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가 프랑스인들에게 매혹적인 이유

2021-10-29     위베르 프로롱조 l 저널리스트(프랑스 보르도)

문화부가 만 18세 청소년들에게 3백 유로짜리 문화쿠폰 ‘컬처패스’를 지급했을 때,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라플레이아드 총서로 몰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일본 만화로 몰릴 것을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컬처패스는 ‘일본 만화 패스’가 됐다. 그 덕택에, 이미 잘 팔리던 일본 만화는 더욱 잘 팔리고 있다. 일본 만화의 판매를 이끄는 것은 매년 대규모로 열리는 일본 대중문화 축제인 ‘재팬 엑스포’다. 다음 재팬 엑스포는 2022년 7월 14일부터 17일까지 파리 북빌팽트 공원에서 대대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일본 만화의 팬은 18세 이상이 많다. 18세기 일본에서 등장한 일본식 만화는 ‘망가’라는 명칭으로 불렸고, 1996년에 데즈카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으로 프랑스에서 ‘망가’가 본격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일본에서 출판된 『우주소년 아톰』 제1권은 프랑스 글레나 출판사에서 번역출간됐다. 이후 『우주소년 아톰』은 12권이 출간된다.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작은 로봇 아톰의 모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이후 전 세계에서 1억 권이 팔려나간다. 

 

역경을 극복하는 만화 주인공들

애니메이션으로 각색돼 프랑스에 수출된 일본 만화들은 ‘클럽 도로테’ 같은 어린이 채널을 통해 방영된다. 일본 만화의 인기는 한층 높아진다. 1978년부터 방영된 일본 슈퍼 로봇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이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이후 빅토리아 시대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국의 소설을 각색한 애니메이션 <사라 공주>가 방영된다. 그리고 마침내 1990년부터 1996년까지 <드래곤볼 Z>가 방영된다.

부모 세대는 락 음악에, 조부모 세대는 애니메이션에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는 커다란 눈동자를 한 캐릭터들이 싸우는 거친 일본 만화에 익숙하다. “프랑스에서 거둔 일본 만화의 성공 뒤에는 세대교체라는 중요한 현상이 있습니다.” 프랑스 중부 도시 외르에루아르에서 체리시 일본 만화 축제를 기획한 질 뮈르 라보는 “내 또래는 같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랐다”라며, 만화 세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일본 만화의 핵심은 캐릭터들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영웅은 ‘탱탱’과 ‘럭키 루크’지만, 저희에게는 일본 만화 속 캐릭터들입니다. 그들은 독립성과 공격성이 강하고, 분노나 전투 본능에 민감하며 연대의식도 매우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수천 페이지에 걸쳐 알게 된 일본 만화 속 캐릭터들은 우리 세대에게 가족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글레나 출판사의 이나바 사토코 일본 만화 담당 편집장은 “일본 만화는 아동용과 성인용으로 양분됐다”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에는 10대 청소년들을 대중적인 독자층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청소년용’ 일본 만화는 개별적인 시장을 형성했습니다.” 일본 만화의 열렬한 독자인 티모테 쇼사(26세)도 “내 음악과 영화 취향은 부모님과 비슷했지만, 일본 만화는 게임과 같은 나만의 영역이었다”라며,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나만의 영역이었기에 더욱 열광했던 것 같아요. 만화 캐릭터들에게 동화될 때가 많았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그들은 제 친구였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 공감이 된 것이죠. 특히 일본 만화 속 캐릭터들에게 감동 받은 것은 우정과 협력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많은 사람들과 가까워졌습니다. 일본 만화는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해줬습니다. 우리는 일본 만화 파티, 비디오 게임 파티를 하면서 친해졌습니다.” 

