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리스트들만 예찬하는 프랑스의 반(反)올림픽 정신

2024-06-28     프레데리크 비알 | 법학 교수

프랑스 정부는 국위선양, 경제 효과, 쿠베르탱이 남긴 유산 승계, 국민 사기 진작 등을 앞세워, 파리 올림픽이 프랑스를 위한 기회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올림픽 열기는 저절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사전 준비를 통해 조직적으로 형성된다.

 

모든 국민이 대형 스포츠 행사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투표를 통해 시민의 의견을 물으면(함부르크, 스위스의 시옹) 올림픽 개최가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국민투표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만으로도(부다페스트), 다른 경우에는 시민들의 반대 시위(보스턴)나 혹은 시의회 선거의 영향으로 개최 의사가 철회되기도 한다.

프랑스도 여론조사 결과 올림픽 개최 지지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수도권 지역(일드프랑스)의 반대 여론이 유독 높았다. 2024년 3월, 비아보이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체 조사대상자 가운데 57%가 올림픽 제전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문화계에 러브콜 보내는 프랑스 정부

프랑스 정부는 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문화계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올림픽에 문화적 기품을 더해 스포츠 행사를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 일환으로 2021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2024년 파리 문화 올림피아드 행사를 출범시켰다. 공식 사업으로 지정된 “다양한 문화계 및 스포츠계 인사들이 이끄는” 프로그램들에 재정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프랑스 정부는 2,000만 유로, 파리 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COJOP)는 1,190만 유로의 지원금을 제공한다.

문화 올림피아드란 개념이 처음 구상된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였다. 문화 올림피아드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열었던 올림피아 제전에서 영감을 얻었다. 당시 올림피아 제전에서도 예술 경연(시, 수사학, 음악, 조각 등)이 함께 조직됐다. 1912~1948년까지 올림픽이 개최될 때마다, 그 이후로는 간헐적으로, 일회적이든 영구적이든 모든 종류의 작품 창작이 올림픽 개최와 함께 동반됐다. 2024년, 이번에는 비록 문화예술을 겨루는 대회는 없지만, 올림픽 개최에 앞서 행사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각종 문화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다.

“탁월성, 사회통합, 문화다양성, 보편성 등 예술과 스포츠 사이에 서로 공통된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이 주요 취지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탁월성’이 ‘사회통합’과 짝을 이루는지, 그리고 19세기 이후 전 세계에 강요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고유한 특성인 경쟁 지향적인 성격을 띠는, 서구에서 탄생한 한 스포츠 행사 속에서 어떻게 ‘문화 다양성과 보편성’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지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각종 대규모 만남의 장이 예술 창작을 통해 더욱 숭고한 스포츠와 문화 간 대화를 촉진”해 줄 것이니 말이다.

문화 올림피아드는 오는 6월까지 파리 샤틀레 극장을 비롯해 정부 지원을 받는 여러 대형 극장과 더불어, 마리오네트 국립센터(CNMa) 인증을 받은 무프타르 거리의 극장 등 여러 소극장에서도 함께 진행된다. 사실상 CNMa도 자신들의 예술이 ‘올림피즘과 스포츠 그리고 문화의 가치들’에 공헌하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된 문구처럼 “스포츠와 문화의 가치는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혼연일체, 감동의 순간은 스포츠만이 아니라 문화 행사를 통해서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CNMa는 “2021~2024년 스포츠 테마를 통해 집단 서사를 구축할 다양한 예술 창작 프로그램 사업을 마련”했다.

