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 파푸아 구리 약탈
프리포트 그룹의 불공정한 광산 개발
프리포트 맥모란은 월스트리트에 상장된 광산 그룹 중 대기업에 속한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사업가가 구리업계를 장악했다”라는 전설과는 거리가 멀다. 프리포트 맥모란은 부패한 미국 엘리트의 지원 및 미국 중앙정보국의 방조를 등에 업고, 북아메리카와 파푸아바랏(Papua Barat) 주와 여러 방면에서 결탁해 특혜를 얻고 있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광산기업의 밝은 전망은, 해당 기업의 주주들에게는 축복일 것이다. 반면, 다른 이들 대부분에게는 크나큰 불행이 된다. 그 기업이 특별한 광맥을 개발하면, 그 기업의 관계망도 특별해진다. 게다가 그 관계망이 지구 최강국의 정치금융 기득권층에 뿌리내리고 있다면 그 기업의 ‘자유’ 영역은 무섭도록 넓어질 것이다. 해당 기업은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의 이익을 취하고, 당연히 감수해야 할 책임을 회피할 수도 있다. 전 세계 수십 개의 광산기업들 중에서도, 미국 기업 프리포트 맥모란을 주목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 기업은 환경은 물론 정치, 경제, 지정학, 인류, 사회 측면에서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을 낳았다. 그럼에도, 어떻게 대중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까?
구리로 만든 전기차, 과연 친환경적인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자리 잡은 광산업체 프리포트 맥모란은 현재 순항 중이다. 이 기업은 구리와 금, 코발트 그리고 고온에서 철강의 저항력을 높이는 데 주로 쓰이는 몰리브덴의 채굴 및 제련에 특화됐다. 올해 75세인 CEO 리처드 애드커슨은 회사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확신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거래되던 구릿값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상승세는 조셉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표와 관련이 깊다. 바이든 대통령은 단호하게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1) 바이든 대통령이 추구하는 새로운 정책의 중심에 에너지 전환이 있다.
그 첫 번째 지렛대는 미국 최대 제조업을 변화시키기로 한 것이다. 미 정부는 자동차 산업과 자동차 2억 8,500만대(내연기관 자동차가 97%)를 전기차로 대체하기로 계획했다.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 감소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전기차의 친환경성’에는, 전기차 제조에 필수적인 금속을 채굴할 때 발생하는 환경 영향이 빠져있다. 전기차는 사실상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2~4배의 구리가 필요하다. 전 세계에서 2분마다 자동차 1대가 생산된다고 할 때 구리 수요와 가격은 필요량을 조절하지 않는다면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매력적인 이름의 테슬라가 2021년 미국 내 자동차 판매량 20위 안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전기차임을 고려하면, 구리 수요 조절은 요원해 보인다. 애드커슨 CEO는 쾌재를 부르고 있다. 1988년부터 주식시장에 상장된 세계 최대 구리 생산업체인 프리포트 맥모란은 주주들을 충분히 안심시킬 수 있다. 자사 구리 생산량이 수요를 충족시키고, ‘친환경 전기차’를 생산하려면 환경에 해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계속 모른다면 말이다.
프리포트가 광산활동의 탄소 발자국을 줄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6년 프리포트는 미국계 업체 펠프스 도지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259억 달러를 제시했다.(2) 구리 생산기업인 펠프스 도지의 주주들에게 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이로써 애리조나주 최대 구리 광산지역인 모렌시(미국 국내 구리 생산량의 37%)를 비롯해 미국 구리 생산의 60%는 프리포트의 손에 넘어갔다. 칠레의 엘 아브라 광산, 페루의 세로 베르데 광산, 화석에너지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로 인해 2016년 차이나 몰리브데넘으로 넘어간 콩고민주공화국의 텐케 풍구루메(구리와 코발트)(3)도 마찬가지였다.
