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늘의 시네마 크리티크] 이야기꾼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시리즈는 왜 두 세계를 합치지 못했나
<외계+인> 시리즈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탈옥한 외계인 죄수들이 외계 물질인 하바를 터뜨리기 위한 우주선이 착륙한 2022년 대한민국의 현재와 하바를 터뜨리는 것을 멈추기 위해 신검을 가지고 도망쳐온 시간으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1391년 고려 말이라는 과거다.
여기서 630년의 시간적 격차를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것은 '천둥 쏘는 처자'라고도 불리는 이안(김태리)이다. 앞서 탈옥한 외계인 죄수들은 인간의 몸에 가두는 일을 하던 가드(김우빈)과 썬더(목소리 김대명)는 1380년 고려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우연히 한 여자아이를 데려오게 된다. 요괴가 된 한 여인이 사망하면서 아이를 남겼던 것. 본래 인간의 생애에 개입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지만, 어쩐 일인지 썬더가 몰래 여자 아이를 현재의 시간으로 데려온다. 그때 그 아이, 이안의 존재는 그렇기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심축인 동시에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안의 시간은 고정된 시간축에서 정상적으로 흐른 것이 아닌 타인에 의해 뒤틀렸으며, 이야기꾼 최동훈은 이를 이용해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해낸다. 하지만 1부(2022)와 2부(2024)로 나뉜 <외계+인>는 두 개의 세계가 접합하지 못하고 이질적으로 분리되는 느낌이 든다. 1부는 고려에 불시착한 이안이 신검을 되찾기 위해 얼치기 도사 무륵(류준열), 두 신선 흑설(염정아), 청운(조우진), 자장(김의성)과 얽히는 이야기가, 2부는 신검을 손에 쥔 이안이 현재의 시간대로 복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두 개의 세계와 두 개의 이야기의 연결고리는 이안의 정체성이다.
10년 전, 가드, 썬더와 함께 고려에 떨어졌던 어린 이안과 같은 공간에 있던 어린 무륵은 1부에서 외계인 죄수이자 설계자가 들어간 문도섭(소지섭)을 마주친다. 설계자가 누구의 몸속에 들어간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정황상 어린 무륵의 신체가 들어간 듯한 인상이었다. 최동훈 감독은 2부에서 그런 관객들의 예측을 180도 뒤집어버린다. 사실 무륵의 몸에 들어간 것은 썬더의 에너지원이었고, 설계자를 그날 마주친 것은 바로 이안이었다. 이안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외계인 죄수를 몸속에 품고 있었고, 그렇게 살아왔다. 마치, 고려 시대에서 대한민국으로 가드와 썬더에 의해 넘어왔던 것처럼, 이안의 몸에는 타인의 시간도 함께 흐르고 있었다. 이안은 그야말로 불안정한 시간대를 표방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륵은 어떤가. 가동을 멈췄던 썬더의 에너지를 무한정 품고 있던, 어찌 보면 외계인 죄수를 가두는 것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 인물과도 다름없다. 이안과 무륵의 공통점이 있다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쉬이 답변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1380년의 고려의 갓난아이 이안은 대한민국에서 살다가 다시 고려로 넘어왔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이안의 시간은 과연 어떤 공간이 기준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일까. 무륵도 마찬가지다. 스승처럼 어엿한 도사가 되지 못하고 어설픈 도술을 구사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기억이 지지직거리며 멈춘 자로 과연 그의 시간은 무엇을 기점으로 멈춘 것일까도 중요한 포인트다.
두 사람의 흘러간, 혹은 멈춘 시간을 재가동하는 것은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된 순간에 있다. 신검을 자신의 손에 넣기 위해서 싸우던 이들은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된다. 이안의 몸에 잠들어있던 외계인 설계자가 이안의 몸에 신검을 꽂으며 깨어나면서 말이다. <외계+인> 시리즈에서 인물들이 획득해야만 하는 신검은 두 가지의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다. 하나는 외계 물질인 하바의 작동을 멈출 수 있으며 정지 장치로서, 또 하나는 인간의 몸속에 잠들어있던 외계인 죄수를 깨우는 역할이다. 상반된 두 개의 기능을 신검이라는 하나의 도구 하나가 수행하는 셈이다. <외계+인> 시리즈 안에는 두 개의 세계, 자아, 이야기, 기능이 뒤엉켜있으며, 2부에서 그것이 모두 풀어헤쳐진다.
앞서 <외계+인> 1부는 개봉한 직후, '난해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관객들의 혹평과 함께 처참한 흥행 실패를 맛봤다. 2년 만에 개봉한 2부는 어떨까. 2부의 오프닝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1부 요약본은 어찌저찌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과연 외계인이라는 존재가 두 개의 이야기 축을 위해 존재했어야 하는 것인지라는 의문점이 든다. <외계+인> 시리즈를 외계인으로부터 인간의 세계를 구하는 히어로물로 읽어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안과 무륵의 자아를 찾아나가는 여정에 다 본질이 가깝다.
그 관점에서 <외계+인> 시리즈를 다시 읽어보자. 영화는 인간의 신체를 외계인을 수감하는 하나의 감옥으로 설정하며, 그들이 존재조차 인식할 수 없다는 세계관으로 설정한다. 하지만 이것이 외계인이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관객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 같다. 제목에서 언급하듯, <외계+인>은 외계인과 인간의 두 대상을 합한 이야기다. 거시적으로 인간의 목적이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고, 미시적으로는 숨겨진 자아를 대면하는 일이라면 외계인은 어떤가.
탈옥을 시도한 외계인들의 거시적인 목표는 외계 대기물질인 하바를 이용해 지구를 자신들의 본거지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 부분은 애초에 영화의 초반 설정에서 잘 드러나있다. 하지만 외계인들의 미시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갸우뚱하다. 설계자가 들어간 몸을 찾기 위해서 자장과 동료들은 움직이지만 이는 거시적인 목표를 되찾기 위해서다. 외계인들의 특성은 하나의 뭉뚱그려지고 희미한 형태로만 드러나있다. 때문에 두 개의 대상이 균형을 이루기보다 하나의 중심축이 무너지고, 그저 기능적으로 SF라는 설정을 위해 움직인다는 인상만이 가득하다.
어쩌면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몸에 무엇이 들어있든 변하지 않는다"라며 무륵을 위로하던 이안의 대사가 아닐까. 인간의 신체 안에 들어선 미지의 존재보다 자신을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최동훈 감독은 넌지시, 아니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2부의 엔딩에서 무륵은 외계인들을 함께 제지하고 다시 고려로 돌아왔지만, 불안정한 포털을 넘어 다시 2022년으로 넘어간다. 이안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을 전달하기 위해서. 최동훈 감독이 말하는 인간은 늘 불안정하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품고 있는 존재인 것만 같다. 그러나 1부가 아닌 2부로 나눠서 개봉한 상황과 제목인 <외계+인>을 설득시키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착 요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꾼 최동훈 감독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일상성과 판타지가 융화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지점이다.
글·이하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