프로젝트 ‘스포츠 편재’는 참여를 희망하는 극단에 “공적 공간에 시적 혹은 스포츠적 상상을 불어넣을” 단막극 형태의 공연을 제안했다. 가령 <라커룸>(“잠시 뒤 경기를 뛰는 800m 달리기 육상 선수의 머릿속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이나 혹은 <상자 속 스포츠>(“멋진 스포츠 경기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기 위해”)가 대표적인 예다.(2)
 


스포츠 예찬하기에 급급한 문화 올림피아드 

정부 지원으로 촉진된 문화계 협력은 ‘공정성’, ‘상대에 대한 존중’, ‘자기 극복’, 올림픽 헌장이 표방하는 가치들을 더욱 이상화하고 있다. 이는 문화 올림피아드 인증을 받은 각종 예술 창작 프로그램이 제출한 지원서 속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단순 메달 사냥이 아니다. 체육 혹은 예술 주체 개인의 차원을 뛰어넘는, 숭고함의 감정에 모두가 혼연일체를 이룰 수 있는 민중의 화합과 단결을 고취하는 것이다.

문화 올림피아드 개최의 목적은 단순히 요란하게 스포츠를 예찬하는 데 있지 않다. 가령 라 스칼라 프로방스 극단은 링 위에 오른 여성복서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고뇌, 역사, 출신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연(줄리 뒤발의 <전쟁의 향기>)을 선보였다. 대본의 완성도나 여배우의 연기력 평가는 잠시 미뤄두고, ‘올림픽 형식’이 도입된 이 연극이 지닌 다양한 특성에 주목해보자.

이 연극에는 링 위에 오른 빈민계급 출신의 한 여성이 극중 인물로 등장한다. 우리는 연극을 보며 그녀의 용기와 번민에 공감한다. 명실상부 남성 스포츠로 통하는 복싱에 도전하는 여성이 경험하는 무수한 번뇌를 말이다. 사실상 이 연극은 인간적이고, 페미니스트적인, 담대한 담론 생산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인종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발언으로 악명이 높은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보다 이 극 중 여성이 대중에게 훨씬 더 강한 호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에 그 누가 반대할까?

문화 올림피아드는 “예술적 체험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문화계, 체육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창작자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모두 두 가지다. 작품 공연자 또는 작품 기획자로 공모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술 창작 세계는 불안정하기로 유명해 어지간해서는 재정확보가 쉽지 않다. 그런 만큼 엄청난 희망자 수가 증명하듯, 이번 행사에도 높은 관심이 몰렸다. 문화부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03년 말 총 1,900개 프로젝트가 출범했고, 그 가운데 1,600개 이상이 ‘문화 올림피아드’ 공식 인증 라벨을 획득했다. 더욱이 534개 지자체 역시 ‘2024 테르드 쥬’ 라벨 인증을 통해 올림픽 문화 행사에 동참하고 있다.

‘예술, 문화, 혁신 기관’, 상카트르 파리는 소시에테 데 그랑 프로제(소시에테 뒤 그랑 파리의 후신)가 후원 중인 ‘함께 하는 공사, 그랑 파리 엑스프레스 예술인 레지던스’ 사업을 통해 문화적 포장의 훌륭한 예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상카트르 파리의 지원을 받은 통섭 예술인 팀은 해당 공사가 지역 주민에게는 “시각적 오염 내지는 공해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해당 지역민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참여형 활동’을 구상해냈다. 조만간 “조성될 동네가 훨씬 더 친환경적이고, 접근이 용이하며, 다양한 교통 인프라를 갖춘”(3) 공간으로 재탄생한다는 점에서, 불편한 공사를 충분히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올림픽 홍보 행사에 타깃이 된 청소년과 어린이들

한편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지원금 물결이 쏟아지고 있다. 올림픽 시설 공급회사 솔리데오의 운용 예산(44억 9,000만 유로)은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에 힘입어 꾸준히 증액되고 있다. 솔리데오는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고, 지역의 변모 과정을 오롯이 증명하며, 매일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중인 신흥 지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건축 공모전을 실시했다.

