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를 그려 자화상을 완성하다
알베르 카뮈의 사상을 이해하고 그 안으로 심취해 들어가기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카뮈의 작품을 읽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언제나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사상이 명료하다는 장점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뮈의 사상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얼마 전 미셸 옹프레가 그에 관해 쓴 책이 아무런 쓸모도 없을 것이다.(1) 반면 이 성공한 철학자의 세계관, 특히 옹프레의 관점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옹프레가 투사한 대타자, 카뮈
옹프레가 바라본 카뮈는 옹프레 자신을 비추고 스스로 감탄하는 거울이다. "사려 깊고 자유로우며, 대학의 세뇌를 받지 않은 독자", "좌파 니체주의자", "긍정적 아나키스트", "이단적이고 실용적인 쾌락주의 철학자", "빈곤 계층 출신으로 자기 것에 충실" 등 옹프레가 그린 카뮈의 초상에서는 자화상으로서의 특징이 모두 드러난다. 딱 한 가지, "명성 지어내길 좋아하는 파리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 위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는 부분만 예외에 속한다. <마리안>이나 <누벨 옵세르바퇴르> 같은 잡지에서 찬사를 받은 것이나, 심지어 걸작의 탄생을 축하하며 <르푸앵>에서는 거의 격찬 수준으로 소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셸 옹프레는 파리 사람들, 즉 기자들에게 환심 산 것을 넘어 그들을 자신의 광팬으로 만들어버린 듯하다.
이런 호평이 괜히 나온 건 아니다. 카뮈 사상의 진수만 뽑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작가가 살아온 삶의 일면을 곁들여 작품과 삶 사이의 완벽한 일치를 입증하려 했던 이 책에서, 독자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맹위를 떨친 복잡한 상황, 즉 비판 정신의 쇠퇴가 곧 진보주의 이상의 폐기와 병행하던 당시 상황을 발견한다. 스탈린주의자와 유사한 마르크스주의자와 파시스트 모두를 연상시키며 시작하는 <페스트>의 경우, 이 페스트가 "어제는 갈색이거나 붉은색일 수 있었다"고 일깨워주기 위한 구실로 쓰인다. 하여 작품 속에서는 30년 전 베르나르 앙리 레비와 그 일파로부터 꽃피운 상투적 표현이 페이지를 수놓는다. 옹프레에 따르면, 카뮈는 "마르크스와 레닌, 무솔리니, 히틀러가 각각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믿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내세우는 '총체적 인간'도, 나치가 말하는 '아리아인의 제국'도 믿지 않는 것이다".
마르크스도, 히틀러도 아닌…
옹프레는 최후의 '신철학자'인 것인가? 아득한 1970년대, 몇 년간 세속적 마오주의에 가담했던 젊은 사상가들은 보수적 사상의 통념을 재활용하며 전복적 성격을 띠게 된다. 따라서 명예로운 선배 사상가들의 뒤를 이은 옹프레는 일단 아나키즘을 표방하며 카뮈의 '절대자유 질서'라는 반순응주의의 예찬론자로서 자리매김한다.
중도로 통하는 '정의'의 상징적 그림 속에 카뮈를 확실히 집어넣으려면, 역사에 대한 독특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이는 먼저 알제리에서 프랑스가 저지른 만행과 독립운동가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옹프레가 생각한 것과 동일한 비중으로 열거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옹프레는 예시에 더욱 완벽을 기하기 위해 책 중간에 잔혹한 사진을 수록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독자에게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려는 의도보다는 놀라게 하려는 목적이 더 강해 보이는 사진들이다. 사진 속에는 '양쪽'이 똑같이 저지른 만행이 담겨 있다. 강제노동 수용소와 학살 수용소,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만들어낸 단두대와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팔다리가 절단된 주검, 독일군 병사들이 목매단 러시아 민간인과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사살한 어느 부역자,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어린아이와 알제리 반란군이 참수한 여자아이 등의 사진이 그것이다.
극좌파에 맞서는 우파의 상습적인 독설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위해, 옹프레는 그 자신이 만들어낸 혁신적 개념을 추가한다. 하여 그는 대체적으로 '노'라고 말하는 좌파에는 완전히 등을 돌리면서 '예스'라고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좌파'에 열광한다. '예스'라고 말하는 쪽은 생의 충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고, '노'라고 말하는 쪽은 죽음의 충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을 포괄하는 건 '지중해의 그람시주의'다.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운동가 및 이론가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신기하게도 '절대 자유주의' 철학자의 단죄에 끼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학적 측면에서는 피상적인 정신분석으로 이어지는데, 그 이원론적 시각은 옹프레가 자본주의 반대파 모두에게 갖다붙였던 것에 비해 부족함이 전혀 없다.
저자가 자본주의 반대 진영에서 엄선한 타깃은 바로 카를 마르크스다. 오늘날의 우리는 1871년 3월, 아돌프 티에르 정부에 반대해 파리 시민들이 파리코뮌을 일으켰을 때, 이에 대해 마르크스가 '경멸하는' 입장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는 "외려 베르사유 편이었다". 프루동의 아나키즘에 대한 증오심이 그 첫 번째 이유요, 두 번째는 "기회주의적 전술과 전략"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저자는 국제노동자연합으로 보내진 한 통의 편지에 근거한다. 이 편지에서 "마르크스는 파리 시민들에게 절대 시민봉기를 일으키지 말고 (앞으로 있을 마르크스) 혁명을 준비하라고 권유했다." 그 어떤 역사가라 할지라도 이게 조잡하게 날조된 문서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2)
제국주의도, 독립운동도 야만적?
