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통해 권력 강화하는 오르반 총리
헝가리의 기이한 정치
헝가리 민간 재단은 정부의 뜻에 따라 수십억 유로 가치의 공공자산 및 대학 대부분을 장악했다. 이 같은 신종 민영화 수법을 통해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국가의 재산을 산산 조각내어 측근 손에 쥐어주는 동시에 학계 및 문화계에 대한 영향력의 기반을 마련한다.
헝가리 사업가 언드라시 톰보르와 그의 부친 벌라주 톰보르는 상당한 금융수익을 거둔 직후인 1996년, ‘마티아스 코르비누스 학교(Mathias Corvinus Collegium, 이하 MCC)’를 설립했다. 기독교 보수파인 그들 부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토론과 비판정신을 장려하는 명문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비록 초반에 단순한 기숙학교 수준에만 머물렀던 MCC는 이후 성장을 거듭해, 이제는 부지를 늘려야 할 정도다. 한편 부다페스트에는 (프랑스 문화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벌러시(Balassi)문화원이란 교육기관이 있다. 다뉴브 강을 굽어보는 겔레르트 산 위에 자리한 이 문화원의 단출한 건물은 곧 허물어질 예정이다. 그 자리에는 향후 2025년까지 새 사무국이 들어선다.
톰보르 가에서 대학 및 문화사업 재정을 마련하고자 설립한 티허니(Tihanyi)재단은 다수의 공공재산을 취득한 뒤 일종의 자산경영 회사가 됐다. 정부는 이 재단에 국가의 막대한 부동산을 무상으로 넘겨줬을 뿐 아니라 우량 국영기업의 지분까지 양도했다. 헝가리 최대 정유 및 가스 회사 몰(Mol)과 굴지의 제약회사 게데온 리히터(Gedeon Richter) 지분 10%가 재단 쪽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2020년 한 해 동안만 5,000억 포린트(약 14억 유로) 상당의 정부 자산이 재단 쪽으로 이전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1) 이는 2019년 헝가리의 27개 공공 고등 교육기관 전체의 누적 예산을 상회한다. 그 후 티허니 재단에서는 고급 부동산에 투자해 벌러톤 호수의 레브 퓔뢰프 요트 항, 기외르에 위치한 호화 시설, 데브레첸의 랜드 마크인 어러니비커 호텔 등을 인수했다.
‘파일럿 피쉬’가 된 티허니 재단
극보수 압력 단체인 티허니 재단은 빅토르 오르반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2015년에는 이민 관련 연구소도 설립했는데, 이곳의 소장인 벌라주 오르반은 - 총리와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 의회와의 교류를 담당하는 총리 사무국 정무차관 중 한 명이다.(2) 뿐만 아니라 재단 측은 헝가리 출판시장의 대표 기업 리브리(Libri)자본의 25%를 취득함으로써 문화 분야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했다. 이와 동시에 MCC는 진정한 고등교육기관으로 성장하며 헝가리에서만 1만 명 이상의 학생을 유치하고 부수적으로 이웃 국가(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세르비아 등)의 헝가리 소수민족까지 끌어들일 예정이다. MCC의 졸탄 슈절러이 교장은 핵심적인 각종 연구사업을 관할할 뿐 아니라 보수 주간지 <멍디네르(Mandiner)>까지 운영하고 있다.
티허니 재단은 헝가리의 환골탈태를 위해 (먹잇감이 있는 곳으로 상어를 인도하는) ‘파일럿 피쉬’ 역할을 했다(해당 재단은 2020년 6월 ‘마티아스 코르비누스 학교MCC 재단’의 설립과 동시에 사라졌다). 2019년 3월, 헝가리 정부는 국내 최초의, 전례 없는 법적 지위를 신설했다. ‘신탁 재단’이라는 이 법인격은 “공공 서비스를 담당하는 공익 목적”의 조직체로 정의됐다. 지난 4월에는 이런 형식의 재단 32개가 신설됐는데, 각 재단에 투입된 공적 기금만 해도 170만 유로에 달한다. 모두 정부 자산의 운영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었다.
