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레스터에 드리운 나렌드라 모디의 그림자
최근 집단 간 충돌사건들이 일어나, 레스터를 뒤흔들고 있다. 이런 폭력성의 확산은, 영국 내 힌두교의 민족국가주의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레스터 시 북부 벨그라브 로드 인근에서 힌두교의 ‘빛 축제’, 디왈리가 다시 열렸다. 팬데믹 이후 2년 만이다. 벨그라브 로드는 줄지은 금세공품점들과 등잔불 모양 거리장식 덕택에 ‘골든 마일(Golden Mile)’이라는 별칭이 붙은 곳이다. 지난해 10월 9일 밤, 불꽃놀이가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시청에서는 축제가 무사히 진행되도록 경찰 병력을 대거 투입했다. 평소 같으면 축제를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나왔을 텐데,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버밍햄 주민들이 가족 단위로 옷이나 장신구를 사러 레스터에 오는데, 오늘은 텅 비었어요.” 한 상인이 자신의 텅 빈 사리 상점을 보여주며 한숨을 내쉰다. “주기적으로 지인들이 전화로 물어요. 쇼핑하러 레스터에 가도 되냐고요. 두려운 거예요.” 옆집 옷가게 주인이 한 마디 보탠다.
몇 주 전, 레스터에서 힌두교와 무슬림 공동체 사이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그해 9월 17일 토요일 날이 저물 무렵, 마스크를 쓴 200여 명이 레스터의 상업지구이자 무슬림 거리 중심부인 그린레인로드를 행진했다. 무장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외친 슬로건 ‘자이 슈리 람(JaiSchri Ram, 라마 경에게 영광을)’은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이 무슬림 소수 집단에게 행사한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 “레스터에 사는 무슬림 대부분이 인도와 연결돼있어,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알고 있어요. 즉시 위협을 느꼈죠.” 노동당 소속 시의원 샤르멘 라만이 설명한다. 그는 거주민 대다수가 무슬림인 동쪽 선거구 노스 에빙튼에서 당선됐다.
이날 그린레인로드의 상점들은 급하게 가판대를 거두었다. “다음날에는 손님들에게만 문을 열어줬어요. 또 위협받을까 겁나서요.” 작은 무슬림 옷가게를 하는 상인의 말이다. 이번엔 무슬림 집단에서 ‘알라후 아크바르(Allahou Akbar, 신은 위대하시다)’를 외치는 행진에 나섰다. 보복의 일환으로 주말 동안 힌두교 사원의 종교 깃발을 끌어내리는가 하면, 감시카메라 앞에서 깃발을 불살랐다. 난투가 벌어지고 병을 집어던지고, 차량이 손상됐다. 상황은 빠르게 악화됐다. 영국 경찰은 상황을 통제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경찰 병력 대부분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 때문에 런던에 지원 나간 상태였다. 소셜미디어에 퍼진 루머는 화약에 불을 붙였다. 그해 9월 18일 일요일 아침, 골든마일 입구 세차장 쇼윈도에 누군가 최루탄을 던졌다. “무슬림을 막으려는 겁니다” 아연실색한 세차장 주인이 말했다.
“30년을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 봐요”
이런 폭력사태에 시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런던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37만 명이 거주하는 레스터는 오랫동안 종교통합의 모델이 된 도시다. 202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거주민의 23%가 무슬림, 17%가 힌두교도다. 영국 최대 규모의 아시아 공동체들 중 하나가 있는 곳으로, 주로 인도계로 구성된다. 1950년대에는 펀자브 지방에서, 1960년대 중반에는 동아프리카에서 이민자가 유입됐다. 대부분 인도 구자라트 주 출신이다. 이들은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에 정착했다. 그러나 해당 국가들이 독립하자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이후 힌두교도, 무슬림, 시크교도들은 레스터에서 사이좋게 공존했다.
“전 무슬림이고, 힌두교인 친구들이 있어요.” 택시기사로 일하는 20대 청년 암자드가 탄식하며 말한다. “전에 직원의 80%가 힌두교도인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전혀 문제될 일이 없었어요.” 골든마일에서 작은 가전제품 매장을 하는 상인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우리가 여기 산 지 30년인데,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 청년들의 태도는 힌두 공동체의 사고방식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레스터 시장 피터 솔스비(노동당)는 9월 19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평소 아주 평온한 도시에서 일어난 폭력사태에 경악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몇 개월, 긴장은 한층 더 고조됐다. 2022년 5월, 한 청소년이 거리에서 집단폭행을 당했다. 아이 어머니는 아들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공격받았다고 밝혔다. 2022년 8월 28일, 파키스탄 크리켓 팀이 인도를 이기자 “파키스탄에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무리들이 레스터 거리를 행진했다. 파티마 라지나는 이를 반(反)이슬람주의 모욕이라고 설명한다. “인도에서 무슬림은 흔히 파키스탄인과 동일시됩니다. 매국노 취급을 받는 거죠.” 파티마는 영국 내 무슬림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회학자다. “레스터에서 사용된 슬로건도 같은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레스터에 사는 파키스탄인은 소수인데요.” 일주일 후에는 인도 측에서 복수에 나섰고, 또 폭행 사건이 터졌다.
