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만의 작은 숲’과 고향의 헤테로토피아-<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은 <세상 밖으로>(1994)의 조연출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30여 년간 우리 사회의 낙오자, 실패자, 주변인,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인물들에 주목해 왔다. 초기작 <세 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물론 흥행에 성공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도 비인기 종목인 여자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아줌마 3총사’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이러한 특징을 잘 설명해준다.
임순례 영화에 등장하는 낙오자, 주변인, 실패자들의 행적과 영화의 주요 서사 공간은 고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충주시 수안보, <리틀 포레스트>의 미성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2010)의 농부 시인 선호와 <남쪽으로 튀어>(2013)의 다큐멘터리 감독 최해갑의 행적도 고향과 관련되어 있다.
임순례 영화에서 고향의 장소적 의미는 미셸 푸코가 제시한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활용하여 구체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초기작과 확연하게 달라진 연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고향의 장소적 의미가 영화의 주제를 직접 드러내는 작품이다. 주인공 혜원이 ‘고향→타향→고향→타향→고향’의 이동 과정을 거치는 동안 고향을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점도 고향의 헤테로토피아와 관련이 된다.
헤테로토피아는 ‘heteros(다른)’와 ‘topos(장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푸코는 이 용어를 유토피아에 대비되는 의미로 사용한다. 여기에서 대비는 대립이 아니라 없음과 있음의 차이를 의미한다. 즉 유토피아는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가상공간으로서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헤테로토피아는 지리적으로 실재하는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푸코는 정원, 다락방, 부모의 침대, 묘지, 박물관과 도서관 등을 헤테로토피아의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한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고향의 장소적 의미는 인물이 처한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난다. 어린 시절 혹은 청소년기의 혜원에게 고향은 좁고 폐쇄된 장소이다. 그래서 혜원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다. 하지만 결말에서 혜원은 고향에 돌아와 상처를 치유하고 재생과 부활을 모색한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고향은 혜원의 공간 이동 및 성장과 함께 ‘탈주-귀환-치유와 재생의 장소’로 그 의미가 변화한다. 반면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은숙에게 미성리는 오직 ‘촌스럽고 답답한’ 장소일 뿐이다.
고향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일차적인 의미 외에 개인의 정서, 내밀한 체험,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중요한 장소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음식 만들기와 학교생활로 인해 미성리는 혜원에게 애착의 장소가 된다. <리틀 포레스트>가 떠남보다 돌아옴에 주목하고, 혜원이 고향에 돌아온 이후의 행적을 자세히 묘사하는 이유이다. 혜원이 자신은 서울을 떠나온 것이 아니라 고향에 돌아온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혜원은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데, 그 과정에서 고향은 서울과의 대비를 통해 유토피아적 의미가 강화된다.
<리틀 포레스트>의 서사는 탈출과 정주로 요약할 수 있다. 혜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유학을 떠나고, 서울에서 임용고시에 실패한 뒤 몸과 마음이 허기진 상태로 고향 집으로 돌아와 정착한다. 즉 미성리(A)와 서울(B)은 다른 고장을 부정적인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지만, 결말에서 미성리(C)는 ‘촌스럽고 답답한’ 미성리와 근대화된 서울을 동시에 극복하면서 유토피아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미성리와 서울의 대비는 편집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은숙이 농협에서 근무하는 장면에서 혜원은 내레이션으로 서울을 향한 은숙의 꿈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서울의 실상은 어떠할까? 혜원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 에피소드를 보자. 이 장면에서 혜원은 편의점의 좁은 계산대 안에서 허겁지겁 삼각김밥을 먹고, 상한 일회용 도시락의 음식을 삼켰다가 밥을 뱉어내고, 자취방 냉장고 안에는 과일이 말라비틀어져 있다. 어린 혜원과 은숙에게 서울은 꿈의 도시이지만, 서울은 치열한 경쟁과 인스턴트 음식으로 가득한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그래서 혜원에게 미성리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장소로 변화한다.
서울과 미성리에서도 헤테로토피아의 이러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혜원은 고등학생 때부터 미성리를 벗어나고자 한다. 직장인이 된 은숙의 꿈은 여전히 고향 탈출이다. 미성리의 어린 인물들에게 서울은, 푸코가 말하는 일종의 환상 공간이다. 반면 20대의 혜원은 서울에서 낙오자, 주변인으로 살아간다. 서울은 추상적인 공간일 때는 유토피아였지만,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장소의 성격을 띠면서부터 욕망과 경쟁으로 얼룩진 도시가 된다. 반면 ‘촌스럽고 답답한’ 장소였던 미성리는 서울의 혜원에게 유토피아적인 공간으로 인식된다. 혜원에게 서울이 환상 공간이면 미성리는 현실이고, 서울이 현실이면 미성리는 환상 공간이 된다.