영토침해와 자원강탈의 역사
그러나, 전례 없는 규모의 이 인수 작업은 녹록치 않았다. 프리포트 그룹이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역사적 기업(1834년 설립)을 인수했으며, 미국에서 1만 3,000km나 떨어진 1963년 인도네시아에 강제 병합된 뉴기니섬의 서부 파푸아바랏 주에서 불투명하게 운영되는 광산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텍사스 출신의 유황회사로 시작한 프리포트가 어떻게 구리와 금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에츠버그-그라스버그 광상(鑛床, 유용한 광물이 땅속에 많이 묻혀 있는 부분, 광산은 이런 광상을 채굴하는 장소를 의미 - 역주)을 발견해 개발하게 됐을까? 지구상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산맥에서, 그것도 고도 4,000m 이상의 지역에서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냉전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후 양대 강대국, 미국과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이 각각 신생 독립국에 자국의 이념을 강요하던 그때로 말이다. 이들 독립국 중에 네덜란드의 지배(1945~1949)에서 벗어나 카리스마 있는 수카르노 장군이 초대 대통령을 맡은 인도네시아공화국이 있었다. 열혈 국가주의자이자 비동맹주의자의 기수이며 경제적 주권주의의 옹호자인 수카르노 대통령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게다가 면적도 가장 넓었고 인구도 1억 명이 넘는 큰 나라였다. 주민 대부분은 점차 인도네시아공산당(PKI)으로 전향했는데, 중국과 소비에트연방을 제외하면 가장 큰 규모의 공산주의 정당이었다. 이 세력은 미국의 골칫덩이였는데, 수카르노는 이를 알고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인도네시아에 넘기도록 네덜란드를 압박하지 않으면 사회주의 대열에 합류하겠다고 미국에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지만 네덜란드는 자결권의 원칙에 따라 그 땅을 유일하고 정당한 주인인 파푸아인들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 땅에 있는 자원은 예외였다. 사실상 파푸아인들은 네덜란드 뉴기니 페트롤리움 컴퍼니(NNGPM)가 1936년 발견한 뉴기니섬의 풍부한 광맥에 대해 전혀 몰랐다. 게다가 몇 달 전 미국 백만장자 존 D. 록펠러 소유 석유 제국의 본사인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가 뛰어난 법률가 앨런 덜레스의 법적 조정으로 NNGPM의 지배권을 손에 넣은 상황이었다.
미국 정계에 진출한 나치당 후원자
앨런 덜레스는 그의 형이자 영향력 있는 법률사무소 설리번&크롬웰의 파트너변호사, 존 포스터와 함께 일을 시작한 참이었다.(4) 그 과정에서 경제 분야의 큰손과 정치적 책임자들이 합을 맞췄다. 존 포스트 덜레스는 독일 제3제국 경제부장관이었던 얄마르 샤흐트와 사업과 광산 개발, 은행업 거래를 터서 나치당에 자금을 지원하고 군비를 확충하게 도왔다.(5) 놀랍게도, 이런 전력은 그의 정치 행보를 막지 못했다. 그는 미국 국무장관(1953~1959)이 됐으며, 동생 앨런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첫 번째 민간인 국장(1953~1961)이 됐다. 여하튼 덜레스 형제의 목표는 공산주의 사상을 척결하고 (로비를 통해)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었다.
미국의 권력은 천연자원과 경제적 수단, 무력의 공생 관계를 이해한 미국계 다국적 석유광산업체의 확장에 기대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수카르노의 결심과 네덜란드의 고집은 미국 정부를 걱정시키면서 파푸아섬의 지하를 개발하려고 안달 난 전 세계 상위 6개 석유광산업계 ‘빅 오일’의 이익 추구에 걸림돌이 됐다. 프리포트 유황 컴퍼니가 특히 쿠바 사태 이후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쿠바에서 오랫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던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몰아낸 피델 카스트로가 자사의 투자금과 광물 자산을 국유화했기 때문이다.(6)
1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는 프리포트 유황 컴퍼니가 최적의 계약 조건을 누리도록 힘썼던 모든 이들, 주주, 은행, 사업계, 설리번 & 크롬웰을 비롯한 법률사무소에 영향을 미쳤다. 영향력 있는 지지자이자 수익자로 존 헤이 휘트니(1904~1982)가 있는데 그는 벤처캐피털의 선구자이자 프리포트 유황 컴퍼니 설립 공신 주주였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회장이자 주영 미국대사(1957~1961)를 지낸 휘트니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1953~1961)의 대선 선거에 자금을 지원했다.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되자 그는 모든 CIA 작전을 ‘덜레스 앤 덜레스 컴퍼니’의 수하에서 지휘했다.