같은 사건의 전개에 대한, 양측 공동체의 증언은 다르다. 정계와 언론에서도 말을 보탠다. 공동체를 지키려 투쟁하는 30대의 마지드 프리먼은 영국 경찰이 이슬람 혐오범죄에 대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물이 고여 결국 물병이 넘쳐버린 거예요. 걷잡을 수 없게 됐죠.” 그의 발언은 <가디언>이나 <뉴욕타임스>에서 인용됐다. 한편, 신보수주의 싱크탱크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가 발언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싱크 탱크는 프리먼이 트위터에 올린 조롱조의 메시지를 지적했다(살만 루슈디 공격 사건이 발생한 2022년 8월 12일 자 발언 “죽으면 죽는 것”, 8월 13일 자 발언 “서구 증오의 상징”). 덧붙여 우파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프리먼이 이슬람 소녀 납치 시도 사건에 대한 거짓 정보를 SNS에 흘렸다”라고 주장했다.(1)
지난해 9월 초, 경찰은 힌두교 가정에서 여러 신고를 접수했다. 누군가 가네샤 신상에 달걀을 던졌다거나, 차량과 집을 공격했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이슬람 공동체가 주는 위협이 점점 커진다고 느낀다. 그해 10월 4일, BBC 인터뷰에서 한 남성은 몇 달 동안 지속된 위협에 대항하려 그린레인로드(이슬람 구역)를 따라 걸었다고 설명했다. “이제 사람들은 장 보러 나오지도 않아요. 스스로를 지켜야 하니까요.”
한 가지는 명백하다. 최근 레스터에서 발생한 폭력사태가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초기에 레스터의 인도 이민자 공동체는 인종차별과 극우파에 맞서 뭉쳤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동맹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런던대학 교수이자 레스터 주민인 구르팔 싱은 외부에서 유입된 종교대립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 일의 시발점은 살만 루슈디 공격 사건입니다. 그때부터 영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자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2)
무슬림 인구, 힌두교를 앞지르다
2001~2021년 사이 레스터에서 무슬림 인구는 힌두교보다 최소 3배 더 빠르게 증가해 이제 힌두교 인구를 앞지른다. “2000년대에 인종차별 폭동으로 영국 북부를 떠나온 사람들, 그리고 네덜란드의 탄압을 피해 영국에 정착한 소말리아인, 프랑스에서 온 무슬림들입니다.” 싱 교수가 설명했다. 무슬림이 힌두교 구역에서, 힌두교도가 이슬람 구역에서 상점을 인수하기 시작했고,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들 공동체들은 본래 서로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잘한 마찰이 큰 사건으로 번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브렉시트 이전에는 다만(Daman), 디우(Diu) 식민지 시절 인도 내 포르투갈령으로 남아있던 도시 출신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이민 올 때 전 포르투갈 식민지로서 유럽 여권의 혜택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이점을 지적한다. “레스터의 문화를 잘 모르는 청년들입니다.” 싱 교수의 말이다. 레스터 시청은 신규 정착민들을 통합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우려스럽다. “10년 동안 매년 1억 5,000만 파운드의 예산 삭감을 겪었습니다.” 힌두교도이자 노동당 소속 시의원 리타 파텔이 개탄조로 말했다. “전에는 영어 수업이나 건강보험, 취업 지원 등을 위한 재원이 있었어요. 하지만 오늘날 이 사람들은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어요.”
레스터의 경제 상황은 지난 30년간 악화됐다. 제조업의 쇠퇴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상황이 더 악화됐어요. 이민자들이 빈곤에 허덕이는 기간이 늘어났죠. 선동에 휩쓸리기 쉬운 상태가 된 겁니다.” 싱 교수는 강조한다. 무슬림이자 노동당 시의원 커크 마스터도 의견을 같이한다. “폭동이 발생한 지역에 사는 이민자 가족 다수가 교육수준이 높지 않아요. 이들은 실업의 희생양이 됩니다.”
레스터 시청은 최근 사건들에 대한 연구조사를 의뢰했다. 폭동의 배후세력이 어떤 집단인지 파악하는 일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출신이나 디우 출신은 대부분 학생입니다. 영국까지 유학하러 갈 만큼 여유가 있는 이들이죠.” 파티마 라지나의 설명이다. 반면, 싱 교수는 동일한 집단을 “힌두교 민족주의 정책의 영향 아래 성장한” 청년들로 묘사한다. 레스터 주민 대다수가 문제의 핵심은 영국에 퍼진 ‘힌두트바(Hindutva, 힌두 근본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힌두트바는 20세기 초에 등장한 힌두교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인도의 정체성을 힌두교 유산으로 정의한다.
