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들의 꿈
존 버거가 1964년에 쓴 <코커의 자유>의 서문은 소설이 나온 지 45년 뒤에 쓰였다. 이 서문에서 저자는 주인공을 창작하게 된 영감을 누구에게서 얻었는지 밝힌다. 바로 에드거 삼촌이다. 에드거 삼촌은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고 열정도 없고, 그래서 야심도 갖지 못하는 무능한 인물이다. 사회 기준으로 보면 그는 '루저 인생'이다. 그러나 저자는 10대 때 에드거 삼촌의 남다른 고집스러움과 개성을 좋아했다.
1960년 4월 4일 영국 런던. 63살의 독신남 윌리엄 트레이시는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고, 17년 전에 세운 작은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매일 아침 윌리엄은 모자란 누나 이렌의 곁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는 12년째 이렌의 집에 살고 있다. 그리고 저녁마다 윌리엄은 '비엔나, 푸른 다뉴브의 도시'라는 제목의 슬라이드 영상을 이용한 강연을 소교구 모임에서 한 뒤 사무실로 돌아와 자유로운 밤을 만끽한다.
사무실 위에 아파트로 개조한 공간이 있다.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이 소설에는 윌리엄의 매일 아침과 저녁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등장인물 모두 보기에는 별것 아니지만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과 결혼해줄 사장을 찾는 젊고 예쁜 타이피스트, 백수인 전직 가정교사 여성 2명, 시골 출신이라 런던에서 늘 길을 헤매는 트럭 운전사,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늙은 부랑자가 그들이다. 주인공에 가까운 등장인물 중 하나는 알렉 구치다. 18살인 알렉은 윌리엄의 사무실에 근무하는 유일한 직원으로, 태어나서 처음 여성과 잠자리를 하게 된다. 그 아름다운 여성은 어느 강도의 내연녀로, 훗날 코커의 인생은 이 강도 때문에 꼬이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면접, 수다, 잡담, 비밀 이야기, 희망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 등. 이 모든 것이 코커, 코커의 비엔나 출신 가정교사, 코커의 어머니 기억 속에 살아 있다. 이 모든 상황이 얽히고설킨다. 이 소설은 인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익살스러우면서도 슬픈 인생. 이 소설에는 절대적인 선인도 악인도 없고, 범인도 피해자도 없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도 개입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같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평범한 사람이다. 저자는 전지전능한 신처럼 굴며 등장인물들을 묘사하지 않는다. 다루기에는 너무 방대해 구멍이 여기저기 뚫린 불완전한 현실을 그린다. 이 소설은 삶에 대한 탐욕, 인간에 대한 호기심, 학대받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소설은 신파적인 감정이 배제된 따뜻한 시선과 냉소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이와 비슷한 저자의 다른 작품이 있다. 바로 <코커의 자유>와 같은 기간에 나온 <사팔뜨기 여자와 그 외 시 작품들>(1)이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실제 오랫동안 살고 있는 농장이 위치한 오트사부아 지방을 배경으로 다룬다. 저자가 살고 있는 농장은 복도에 화장실이 겨우 갖춰진, 최소한의 편의시설만 있는 곳이다. 땅을 일구며 사는 사람과 가축, 자연, 시간. 바로 여기에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글•마리노엘 리오 Marie-Noël Rio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1) <La Louche et autres poèmes>, La Maison de la poésie Rhéne-Alpes-Le Temps des Cerises, Saint-Martin d'Héres, 파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