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선’이 남긴 것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나는 어떤 후보(들)의 품격 떨어지는 언행을 지켜보며 이 땅의 정치지도자 수준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고대 그리스의 제비뽑기가 해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40세 이상, 전과 없고, 중대범죄 연루 사실 없으며, 건전한 상식을 지닌 사람을 대상으로 제비뽑기 추첨에 의해 5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 지도자를 찾는다면, 지금의 후보들보다 훨씬 나은 인물을 뽑을 수 있지 않을까? 30대로 연령대를 낮춰도 어쩌면 지금 후보들보다 훨씬 스마트하고 참신한 인물을 지도자로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제비뽑기를 하면 내 옆의 직장동료가 어느날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내게도 그럴 기회의 날이 올 수 있겠군’하며, 은근슬쩍 대통령의 꿈을 꿔본다.
자동차 범칙금만 나와도 가슴이 쿵당거리고, 세금을 조금만 늦게 내도 자신이 사회질서를 해치는 범죄자처럼 느껴지는 게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이지만, 대선 후보들의 삶은 대단히 초현실적이다. 특히 유력후보일수록 언행이 뻔뻔할 정도로 불일치하고 부도덕하며, 위압적이고 폭력적이다.
그 중에서도 더욱 볼썽사나운 것은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을 하루아침에 박차고 나와서, 한때 자신이 비난했던 상대 진영에 들어가 공격수로 맹활약하는 철새 정치인들의 과잉 출현으로 정당정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점일 것이다. 경망스럽고 아둔한 자를 일컬어 흔히 '새대가리'라고 일컫지만, 아무리 철새라고 해도 해마다 오가는 하늘 길은 일정하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지금의 투표제도에서는 당락이 후보들의 뻔뻔함과 언변의 유창성, 파벌과 지역성을 기준으로 결정되기에 민주적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후보의 도덕성과 자질, 능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을 거머쥐어 자신들의 허물을 땅에 묻을 수도 있고, 상대방의 없는 죄도 만들 수 있다고 믿기에 무책임한 발언이 쏟아진다. 상대 진영에 대해 (청산해야 할) 좌파세력, 적폐세력, 히틀러와 파시스트, 북한과 손잡은 공산주의 세력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비록 선거유세 발언이라 하지만, 정도를 한참 벗어난다.
어디 이뿐이랴. 듣기에 민망스럽게도 수없이 많은 허위사실과 외국인, 여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과 억지논리가 마구 쏟아진다. 선거가 끝나면 자신들의 오발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기면 상대방의 허위사실만 응징하면 되는 거고, 지면 정치탄압이라고 우기면 될 일이다!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의 정치상이 요즘의 한국 정치상황과 흡사했던 듯하다. 직선제라는 걸 시행해보니, 돈많은 자들이 매표를 하질 않나, ‘말빨만’ 쎈 자들이 감언이설로 유권자들을 현혹시키질 않나, 파벌주의자들이 선거를 독점하질 않나... 그래서 고민 끝에 나온 것이 제비뽑기다. 제비뽑기는 최소한의 시민자격을 갖추면 루시 엘벤(1)의 말마따나, 누구에게나 공직진출의 기회를 보장하는 ‘이소노미아(Isonomia)’(2) 실현을 위해 고안된 제도라 할 수 있다.
제비뽑기가 더 민주적일 듯
성인이 된 아테네의 자유시민은 누구나 공직에 오를 수 있는 이 제도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직을 운명으로 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적이고, 투표로 선출하는 것은 과두주의적으로 간주된다”라며, “같은 사람이 피지배자도 되고 지배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한 형태”라고 평가했다. 우리 사회에 제비뽑기를 도입하면 파벌주의, 부정부패, 상류 정치계급의 형성위험을 낮출 수 있다. 또한, 끝없는 흑색선전에 종지부를 찍으며, 선출된 공직자는 무엇보다 평균적 민의의 반영과 더불어 좀 더 형평성 있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꿈같은 허망한 이야기인가? 최근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대선의 난장판을 보지 않았는가? AI로봇이 광고의 CF모델, 가수, 영화의 주연배우로 나서는 마당에, 대통령과 정치인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인간보다 훨씬 더 도덕적이고, 깔끔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AI 대통령보다는 제비뽑기로 뽑은 대통령이 ‘인간적’이기는 할 것이라는 기대를 접기 어렵다.
대통령선거에서 무조건 당선만 되면 된다는 식으로 온갖 요설과 흑색선전들이 난무한다. 정치판이 마치 당첨만 되면 팔자를 바꿀 수 있는 로또복권 판매대보다 사행성이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나마 로또복권은, 누구에게나 ‘민주적으로’ 기회가 주어지기는 한다는 점에서 정치판보다 낫다.
대선판이 죽기살기, 이판사판으로 변질되는 것은 다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선거가 끝나면 정치판이 정상화될 수 있을까?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 Lucie Elven, ‘La Loterie britannique, vendre du rêve et vider les poches 민주주의라는 허상을 뒤집어 쓴 영국의 복권사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2월호.
(2) 그리스어로 ‘정의(Justice)’라는 의미를 지니며, 지배가 없는 상태 즉 법 앞에서의 평등, 권리의 평등을 뜻하며, 민주주의와 비슷한 의미로 통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