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에서 러시아 제치고 입김이 더 세진 중국

발칸의 항구, 공장, 광산을 줄줄이 장악하는 중국

2024-08-30     장아르노 데랑스 외

중국의 신(新)실크로드는 알바니아, 몬테네그로를 거쳐 슬로베니아까지 이어진다. 1999년 미국이 주도한 나토의 공습으로 구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있던 중국 대사관이 파괴된 후, 발칸반도에서 중국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이어온 국가는 바로 세르비아다. 오늘날, 이 특권적인 관계는 세르비아 경제에 힘을 불어넣고 있지만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지는 못한다.

 

세르비아 동부 보를 탄광 지대 중심부의 크리벨 마을 한복판으로 도로가 지나간다. 이 도로변에는 임시 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고, 여자 세 명이 감시를 선다. 난로에서 나오는 열기가 초봄의 쌀쌀한 공기를 데우고, 텔레비전이 건물 안에서 끌어온 전선에 연결돼 있다.

이웃집 사람이 터키식 커피를 가져오면서 “차가 들어와요. 어서들 나가 봐요. 중국 동지들이라고요.”라고 외친다. 이곳 사람들이 비꼬듯이 중국인들을 ‘동지’라고 부르는 까닭은 세르비아 정부가 시진핑 ‘동지’와의 우호를 연일 강조하기 때문이다. 세 여성은 즉시 길을 막고 나섰고, 결국 ‘중국인 동지’들은 차의 방향을 틀어 돌아가야 했다.

이런 광경은 지난 1월 29일에 이곳 주민들이 “우리는 당신들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팻말을 들고 도로를 가로막은 이래로 하루에도 여러 번씩 되풀이되고 있다. 크리벨 주변에는 노천 구리 광산 발굴이 진행 중이다. 이 마을은 이미 1970년대부터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1904년 설립된 프랑스 보르 광산회사(Compagnie française des mines de Bor)의 후신 보르 광산제련소(RTB Bor)는 세르비아 국영기업이었지만 2018년 중국의 거대 기업 지진 마이닝 그룹(Zijin Mining Group)에 지분 63%를 매각했다.

당시 중국은 이 기업의 2억 달러 부채를 떠안았고, 5,000개의 일자리를 유지하며, 6년 이내에 10억 유로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이후로 채굴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산 전체가 폭파로 훼손되었다.

크리벨 주민협의회를 이끄는 야스나 토미치는 “이곳에서는 고대부터 금과 구리가 났어요”라고 설명하며 “중국인들이 온 이후 아직 남아있는 44가구는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라고 토로했다. 공기는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탁하고 벽에는 금이 가고 있다. 지진 마이닝은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댐을 지으려고 한다. 1월에는 1분에 한 대꼴로 대형 트럭이 마을을 지나갔다.

현지 주민들은 노보 체로보 갱으로 가는 유일한 진입로를 차단해 2주 동안 구리 채굴을 중단시켰지만 지진 마이닝은 산속 비포장도로를 통해 차량을 통과시켰다. 댐 공사는 재개되지 않았다. 크리벨 중심가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 방치된 공사장은 풍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반쯤 무너진 건물 잔해 앞에는 중국어와 엉성한 세르비아어로 번역된 경고문이 적혀 있다. “안전은 각성에서 오고, 불행은 마비된다.” 우리를 인솔한 전직 광부는 “공산주의 선전과 구글 번역이 만나면 이런 결과가 나오죠.”라며 웃었다.

토미치는 중국 회사나 세르비아 당국에서는 아무도 “진지하게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러나 광산 에너지부는 문의 이메일을 통해 “크리벨 마을의 이주 및 재정착 계획은 2014년부터 최고 수준의 국제 기준에 따라 진행 중이며 주민의 3분의 2가 동의했다”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대해 토미치와 검문소 동료들은 전혀 반박하지 않는다.

