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저급한 후보들’의 틈바구니에서

2021-10-29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똑똑하고 성실하며 ‘윤리적’으로도 훌륭한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이 네 번째 도전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그가 대통령병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불모의 진보 텃밭에 밀알이 되겠다”라는 그의 헌신적 무모함이 ‘짠하게’ 다가온다.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고, 대선에 나서는 목표는 승리지만 이는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는 거대 양당에만 가능한 일이었고, 이번 대선 역시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 대선에서도 흔히 ‘검새’라고 비아냥거림을 받는 ‘법돌이’ 출신들의 후보들이 반(反)지성적이고, 탈(脫)교양적이며, 불량한 애티튜드(Attitude)를 노골적으로 과시하면서 현 정권에 대한 증오와 조롱 외에는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데도 높은 지지율을 보여, 양당체제의 아성은 견고하기만 하다.

유력 후보들의 수준이 민도를 가늠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할수록 ‘어쩌다가 이런 저급한 인물들이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설 수 있게 됐을까’ 싶어 화가 치민다. 전국 학력고사에서 1등을 했더라도, 그 어려운 사법고시에 합격했더라도 꾸준히 공부하고 고민하지 않은 채 중년이 되면 청년들이 경멸조로 질타하는 대상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TV토론장에서 법돌이 출신 후보들이 벌이는 ‘아무말 잔치’를 보시라, 얼마나 민망한 수준인지...

지금까지 심 후보가 보여준 지적·교양 수준과 삶의 궤적은 타당 후보들에 비해 단연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심 후보와 정의당에 냉담하다. 이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고착화한 양당정치의 오랜 폐습 때문일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평소에 지방자치제에 무지했던 후보들이 부산을 찍고, 대구를 거쳐 광주로 달려가는 것은 지역감정을 부추겨 지역패권주의에 편승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영혼 없이 순례지를 돌다 보니, 어떤 후보는 자신이 참배한 민주열사의 이름마저 헷갈리는 웃픈 현실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이런 후보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견고하다. 

심 후보는 왜, 질 것을 알면서도, 수준 떨어지게, 이런 저급한 후보들과 함께 출마한 걸까? 그가 끊임없이 대선에 도전하는 것은 당장 집권이 가능해서가 아니라, 선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의 꿈을 알리고 세상을 바꿀 정치적 공간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다. 2002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공약했을 때만 해도 터무니없는 말로 치부되던 무상급식·무상교육이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 결과로 2004년 총선에서는 10석을 얻었다. 1인 2표제가 처음 도입된 영향이 컸지만, 근본적으로는 진보적 가치와 정책으로 변화를 꿈꾸는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던 것. 심 후보 역시 대선 출마 때마다 “서민과 약자도 잘 사는 나라를 위해, 강력하고 유능한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강한 진보정당만이 시대교체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진보가 강한 정당을 만들고, 강한 진보정당만이 서민의 시대를 열 수 있습니다.”(2007년)

“진보의 목소리가 커지고, 진보정치에 힘이 실리는 만큼, 대한민국은 바뀔 수 있습니다.”(2012년)

“선진복지국가는 대부분 강력하고 유능한 진보정당이 그 사회의 주축 정당입니다. 저는 정의당이 더 강해지는 만큼 우리 정치가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2017년)

“저와 정의당에게 주신 기회는 정의당을 넘어, 제대로 세상을 바꾸자 하는 모든 정치 세력의 힘으로 확정될 것입니다.”(2021년)

  

정의당 경선에서 이정미 전 의원을 상대로 2.24%p 차이로 신승(辛勝)한 심 후보는 당장에 3% 안팎에 불과한 저조한 당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하면서도, 진보적 가치들로 충만한 생활 정치의 비전들을 내놓아 진보당의 존재감을 실감나게 해야 한다. 그가 주장하는 의회중심제, 다당제를 바탕으로 한 책임 연정,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는 데 있어 유용할지 모르지만 당장 취업해야 하고, 월세를 걱정해야 하고, 언제 잘릴까 불안해하는 이들에겐 공허하게 들린다. 

이미 심 후보의 공약집에 이런 ‘생활 정치’의 비전이 준비돼 있다면, 그것을 우선 순위에 올려야 하지 않을까?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