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에서 교묘히 재미 보는 프랑스
베오그라드 광역 지하철 사업
지난 4월 재선에 성공한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의 ‘줄타기 외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층 까다로워졌다. 부치치 대통령은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러시아를 제재하진 않는다.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중국과 유럽의 비위를 절묘하게 맞추고 있다. 프랑스 기업은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한다. 일례로 베오그라드의 지하철 건설 사업을 들 수 있다.
2019년 7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찾았다. 18년 만에 성사된 프랑스 대통령의 세르비아 공식 방문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유럽연합(EU) 담당 장관이었던 나탈리 루아조는 서부 발칸 국가들을 가리켜 “프랑스 외교의 사각지대”라고 표현했다. 프랑스는 이 방문을 통해 해당 지역에 대한 투자를 재개할 의사를 드러냈다.
프랑스 대기업 총수들이 포함된 대표단과 동행한 마크롱 대통령은 “친애하는”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에게 “소원해진 양국 관계를 되살릴 것”을 약속했다. 부치치 대통령은 앞서 2018년 파리를 방문해 “뱅시(VINCI)가 베오그라드 공항 사업을 진두지휘할 것이다. 수에즈(SUEZ)는 베오그라드 주요 도시 사업을 관리할 것이다. 알스톰(ALSTOM), 에지스(EGIS)와는 베오그라드 지하철 건설 사업을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인구는 170만 명, 국가 전체 인구의 1/4에 달한다.(1) 그럼에도 베오그라드에는 지하철망이 없다. 유럽에서 지하철망을 갖추지 못한 대도시 중 하나인 것이다. 세르비아는 1923년 처음 계획을 수립한 후, 여러 차례 지하철 건설 사업을 추진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베오그라드 운송 시스템에는 근본적인 구조의 혁신이 필요하다. 자동차 사용을 억제하고, 인프라의 노후화에 대처하기 위함이다.
2011년, 알스톰은 10억 유로를 들여 2017년까지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세토로루트(Scetauroute) 그룹의 후신인 프랑스 엔지니어링 회사 에지스는 당시 프랑스 정부의 민간부문 연구 및 원조 기금에서 380만 유로를 기증받아 이 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2012년, 세르비아의 정권 교체로 상황이 바뀌었다. 세르비아 진보당(SNS) 대표, 부총리, 총리(2014년)를 거쳐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2017년)된 알렉산다르 부치치는 인프라 분야를 중국 투자자들에게 개방했다.
2019년 4월, 중국 정부는 중국 최대 고속철회사인 중국 중처그룹(CRRC)을 통해 베오그라드 지하철 1·2호선을 ‘턴키(Turnkey)’ 방식(일괄 수주계약 방식)으로 건설해 인도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이 사업의 실행을 위해 세르비아는 중국전력건설(Power China)과 협력의정서를 체결했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세르비아 국영방송국 <RTS>의 경제 전문 기자 아니카 텔레스코피비치는 “이 모든 것은 부치치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부합한다. 두 의자 사이에 걸쳐 앉는 노선을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세르비아를 방문한 것은, 중국과의 협력의정서 체결 3개월 후였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기업들도 베오그라드 지하철 사업 참여를 재개했다. 프랑크 리에스테르 프랑스 대외무역 장관은 2020년 11월 베오그라드에서 ‘우선 사업’에 대한 정부간 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의 이행을 위해 세르비아 의회는 전략적 사업 자금조달에 대한 특별법을 채택했다. 지하철 건설은 이 사업들 중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니카 텔레스코비치는 “이 특별법으로 공공조달 관련 일반법을 우회해, 경쟁입찰 없이 직접 협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라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830만 유로를 출자해 에지스에 신규 타당성 조사를 일임했다. 부치치 대통령은 베오그라드 지하철 1·2호선 건설 총 사업비가 “최소 44억 유로”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에지스는 좀 더 장기적인 계획인 3호선까지 포함해 총 사업비를 약 60억 유로로 추산했다. 이는 발칸반도 역대 최대 규모의 인프라 투자로 세르비아 공공 부채의 상당한 증가를 의미한다.
3배로 늘린 비용, 60%가 알스톰에
철도차량의 종류도 수정됐다. 이전 계획들에서 고수했던 노면전차와 경전철 대신, 비용이 훨씬 더 드는 전 구간 지하철로 바뀐 것이다. 도시 교통 전문가 블라디미르 데폴로는 “정말 기막힌 발상이다. 비용이 3배나 더 드는데, 총 사업비의 60%가 알스톰에 돌아간다”라고 털어놓았다. 데폴로는 베오그라드 시청 지하철 사업 책임자로서 에지스와 함께 이전 계획 수립에 참여했다. 2021년 1월 22일, 세르비아, 프랑스, 중국은 베오그라드에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3자 협력체제를 공식화했다.