실제로 많은 비디오 게임은 교양 소설과 비슷한 전개를 보여준다. 주인공들이 정복, 동지애, 다양한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그림, ‘망가’

일본어로 ‘만화’는 ‘망가(Manga)’다. 일본어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의 ‘망’과 ‘그림’을 뜻하는 ‘가’의 합성어, 즉 부지불식 중에 그린 ‘자유로운 그림’을 뜻한다. 전설적인 우키요에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를 그린 우키요에 작가 호쿠사이(1760~1849)는 자신의 스케치를 가리켜 처음으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 현재 ‘망가’는 일본의 모든 만화책을 포괄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망가’ 즉 일본 만화만의 특징이 있다. 이나바 사토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망가만의 코드가 있죠. 캐릭터들의 눈동자가 크고 둥글며, 표현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망가는 다양한 하위 장르로 나뉜다. 망가 팬들은 포도 재배자들이 페트뤼스 와인과 뉘생조르쥬 와인의 맛을 비교하듯 각 망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이 제국을 세우거나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하는 소년 만화, ‘쇼넨망가’가 대표적인 장르다. 마법의 공 일곱 개를 찾으러 떠나는 모험담은 총 42권의 시리즈 『드래곤볼』에서 펼쳐진다. 『원피스』(1) 혹은 『나루토』도 이와 비슷하다. 소녀 만화인 ‘소죠망가’는 『세일러문』처럼 초능력을 가진 소녀들이 등장하는 마법물, 『후르츠 바스켓』같은 로맨스물 등이 있다. 성인 만화 ‘세이넨 망가’의 경우 매우 다양하다. 다니구치 지로의 『머나먼 고향』이 좋은 예다. 『머나먼 고향』은 마법을 통해 어른이 청소년이 되고, 가족의 운명을 바꾸는 이야기를 담은 걸작이다. 다니구치의 또 다른 망가  『신들의 봉우리』(2)는 최근 영화로 제작됐다. 

H2T 출판사의 디자인 담당 뤼디빈 구에는 “망가와 애니메이션이 연결돼 있다”라고 말했다. “망가와 애니메이션의 관계가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일종의 스토리보드 같은 거죠. 동작이 세분화돼야 하고 장면 컷이 매우 중요합니다. 망가의 내레이션은 기존의 애니메이션과 다릅니다. 망가의 기본 분량을 고려해야 합니다. 망가와 애니메이션의 차이는 영화와 시리즈 드라마의 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만화는 시리즈 드라마에 해당되죠. 심지어는 시리즈가 100권이 넘는 망가도 있는데, 주인공들이 계속 등장하고 최종편에서의 결말은 예술적으로 묘사됩니다.”

 

일본과 프랑스의 ‘소소한 이야기’

망가는 엄연히, 예술의 한 장르다. 예술가의 이름은 표지에 나온다. 뮈르 라보는 “망가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삽화가”라고 말했다. “유명 작가들은 어시스턴트를 두기도 하지만요. 망가는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상업적인 창작물과는 다릅니다.” 놀랍게도 프랑스는 일본 다음으로 망가 독자가 많은, 세계 2위의 망가소비국이다. 뮈르 라보는 “프랑스 문화와 일본 문화는 공통점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두 나라 모두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사랑합니다. 프랑스는 교양 소설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데, 프랑스 교양 소설의 전개방식은 유명한 일본 소년 만화와 유사합니다.”

이런 연결고리 때문에, 프랑스인들에게 망가가 친숙한 듯하다. 프랑스 에트레타트에 있는 ‘클로 뤼팽’은 프랑스 고전 추리소설 『아르센 뤼팽』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저택이다. 클로 뤼팽의 메리세 알릭스 대표는 일본 망가작가 모리타 다카시가 이곳을 방문한 날을 기억한다. 망가 『루팡 3세』에 아르센 뤼팽의 후손이 10여 명의 일본인 관광객과 모리스 르블랑의 저택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리타 다카시와 함께 떠나는 단체여행 상품은 일본에서 1만 유로에 팔렸습니다.” 메리세 알릭스 대표가 회상했다. 30명을 모객했는데, 지원자가 무려 8백 명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망가 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망가 시장은 2010년대에 잠시 슬럼프에 빠졌다가 되살아났고, 코로나19로 인해 반사 이익을 얻었다. 2021년 1월부터 7월까지 2,510만 권의 망가가 판매돼 1억 8,600만 유로의 수익을 올렸다. 1년 동안 100% 이상 증가한 수치다. 2021년 1분기에 H2T는 매출이 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 안에서 즐거움을 찾게 만드는 봉쇄조치, 독자들을 붙잡아두는 시리즈 작품의 분량, 독자의 세대계승 현상 등이 성공 원인으로 보입니다.” 뮈르 라보의 분석이다. 