로베스피에르와 레닌 역시 좋은 자리에 위치한다. 혁명 사상가일 뿐 아니라 정의의 전쟁을 최전선에서 이끈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최고의 악의적 인물로 손꼽히는 건 바로 장폴 사르트르다. 음모와 술책, 간계, 정보 조작, 비방, 중상모략 등의 방법을 써서 카뮈를 죽이려 했을 그에게 모독죄가 씌워진 것이다. 마르크스와 미하일 바쿠닌의 경우처럼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그랬다. 그를 통해 옹프레 자신은 진작에 그 오만한 추정의 상속인이 되었다.
기존 책(3)에서 (파시즘의 욕심 많은 공모자 '포스트모더니즘 마법사')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한의 인간) 장폴 마라를 신랄하게 비판한 이후, 옹프레는 사르트르의 굴욕적인 모습 뒤로 보이는 것에 대해 계속 담판을 지어나간다. 즉, 사르트르가 공개적으로 창피당한 그의 혁명적 이상(理想) 외에,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가르치는 철학까지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카뮈를 철학자로 만든 건 이론적 고찰이 아니라 그의 삶이었다. 실제 세계와 단절돼 울름 거리에 위치한 플라톤의 은신처에 틀어박혀 있던 학자들과 달리, 카뮈는 사는 내내 '삶의 지혜'와 삶에서 끌어낸 수필·희곡·에세이·시론 등을 통해 철학을 했다. 이는 주로 카뮈에게 행복의 전당이나 다름없던 티파자에서 이뤄졌다. '디오니소스식 철학'도, '니체의 즐거운 지식'도 모두 그곳에서 피어났다. 프란츠올리비에 지스베르 <르푸앵> 편집장과 사진기자와 함께, 옹프레는 카뮈의 족적을 따라 이곳을 성지순례한다.
옹프레의 강박관념 가운데 악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발현된다. "한껏 마피아적 성향을 보인 파리의 우각호", "공산주의에 물든 전후 지식인 사회" 등은 "카뮈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듯 보인다". 카뮈가 파리의 어떤 지식인 사회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해보라. 심지어 그가 받은 노벨문학상조차 늘 안 좋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름을 알린 작가로서, 작가 인생의 상당 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이 부분에서 카뮈는 그의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상징적이었다. 1960년 1월, 나무를 들이받은 카뮈의 차 파셀베가에서 그의 주검이 발견됐으나, 당시 이 차를 운전한 건 유명 출판인의 조카 미셸 갈리마르였다. 카뮈는 단 한 번도 내부에서 추방된 자가 아니었다. 어쨌든 파리의 지식·언론계 엘리트와 어울리는 옹프레 이상은 아니었다.
사르트르를 저주하는 아나키스트
그 이유는 이해될 것이다. 2007년 '장관 경찰'로 군림하던 당시 내무부 장관 니콜라 사르코지와 함께 신의 존재와 선악의 차이에 대해 '논하러' 겁도 없이 보보 광장(내무부 공관)으로 간 이 최고의 아나키스트는 대통령이 된 사르코지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카뮈의 유해를 팡테옹 신전에 이장하도록 당당히 권고한 인물이다.(4) 그렇게 함으로써 카뮈는 "우리가 또 다른 혁명을 바라지 않아도 될 진짜 혁명의 기원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의 절대자유주의적 운영"을 과감히 주창했다. 자본주의가 "이 세상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을뿐더러, 앞으로도 이 세계만큼 더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5) 이 왜곡된 의미의 '절대자유'라는 용어는 이제 저급한 언어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옹프레는 지극히 편협한 절대자유 질서의 앞잡이가 되었다. 그는 "그날도, 구원 혁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자본주의와 단절하려는 이들의 의지를 비웃는다. 카뮈를 내세우는 그의 이런 외침은 무덤 속에 잠든 카뮈의 호소를 상기시킨다. "삶에는 찬성이다. 그러나 이를 막아서는 것이라면 반대다." 이 광적인 무모함에 찬사를 보낸다.
글•장피에르 가르니에 Jean-Pierre Garnier
저서로 <지극히 현대적인 폭력>(Une violence éminemment contemporaine) 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1) 미셸 옹프레, <절대자유질서: 알베르 카뮈의 철학적 삶>(L’Ordre libertaire: La vie philosophique d’Albert Camus), Flammarion, Paris, 2012.
(2) Mathieu Léonard, <노동자 해방: 제1인터내셔널의 역사>(L’Emancipation des travailleurs: Une histoire de la Première internationale), La Fabrique, Paris, 2011.
(3) 미셸 옹프레, <비수의 종교: 샤를로트 코르데 찬양>(La Religion du poignard: Eloge de Charlotte Corday), Galilée, Paris, 2009, <우상의 쇠락>(Le Crépuscule d’une idole), Grasset, Paris, 2010.
(4) 미셸 옹프레-니콜라 사르코지 대담, <Philosophie Magazine>, n°8, Paris, 2007년 3월.
(5) 2009년 11월 25일 <르몽드> 기사, 2008년 11월 10일 <France2> ‘모 크루아제’(Mots croisés) 방송, 2009년 12월 29일~2010년 2월 22일 <르몽드 리베르테르>(Le Monde libertaire) 권외 특별호 등에서 발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