저명한 사업계 계보에서도 눈에 띄는 이름을 살펴보자면, 백만장자 록펠러의 손자 고드프리 S. 록펠러, 해리 트루먼 시절 국방부장관이자 ‘냉전의 건축가’인 로버트 러벳(1951~1953), 앨런 덜레스와 공모해 피델 카스트로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쿠바 ‘피그스만 침공’ 작전을 짠 알리 버크 해군대장 등이 있다. 리처드 닉슨과 존 포드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1973~1976)을 지내고 프리포트 이사회로 옮겨간 헨리 키신저도 빠뜨릴 수 없다.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Haji Mohammad Sukarno, 1901~1970)는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는 네덜란드인을 몰아내고 PKI를 해산시켰으며, 국내 이익 유출에 격렬히 반대함으로써 국민들의 깊은 신뢰를 얻었다. 그런 수카르노 대통령을 몰아내고,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로 교체하기 위해 역량 있는 인사들이 모였다. 기회주의적이고 영악한 후계자, 뉴기니섬의 천연자원 개발권에 관한 백지 위임장을 미국에 양도할 행운의 후계자로는 수하르토 장군이 선택됐다. 네덜란드가 점유하던 서파푸아에 낙하산으로 침투한 육군전략사령부(Kostrad)를 1962년부터 이끈 인물이다.
뉴욕 협정(1962년 8월 15일)으로 네덜란드는 결국 파푸아인들에게 자결권에 관한 국민투표권리를 보장하면서 서파푸아를 1963년 5월 1일부로 인도네시아에 양도해야 했다. 국민투표를 가장한 이 투표는 1969년, 인도네시아가 6년간 지배하고 파푸아인 수만 명이 암살된 후에야 열렸다.(7) 수카르노 대통령은 수하르토 장군과 CIA가 계획한 쿠데타(1965년 9월 30일)로 물러났다. CIA는 무기는 물론 암살할 PKI 당원들(혹은 그렇게 추정되는 이들)의 명단도 제공했다.(8) 이 모든 사건은 미국 국무부의 지휘로 해외정보자문위원회(Foreign Intelligence Advisory Board, FIAB)의 계획 하에 이뤄졌다. FIAB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에 석유 조달을 담당한 유력 석유화학회사 테사코의 회장이자, 프리포트 이사회의 강력한 이사인 오거스터스 롱이 있었다.
뉴기니 섬에 유혈 쿠데타가 일어나 최소 100만 명에서 최대 200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낸 이런 과정은, ‘효율성이 높은 자카르타 방식’(9)으로 라틴아메리카에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프리포트가 에츠버그 광산의 문을 연 것이다. 1967년 4월, 프리포트 유황 컴퍼니는 인도네시아 자회사인 PT-프리포트 인도네시아(PT-FI)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수하르토 장군이 이끄는 새로운 정부에서 첫 번째 해외기업 계약을 체결했다.
전례 없는 계약 조항으로 이 회사는 30년간 독점 채굴권을 획득하고 25만 헥타르에 달하는 토지를 영업이익이 발생한 초기 3년간 임대료, 사용료, 공과금 없이 개발할 수 있었다. 이런 조건은 에츠버그 광상의 잠재력을 확신한 프리포트 본사의 권고에 따라 미국 국무부가 강요한 것이었다. 이 불평등한 계약은, 수하르토 장군에게는 정치경제적 강대국인 미국과 손을 잡기 위한 수단이었다. 인도네시아는 광산 프로젝트를 위한 막대한 초기 자금 후원 약속을 미국 정부로부터 받았다.(10) 수하르토의 독재정권이 지속될 것이라는 명확한 메시지였다.
