.(1) 레바논 우체국 리반포스트는 25주년 기념으로 총재의 모습을 담은 우표를 발행했다. 중동항공(MEA)은 많은 승객이 접하는 기내 잡지에 중앙은행을 찬양하는 특집을 실었다. 이 격월간지는 “레바논은행이 레바논의 탄성력을 상징한다”라고 떠벌렸다. 중동항공 CEO는 “살라메는 역대 최고의 총재이며, 은행에 대한 신뢰를 구현한 레바논 파운드의 수호자”라고 주장했다.

 

지하경제에서 흔들리는 레바논 파운드

레바논은행을 향한, 중동항공의 이런 아첨에는 이유가 있다. 승객들에게는 관심사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중동항공은 1996년 파산 위기 이후 지분의 99%가 레바논은행으로 넘어갔다. 즉, 중동항공 CEO의 상사가 살라메 총재인 셈이다. 2000년대 중동항공이 호전세를 타면서 민영화가 언급됐으나 흘려듣는 이들이 많았다. 해외투자자들도 여러 차례 민영화 의지를 드러냈고, 살라메 총재도 이를 최우선시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민영화는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사실 레바논은행은 여타 중앙은행처럼 상업적 자산을 영구적으로 경영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중동항공 말고도 베이루트에 위치한 ‘카지노 뒤 리반’의 지분도 간접적으로 보유한 상태다.

여기저기서 레바논은행을 찬양하는 실태를 감안하면, 중동항공의 아첨 글은 특별한 게 아니다. 레바논에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레바논은행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 기능을 하는 기관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살라메 총재는 “능수능란하게 레바논 파운드와 금융·은행시스템 안정화를 지속시켰다”라고 국내외에서 인정받았다. 그런데 2018년 여름, 언론에서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몇 개월 전부터 레바논 파운드가 평가절하될 거라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레바논은행은 이를 부인했지만, 국민은 자국 경제가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인 2019년 10월, 베이루트에서 터진 사회적 불만은 전국으로 확산됐다.(2) 

지하경제에서 레바논 파운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3월, 레바논은 처음으로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 8월 4일에는 베이루트 항구에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레바논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3) 외환보유액 유지 정책 때문에 외환보유고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이었고, 레바논 국민은 의약품 및 생필품의 극심한 부족과 반복되는 정전에 시달렸다. 주유소의 대기줄은 끝없이 이어졌고,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상인들은 가게가 약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밤을 새웠다. 현재 레바논 국민의 절반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세계은행은 레바논 경제위기가 19세기 이래 세계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 3위 안에 든다고 분석했다.(4)

레바논은행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게 변했다. 그럴싸한 성과는 ‘국민의 눈을 가리는 연막작전’, 살라메 총재의 경제위기 대응책은 ‘국민의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실패작’이 됐다. 레바논 파운드의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할 때 즉시 자본관리국을 설치했어야 했는데, 총재가 지체하는 바람에 막대한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또한 IMF가 자금지원프로그램 협의에 앞서 레바논은행의 재정상태 및 관행을 조사하는 회계감사를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총재가 일을 지체시켰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분노한 지점은, 총재와 측근들이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한 혐의였다. 살라메 총재는 이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현재 레바논, 프랑스, 영국의 수사를 받고 있으며, 스위스도 레바논 당국에 법적 공조를 요청한 상태다.

 