가령 솔리데오는 ‘집단 마술’을 주제로, “협의개발지구(ZAC)에 건설될  올림픽·패럴림픽 선수촌 내 영구 설치예술작”(4)에 대해, 30만 유로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선정을 원하는 건축가나 예술인은 그 대신 무조건 올림픽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공모전은 “‘예술과 스포츠’ 간 대화를 증진하고, 올림피즘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프로젝트”(5)의 신청만 받는다는 조건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운영자들은 특히 청소년을 집중 타깃으로 삼고 있다. 가령 프랑스 교육부는 2022년 10월 20일 국가 정책 방향 지침을 통해 ‘모범적인’ 올림픽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6) 올림픽은 ‘우리 시민들의 동참(국기 퍼레이드, 성화 봉송, 올림픽 준비 센터(CPJ) 운영, 무료입장권 지급 프로그램 등)’을 끌어내는 ‘국민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선 교사들도 현재 정부의 흐름에 동참해 학생들의 교육을 이끌어줄 것을 요구받고 있다.

가령 교사들은 예술문화교육 활동 및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필요 재정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 교육 프로젝트와 활동은 유치원 시절부터 일찌감치 어린이들의 머릿속에 예술과 스포츠가 ‘공통의 가치’(7)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주입할 무수한 기회에 해당한다. 2월 말, 프랑스 교육부는 초등학교 1학년(CP)과 5학년(CM2) 학생들을 대상으로 2024년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2유로짜리 기념주화와 ‘올림픽의 가치와 역사’를 담은 소책자를 배포했다. 사업비용은 1,600만 유로로 추정된다.

지역의원들도 국가의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가령 파리 북부 9개 도시를 묶은 플렌 코뮌 지역공공기관(EPT)(메트로폴 설립에 따라 설치된 새로운 지역공공기관 - 역주)은 센생드니 도서관 협회를 상대로, 어린 학생들을 타깃으로 한 올림픽 홍보 행사를 조직해 줄 것을 끊임없이 주문했다. 오베르빌리에(센생드니주에 속한 도시-역주) 시장은 주저하지 않고 오베르빌리에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올림픽이 빚어낸 ‘외곽지대의 자긍심’을 테마로 한, 멋진 홍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정부의 노력을 이어받아 각종 지역 행사도 개최되고 있다. 올림픽 홍보에 참여하는 지자체들이 행사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가령 몽트뢰이 어린이도서전은 2022년 ‘역동적인 팀워크’라는 제목의 ‘도서전 책자’를 발간했다. ‘올림픽 문예 활동’ 항목이 적힌 방학 과제 노트로, 아동에게 스포츠 경쟁 활동이 얼마나 유쾌하고 재미있는지 스포츠의 묘미를 알려주기 위해 제작됐다.

 

기 드보르식 ‘스펙터클’ 극치

더욱이 센생드니주는 프랑스 정부, 그리고 파리 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COJOP)와 함께, ‘130개국-130개 중학교, 올림픽 체험을 위한 완벽한 제도’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은 많은 학급이 다양한 과목(언어, 역사, 지리)과 연계해 다채로운 올림픽 관련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스페인, 그리스, 아일랜드, 덴마크, 이탈리아에 대해 지식을 쌓거나, 더 나아가 해당 국가를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가령 도라 마아르 중학교에서 일하는 스페인어 교사는 학생들을 데리고 바르셀로나를 방문했다. 바르셀로나의 여러 올림픽 시설을 함께 둘러보며, “어떻게 바르셀로나가 변모했고, 또 어떻게 센생드니가 변모하고 있는지 두 지역의 변모 과정을 서로 비교”(8)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국가지원을 받은 수혜자는 무조건 올림픽의 장점을 설파하는 공식 연설을 소화해내야 한다.

최근 올림픽 홍보 캠페인의 일환으로, 생드니시의 담장은 도·지자체의 자금 지원을 받아 제작된 벽보로 장식됐다. 벽보에는 이번에 대다수의 올림픽 경기가 개최될, 프랑스 본토에서 가장 가난한 도의 주민들이라고 소개된 이들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된 모습이 담겼다.