파푸아족들에 대한 피해 보상은?
영토를 빼앗기고 권리를 유린당한 파푸아족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마찬가지로 명확했다. 프리포트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개발하는 과정에서 일으키는 피해를 축소하거나 보상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닉슨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1974~1982)을 지내고 추후 도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국무장관이 되는 조지 P. 슐츠가 이끄는 석유인프라 분야의 세계적 대기업 벡텔도 프리포트를 지원했다.
고도 4,270m의 노천광에서 귀금속을 채굴하기 위해 다층적이고 복잡한 기계화학작업을 하려면 최첨단 기술 지원이 필수적이었다. 처리된 광석 1t당 평균 1g의 금을 얻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일평균 암석토 70만t, 광석 24만t으로 상상을 초월했다. 비소, 카드뮴, 셀레늄 등 중금속이 포함된 유황찌꺼기 더미는 화학적 발효로 인해 불안정한데다, 열대지역의 폭우와 지진해일이 닥치면 주변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화학물질 수백만 리터가 함유된 수십억 톤의 광산폐기물이 자연에 버려지며 아라푸라 바다 어귀까지 수계를 오염시켰다.(11)
이로 인한 사회적이고 인류학적이고 보건위생학적인 파장을 걱정하는 이가 있을까? 2011년 대규모 파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곳의 광부 대부분은 시간당 1.5달러를 받고 일했고, 프리포트는 순수익 19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물론 경찰과 군대에 엄청난 돈을 쓰긴 했다(1998~2008년 약 8,000만 달러). TNI(인도네시아 육군), Kopassus(육군 특수부대), Brimob(기동여단) 등에 현장을 지키라고, 다시 말해 토착민 반발을 억압하고, 사회 운동을 무마시키고, ‘이미 보상은 충분하다’며 위협하라고 돈을 쥐어준 것이다.(12) 광산 대기업의 횡포에 반대하다가 목숨을 잃은 이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지역은 외부 감사단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어렵게 유출된 몇몇 정보도 프리포트의 법적 소송, 언론사 기부, 정치적 압박으로 신속하게 차단됐다. 1995년 키신저가 미국 해외민간투자공사(OPIC)에 60만 달러를 연간 보수로 제안하며 프리포트의 채굴활동에 관한 보험을 계속 제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13)
에츠버그 광상에서 초기에 수출된 구리 농축물은 1975~1985년 인도네시아 정부에 총 4억 5,000만 달러(부가세 등 각종 세금, 사용료 등)를 벌어줬고, 프리포트는 1975~1989년 34억 달러로 추산되는 순이익을 벌어들였다. 이 숫자는 이웃한 그라스버그 광상이 추가로 개발되자 폭증했다. 잠재자원이 약 400억 달러로 추정되는 그라스버그 광상 관련 채굴권은 1991년 향후 30년 단위로 신속하게 체결됐다. 인도네시아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그래서 노쇠하는 수하르토 정권을 무너뜨리기 전에 이곳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계산이 계약당사자 양측을 자극했다.