단순히 돈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 또 다른 채굴 사업이 주민들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피해를 주지 않게 보장하는 것이다. 크리벨 주민들은 보르시 주변 12개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정보는 확인할 수 없었다. 지진 마이닝 그룹의 세르비아 자회사 지진 보르 코퍼(Zijin Bor Copper)와 세르비아 지진 마이닝 그룹에서 계획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과 세르비아의 긴밀한 협력

야당 연합 ‘폭력에 반대하는 세르비아(SPN)’의 소속으로 2023년 12월 선거에서 세르비아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이레나 지브코비치는 중국에서 벌이는 사업이 투명하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의회가 RTB Bor 매각을 승인했지만 훨씬 나중에 부처 웹사이트에 게시된 계약서는 핵심 조항들이 빠져 있어요. 제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보르 시의회에서도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있었고요.”

지브코비치 의원은 ‘콩고에서와 유사한 자원 약탈식 접근’을 비난하면서 “세르비아가 유럽 자본보다는 중국 기업의 투자에 의존하는 것은 통제가 적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지진 그룹은 세르비아에 총 28억 9천만 유로를 투자했다고 밝히며, 이 국가의 사회적 안정성, ‘지리적 위치’, ‘풍부하고 잘 훈련된 노동력’, ‘우호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높이 산다고 했다.(1)

중국이 세르비아와의 협력 관계를 반길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중국의 투자는 55억 유로에 달했고 이곳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중국 당국의 전방위적인 지원을 받는다.(2) 환경 관련 세르비아 법규 적용을 위해 싸우는 재생 에너지 환경 규제 연구소(RERI)의 법률가 흐리스티나 보이보디치는 중국과 관련된 결정은 부치치 대통령의 직할 사안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환경 기준을 지키려 하지 않아요. 마구잡이로 땅을 파 놓고 허가를 신청해도 당국은 순순히 허가해 줍니다. 중국 사람들은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르비아의 환경에서 정부가 마련한 규칙을 따르고 있을 뿐이죠.”

스메데레보는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정복 이전 세르비아의 마지막 수도였다. 이 스메데레보 교외의 다뉴브 강변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제철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 공해에 시달려 왔다. 1921년에 설립되어 1945년에 국유화된 이 산업 단지는 2003년 미국 종합 제철 기업 US스틸(U.S. Steel)에 매각되었다가 2012년 상징적인 의미인 1달러에 세르비아 정부에 다시 매각되었다. 2016년 5억 유로에 달하는 부채를 떠안고 있던 세르비아 정부는 결국 세계 2위 철강 생산업체인 중국 HBIS 그룹에 지분 98%를 4,600만 유로라는 헐값에 매각했다.(3)

제철소에서 나오는 공해 문제를 고발하는 시민단체 소속 리더 니콜라 크르스티치는 “미국인들은 기술을 약간 현대화하고 정화 장치라도 설치했지만, 중국인들은 여기에 온 이후로 아무것도 안 했어요. 환경 보호 감독관조차 공장 내부에 출입할 수 없어요.”라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라디나츠 마을은 거대한 공장 굴뚝 아래서 집과 들판이 두꺼운 붉은 먼지로 뒤덮여 있다. 빨래를 밖에 몇 분만 널어 둬도 금세 먼지가 쌓인다. 여러 가정에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 이 지역 일자리의 대부분이 여전히 이 공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2020년에도 주민 수백 명이 중국 기업이 장기 양허권을 획득한 강변 항구를 봉쇄하고 나섰다.

 

세르비아, 중국 기업에 노동법 적용 면제 특혜

하지만 스메데레보 주민들이 벌이는 시위는 실효를 거두기 어려워 보인다. 2020년 세르비아 의회는 정부가 기반 시설 사업을 ‘긴급’으로 선언하여 특별 절차를 적용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렇게 해서 투자사들은 공공입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조사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세르비아 정부는 중국 기업에 세르비아 노동법 적용도 면제해 주었다. 세르비아에 파견된 중국인 직원의 수는 공식 집계 없이 추측만 난무한다. 2022년에 보르 지역에서만 공식적으로 9,000명이 파견되었고, 소문에 따르면 현재는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일부는 베오그라드 공항에 내리자마자 이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작업장으로 직행한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 사람들은 보르의 광산 갱도 근처나 스메데레보 제철소 주변에서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조립식 주택에서 생활한다.

