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의 문화톡톡] 내가 나를 죽이기 전에, <와이 우먼 킬 시즌1 Why Women Kill>(2019)

잠과 여가 사이를 채우는 OTT콘텐츠 추천(1)

2023-12-04     이지혜(문화평론가)

‘잠’과 ‘여가’ 사이에서

휴대폰과 컴퓨터의 경계가 흐려진 지 오래다. 그동안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의 구분도 어려워졌다. 현대인 대부분은 퇴근 후에도 일을 한다. 혹은 집중해야 하는 순간에도 연락에 답해야만 한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시간과 장소의 경계가 무화되었다. 사람들은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어딘가에 접속해 있어야만 한다. 하루의 모양을 구분짓는 선이 없어지자, 애써서 지켜야만 하는 것이 생겼다. ‘잠’과 ‘여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약 “110만명”이다. 수면장애의 대표적 원인인 불면증은 뇌가 ‘각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깊은 잠을 잘 수 없거나, 시간을 들여 충분히 잠을 잘 수 없는 증상이다. ‘각성’이란 외부에 일이 있음을 인지하고 깨어있는 상태다. 성인 대부분이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한 번씩은 수면부족에 시달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잠’과 ‘여가’는 긴밀한 연관이 있다. ‘여가’의 사전적 의미는 ‘직장 업무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이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뜻한다. 현대인은 ‘여가’라고 믿는 활동을 지키기 위해 ‘잠’을 포기한다. 시간과 장소의 경계가 무화된 지금, 휴대폰을 들고 ‘릴스’나 ‘쇼츠’등의 초 단위 영상을 들여다보거나, 유튜브를 킨 후 드라마나 영화를 요약한 영상을 시청하며 하루를 위무한다. 이 과정에서 긴 영상은 보지 않는다. 보더라도 빨리 감기를 한다. 왜냐하면 한정된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이나다 도요시는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2022)을 통해 ‘빨리 감기’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다.

 

첫째, 콘텐츠가 너무 많다.

둘째, 구독 서비스의 등장으로 시청에 제한이 없어졌다.

셋째, 지나치게 친절한 화면과 자막 서비스로 빨리 감기를 해도 작품 이해에 무리가 없다.

 

잠과 여가가 구분되던 때, 영화관람이 ‘여가’인 시절도 있었다.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 제작사의 신작 개봉일을 챙기고 맞춰, 예고편으로 내용과 결말을 가늠해가며 극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인생의 낙인 ‘보통’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가 아니면 이 ‘장소’에서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제한’이 ‘관람’이라는 목표의식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장소의 경계가 무화된 지금, 영화관으로 달려가는 건 소수의 ‘시네필’이나 혹초의 영화마니아뿐이다.

잘 시간도 부족한 마당에 현대인들은 시청에 제한이 없어진 콘텐츠 ‘관람’에 시간을 쏟을 리 만무하다. 무언가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스스로 고르는 일은 적다. 플랫폼이 학습해 제공하는 취향 알고리즘의 채택에 따라 그저 본다. 그러므로 시청자의 의지에 따라 선택되어 ‘빨리 감기’ 당해 보여지는 영상은 어쩌면 축복받은 영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가급적 알고리즘의 권유에서 벗어나 최대한 많은 콘텐츠를 접하려고 노력한다. 이건 평론가로 사는 사람의 알 수 없는 의무인 것 같다. 범람하는 콘텐츠를 뒤적이며 혹시나 놓친 작품이 있진 않을까 OTT를 뒤적거린다. 그러다 보면 가끔 이대로 묻히기는 아깝다고 생각되는 시리즈나 영화를 마주하기도 한다. 그렇게 발견해 필자의 여가를 아낌없이 할애한, 마음에 오래 남은 작품 몇 개를 추천해 본다.

 

 

내가 나를 죽이기 전에, <와이 우먼 킬Why Women Kill>(시즌1, 2019)

세 여자는 같은 맨션을 배경으로 다른 시대를 산다. 각기 1963년, 1984년, 2019년을 살고 있는 그들은 성별만 같을 뿐, 직업도, 인종도, 가치관과 생활 방식도 모두 다르다. 교과서 같은 이미지의 현모양처 베스 앤(1963), 세 번째 남편과 함께 사는 사교계 퀸 시몬(1984), 남편과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 자유연애를 약속하며 결혼한 양성애자 테일러(2019). 이들의 삶에도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배우자'의 존재다.

 

OTT

 

1963년을 사는 배스 앤은 보편적 현모양처다. 베스 앤의 삶은 피아노 반주자가 되고 싶던 자신의 자아를 죽이고 만들어진 것이다. 베스 앤은 그 시절 여성들이 그러하듯 남편이 욕망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대상화한다. 그녀는 남편의 내연녀인 에이프릴과 우연히 친구가 된다. 이를 계기로 자신의 현재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여성들이 자신처럼 되지 않길 바라며 완벽한 범죄를 계획한다.

1984년의 시몬은 베스 앤보다 개방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녀에게 배우자란 마구 갈아치울 수 있는 ‘가구’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러나 시몬은 세 번째 남편 '칼'과의 관계는 여태까지와 좀 다르다고 믿었다. 그는 그녀의 성공적인 삶을 장식하는 완벽한 일부분이었다. 자상하고 능력있으며 친구같은 남편의 존재는 시몬의 자랑이나 마찬가지였다.

믿었던 남편이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직후, 시몬은 자신의 결핍을 발견한다. 시몬은 "타인과 완벽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인물이었다. 칼의 비밀은 시몬의 트라우마를 환기하며, 시몬이 또 다른 불완전한 관계에 집착하게 한다. 그러나 시몬은 이를 계기로 '완벽한 관계란 꼭 완벽한 상황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019년 테일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유연애주의자인 그녀는 자신의 양성애자 성향을 이해해주는 동반자 일라이와 결혼한다. 결혼한 이후에도 동성 파트너와 관계를 맺는다. 완벽했던 그녀의 삶은,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은 동성 파트너 제이드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한 집에 살게 된 셋은 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특히 테일러와 일라이는 서로의 성향을 완벽히 ‘이해’하고 ‘존중’하며 ‘배려’하고 있다는 전제 때문에 서로 오히려 멀어지는 계기를 만들고 만다.

결국 이 '완벽한 이해'는 종말을 맞이한다. 때때로 이 '완벽한 이해'의 종말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마음들을 해결할 수 있는 온전한 관계의 답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말미에 가서야 밝혀지는 ‘살인(Kill)’의 대상이 과연 정말로 타인일까. ‘어째서 그 여자는 살인을 했을까?’라는 제목에서 엇나가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나 죽은 자아가 있다. 잠과 여가가 구분되지 않는 삶을 지탱하기 위해,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애써 죽이거나 죽여야만 했던 자아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꿈일 수도, 목표일 수도, 희망일 수도 있다. 긴 영상이 온전히 끝난 후, 내가 죽인 것은 무엇이었는지 가만히 되짚어 본다.

 

 

·이지혜

문화평론가. 제16회 <쿨투라> 영화평론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2023 전주국제단편영화제 전북부문 심사위원, K-컬처 스토리콘텐츠 연구원(A)으로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영화평론가 및 문화평론가로 활동중이다. 대중문화와 기술인문(AI,NFT,메타버스,챗GPT)을 연구하고 있다.

인스타: leehey_cine 이메일: leehe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