이 재단들은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성관이나 부다페스트 중심에 있는 궁전과 극장, 다뉴브에 있는 섬의 절반, 그 외 각지의 부동산 등 상당한 규모의 공공자산을 최소한의 비용 지급도 없이 손에 넣었다. 비판적 독립 언론에서는 이런 ‘선물’의 규모를 수십억 유로로 추산한다.(3) 하지만 정부는 모든 민영화 의혹을 부인한다. 해당 자산이 민간 개인에게 이전될 수 없으며, 오직 ‘공익’만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정부가 ‘선매수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헝가리 법조문 상에서 이 새로운 조직체인 신탁재단은 “정부에 독립적인 기관”으로 정의된다. 현 정권의 속셈을 교묘히 감춰주는 문구다. (2018년 총선 이후 국회를 장악한 헝가리시민연합당 ‘피데스Fidesz’처럼) 오직 국회 의석의 2/3를 차지한 여당만이 그 법적 지위와 할당 업무를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재단을 관리하는 감독위원회 역시 정부와 무관하지 않다. 5인으로 구성된 이 감독위원회의 최초 위원을 기술혁신부에서 임명하는 까닭이다. 그 후임자 역시 전임자가 임명하는 방식이다. 재단 전체에 대한 규제 업무는 새로이 신설된 기관에서 맡는데, 해당 기관을 이끌 대표 또한 총리가 9년 임기로 지명한다.
누가 감독위원이 될 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 정권의 측근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즉, 현직 장관이나 친 여당 쪽 기업인 및 학계 인사가 내정될 전망이다. 지난 4월말 코수트 라디오(Kossuth Rádió)의 주간 연설에서 오르반 총리 역시 이 자리에 “헝가리 국민과 같은 구상을 공유한 사람을 임명할 것”이라면서 ‘세계화’나 ‘국제화’ 성향의사람들은 분명히 배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당인 피데스는 2016년에 이미 헝가리 중앙은행 보유 자산을 이 같은 형태의 재단 쪽으로 이전하려 한 바 있다. 당시 러요스 코서 피데스 당 의원은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주 간단하다. 내가 개인 투자자라면, 내가 투자한 돈은 이를 한 재단에 투자하는 순간까지만 내 소유다. 투자 이후에는 내게 그 돈에 대한 어떤 권리도 없다. 돈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기는 것이다. 그게 바로 재단이란 곳의 원칙이다.” 2016년 3월, 헝가리 헌법위원회에서는 이런 식의 자금 운용 체계가 헝가리 기본법과 전적으로 배치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2020년 12월, 이런 장애물을 우회하기 위한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제 ‘공적 자금’의 개념은 정부의 수입과 지출, 채권으로만 한정되며, 이로써 이 새로운 ‘신탁 재단’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는 물꼬가 트인다. 이에 (2022년 봄 총선을 오르반에 반대하는 국민투표로 만들기 위해 의회 6개 정당이 결성한) 야당 연합 측은 공동성명을 내며 격렬히 반발했다. “여당과 소위 ‘기독 민주’ 세력이 나랏돈을 유용하기 위한 꼼수를 마련했으며, 공적 자금을 퍼부어 몰래 기업과 재단을 키우려는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이에 신규 재단들이 설립된 지난 4월, 야당 연합은 “2022년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 두려운 오르반 정부가 그 하수인을 위해 공공자산을 횡령하고 있다”며 헌법위원회의 중재를 호소했다.
보코니(Bocconi) 대학 사회과학정치학부의 연구원 가보르 셰이링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분명히 정치적 의도가 있다. 피데스 파들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문화적 패권 장악을 위한 싸움의 일환이다. 문화 분야에 있어 오르반은 그동안 항상 자유주의 엘리트 세력으로부터 배제돼 왔기 때문”이다. 사실 2018년, (‘자유로운’ 투표였지만 유럽 안보협력조직 참관인에 따르면 ‘비형평적’이었던 선거를 통해) 3연속 집권에 성공했을 당시에도 오르반 총리는 자신의 정치색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혔다. “민족과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정치 질서 안정화의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 2018년 선거에서의 승리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기 위한 기회다. (...)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문화적 시대에 걸맞은 정치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 우리는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4)
오르반 총리가 이 같은 ‘한’을 품게 된 역사는 예기치 않은 실정으로 마무리된 첫 임기 때(1998-2002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데스 창당위원 중 하나로 2010년 이후 국회의장을 맡고 있는 라슬로 쾨베르 역시 “우리가 비록 정부는 장악했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쥔 것은 아니었다”며 몇 년 후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패권 다툼에 대한 의지를 공공연히 내비치는 오르반 총리는 6월 10일 기자회견에서도 헝가리 100대 부호 목록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 중 80% 이상이 좌파 쪽 사람들이라며 “균형점을 찾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가보르 셰이링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다분히 왜곡된 주장이다. 이젠 최대 부호의 상당수가 적극적으로 여당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최대 부호 100인들 중 야당지지자는 기껏해야 5~6명이다. 현재 야당 세력은 힘을 잃었다.”