2021년 타이어 제조업체 산동 링롱 타이어(Shandong Linglong Tire Co)는 세르비아 북부 즈레냐닌에 공장을 짓기 위해 베트남인 500명을 고용했다. 중국의 에너지 엔지니어링 그룹 톈징 전력 건설(TEPCO)에 고용된 이들은 여권을 압수당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 했다고 한다. 2024년 1월 30일, 같은 회사의 인도 노동자들은 인신매매 퇴치 NGO 아스트라(Astra)를 통해 세르비아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4)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동자 16명이 한 방을 사용했고, 이들은 임금 체납과 매우 열악한 노동 조건에 시달렸다. 2022년 1분기 동안 세르비아 내 3대 중국 기업인 지진 보르 코퍼, 세르비아 지진 마이닝, HBIS의 대중국 수출액은 7억 2,100만 유로로 세르비아 총수출액의 11.6%를 차지했다.

1961년 알바니아가 소련과 단교한 후 중국은 스탈린주의를 따르던 알바니아와 특별한 외교 관계를 맺긴 했지만, 세르비아나 발칸반도에 투자할 만한 특별한 동기는 없었다. 베오그라드 안보 정책 센터(BCSP)의 북사노비치 연구원은 오히려 “마오쩌둥은 티토를 수정주의자로 여겼고 중국은 비동맹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경제 성장과 기업들의 과잉 투자 때문에 신규 시장을 찾아 나서기 전에 상황에 변화를 불러온 결정적 요인은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공격이었다.(5) 1999년 5월 7일 밤,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에 미국이 주도한 나토 공습으로 폭탄 다섯 발이 떨어져 최소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조지 테닛은 폭격 위치 입력을 잘못한 “실수”였다고 했지만, 이후 미국이 중국 대사관 용지에 있던 유고슬라비아 송신 센터를 겨냥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테닛 국장의 주장은 신빙성을 잃었다.

 

중국, 유엔 안보리에서 세르비아 지지 고수

폭격 이후 미국 정부는 사과와 배상을 했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으며,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도모했다. 하지만 당시의 외교적 충격은 아직도 다 가시지 않았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한 이후,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세르비아를 변함없이 지지해 왔다. 국제 국경을 존중하지 않는 러시아(2008년 조지아의 영토에 있던 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아가 분리 독립하게 하고,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무시)와 달리 두 나라가 국가 영토 보전 원칙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유럽연합 핵심 시장으로의 진출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중·동유럽 국가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2년, 중국은 중·동유럽 17개국과의 경제 협력 기구 ‘17+1’을 출범했고, 바르샤바에서 첫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17개국에는 이미 유럽연합에 가입한 국가들과 발칸반도의 EU 가입 후보국들이 포함되었다.

중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코소보는 제외되었고, 리투아니아는 훗날 이 협력 체제에서 탈퇴했다. 이듬해,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에서 ‘신실크로드’ 구상을 발표했다. 이 구상은 처음에 ‘일대일로’(OBOR, One Belt, One Road)로 불렸으나, 2017년부터 공식 영문 명칭이 ‘실크로드 경제 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계획(BRI, Belt and Road Initiative)’으로 바뀌었다. 전 세계 모든 대륙의 100여 개국이 이 구상에 참여한다.

