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먼의 몸부림, 상실감 그리고 놀라움
우리는 항상 소설, 영화, 드라마 등 수많은 대중 콘텐츠를 통해서 비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고민과 마주하는 상상을 해왔다. 이제는 이러한 허구적 이야기에서 상상했던 것을 넘어서 실제 체험적인 영역에서 비인간을 경험하고 있다. 디지털 게임 안에서 스스로가 비인간이 되는 경험을 해볼 수도 있고(<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안드로이드, <Stray>의 고양이 등), 개인 콘텐츠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SNS나 유튜브 등에서 가상 인간(로지, APOKI 등)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집이나 회사에서 AI스피커와 대회하거나 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제 오늘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는 일상에서 점점 구분이 어려워질 만큼 가까워지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질문을 던지면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은 여러 영역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이처럼 대두되는 포스트휴머니즘을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에서는 캐서린 헤일스, 캐리 울프, 그레이엄 하먼이라는 대표적인 학자들의 논의를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도래한 혹은 도래할 포스트휴먼의 시대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를 고찰한다.
캐서린 헤일스는 포스트휴머니즘을 학술적 영역에서 구체화시킨 이론가로서 설명된다. 헤일스는 포스트휴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포스트휴먼의 체현화에 주목한다. 그는 계산의 체제로 몸이 효과적으로 영토화되는 다중적 방식을 탐색하면서 몸이 기술적 조건과 얽히며 생기는 복잡성에 주목한다. 여기서 헤일스는 사이버네틱스로 인한 인간의 정보화, 즉 탈체현화에 맞서 물질로서의 몸을 지키며 체현화를 유지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현화는 몸의 특수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자칫 인간중심주의적 결론으로 귀결될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헤일스는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몸, 즉 포스트휴먼의 몸을 찾아야 하는 난제에 부딪힌다. 저자는 이러한 헤일스의 작업, 포스트휴먼의 몸을 체현화로 정리하는 과정을 ‘몸부림’으로 표현한다. 헤일스가 과학과 문학 안에서 시도한 몸부림의 시도들을 짚어가면서, 저자는 헤일스가 포스트휴먼을 공포나 매혹의 대상이 아닌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담론으로 정립했다는 점을 유의미하게 평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포스트휴먼으로서의 ‘우리’의 몸부림에 집중했기 때문에 헤일스의 논의에서는 타자와의 관계, 타자의 몸부림을 찾기는 힘들다는 것을 지적한다.
캐리 울프는 동물 연구를 통해 포스트휴머니즘을 개진하면서 앞서 언급한 헤일스와는 달리 동물과 함께 살아온 인간이 ‘언제나 이미’ 포스트휴먼이었음을 제시한다. 여기서 울프는 인간을 언제나 인간-동물로 전제한다. 울프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재고하며 뿌리 깊게 남은 인간중심주의 제도의 해체를 시도한다. 이를 위해 인간이라는 시스템 안에 필연적으로 비인간 존재의 흔적이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자명하다고 여긴 인간 개념을 내부에서부터 해체함으로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개방될 수 있다는 것을 ‘닫힘과 열림’으로 제시한다. ‘닫힘과 열림’은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해체주의적 분석을 진행하고, 그 결과로서 시스템을 열게 되면 그것이 다른 시스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울프는 ‘동물권’에 주목했다. 그는 권리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인간 권리를 강화시키는 인간중심주의를 품고 있기 때문에 모순적이라고 보면서 권리라는 개념의 재고를 주장했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절대적 구분이 무효하며, 자의적이고 폭력적 구분은 돌이킬 수 없는 부정적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확신을 보이는데, 저자는 여기서 울프의 ‘상실감’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울프의 논의가 모든 생명체로 확장 가능하고 동시에 실제 제도에 적용해볼 수 있다는 점을 유의미하게 평가한다. 다만 오늘날의 변화는 동물에서 멈추지 않고 인공지능, 로봇 등 무생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동물을 넘어 사물 전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을 지적한다.
헤일스나 울프가 자의적이고 유동적인 정체성으로서의 포스트휴먼 논의를 정립해갔다면, 그레이엄 하먼을 중심으로 한 신사물론은 정체성보다는 존재 자체에 집중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이 모두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난다는 대원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서로 통합될 여지가 있다고 평가하고 포스트휴머니즘의 영역에서 하먼의 논의를 설명한다. 하먼은 모든 사물이 존재론적 삶을 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객체 혹은 사물이 가진 잠재력에서 복잡성이 나온다는 것을 전제로 삼으며, ‘도구존재’로서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시도한다. 이때 ‘도구존재’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개체를 포함하고, 이 개체는 무한한 가능성, 즉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진 세계를 만드는 능력을 담지한다. 이는 도구의 지시성(도구가 역량을 발휘함으로서 무언가를 드러내면서 스스로는 사라지는 성격)이 인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사물은 도구존재이며 이런 점에서 저자는 하먼에게 사물은 스스로 움직이며 스스로 관계 맺을 가능성과 역동성이 가득한 존재이자 ‘놀라움’이라고 평가한다. 하먼은 사물 간의 네트워크가 아닌 사물 내부에서 이러한 ‘놀라움’을 찾고자 시도한다. 저자는 하먼의 소외되거나 오용되던 비인간 존재들의 놀라움을 찾는 시도가 유의미하다고 보지만, 동시에 이를 탐구하는 것을 넘어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블 영화 속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등 슈퍼히어로들, <아바타2>의 툴쿤, <HER>의 사만다 같은 존재들이 허구적 상상을 넘어 현실에서 도래한다면, 우리가 예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단초로서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은 헤일스의 테크놀로지, 울프의 동물, 하먼의 사물이라는 세 가지 중심으로 포스트휴먼 시대를 관통하는 전망을 제시한다. 저자는 각기 다른 논의들의 의의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각 논의들이 연계될 수 있는 가능성과 필요성을 설파한다. 이러한 저자의 시도는 여전히 주위에 팽배한 인간중심주의를 경계하고 비인간과 공조하기 위한 유용한 도움닫기이자 지침으로서 매력적인 가이드가 될 것이다.
글·정은혜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