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화의 문화톡톡] 반가(半跏) : 만인(萬人)의 사유지

이동형 체험 융복합 공연

2024-05-13     김기화(문화평론가)

202431()부터 3()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순헌무용단의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가 공연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신작 공연에 선정된 작품이다. 2008년 시작된 공연예술창작산실은 동시대성과 다양성, 수월성, 실험성을 지향하는 우수 신작을 발굴하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의지가 담긴 공연 제작 지원 사업이다. 2023년 선정된 무용 분야의 여섯 작품은 단계별 과정 지원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여 비수기인 20241월부터 3월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 그리고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오르며 공연시장을 달구었다. 작품은 1년의 제작 기간을 거치며 고민한 만큼 예술 형식의 지향점이 비교적 명확하고 안무가들의 철학이 명쾌히 드러났다.

순헌무용단의 <반가(半跏) : 만인(萬人)의 사유지(思惟地)>는 대표 차수정(숙명여자대학교 교수)이 예술감독과 안무(按舞)를 맡고, 이영일이 총연출을 맡았다. 순헌무용단은 2005년 한국무용 전공자들로 창단한 이후 융복합 장르의 창작 작업을 통해 한국무용의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하며 단체의 정체성을 구축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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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어 진행하는 이분법 형태의 공연과는 달리 이동형 체험공연으로 진행되어 주목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고, 최근 챗GPT와 인공지능 등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예술 창작까지 넘나드는 시대가 되어 공연에도 다양한 디지털 알고리즘(algorism)이 도입되고 있다.

이번 <반가 : 만인의 사유지>는 서울의 명문 예술극장으로 명성이 있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무대와 객석이라는 이분화된 소통구조를 버리고, 극장 전체를 특정적 장소로 확장하여 매체, 강연, 체험, 공연을 가로지르며 다각적인 감각까지를 동원하여 사유의 방식, 사유의 가치를 공연장 전체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반가는 부처가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이다.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를 일컫는 용어이다. 그러나 공연에서의 반가는 국보 제83호로 지정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상징하는 깨달음, 혹은 사유의 근원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사유하는 부처 반가의 모습을 관객이 체험으로 인지하고, 감각을 일깨워 자각을 주제화된 주요 장면에 동화하게 하려는 연출의 의지가 엿보였다. 작품에서는 관객의 체험-감각-자각을 통해 몰입하여 사유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몰입은 시각적 요소에 대한 인식이 암시적(暗示的) 배치보다 명시적(明示的) 배치일 때 커진다. <반가 : 만인의 사유지>는 명시적인 시각적 요소에서 시간적 요소를 잘 통제하며 공연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사유에 관한 심리적 반응을 유도하였다. 고요와 몰입의 질서가 유지되어 공연의 반은 성공했다.

공연은 5개의 특정 장소로 분화하여 진행되었다. 관객의 수를 제한하여 수용하였고, 분화 공간으로의 이동은 인원수를 제한함으로써 공간의 여백을 두어 개인 사유의 시공간을 확보하게 하였다. 일정한 서사를 두어 공연을 고조(高潮)하기보다는 사유의 근원인 흙과 바람과 물을 병렬 배치함으로써 각각의 물상에서 드러내는 속성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하였다.