알스톰은 운송 시스템을, 중국전력건설은 건설을 맡았다. 세르비아는 프랑스에서 1호선 철도차량 및 장비 구매자금을 조달하고자, 프랑스 재무부와 프랑스 공공 투자은행의 수출보험 자회사인 비피아이프랑스(BPIfrance)로부터 4억 5,400만 유로를 차입했다. 당시 필리프 델뢰르 알스톰 부사장은, “자사는 전기공학 시스템만 담당하며 다른 분야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2021년 2월 초, 세르비아 대표단이 파리를 방문해 미래의 지하철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2014~2018년 베오그라드 시장을 역임한 시니샤 말리 재무 장관은 “베오그라드 시민이 철도차량 모델을 결정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프랑스의 에지스 엔지니어들은 사업 발주사인 베오그라드 지하철·철도공사(Beogradski metro i voz)가 지척에 있는 도심에서 일하고 있다. 이 세르비아 국영기업의 최고경영자 스탄코 칸타르는 에지스 엔지니어들에게 1호선 노선의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그 결과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사바 강 양안을 연결하는 대신 강의 우안만 지나가도록 노선이 수정됐다. 인구 대부분이 거주하는 주요 지역은 노선에서 제외됐다. 반면, 아직 인구밀도가 낮은 두 개의 지역을 잇는 새로운 노선이 탄생했다. 베오그라드 서남부의, 인적 드문 평야지대 마키쉬와 동부 교외지역 미리예보가 그 두 지역이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허허벌판 두 개를 연결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말리 장관은 “지하철이 자연스럽게 도시발전의 축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집 근처에서 지하철을 타려면, 아직 구상단계에 불과한 3호선을 기다려야 할 듯하다.
가장 큰 우려의 대상은 마키쉬 평야에 들어설 예정인 1호선 종착역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다양한 계획들에 따르면, 베오그라드의 최대 식수원이 위치한 이 평야는 3만 명 규모의 신규 주거지역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환경단체들은 사전협의 없는 급격한 개발을 규탄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 결과는 여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 프랑스와 양해각서 체결 직전이었던 2021년 1월, 6개의 환경단체와 야당 정당들은 “생태학적 재앙”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세르비아당 소속 도시계획가 마린 크레시치는 “양해각서에 서명한 프랑스 대사관과 프랑스 기업들의 이사회에 서한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베오그라드 도시계획연구소에 몸 담았던 크레시치는 이 연구소와 1호선 노선 수립을 위한 자료를 제공한 에지스가 정치적 압력에 굴복했다고 비난했다.
도시계획연구소 운송 부문 책임자인 프레드라그 크르스티치는 “제공받은 자료에 근거해 노선을 설계하는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연구소의 또 다른 책임자는 에지스 엔지니어들과 베오그라드 지하철·철도공사의 요구대로 노선을 계획하지 않으면, 사표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약 우리가 사임했어도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했을 것이다. 운송 분야를 담당하는 동료들은 내게 ‘1·2호선은 너무나 멍청한 계획이다. 그러니 3호선을 만들자’라고 털어놨다. 3호선은 이렇게 구상됐다.”
2019년부터 세르비아 사업에 참여 중인 프랑스개발청(AFD)은 환경보호와 투명성 기준 불충족을 이유로 베오그라드 지하철 사업 자금 지원을 거부했다. 에지스를 지지하지 않는 사업 주체가 있다는 신호다.
스탄코 칸타르 베오그라드 지하철·철도공사 최고경영자는 1호선 노선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그동안 실시한 조사결과, 노선의 타당성이 입증됐다. 1호선은 투자가 확정되지 않은 미래의 주거지역 주민들의 이동수단이 될 것이다. 만일 이 주거지역을 건설하지 않는다고 해도, 시간당 1,800명 승객이 1호선 출발역을 이용할 것이다.”
반면, 베오그라드대학 토목공학부 부학장을 맡은 엔지니어 알렉산다르 듀키치는 현재의 주거 밀집지역을 우선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지나쳤다. (사바 강 좌안의 신시가지) 노비 베오그라드의 주거 지역, 기차역, 버스 터미널, 병원 등 모든 주요 시설을 비껴갔다. 개발예정인 주거지역으로의 연장은 이후 고려할 사항이다.”
1991년 이후 세르비아 인구는 12% 감소했으며(2020년 기준 코소보를 제외하고 690만 명 감소), 2050년 경 12%가 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체 지하철은 누구를 위한 시설인가?