노동당을 적대시하는 모디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그가 몸담고 있는 인도 인민당(BJP)은 국민 의용단(RSS)이라는 군대식 극우파 조직의 지원을 받고 있다. 모디 정부는 국민 의용단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 결과 오늘날 RSS가 영국의 재외동포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레스터에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이 주제를 꺼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결국 우리 면전에서 터져버렸죠.” 샤르멘 라만(노동당)의 의견이다.
BBC 조사에 따르면, 충돌이 일어나기 전 몇 주 동안 레스터에서 무슬림이 힌두교도를 위협한다는 내용의 메시지 수십만 개가 트위터에 퍼졌다.(3) 이 중 절반은 인도에서 등록된 트윗이다. 구호단체와 종교단체 또한 급진주의 확산에 일조했다. 설교사이자 힌두교 활동가 사드비 리탐바라가 버밍햄 소재 힌두교 사원에 있다는 소문이 돌자, 2022년 9월 20일 수십 명의 무슬림 청년들이 사원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최근 고조된 긴장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다.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 소속 샬롯 리틀우드는 그해 9월 17일 행진을 조직한 이들과 국민 의용단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하지 않는다. 싱크 탱크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리틀우드는 오히려 소셜미디어상에서 유명한 이슬람주의자 인플루언서들을 지목하며 분란을 조장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내놓은 분석은 보수주의 지역 매체, 혹은 소수 우파 시의원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이들은 레스터 시의 의뢰로 조사한 보고서 내용과는 반대로, 힌두교 공동체에도 폭동에 대한 부분적 책임을 물었다.(4)
무슬림들이 쭉 노동당을 지지하는 것과 반대로, 힌두교도가 보수당에 표를 던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5) 공동체 투쟁가 사지다 알리가 말한다. “2019년 총선거 당시 레스터 힌두 공동체에서 노동당투표반대 운동이 있었습니다. 노동당이 무슬림을 지지한다고 의심했죠.” 2010년대 노동당은 불가촉천민으로 불리는 달리트에 대한 차별 금지를 법제화하려는 의지를 보였다.(6) 게다가 노동당은 카슈미르 지역의 자치권을 옹호했는데, 2019년 모디 총리가 자치권을 박탈함으로써 사건이 끝났다. 그러나 노동당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인도와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게 적대적인 입장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라지나가 설명했다.
인도계 유권자들에게 해외정책이 부수적인 요소라면, 보수당의 주요 인물들은 공개적으로 모디 총리를 지지한다. 보리스 존슨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프리티 파텔의 경우가 그렇다. 현 영국 총리 리시 수낵은 힌두교 신자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 IT기업 인포시스의 공동 창업자이자 모디 총리 지지자인 백만장자 나라야나 무르티의 딸과 결혼했다. 현재 신임 총리로서 수낵의 우선과제는 인도와 무역 협정을 맺어 브렉시트에 맞선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글·루에브 포페르 Lou-Eve Popper
기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AinaJ. Khan & Mark Brown, ‘Police call for calm after ‘serious disorder’ breaksout in Leicester’, <The Guardian>, 런던, 2022년 9월 18일 ; Megan Specia, ‘Ugly clashes in England rooted inEngland’, <The New York Times>, 2022년 10월 4일 ; Patrick Sawer, ‘Islamists radicals accused Hindus ofkidnapping girls to stoke tensions in Leicester’, <The Telegraph>, 런던, 2022년 11월 12일 ; Charlotte Littlewood, ‘Hindu-Muslim civil unrest inLeicester : “Hindutva” and the creation of a false narrative’, <HenryJackson Society>, 2022년 11월 3일.
(2) Wendy Kristianasen, ‘Le grand désarroi des musulmans britanniques 대혼란에 빠진 영국 무슬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7년 1월호.
(3) ‘Didmisinformation fan the flames in Leicester ?’, <BBC News>, 2022년 9월 25일.
(4) AshaPatel & Sali
Shobowale, ‘Hindu leaders say they will boycott city
mayor’sinquiry into east Leicester disorder’, <Leicester Mercury>, 2022년 10월 28일. Patrick Sawer, ‘Islamists accused of stokingtensions with wild claims’, <The Sunday Telegraph>, 런던, 2022년 11월 13일.
(5) CarolineDuckworth,
Devesh Kapur & Milan Vaishnav, ‘Britain’s new swing voters ? Asurvey of British Indian attitudes’,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peace, John Hopkins,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 2021년 11월.
(6) AlexiaEychenne, ‘Au Royaume-Uni, des immigrés prisonniers des castes (한국어판 제목: 카스트 덫에 걸린 영국 거주 인도인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2016년 3월호・한국어판 2016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