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기후변화로 새로 쓰는 24절기 - 8월 입추 처서
입추는 태양의 황도상 위치로 정한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다. 양력으로 8월 8일이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다. 이날부터 입동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지만 옛말이 됐다. 8월 초의 찜통 날씨로는 도저히 가을을 느낄 수 없다. 기상청이 100년간의 기후변화로 산출한 새로운 입추는 8월 20일이다. 게다가 올해는 장마가 오락가락하면서 국지적으로 비를 꽤 뿌렸다. 하지만 이 시기는 벼가 익는 때라 비가 많이 오면 농부들은 애가 탄다. 벼가 제대로 영글지 못할까봐 그렇다.
마른 섬진강을 가다
어느 날 후배에게 전화를 받았다. 섬진강을 가자고 한다. 그것도 보트를 타고 남원에서 하동까지 물길을 이용해서 말이다. 전에 동강에서 레프팅도 해보고, 4대강 개발을 반대한다며 금강에서 보트 시위도 해봤지만 조금 떨렸다. 일단 거리가 좀 된다. 남원 요천과 섬진강이 만나 남쪽으로 진행하는 곡성의 동산리에서 출발하면 구례까지 30km, 하동까지 60km, 하구의 망덕포구까지 73km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내 체력상 견적이 안 나온다. 과연 갈 수 있을까?
사실 섬진강에 관심을 둔 것은 꽤 됐다. 가야사를 공부하면서 전북 지역에 대가야의 소국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면서 덩달아 고대 문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특히 남원 일대는 섬진강을 이용해 일본으로 진출하는 주요 통로로, 대가야와 백제가 쟁탈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섬진강을 수로로 이용하는 배가 전무하니 그저 옛이야기가 됐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그래서 현실적인 체력은 무시하고 떠나기로 했다. 이른 아침에 보트에 바람을 넣고 호기롭게 출발할 때는 좋았다. 하지만 명목상의 입추였던 그날, 날씨는 그야말로 폭염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노를 저어도 보트는 느리게 전진할 뿐이다. 거센 강물에 쏜살같이 떠내려가는 레프팅을 상상했건만 섬진강의 수심은 너무 얕았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하상계수’가 높다고 하는데, 특히 섬진강이 가장 유량이 많을 때와 적을 때 큰 차이가 난다. 아마도 지금의 섬진강처럼 하상계수가 높았을 것 같지는 않지만, 고대에도 역시 물때를 맞춰 하류로 내려가거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을 듯하다. 우리는 얕은 여울에서는 보트에서 내려 밀고 가야 했고, 보에서는 아예 들고 다녔다. 하지만 구례가 나타날 때쯤에는 강폭은 무지 넓어지고 물은 잔잔해 호수 같다. 노를 저어야만 겨우 앞으로 가니 이런 폭염에 정신이 혼미하다.
그런데 딱 2년 전인 2020년, 섬진강을 끼고 있는 남원과 구례 등에는 ‘500년 빈도’라는 대규모 물난리가 났다. 8월 7~8일 이틀 동안에만 340mm의 장대비가 내렸다. 바로 전에 내린 것까지 합하면 600mm가 내려 섬진강댐의 저수량 140%를 넘겼다. 요즘 이 지역에서 한해 950mm 정도의 비가 내린 것으로 볼 때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환경부 기후변화센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지구온난화와 도시화 영향으로 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했다.
그 영향으로 여름철 태풍과 갑자기 들이닥치는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급격히 늘었다. 1980년대 60회였던 연간 집중호우 횟수는 1990년대 70회, 지난 2011년 133회로 껑충 뛰었다. 폭우가 내리는 날은 길어지는데 도시화 산업화가 지속 되면서 하천변 저지대를 개발해 침수 면적은 줄고 불투수 면적은 증가했다. 어찌 보면 홍수를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더해 인간들의 준비 부족까지 겹친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내려왔지만, 전체 구간의 절반 정도인 구례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한밤중까지 노를 젓는다면 하동까지는 가겠지만, 이미 체력이 바닥나 버렸다. 오래전 하동에서 남원을 섬진강으로 돌아다녔을 사공들을 생각하면 그들의 노고가 참으로 대단했다 할 만하다. 내 평생 가장 더운 입추를 섬진강에서 겪었다.
영동에서 만난 처서와 포도
입추 다음 절기인 처서는 원래 날짜 8월 23일보다 늦은 31일에야 나타난다. 이때쯤 돼야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이 온다는 것을 느낄 만하다. 햇빛도 누그러져 더 이상 풀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벌초를 해준다. 또한, 습도가 낮아져 밖에 옷이나 책을 말린다.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기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고 했다. 처서의 서늘함 때문에 파리, 모기의 극성도 사라져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때쯤이면 과일도 출하되기 시작하는데, 그중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이 포도다. 원래 한로쯤 돼야 포도를 땄다고 했는데, 요즘은 영동 등 대표적인 산지 기준으로 처서면 수확을 한다. 외지인들을 위한 포도 축제도 이때 열린다.
충북 영동은 감과 복숭아, 포도가 유명한데 그 재배 역사가 600년을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과일 명소다. 특히 요즘은 포도가 가장 유명해 전국 생산량의 15%를 담당한다. 포도가 많으니 당연 와이너리도 있을 법한데, 전국 약 200개 와이너리 중에 40여 개가 영동에 있다. 과거에는 당도가 낮은 식용 포도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외국 품종이나 품종 개량을 통해 만든 신종 포도로 와인을 빚고 있다. 그래서 영동군은 “미래 100년은 와인이 책임진다”라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영동의 와인 재료인 달콤한 과일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다. 영동의 복숭아, 자두, 베리, 포도는 2040~2050년까지 재배가 늘다가 이후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재배지가 강원도 이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한라봉 재배지가 제주에서 전남 고흥과 나주 등으로 북상하고, 사과 주산지가 대구에서 훨씬 북쪽인 강원 영월과 평창 등으로 대체됐다. 조만간 북한에서 사과나 포도를 수입하는 시대를 맞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점차 사라지는 과일의 자리를, 열대 작목이 빠르게 채우고 있다. 용과는 물론이고 파파야, 구아바, 애플 망고, 파인애플, 바나나, 패션프루트, 아테모야, 아보카도 등의 열대 과일을 한국 농부들이 키우고 있다. 제주는 올리브 노지 재배에 성공했고, 남북회귀선에서나 볼 법한 커피나무까지 하우스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물론 와인 양조장은 과일의 생산지와 지리상 떨어질 수도 있다. 과일을 들여와 좋은 와인을 빚는 노하우를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하지만 직접 과일을 생산하는 방식에 비해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영동의 사례가 기후변화의 바로미터가 아닐까 한다.
영동의 포도 와인은 국내에서 외국산과 비교 가능한 거의 유일한 와인이다. 특히 저장 동굴에서 즐기는 와인 여행은 영동만의 매력이다. 먼 곳까지 배나 비행기로 여행을 해야 하는 수입산 와인대신 국산 와인을 애용하는 것도 지구적인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는 작은 실천이다. 충북 산간에 둘러싸인 영동의 쌀쌀한 저녁은 벌써 가을이 문턱에 와있음을 알려준다.
처서는 와인 한잔이 썩 잘 어울리는 절기다.
사진/글·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논픽션 글을 쓴다. 우리 땅 변경을 기록한 사진으로 2015년 <일우사진상>을 수상했고, 『파미르에서 윈난까지』(현암사)는 2011년 올해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늘 기록은 힘이 세다 믿으며 예술노동자로 산다. 지금은 비정규노동센터의 이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