프리포트는 프리포트-맥모란 코퍼라는 이름으로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1988년)한 이후 광산의 생산성을 높이려고 자회사 FT-PI의 지분 40%를 광산대기업 리오 틴토에 개방했다. 리오 틴토는 이웃 파푸아뉴기니 부건빌 섬의 판구나 광산을 운영하며 암울한 결과를 낳은 것으로 악명 높은 회사다. 1972~1989년, 처참한 광산의 노동환경으로 인해 내분이 일어나, 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막대한 투자에 적합한 결과가 나왔다. 1999년 그라스버그 광상에서는 개발 1년 만에 에츠버그 광산에서 15년에 걸쳐 캐낸 총생산물의 2배를 거둬들였다. 1990~2019년 그라스버그 광산(노천광 및 지하광)에서 채굴한 구리 5,280억 온스와 금 5,300만 온스는 그 값이 최소 8,000만 달러, 최대 1억 2,000만 달러에 달한다.(14) 사업수익과 함께 부패도 커졌고, 파푸아인들의 미래는 확실히 저당 잡혔다. (15) 2004년 비정부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는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이 약 300억 달러를 착복했다며 그를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지도자’로 선정했다. 이 액수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FT-PI가 벌어준 금액(1991~2021년 102억 달러)의 3배에 달했다.
1998년, 수하르토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경제주권은 후임 대통령들에게 화두가 됐다. 목표는 FT-PI였다. 미국 광산업체와 현 대통령 조코 위도도 사이에 충돌은 불가피했다. 위도도 대통령은 광산 운영을 중단시켰고 직원 3만 2,000명 중 1/4을 일방적으로 해고해 그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줬다. 프리포트는 결국 자회사 지분의 51%(이 중 40%는 리오 틴토 보유분)를 국영기업 PT 인알룸에 양도했다. 그러나 제련소 건설도 필요했던 미국 광산그룹은 그라스버그 광상의 잠재력이 큰 광구를 개발하기 위해 새로운 광도 연장권을 얻었다. 기존 채굴권도 2041년까지 연장됐다.
‘인도주의적’ 활동과 고용창출로 면죄부를 사다
주주의 이익을 위해 나선 프리포트의 애드커슨 CEO와 재선을 노리는 위도도 대통령 사이의 협상은 치열하게 진행됐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 국익을 위한 투쟁은 외국인 투자자를 위협하거나 프리포트의 새로운 주주, 도널드 트럼프의 특별자문이었던 백만장자 칼 아이컨이나 자산운용사 블랙록 등의 이해를 침범할 수 없었다. 어떤 협상 자리에도 초대받지 못한 파푸아인들은 130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16) 물론, 미래 세대에게 미칠 치명적인 악영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FT-PI가 부분적으로 인도네시아 기업이 되면서 본사는 뉴기니섬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대한 모든 형사적 책임에서 사실상 벗어났다. 합의된 것인지 의문스럽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프리포트가 법제는 더욱 까다롭고 개발비용은 한참 늘어날 미대륙 북부와 남부에서 광산 개발에 집중할 여력이 생겼다는 점이다. 프리포트가 수익률이 꽤 높은 구리 광산을 보유한 애리조나주에서 광산 개발에 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건조한 이 지역에서 귀한 자원이자 광산업의 주요 원료인 물이 기후온난화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광산의 채굴량을 늘리려면 물 소비량도 늘어나고 폐기물을 보관하는 지역도 더 필요하다.
프리포트는 애리조나주의 바그다드 광산을 위해 국토부로부터 맨해튼 섬에 맞먹는 면적, 약 65㎢의 토지를 1억 3,500만 달러에 취득했다. 총 11개의 아메리카인디언 공동체(호피족, 나바호족, 주니족 등)에서는 즉시 반발했다. 이 토지 주변에는 신성한 역사적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분쟁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프리포트는 50만 달러를 공탁금으로 걸었다. 이는 프리포트가 수백만 달러의 벌금(17)이나 ‘인도주의적’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 법정 제재를 고려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프리포트는 공동체 활동에 대한 기부, 장학금, 교육 프로그램 등 ‘인도주의적’ 활동으로 자사의 발언에 힘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포트의 가장 큰 힘은 고용창출과 경제적 부가가치다. 모렌시 광산과 바그다드 광산에 고용된 인원은 3,500명(간접고용까지 고려하면 3배 이상)으로 이들만 고려해도 2020년 애리조나주에 가져온 경제적 이익이 12억 1,300만 달러였다.(18) 이곳 정치인들에게도 중요한 자원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광산 개발은 프리포트 CEO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애드커슨 CEO는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구리 생산량 확대는 어려운 일이다. (...) 회사와 지자체는 새로운 광산 개발에 회의적이지만, 정치인들은 파이의 가장 큰 조각을 가져가려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까다로운 공동체 기준과 환경 규제는 물론, 프리포트가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는 최대 구리 생산국 칠레와 페루에서 정부가 노리는 ‘광산업 관련 세금 비중 확대’도 비난했다.(19)
2021년 프리포트 그룹의 수입은 228억 달러, 순수익은 43억 달러에 달했다. 2020년에 비하면 619% 상승한 수치다. 프리포트가 여전히 더없이 순항하고 있어서 애드커슨 CEO는 앞으로도 한동안 미소를 잃지 않을 것이다.