1호선 노선을 수정한 이유는 무엇보다 부치치 정부의 주력 사업인 ‘베오그라드 워터프런트(Beograd na vodi)’ 수변지구에서 1·2호선이 교차하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 국내 언론이 ‘발칸의 두바이’로 부르는 이 부동산 개발사업은 다뉴브강 합류점 인근의 사바 강변을 세련된 지구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세르비아에서 가장 높은 42층 건물과 거대한 쇼핑몰이 이 지구에 들어설 예정이다. 아랍에미리트 부동산 투자 회사 이글힐스(Egale Hilss)를 소유한 갑부 모하메드 알리 알라바르는 시니샤 말리 장관과 이 사업을 협상했다.
부치치 대통령의 측근인 말리 장관은 심각한 공금횡령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관 자리를 지키고 있다.(2) 다수의 세르비아 국내 언론은 정부가 베오그라드 워터프런트 건설 회사의 지분 32%를 보장받는 대가로 2016년 6월 30일까지 사업대상 부지를 ‘청소’해주기로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토지수용 특별법이 마련됐다. 2016년 4월 24~25일 밤에 불도저가 들이닥쳐 기존 건물을 쓸어버렸다. 그리고 두건과 방망이로 무장한 남자들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주민들을 쫓아냈다.
베오그라드의 수많은 건축가들과 도시계획가들은 이런 극심한 변화에 분노했다. 2008년과 2012년 베오그라드 개발 전략 수립에 참여했던 도시계획가 보리슬라프 스토이코프는 “베오그라드를 강 양안으로 확대하는 구상은 19세기부터 있었다. 하지만 원래 목적은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라며, “모하메드 알리 알라바르의 구상은 정반대”라고 한탄했다.
세르비아의 생태주의 정당 NDB(Ne Davimo Beograd, 베오그라드를 익사시키지 말자) 소속 조란 뷰크비치는 “지하철은 시민이 출근하고, 여가를 즐기고, 병원에 가기 위한 시설인가, 아니면 사바 강변 아파트에 돈을 투자하는 신흥 엘리트를 위한 시설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에지스의 엔지니어들은 현행 노선이 베오그라드 시민에게 어떤 혜택을 줄 것인지 설명하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시 교통 전문가 블라디미르 데폴로는 1·2호선 환승역을 베오그라드 워터프런트 중심부로 이동시키는 근거로 쓰인 조사 자료들의 정당성을 의심한다. “원래는 기존 노선에 충실하게 사업이 진행됐다. 그런데 친 여당 성향의 새로운 팀이 노선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다. 나는 그 전에 팀을 떠나 정확한 과정을 알지 못하지만 이들이 사업 모델을 조정했다고 생각한다.”
2021년 10월, 베오그라드대학 토목공학부는 베오그라드 지하철·철도 공사의 협력 부재를 이유로 사업에서 철수했다. 학부의 책임자들은 사업 철수 결정을 발표하며 “현행 지하철 사업의 원칙은 시가 소유한 토지의 가치 상승, 즉 미래의 이점 제고다. 기존의 교통 문제 해결 원칙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라고 개탄했다.
듀키치 부학장은 베오그라드 워터프런트 지구에 지하철을 통과시키는 정부의 결정을 비난했다. “우리는 인프라(지하철, 도로, 상수도, 위생 시설)에 투자한다. 나머지는 모두, 수익을 올리면 떠나버릴 투자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듀키치 부학장의 동료인 스토이코프는 “에지스 엔지니어들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전 지하철 계획 평가 위원회에 몸담았던 또 다른 도시 교통 전문가 글라디미르 스테파노비치는 에지스 엔지니어들의 결정이 직업윤리에 어긋난다고 반발하며 “그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다른 업체에 사업을 빼앗길까봐, 알스톰이 사업에서 빠질까봐 침묵했다”라고 덧붙였다.
스탄코 칸다르 베오그라드 지하철·철도공사 최고경영자는 에지스 엔지니어들이 노선 수정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에지스는 우리가 승인하지 않으면 프랑스 정부에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특정 수정 사항을 고집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이다 보니 약소국 세르비아는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나는 베오그라드에서 일하는 에지스 소속 프랑스 엔지니어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주 세르비아 프랑스 대사관에 연락하라”였다. 프랑스 대사관은 외교부에 미뤘고, 프랑스 외교부는 끝끝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주 세르비아 프랑스 대사관 관계자 A는 “에지스의 명성에 누를 끼칠 수 있다”라고 털어놨다. A는 2021년 11월 부임한 신임 프랑스 대사로, 베오그라드 지하철 사업 속행을 환영했다. A는 “대사들은 표현의 자유가 많지 않다”라며 익명을 요구했다.
글·아나 오타세비치 Ana Otasević
기자, 베오그라드 거주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2020년 기준 세르비아 국립통계연구소 추정 수치 www.stat.gov.rs
(2) Ana Otašević, ‘Siniša Mali, de la fraude fiscale au ministère des finances, 시니샤 말리, 공금횡령에서 재무부 입성까지’ www.monde-diplomatique.fr/64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