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희의 문화톡톡] 범죄와 예능의 불안한 동거

2023-04-10     한유희(문화평론가)

범죄, 예능을 만나다

범죄와 예능은 공존할 수 있을까. 범죄를 소재로 한 콘텐츠는 시즌제로 방영이 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대표적인 프로그램만 해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채널A <블랙2: 영혼파괴자들>, E채널 <용감한 형사들 2>,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 <풀어파일러 2>, KBS 2TV <과학수사대 스모킹 건>, JTBC <듣고 보니 그럴싸> 등이 있다.

 

범죄는 언제나 사람들의 흥미로운 주제다. 범죄 예능은 이미 일어난 범죄를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직접 사건을 해결했던 형사들의 입을 통하거나, 퀴즈를 풀거나, 법의학과 과학수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통하거나, 오디오 드라마 형식을 취하는 식이다. 각 콘텐츠의 스토리텔링은 결국 시청자들을 어떻게 해서든 사건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범죄는 더욱더 극적인 사건으로 재구성된다. 범죄가 오락이 될 때, 피해자는 간과된다.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피해자는 오락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재연과 재현 사이: 자극에 길들여지기

 

이러한 범죄 예능이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부터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1992년부터 SBS에서 매주 토요일 밤에 방영 중인 저널리즘 프로그램이다. 사회, 종교, 미제 사건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하며 ‘진실의 눈으로 세상을 지켜보겠습니다’는 취지로 20여 년째 장기 방영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범주에 속하지만 미묘하게 결이 다르다. 이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취하고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에 있다. ‘미스터리’와 ‘추리’ 그리고 ‘스릴러’와 ‘반전’의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사건에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추리 기법, 탐정 수사의 기교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미스터리를 통해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고양시키고 긴장감을 고조시켜, 시청자를 이야기에 단순히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전개에 지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특히 미해결된 범죄 사건이라는 ‘미스터리’는 사건을 재연하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어 여러 가지 실험과 현장 검증을 하는 방식을 통해서 감춰져 있던 사실을 추리해낸다. 재연은 직접적으로 범죄 사건을 재현한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희생자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며,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촉발된다. 즉 시청자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피해자가 되었다가 피해자의 지인, 경찰, 탐정 더 나아가 방조를 통한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결국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청자를 범죄 사건의 해결에 참여하게 만들고, 사회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묻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 또한 자극성과 폭력성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미제살인사건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가 많이 다루고 있고, 사건을 적나라하게 재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인기가 지속되면서, 타 프로그램들이 더욱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적으로 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소재인 범죄를 다루게 되고 이러한 사건을 극적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을 깊이 있게 보도해야 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조차 범죄를 소재로 다룰 때, 자극성이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그렇다면 예능과 범죄의 결합은 어떨까. 예능은 오락적 요소를 기조로 한다. 따라서 탐사보도에서보다 더욱 극적인 방식으로 범죄를 다룬다. 특히 이미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통해 조명된 사건들을 재구성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당연히 범죄 예능은 더욱더 자극적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미 알고 있는 데다가 재미까지 없는 이야기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사건을 색다른 방식을 통해 더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범죄 예능의 관건이 된다.

 

고통을 마주하기

범죄의 재구성은 곧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를 상기시킨다. 범죄 예능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해당하거나 혹은 착취당했는지 세세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오히려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 속에서 범죄의 ‘감상 거리’로서만 작동할 뿐이다. 즉, 가해자가 행하는 범죄가 메인 플롯이고, 피해자의 고통은 서브 플롯이 되고 만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폭력과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인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범죄를 오락으로 소비한다면 피해자의 고통에 연민조차 휘발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고통을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사회를 바꾸는 것보다 흥미로운 범죄에 주목하기가 훨씬 쉬워서다.

사실 우리가 범죄 예능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은 범죄와 나와의 거리감이 담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전한 장소에서 만나는 범죄 예능 콘텐츠는 어떤 범죄 영화보다 스릴 넘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더 ‘리얼’하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범죄조차 영화처럼 수용하게 된다. 나와 관련된 사람이 연루되어 있지 않다는 안전한 감각에서 비롯된 안일한 자세다. 그렇기에 범죄는 예능이 될 수 있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만의 고통일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존재하기에.

범죄 예능에서 패널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그들이 범죄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가담항설에 혹하는 사람들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참혹한 범죄를 보고 들으며, 또다시 확산하는 것은 과연 범죄를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는 취지와 합당한가. 오히려 자극적인 이야기를 수군대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글 · 한유희
문화평론가. 제 15회<쿨투라> 웹툰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2021년 만화평론 공모전 우수상 수상. 경희대 K-컬처 스토리콘텐츠 연구원으로 웹툰과 팬덤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