서울과 미성리가 지닌 장소적 의미의 차이는 인간관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에서 혜원은 남자친구를 위해 정성껏 도시락을 싸는데, 혜원의 남자친구는 이러한 행위를 냉소적으로 표현한다. 반면 미성리는 혜원과 은숙, 재하가 티격태격하면서도 늘 함께 먹고, 마시고, 일하는 장소이다. 즉 미성리는 친밀한 인간관계와 유대감으로 인해 혜원에게 환상의 헤테로토피아가 된다. 장소의 가치는 특별한 인간관계가 주는 친밀함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혜원은 미성리에서 사계절을 보낸 후 그곳이 ‘현실 세계의 유토피아’임을 깨닫는다. 혜원의 이러한 깨달음은 서울과 미성리가 위기의 헤테로토피아라는 점과 연결된다. 푸코가 말하는 위기의 헤테로토피아는 특권화된, 신성화된 장소이며, 이 장소는 과도기의 상태에 있는 개인들에게만 허용된다. 이 장소들은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위기(crise biologique)를 겪고 있는’ 개인들을 위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는 사춘기 청소년 혹은 달거리에 들어간 여성들이 쓸 수 있는 특별한 집, 출산을 기다리는 여성들을 위한 오두막이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은 사회적, 정신적 과도기의 상태에 있으며, 서울에서 시련을 겪고 미성리에 돌아온 후 과도기를 벗어나 어른으로 성장한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서울과 미성리는 혜원에게 상반된 의미를 지닌 위기의 헤테로토피아인 셈이다. 특히 서울살이를 체험한 혜원에게 미성리는 자연과 풍요, 우정과 사랑이 충만한 유토피아적인 장소가 된다. 푸코가 말하는 위기의 헤테로토피아는 과도기에 있는 한 인물이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하는 장소이다. 그렇다면 <리틀 포레스트>는 혜원이 위기의 헤테로토피아를 통과한 후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한 성장 서사가 된다. <리틀 포레스트>를 통과제의 서사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혜원에게 미성리는 정주의 장소이다. 혜원은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아주심기’를 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다. 이때 고향은 혜원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생과 부활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장소가 된다. 혜원에게 미성리는 본디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왕따의 상처가 있는 고장이다. 하지만 혜원은 미성리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 성장을 이뤄낸다. 그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위는 요리이다. 혜원은 자신만의 감자빵 레시피를 완성함으로써 홀로서기를 하게 되고, 고향에서 요리를 통해 “나만의 작은 숲”을 찾는다.
노동도 고향의 장소적 의미를 강화해주는 요소이다. 혜원에게 모내기, 감자 심기, 고추 따기, 깨 털기와 같은 노동은 삶의 일부이자 목적이다. 미성리의 혜원에게 자연은 ‘풍경’이 아니라 생활의 터전이다.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는 혜원의 집과 길과 숲을 자주 비추며, 세 장소를 한 프레임에 담는다. 이는 집과 혜원이 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강조하는 미장센이다. 혜원과 마을의 골목, 논, 꽃길을 롱 쇼트 혹은 익스트림 롱 쇼트로 잡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의 행적은 겨울(미성리로 돌아옴)-봄(친구들과 함께 지냄)-여름(요리를 하며 엄마를 떠올림)-가을(농사일을 돕고, 진로를 선택하려 함)-겨울(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완전히 귀향함)의 순환 구조로 나타난다. 이때 첫 번째 겨울과 두 번째 겨울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귀향이 일시적, 도피적이었다면 두 번째 귀향은 ‘근원적인 장소’인 고향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자전거를 타고 마을 길을 달려가는 혜원의 표정이 달라진 점도 수미상관 플롯과 주제의 관련성을 나타낸다.
<리틀 포레스트>는 임순례 감독의 연출 스타일 변화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혜원은 미성리에서 “나만의 작은 숲”을 이루고, 상처를 치유하면서 내면의 성장을 이루고, 이를 통해 고향을 유토피아적인 장소로 만들어간다. 그러한 점에서 혜원에게 미성리는 실재하는 유토피아로서의 헤테로토피아가 되고, 혜원은 그곳에 뿌리내림으로써 재생과 부활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현대의 도시인들도 미성리와 같은 자신만의 헤테로토피아를 마련할 수 있을까? 고향의 헤테로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사치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