섬나라를 배경으로 모험, 해적, 보물찾기를 다룬 『원피스』는 일본에서 3백만 부를 찍었고,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며 이제 막 100권이 나왔다. 최고로 잘 팔리는 타이틀은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약 15개의 출판사가 서로 판권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최고 출판사인 글레나, 이어서 다르고(1980년대 후반 미디어 파르티파시옹 그룹에 통합), 끝으로 아셰트와 피카(2007년 아셰트 리브르에 인수)다. 

 

프랑스에서 사랑받은 『신의 물방울』

 

때로는 일본에서보다 프랑스에서 훨씬 인기를 얻은 작품들도 있는데, 『신의 물방울』이 대표적인 경우다. 와인의 세계를 다룬 『신의 물방울』은 프랑스에서 7만 부나 팔렸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소규모 출판사들이 망가 번역출간에 나섰습니다. 아직도 번역되지 않은 망가가 많습니다. 프랑스 만화라면 프랑스 내에서 프로젝트처럼 기획이 되지만, 망가를 수입해 번역출간하는 프랑스 출판사들이 주로 하는 일은 히트작을 키우는 것입니다.” 뮈르 라보가 설명한다. 

H2T 출판사는 망가의 번역 저작권 구입에만 만족하지 않고 독창적인 작품을 내놓기도 한다. 뤼디빈 구이에는 “브라질, 호주, 이탈리아 만화는 일본 만화와는 다른 사회관을 담고 있으며, 풍자와 해학이 풍부하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들 만화는 일본 만화와 다른, 현실적인 이성관계를 보여줍니다.” 젊은 독자들의 열정으로 탄생한 프랑스 차세대 망가 작가들도 등장했다. 10세 때 프랑스로 온 아생(원래 이름은 말라가슈)은 ‘생세베르뒤무스티에’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토목 공학 학사 학위를 받은 아생은 도시의 담벽과 거리를 스케치한다. 그러던 아생은 26세 때 망가 제작을 시작했다. 그는 『원 샷츠(One Shots)』라는 한 권짜리 망가를 SNS에 공유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 한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현재 아생은 출판 속도에 맞춰 한 달에 30페이지의 망가를 제작한다. “오로지 망가에만 몰두하며 금욕적으로 살고 있습니다.”(3)

칼리도 아주 어릴 때부터 망가를 읽었다. 칼리가 읽은 망가는 주로 소녀 만화였다. 칼리는 이야기가 여러 컷으로 전개되는 망가의 방식을 좋아했고, 장편 시리즈를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을 즐긴다. “특히 그래픽 디자인의 역동성에 끌렸습니다. 선은 단순한데 본질을 전하거든요.” 칼리도 처음에 블로그에 망가를 올렸고, 이후 The book edition이라고 불리는 플랫폼인 자가출판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칼리는 직접 편집한 망가 시리즈를 6권째 냈다. 칼리를 알아본 출판사는, 아생을 발굴한 곳이다.(4) “블로그에는 인재들이 모여있습니다. 자가출판은 모든 과정을 혼자 처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그만큼 일이 많습니다.”

다른 많은 작가들처럼, 칼리도 생계를 위해 글쓰기 강의, 아동서 표지 삽화 등의 활동을 한다. “프랑스 만화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프랑스 문화를 해외의 문화 코드를 통해 활용한다는 점이죠.” 칼리의 설명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앙카마 출판사에서 펴낸 프랑스 작가 토니 발랑트의 15권짜리 만화 『래디언트(Radiant)』가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라디앙>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됐다. 

 

 

글·위베르 프로롱조 Hubert Prolongeau
저널리스트(프랑스 보르도)

번역·이주영
번역위원


(1) Eiichiro Oda,『One Piece』, Glénat, Issy-les-Moulineaux. 제98권은 2021년 5월에 출간. 
(2) Taniguchi Jiro, 『Le Sommet des dieux』, Kana, Paris, 총 5권.
(3) Hachin, 『SkilledFast』, H2T, Paris, 2021, 총3권.
(4) Caly, 『Nova』, 제2권, H2T, Paris,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