2007~2008년에 남동부 유럽이 경제 위기 타격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당시 중국이 뜻밖의 해결사로 부상했다. 마케도니아의 싱크탱크 에스티마(Estima) 소속 아나 크르스티노브스카는 “오히려 발칸 국가들이 중국 투자를 유치하고자 애썼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새천년 초에 이들 국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했지만 해외 투자, 특히 유럽의 투자 유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민주당의 보리스 타디치는 2008년에 친유럽 공약을 내걸고 국가수반으로 선출되었고, 신속히 유럽연합, 미국, 중국, 러시아라는 ‘4대 축’을 바탕으로 세르비아의 외교 전략을 수정했다. 아울러 아프리카 연합부터 비동맹 운동에 이르기까지 각종 다자간 포럼에서 전례 없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며 코소보의 독립 선언에 대응했다.(6)

2009년 타디치는 세르비아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했고 ‘미하일로 푸핀’(Mihailo Pupin, 우정의 다리)은 이 새로운 협력 관계의 상징물이 되었다. 1,507미터에 달하는 이 다리는 다뉴브강을 가로지르는 세르비아의 두 번째 교각으로 두 지역, 보르차와 제문을 잇는다.

“중국 기업들은 발칸 지역에서 계약을 체결해 실적을 쌓을 수 있어요. 이런 실적은 특히 유럽 연합에서 다른 입찰에 참여할 때 도움이 되죠. 중국도로교량공사(CRBC)는 베오그라드 다리에 이어 크로아티아에서 펠레샤츠 다리를 건설했습니다”라고 북사노비치는 설명했다.

‘우정의 다리’는 중국 수출입은행(Exim)이 자금을 조달했다. 중국은 결코 손해를 보면서까지 투자하지 않으며, 자국 기업이 공사를 맡는 조건으로 자금을 융자해 준다. 몬테네그로 북부와 아드리아 해안을 160킬로미터에 걸쳐 연결할 바르-볼라레 고속도로 구간도 이런 투자 형식으로 건설되었다.

 

중국, 유럽 투자액 절반 이상을 발칸에 쏟아부어 

중국도로교량공사가 시공해 2022년 여름에 개통된 41킬로미터 구간은 수출입은행에서 대출한 9억 4,400만 달러로 자금을 조달했다. 이 대출은 유로화로 상환해야 하며, 몬테네그로 대외 채무의 20%를 차지해 국가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공사의 여파로 심각하게 파괴된 타라(Tara) 계곡의 생태계 외에도, 2020년 선거로 정권을 잃은 밀로 주카노비치의 사회민주당(DPS) 정부의 불투명한 계약을 비난했다.

비정부기구 MANS의 데얀 밀로바츠는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킬로미터당 2,000만 유로가 들어갔는데, 이 중에서 대체 부정부패가 차지하는 몫은 얼마일까요?”(7) 포드고리차 디지털포렌식센터(Digital Forensic Center de Podgorica)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3년 말까지 중국이 발칸 국가에 투자한 금액은 총 320억 달러로, 중국의 유럽 전역 투자액의 과반을 차지한다.

아나 크르스티노브스카는 “중국은 그리스를 휩쓴 금융 위기를 계기로 발칸 지역 내 입지를 강화했고, 그 후 주로 기반 시설 건설에 참여하며 역내 영향력을 확대했다”라고 설명했다. 2008년 중국원양해운(COSCO)은 피레우스 항구 두 개 터미널의 운영권을 따냈다. 2016년에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이끌던 좌파 정부는 유럽의 ‘구제 금융’을 수용하고 국가 전략 자산을 매각하라는 압박을 받자 결국 항구 지분 대부분을 중국에 넘겼다.(8)

실제로 중국은 지중해 해상 운송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2017년에 중국은 알바니아의 두러스 항구 지분을 인수했다. 그 밖에도 아드리아해 최북단에 있는 슬로베니아의 코페르 항구는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시장으로 가는 관문으로 일대일로 구상에 포함되어 있다.

바르의 심해항 역시 2021년 7월 중국의 손에 넘어갈 뻔했지만, 몬테네그로는 유럽 은행 두 곳과 미국 은행 두 곳에서 단기 자금 융자를 받아 고속도로 건설로 생긴 대출의 첫 분할금을 상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에도 새로 출범한 몬테네그로 정부는 2023년 3월 29일에 산동국제경제기술협력그룹(Shandong International Economic & Technical Cooperation Group)과 해안을 따라 또 다른 고속도로 구간을 건설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오랫동안 유럽연합은 중국의 전략적 진출을 단순한 경제적 문제로만 여기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편 크르스티노브스카는 “남동부 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에서 어느 한 진영을 선택해야만 했다.”라고 지적한다. 그 결과 중국의 해외 투자가 NATO 회원국에서는 줄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세르비아에 집중되었다.