올림픽 로고 바로 옆에 ‘9.3이어서 자랑스러운’(Fier-e-s d’être du 9.3)(생드니의 지역 우편번호 93에서 착안해 생드니를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표현 -역주)이라는 슬로건이 큼지막하게 박혔다. 이 슬로건은 사실상 동조하는 여론 조성을 완성하는 마지막 화룡점정에 해당한다. 프랑스 정부는 어느새 ‘올림피즘이 지닌 가치들’을 진흥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있다. 올림픽 홍보에 열정적인 정부는 그동안 그토록 멸시하던 최대 하층민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을 기회로 올림픽을 활용하기까지 하고 있다.

물론 올림픽에 고결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더하려는 욕망은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1894년 근대 올림픽 창설 이후 쿠베르탱 남작과 협력한 앙리 디동 신부(‘더 빨리, 더 힘차게, 더 높이’는 본래 디동 신부가 처음 제안한 것으로, 쿠베르탱 남작이 연설에 인용하면서 근대 올림픽의 표어가 됐다-역주)는 “축구 우승자는 충분히 미래 지식경연의 승리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9)며, 스포츠와 문화를 서로 연계시키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이 단순히 영향력 있는 인사의 활동이 아닌, 정부 정책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의 문화 정책은 오늘날 단순히 창작을 위한 최적의 물리적 조건을 보장하는 데 있지 않다. 심지어 창작의 방향을 이끌려고까지 한다. 밀란 쿤데라는 소련이 ‘정치인들의 흉상을 수천 개씩’ 제작해가며, ‘아카데미 미술을 부활’시켰다고 조롱했다.(10)

2024년의 신자유주의 프랑스는 메달리스트 선수들을 예찬하기 위해 막대한 나랏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올림픽 가치’가 아니다. 사실상 올림픽 가치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숙고된 적이 없이, 언제나 맹목적으로, 하지만 능수능란하게 찬양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올림픽은 사회학자 기 드보르가 말한 ‘통합된 스펙터클’(spectacle intégré)(11)의 극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상 ‘통합된 스펙터클’의 목적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우리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을 감추기 위해 공적 공간을 가득 채우는 데 있다.

 

 

글·프레데리크 비알 Frédéric Viale
법학 박사 및 교수. 『Paris JO 2024. Miracle ou mirage? 2024년 파리 올림픽. 기적인가 신기루인가?』(Libre-Solidaire, Paris, 2018)의 편저자.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모든 관련 인용문은 문화 올림피아드 공식 홈페이지 참조, https://olympiade-culturelle.paris2024.org. 
(2) ‘Omniprésences sportives 스포츠 편재’, Mouffetard-CNMa, http://lemouffetard.com.
(3) 그랑파리엑스프레스 예술가 레지던스, www.104.fr.
(4) 2022년 10월 21일 올림픽 사업 공모전, www.cnap.fr.
(5) 문화 올림피아드 사업 공모전, www.culture.gouv.fr.
(6) <Bulletin officiel de l'éducation nationale, de la jeunesse et des sports 프랑스 교육청소년체육부 공보>, www.education.gouv.fr.
(7) 프랑스교육부 교사를 위한 자료 사이트, https:// eduscol.education.fr.
(8) 도라마아르 중학교 인터넷 홈페이지, www.webcollege.seinesaintdenis.fr.
(9) Henri Didon, ‘Influence morale des sports athlétiques 육상스포츠의 정신적 영향력’, 1897년 7월 29일 르아브르 올림픽 의회 연설. 
(10) Milan Kundera, 『La vie est ailleurs 삶은 다른 곳에』, Gallimard, Paris, 1973년.
(11) Guy Debord, 『Commentaires sur la société du spectacle 스펙터클의 사회에 대한 논평』, Editions Gérard Lebo-vici, Paris, 19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