공연은 극장 로비에서 시작하였다. 로비를 구성하는 건축환경은 연행을 시작하는 하나의 무대, 혹은 무대 장치로 활용되었다. 의례를 상징하는 행렬이 등장하고 그 행렬이 지지하는 또 다른 인물이 집전(執典)을 맡아 전례(典禮)는 진행되었다. 집전을 맡은 차수정의 정주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출연자가 내는 대나무 셰이커의 소리로 세상의 공명과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고, 출연자들은 의례에 가까운 절제에서 차츰 유연한 흐름으로 춤을 바꾸며 그들을 에워싼 관객을 다음 차원의 공간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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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두 번째의 공간으로 이동하여 후면무대 진입로 입구에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불상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제한된 인원들로 구성된 관객이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입장하며 세 번째 공간에 진입하게 된다. 극장 후면무대를 진입하면 평소에는 공개되지 않던 비밀스러운 공간이 개방된다. 그 공간은 정적인 에너지가 흐른다. 무대 후면[뒷무대]에 진입하면 관객들은 거문고 연주자의 호흡과 소리, 흙을 어루만지는 춤꾼을 만난다. 고요함을 가르는 거문고 현의 울림은 기교적이기보다 호흡과 가까운 기세를 뿜어내었고, 흙을 어루만지는 춤꾼의 몸짓도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지향하였다. 관객은 개별적 관심에 따라 자유롭게 그 흐름에 합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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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공간에 진입하면 영상으로 펼쳐진 바다를 만난다. 심연(深淵)의 바다 물살과 그 물을 가르며 유영하는 물고기를 만나고, 바닥에 놓인 물고기 블록은 젊은 관객들에 의해 한 마리씩 완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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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 바다의 영역을 이동하면 다섯 번째 공간인 본 무대에 설치된 넓은 수조(水槽)를 만난다. 넓은 수조의 물을 가르며 감각적으로 오가는 무용수들의 행위를 목격한다. 늪과 같은 곳에서 질척이는 듯한 모습이다. 본 무대를 가로지르면 관객들의 체험은 일단락한다. 왼쪽 옆 무대의 욕조에 있는 여자 출연자에게 소망을 적은 공을 전하고는 체험의 공간을 빠져나와 객석으로 이동하게 된다. 관객이 무대로 이동하면 무대의 공연은 지금까지의 인식을 동원하여 심리적 체험으로 소통하고는 확장된 공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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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가량 진행된 공연은 앞서 경험한 모든 상황이 하나의 집약된 춤의 세레머니로 집약된다. 무대 위의 상황은 수조 안과 수조 밖의 공간이 구분되어 시작되고, 공연은 차수정의 좌종 소리로 시작된다. 좌종 소리는 불가의 정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춤추는 의례로 이름 붙여 질만한 본무대의 상징적인 공간과 어울리는 소리이다. 무용수들은 인식 외부의 사유에서 점차 인식 내부의 다양한 사유를 통해 자신의 깨달음을 채찍질하며 새로운 인식의 공간을 회복하며 사유를 확장해 간다. 춤의 형식은 군무의 일체감보다는 즉흥성에 입각한 흐름을 엿보인다.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형태적이고 교태적 춤동작보다는 몰입하고 확장하는 형태의 춤동작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자신의 업보로 인한 무게를 깨달음으로 극복하는 춤과 늪과 같은 물, 정화하는 물이 개입되며 가시화를 보여주었다. 깨달음을 향한 부처의 반가의 수행을 해체하여 인간 내면의 번뇌를 보여주었다. 안무자의 의도 우리 모두가 반가의 사유 안에서 바쁜 현실을 잊고 잠시나마 자신을 찾는 사유 시간을 가져보자는 의미입니다.”는 어느 정도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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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공연물에서 한 번 정도는 시도되어도 좋은 작품이었다. 프로시니엄 무대의 대명사 아르코극장 대극장의 프로시니엄 무대를 해체하여 만나본 <반가(半跏) : 만인(萬人)의 사유지>는 이동형 체험공연으로 일반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향유의 기회였다. 무용계는 관객 지지기반이 유독 열악하다. 소수 엘리트 무용 관객 취향일 수 있는 동작 중심, 혹은 개념 중심의 형식화된 범주의 공연시장이 조금은 와해 되어야 한다. 관객이 원하는 다양한 향유의 특성을 인정하는 폭넓은 관점이 공연시장에 활발하게 개진될 수 있는 격려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차수정과 순헌무용단의 고민은 관객의 지지를 구축하는 좋은 시도였다.

 

 

글·김기화(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