중국은 여전히 분열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중앙 당국과 공공연히 갈등을 빚으며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리는 세르비아계 자치 행정구역 스릅스카 공화국을 오랫동안 지원해 왔다. 스타나리 지역에서는 이미 2016년에 중국 개발은행으로부터 3억 5천만 유로를 융자받아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했다. 심각한 환경 파괴를 감수하며 네레트바강에 댐을 건설하는 사업도 역시 중국 기업들이 맡았다.

하지만 중국의 보스니아 에너지 부문에 관한 관심은 민족과 정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리브노주에서는 중국 기업 컨소시엄이 풍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는데, 이 지역 자치 당국을 장악하고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민주 동맹(HDZ-BiH)의 민족주의자들은 법적 소유자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중국 기업에 토지를 넘겼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의 존재감 더 커져

HDZ-BiH의 강력한 지도자 드라간 쵸비치는 2015년에 3인 대통령단의 일원 자격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사라예보 대학교의 아심 무이키치 교수는 중국이 지금도 투명성 의무가 적은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지배하는 정치 환경을 선호한다고 평가한다.(9)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한 뒤로 발칸반도 내에서는 중국의 존재감이 더 커졌다. 2020년 3월 15일, 유럽연합은 가입 후보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로의 의료 물자 수출을 금지하는 외교적으로 매우 민감한 행동을 취했다. 3월 21일, 민간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 베오그라드 공항의 활주로에 중국 비행기가 착륙했다. 의료진이 타고 온 비행기에는 마스크, 수술용 장갑 등 물품이 실려 있었다.

이후 봉쇄된 세르비아 곳곳에는 ‘시진핑 동지여,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대형 간판이 걸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과 세르비아의 외교적 결속이 강화되었다. 1999년 폭격당한 옛 대사관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대형 중국 문화원이 들어섰고, 2016년에 시진핑 주석이 세르비아를 방문해 기공식에 참여했다. 2024년 5월 초에 최근 유럽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프랑스에 이어 헝가리를 방문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세르비아를 찾아 전략적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정부 산하 연구 기관인 국제정치경제연구소의 알렉산다르 미티치는 세르비아 외교를 지탱하는 ‘4대 축’의 중요성이 더 이상 균등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했다. “세르비아가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음에도 러시아 정부와의 관계는 훨씬 더 불편해졌고 교류도 줄었습니다. 유럽연합과의 유대도 약해졌죠. 세르비아에는 장장 20년 동안 가입 절차를 지연시키고는 우크라이나에는 불과 몇 달 만에 후보국 지위를 부여했거든요.” 그래서 다른 두 축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부카노비치는 중국과 미국 “양국의 의견이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인정하지만, 세르비아는 이러한 입장 때문에 미묘한 외교적 줄타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르비아 언론에는 2021년에 임명된 세르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자주 언급된다. 그 인물은 다름 아닌 1995년 데이턴 평화 협정 협상에 참여했으며, 1999년 폭격 이전에 실패로 끝난 협상에도 관여했던 인물 크리스토퍼 힐이다.

 

“세르비아 여론은 러시아보다 중국을 더 좋아해”