‘살라메 총재 치하’의 레바논은행

IMF와 레바논 재무부의 고문이었던 경제학자 투피크 가스파드는 레바논은행이 난파하기 무려 2년 전에 최초로 레바논은행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인물이다. “레바논은 심각한 금융위기를 향해 가고 있다. 금융위기는 통화가치 하락이나 은행부문의 불안정화로 나타날 것이다.” 가스파드는 ‘라 매종 뒤 퓌튀르 연구소’와 ‘콘라트 아더나우어 재단’에서 2017년 8월 발행한 보고서에 이렇게 서술했다.(5) 그는 또한 “레바논은행의 외환보유고(시중은행에서 받은 금액은 미포함)는 2015년부터 적자이며, 이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레바논은행의 금융정책도 원인 중 하나다. 레바논은행은 2000년대에 일명 ‘금융공학’을 고안해 2011년 박차를 가했고, 2016년 규모를 대폭 키웠다. 외환보유고는 수입 자금의 원천이자 외환시장에서 레바논 파운드를 보호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수단인데, 이 정책은 외환보유고를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레바논은행은 현지은행들을 통해서 대외자본을 흡수하고, 채권자들은 높은 이자율 덕분에 막대한 보상을 받았다. 가스파드는 이런 전략이 ‘국가금융의 자살’이라고 지적했다. 

2017년, 레바논은행은 격론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가스파드의 보고서는 큰 파문을 일으켰고, 레바논은행은 결국 공식성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통화 및 시스템 안정화에 대한 기여도와 은행정책을 자찬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으며, 보고서의 신빙성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라 매종 뒤 퓌튀르 연구소’는 여러 군데서 압력이 들어오는 바람에, 사전에 예정됐던 보고서 발표회를 취소해야만 했다. 

이 사건은 레바논은행이 살라메 치하에서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쌓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살라메 총재와 레바논은행의 30년 유착관계는 서로의 운명을 꽁꽁 엮어버렸다. 레바논은행이 살라메 총재에게 쥐어준 영향력은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의 군사력에 필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이 몰락하는 데, 무능한 정부와 전능한 중앙은행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 가늠하기 힘든 문제다. 정부가 개혁을 단행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능력이 부족했기에, 중앙은행이 대외자본을 유치한다며 날뛰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결국 레바논 재무부가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사실 레바논이 1992년에 비공식적으로, 1997년에 공식적으로 자국통화를 달러와 연동시켰을 때,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것일지도 모른다(고정 환율: 1달러=1507.5레바논 파운드). 이는 국고를 달러로 채우기 위한 결정이었다. “국가의 재정적자가 쌓이고 중앙은행이 이를 충당하는 경우, 한시적으로 고정환율제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시스템이 붕괴되기 마련이다. 레바논의 경우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국제수지 위기’ 모델의 첫 세대에 속한다.(6) 역사적으로 연착륙이라는 것은 없다. 파열은 항상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법이다.” 제네바 대학원의 세드릭 티유 국제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UN에 의하면, 2018년에 레바논의 국제수지 적자는 GDP의 24%로, 당시 레바논의 경제수준은 아프가니스탄(15.8%)과 모잠비크(27.2%)의 사이에 있었다.

레바논 전문가인 생테티엔 대학의 제롬 모쿠랑 조교수는 거두절미하고 고정환율제 도입이 ‘현재 재앙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내전(1975~1990)이 끝난 후, 레바논 경제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제안하는 개발모델을 선택했다. 즉, 외향적 경제의 심화, 대외자본 유치, 자유무역 확대를 추구했다.” 그는 파리1대학 경제연구원인 프레데리크 파라와 공동 작성한 ‘빚과 정치(Dette et politique)’에서 이렇게 서술했다.(7) “레바논은 수많은 협정으로 인해 규제가 느슨해지고, 불공정한 경쟁에 노출된 끝에 경제구조가 취약해졌다. 특히 목재, 신발, 의류 부문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런 상황이니, 심각한 무역수지 적자를 겪는 것이 당연하다. (…) 레바논은행에 달러 유입시켜 고정 환율을 보호해야 했다.”

이 시스템은 일종의 제도적 합의에 따라 중앙은행을 주인공으로 만들었고, 금융공학 정책들은 이 시스템을 영속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고정환율제 도입국인 불가리아의 니콜라이 네노브스키 통화이론학 교수는 불가리아국립은행 고문을 맡고 있다. 네노브스키 교수는 “레바논은행, 시중은행, 정부 모두가 이 시스템에 안주했기에 더 지속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망한 것은 외부충격의 난입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시리아 내전의 불안정한 영향과 유가하락이 외환유입을 막은 것이다. 