교육 민영화의 상징적 사례, 코르비누스 대학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고등교육 분야에서 나타났다. 이를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코르비누스 대학이다. 칼 마르크스 경제대학을 전신으로 한 이 대학은 - 동명의 코르비누스 학교KCC와는 관련이 없지만 - 2019년 여름 마에케나스 우니베르시타티스 코르비니 재단이 장악해 뒤흔들어놓았다. 해당 재단 또한 정유 기업 몰과 제약회사 리히터 각각에 대한 10% 비율의 자본 참여와 더불어 임시로 설립된 기구였다. 불과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21개 고등 교육기관이 이처럼 정부 주도로 신규 재단의 손에 넘어갔으며, 부다페스트에서는 이제 단 네 개 대학만이 기존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지방에서는 모든 대학이 신규 재단으로 인수됐고, 예외가 있다면 에게르의 카롤리 에스테르하지 대학 정도지만 이곳은 대신 가톨릭교회에 양도됐다.
고등교육을 주관하는 기술혁신부에서는 이와 관련한 우리의 질문에 대해 ‘경쟁력’ 논리를 내세웠다. 정부의 이런 행보가 오직 ‘경쟁력 추구’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라슬로 팔코비치 기술혁신부 장관은 이 새로운 형태의 재단들이 “공공 서비스를 담보할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형태로서, 앞으로 수십 년 간 헝가리의 경쟁력과 더불어 장기적인 안정성을 확보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3년 전 코르비누스 대학의 조직 재편 때 이미 대학 모델의 변화가 시작됐고, 당시 이는 그렇게 극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각 대학 총회(학생 및 교수가 선출하는 기구로, 교내 생활을 규제하는 기구)가 자유롭게 대학 모델을 변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부 시책에 대해 본격적인 저항을 보인 곳은 부다페스트 연극영화예술대학이었다. 2020년 개강 당시 학생들은 10주 가까이 캠퍼스를 장악했다가 코로나19에 따른 보건 조치로 강제 해산된 후에야 비로소 점거를 풀었다. 주요 대학에 대한 법적 지위 변경과 교묘한 민영화 조치는 모두 헝가리가 코로나 19로 기록적인 사망률을 보이던 보건 위기 사태가 한창일 때 이뤄졌으며, 당시 모든 집회와 시위는 금지된 상태였다.
12년 간 권력을 독식해온 피데스 당은 처음으로 야당 연합의 도전에 직면한 내년 총선에서 패배를 예상한 것일까? 설령 선거에서 여당이 지더라도 피데스 측 고위 공무원들의 구명 장치는 이들 재단에 차고 넘친다는 게 야당 쪽 설명이다. 해당 재단들은 여당 인사들의 마지막 보루로서 차기 정부 활동을 약화할 수 있으며, 나아가 재집권을 노릴 수도 있다.
변호사 안드라스 쉬페르는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경우, 신임 정부가 연립 내각 체제로써 권력을 나눠가져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결국 “내부에 균열의 틈이 깊숙한 내각이자 오르반 총리가 주도하는 정부가 될 것”이다. 자유주의생태당의 창립자이자 전 소속 의원인 안드라스 쉬페르는 민족주의 우파의 이득을 위해 공공자산을 대거 이전하는 것이나, 과거 1989-1990년 정권 교체기 당시 경제정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구 공산권 특권 계층이 대대적으로 재산 이전을 했던 것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뉴브 강변의 초현대적 수도원 외양을 한 대규모 캠퍼스에서 헝가리 민족주의 보수 세력의 신진 엘리트 계층이 양성된다는 사실은 여당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MCC 운영 사업에 대한 우선 투자 지위도 부여했는데, 이로써 MCC는 통상적인 도시 계획 규정을 뛰어넘어 사업을 벌일 수 있게 됐다. 결국 신규 재단들에 대한 정부의 통제권 덕택에, 오르반 총리는 정부 밖에서도 얼마든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글·코랑탱 레오타르 Corentin Léotard
<쿠리에 듀로프 상트랄(Courrier d’Europe centrale)> (중유럽권 뉴스를 보도하는 불어권 온라인 언론사) 주필
토마 라피트 Thomas Laffitte
<쿠리에 듀로프 상트랄(Courrier d’Europe centrale)> 기자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Telex, 2021년 1월 15일, https://telex.hu
(2) 벌라주 오르반은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가 곧 이런 동의 의사를 철회했다.
(3) Czinkóczi Sándor, !!444!!!, 2021년 4월 27일, https://444.hu (헝가리어 사이트).
(4) 빅토르 오르반의 발라뇨시(트란실바니아) 하계 연수 연설, 2018년 7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