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단신

2011-10-10     편집부

<능력 창출> 마사 C. 누스바움
사회정의는 어떤 기준으로 정하고 평가할까? 경제발전과 어떻게 연관시킬 수 있을까? 부는 경제성장으로 측정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인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지표라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는 듯하다. 이런 이유에서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1970년대에 ‘능력’을 통한 접근 방식, 즉 개개인이 누리는 구체적인 자유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켰다. 미국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센이 개발한 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책은 정의의 문제를 탐구해보고 아리스토텔레스와 마르크스가 남긴 유산, 그리고 존 롤스처럼 평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자들이 남긴 유산을 조명한다.  또한 능력을 고려하는 일이 어떤 점에서 공리주의나 신자유주의 이론과 거리가 있는지 알아보고, 평등·자유·웰빙 같은 사회문제에 고민하도록 이끈다.

<수업 끝> 존 마시
부제는 ‘불평등에서 벗어나는 법을 왜 가르치고 배울 수 없는가’이다.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지성지로 꼽히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에서 불평등을 야기하는 원인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생산공장 이전, 이민, 고소득자의 소득이다. 이런 이유는 우리가 반드시 관심 가져야 할 문제인 교육을 등한시하게 만든다”고 2004년 발표했다.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대학교수인 저자 존 마시는 불평등을 해결하는 교육이 새로 나온 주장은 아니라고 한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박애주의자와 사회학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내세웠다. 이는 가난이 가난한 사람들의 탓이라고 교묘히 책임을 전가하는 논리이기도 했다. 결국 교육이 세상을 바꾸려는 과거의 과감한 시도(노동운동·사회투쟁 등)를 오히려 묻어버렸고, 학교는 사회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혼자 짊어지기만 할 뿐 정작 제 역할을 못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가 불평등을 예방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알자지라> 클레르 가브리엘 탈롱
카타르의 위성방송이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과 아랍권으로의 혁명 확대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바로 <알자지라>다. 하지만 <알자지라>는 여전히 베일에 싸인 언론으로 많은 궁금증을 낳고 있다. 특히 <알자지라> 설립자인 카타니 가문의 전략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궁금증이 일고 있다. 어마어마한 미군기지를 세우고 이스라엘과 개방적 관계를 맺으면서 동시에 헤즈볼라와 시리아를 지원하는 이 막강한 가문이 어떻게 아랍 민중의 열망을 대변해주는 방송을 만들게 되었을까? 클레르 가브리엘 탈롱은 <알자지라>와 칼리파 왕조의 내분 관계, 이것이 왕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이런 갈등이 오히려 <알자지라>의 진정한 다원화를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다. <알자지라>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전제군주 가문이 세웠지만 이제는 아랍 지역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주로 서구의 저널리즘을 비판하는 민주주의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위키리크스의 진짜 이야기> 올리비에 테스케
뉴스 사이트 ‘Owni.fr’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저자는 일찍부터 ‘위키리크스’에 관심을 가져왔다. 위키리크스는 이라크전쟁의 비밀과 미국 대사관의 외교 기밀 문서를 폭로한 뒤 미국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PDF 파일로만 발행되는 이 책은, 위키리크스의 역사와 경영 원칙을 다룬다. 위키리크스의 창시자인 줄리언 어산지는 암호를 해독할 수 있고, 기존 미디어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그가 몰락한다 해도 제2, 제3의 어산지는 계속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