 

맞지 않는 화려한 옷, 그 위험한 유혹

그러나 외부충격 요인만으로 사건의 전말을 설명할 수 없다. 레바논은행의 탈선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세드릭 티유 교수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중앙은행이 국가에서 가장 대접받는 기술관료적 기관인 경우가 많다. 업무적 한계가 있어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덧붙였다. “중앙은행이 정부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위험을 감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하다. 중앙은행이 추구하는 목표들이 서로 모순될 수 있고, 정치인이 필수적인 개혁을 추진할 동기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살라메 총재는 화폐·신용법으로 정해진 레바논은행의 임무수행에 만족했을 수도 있다. 즉 레바논 파운드, 경제, 은행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통화·금융시장의 발전상황을 감독하는 역할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레바논의 재정적 지원국들(프랑스가 최대 지원국)이 한없이 띄워주고 시스템의 열쇠를 쥐어주는 가운데, 화려한 옷에 대한 유혹이 얼마나 강렬했겠는가? 몸에 맞지 않는 옷임에도 말이다. 나아가, 레바논은행은 민간기업을 감독하더니, ‘디지털경제의 예찬자’를 자처하며 2014~2016년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레바논 은행, 속도를 높이다’라는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후 ‘레바논 테크놀로지 다보스’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바꾸고, 레바논을 스타트업 풀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키웠다. 

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도 있다. 레바논은행은 살라메 총재 시절 불투명의 늪으로 빠져버렸다. 이는 레바논은행의 신조라는 ‘신뢰’와 중앙은행의 사명인 ‘투명성’과도 극명하게 대치된다. 레바논은행은 20년째 손익계산서를 공시하지 않고 있다. 살라메 총재는 자신의 통화정책을 주장하기 위해 의회 앞에 선 적도 없다. 내전기간 내내 전통처럼 지켜졌던 관행임에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EY와 딜로이트가 작성한 2018년 감사보고서가 유출되면서, 전년도 회계 관행이 전반적으로 미심쩍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고신호는 계속 있었다. 살라메 총재가 대권에 대한 야망을 밝히자, 미국은 그를 면밀히 주시했다. 그런데 위키리크스가 2010년에 공개한 2008년도 외교전문을 보면,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은 살라메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했다. 이에 의하면, 살라메 총재가 정부와 ‘매우 복잡한’ 관계이며, 출금의 허용 및 거부를 내키는 대로 행사했다. 또한 레바논은행의 독립성이 ‘극단적인’ 수준이며, 총재가 레바논의 외환보유액을 공개하기도, IMF 감시를 받기도 꺼려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는 중앙은행의 경제적 의무와 정치적 독립을 크게 벗어난 방식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모든 내용은 자료에 기록돼 있다. 

 

 

글·앙젤리크 무니에쿤 Angélique Mounier-Kuhn 
기자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Ibrahim Warde, ‘Une banque centrale à la manœuvre 지휘봉을 잡은 중앙은행’, 『Liban, 1920-2020, un siècle de tumulte 레바논, 1920~2020년, 격동의 시기』, <마니에르 드 부아르>, 프랑스어판 174호, 2020년 12월호.
(2) Hajar Alem, Nicolas Dot-Pouillard, ‘Aux racines économiques du soulèvement libanais(한국어판 제목: 파산 위기의 레바논, 반정부 시위로 폭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1월호, 한국어판 2020년 3월호.
(3) Doha Chams, ‘Que tombe le régime des banques 은행시스템의 붕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10월호.
(4) ‘Lebanon Sinking(To the Top 3)’, 『Lebanon Economic Monitor』, <세계은행>, 2021년 봄, www.worldbank.org
(5) Toufic Gaspard, ‘Financial crisis in Lebanon’, <Policy Paper>, 12호, Maison du Futur-Fondation Konrad Adenauer, Bickfaya(레바논), Bonn, 2017년 8월호.
(6) 국제수지는 국가들 간 상품, 서비스, 자본의 흐름을 반영한다. 
(7) 올해 가을,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he-Comté>에 게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