글·필리프 파토 셀레리에 Philippe Pataud Célérier
기자
번역·서희정
번역위원
(1) ‘Freeport eyes U.S. expansions as Biden’s EV plan boosts copper demand’, <Reuters>, 2021년 1월 25일.
(2) ‘Cooper giant Freeport-McMoRan buying rival’, <NBC news>, 2006년 11월 20일.
(3) ‘RD Congo : l’américain Freeport-McMoRan cède une mine de cuivre pour 2,6 milliards de dollars à un groupe chinois’, <Jeune Afrique>, Paris, 2016년 5월 9일.
(4) Greg Poulgrain, <JFK vs. Allen Dulles>, Skyhorse Publishing, New-York, 2020.
(5) Stephen Kinzer, <The Brothers>, St Martin’s Griffin, New-York, 2013.
(6) ‘Memorandum by the deputy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inter-american affairs (Mann) to the assistant aecretary of State for inter-american affairs (Cabot)’, in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ates, 1952-1954, the American republics’, volume IV, 1953년 3월 23일, www. history.state.gouv
(7) Philippe Pataud Célérier, ‘Nettoyage ethnique en Papouasi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2월.
(8) Lena Bjurström, ‘Indonésie 1965, mémoire de l’impunit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12월.
(9) Vincent Bevins, <The Jakarta method>, Public Affairs, New-York, 2020 & Geoffrey B. Robinson <The killing season, A history of the Indonesian, 1965-66>, Princeton University Press, Oxford, 2019.
(10) Bradley R. Simpson, <Economists with guns, Authoritarian Development and U.S.-Indonesian Relations, 1960-1968>,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8.
(11) 보고서 ‘PT Freeport Indonesia and its tail of violations in Papua : human, labour and environmental rights’, International Coalition for Papua (ICP), Wuppertal, 2020, https://humanrightspapua.org
(12) Denise Leith, <The Politics of power>, University of Hawai’i Press, Honolulu, 2003.
(13) Philippe Pataud Célérier, ‘Les Papous dépossédés de l’Irian Jay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6년 10월.
(14) ‘Highlights on Indonesia’s copper industry’, <Deloitte Indonésia Perspectives> (재판), 2021년 2월.
(15) Bambang Slamet Riyadi, Muhammad Mustofa, ‘Corruption culture on managing natural resources : the case political crime “Papa asking stock of PT. Freeport Indonesia”’, <International journal of criminology and sociology>, 2020.
(16) Basten Gokkon, ‘With its $3.85b mine takeover, Indonesia inherits a $13b pollution problem’, Mongabay [site], 2019년 1월 14일, https// news.monagbey
(17) ‘Freeport McMoRan slapped with $6.8 million fine’, Mining.com, 2012년 4월 26일.
(18) Steven Hsieh, ‘Arizona quietly sells, 16810 acres ti Freeport-Mc-Moran for mining waste’, <Phoenix New Times>, 2020년 1월 31일.
(19) James Attwood, ‘Politics are turning against copper miners, Freeport-McMoRan’, <Bloomberg>, New York, 2022년 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