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미워한 천재 감독
유명 영화감독 프리츠 랑의 글을 모아 2007년 재발행한 책의 서문을 쓴 알프레드 에벨은 “프리츠 랑에 대해서는 거의 다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도 프리츠 랑에 대해 할 이야기가 남아 있다. 베르나르 아이젠쉬츠는 <프리츠 랑 작품집>(1)을 통해 프리츠 랑의 인생과 작품을 분석한다. 프리츠 랑은 5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프리츠 랑에 대한 자료는 워낙 많아 그 방대함 앞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아이젠쉬츠는 <프리츠 랑 작품집>에서 프리츠 랑의 다양한 성격을 흥미롭게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리츠 랑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신랄한 입장이었지만, 정작 그는 미국 시민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상업영화가 판치는 영화계에 실망했다.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기계화된 미래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결을 그린 걸작이다. 1927년 1월 10일 베를린에서 처음 상영됐다. 검열을 거쳐 35분 분량의 장면이 삭제된 <메트로폴리스>는 그해 8월 5일 배급 허가를 받는다. 삭제된 장면이 복원된 것은 약 반세기가 지나서다. 메트로폴리스 전시회에 가보면 프리츠 랑이 1934년 이전에 만든 영화에 특별히 프랑스가 찬사를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프리츠 랑이 프랑스에서 진정으로 첫 성공을 거둔 영화는, 1933년 4월 파리에서 개봉된 <마부제 박사>다. 어느 미치광이가 의사에게 최면을 걸어 갱단 두목으로 훈련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완벽한 기술과 탄탄한 구성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로부터 1년 뒤, 프리츠 랑이 1933년 7월 나치 독일에서 탈출해 파리로 망명한 뒤 파리에서 촬영한 유일한 영화 <릴리옴>은 지나치게 독일적이라는 이유로 영화사들에 의해 3분의 1이 잘려나갔는데, 어찌됐든 관객에게는 큰 인기를 모았다.
‘영화의 천재’ 프리츠 랑이 프랑스 평단에서 만장일치로 인정을 받은 것은 1960년대에 들어와서다. 마침내 그는 1964년 칸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감독이 칸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글 / 리오넬 리샤르 Lionel Richard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
(1) 베르나르 아이젠쉬츠, <프리츠 랑 작품집>, Cahiers du cinéma éditeur, Paris,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