세르비아 정부가 항상 미국의 권고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2020년 9월 4일, 당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부치치와 코소보 총리였던 아브둘라 호티를 백악관으로 불렀다. 두 사람은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지만, 합의는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합의서에는 코소보와 이스라엘이 상호 국가 승인을 진행하는 한편, 베오그라드와 프리슈티나는 각각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고 화웨이와의 모든 협력을 중단하기로 하는 두 가지 이례적인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까지도 세르비아 대사관은 텔아비브에 남아 있지만 세르비아가 2023년 10월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을 증가시키는 데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워싱턴 협정 체결 열흘 만에 중국의 통신 대기업 화웨이는 베오그라드에 디지털 혁신 개발 센터를 설립했다. 화웨이가 세르비아 수도에서 안면 인식 카메라를 테스트했다고 알려졌지만, 인터넷상의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셰어(SHARE) 재단의 필리프 밀로셰비치는 이 프로젝트는 현재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베오그라드 정치 경험 기금(BFPE)의 분석가 스테판 블라디사블레예프는 이렇게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편적인 시각으로는 예상하기 어려운 영향을 오랫동안 미칠 것이다. 세르비아 여론은 러시아보다 중국을 더 좋아한다. 중국은 국가 영토 보전 존중을 바탕으로 새로운 국제 거버넌스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세르비아와 중국 간의 협력은 여러 국제기구에서의 지지 투표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다. 양국의 협력은 실질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티치 대통령은 양국이 ‘힘을 합쳐’ 코소보와 대만의 국제적 인정을 저지하고 있다고 인정하며, 중국이 최근에 타이완과 단교하고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 나우루의 사례처럼, 일부 태평양 국가들에 코소보 승인을 철회하도록 경제적 유인책을 제공하면서 설득에 나섰을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했다.

2023년 8월, 세르비아가 브릭스 플러스(BRICS Plus)에 가입할 것이라는 추측이 다시 제기되었다.(10) 미티치는 “정부는 이런 선택지를 고려한 적이 없다”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이 소문은 꾸준히 회자되고 있고, 세르비아의 여러 서방 우방에는 암묵적인 압박이자 시험대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셈법은 다뉴브강과 보르 광산 지대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 마이단페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곳에서는 버스 터미널 담장 너머에서 채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30분마다 발파 경고 사이렌이 울린다.

시민단체 ‘네 담 누 다우(Ne dam Nu dau)’의 회원 블라디미르 보지치는 “산이 무너져 내리고 일부 주거 지역에서는 바윗덩어리가 떨어진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지치는 광산의 무분별한 개발에 항의하는 농성 시위를 조직했는데, 중국인 노동자들을 향한 ‘인종 혐오’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한 달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우리는 중국인들이 이 지역을 어디까지 개발할지, 우리가 보금자리를 떠나야 할 일은 생기지 않을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글·장아르노 데랑스 Jean-Arnault Dérens, 로랑 제슬랭 Laurent Geslin
언론인, 『Les Balkans en cent questions. Carrefour sous influences 다양한 세력이 교차하는 발칸 반도에 관한 백문백답』(Tallandier, Paris, 2023)의 저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지진 그룹에서 익명으로 보내온 문의 이메일에 대한 회신
(2) 「La Serbie se félicite de ses liens économiques avec la Chine avant une possible visite de Xi Jinping 세르비아, 시진핑 주석 방문을 앞두고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환영」, 2024년 4월 10일, www.euractiv.fr
(3) Mijat Lakićević, 「Serbie : les noces chinoises des aciéries de Smederevo 세르비아의 스메데레보 제철소와 중국의 만남」, 2016년 5월 9일, www.courrierdesbalkans.fr
(4) 「Serbie : une entreprise chinoise de nouveau accusée de “traite d’êtres humains 세르비아에서 중국 기업이 또다시 ‘인신매매’ 혐의로 기소돼」, 2024년 2월 7일, www.courrierdesbalkans.fr
(5) Renaud Lambert, 「Ce que veut la Chine 중국은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지 않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4년 3월호, 한국어판, 2024년 4월호
(6) Jean-Arnault Dérens, 「Prodiges et vertiges de la diplomatie serbe  코소보 독립 막기 총력 외교, 세르비아, 절반뿐인 성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10년 9월호
(7) 「Down the same road into a larger debt」, MANS, Podgorica, 2019년 4월.
(8) Pierre Rimbert, 「Modèle social chinois au Pirée 그리스 항구의 중국식 노사 모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13년 2월호
(9) Predrag Zvijerac, 「Kineske vjetrenjače u BiH vjetar u leđa korupciji u srcu Balkana」, <Radio Slobodna Evropa>, 2024년 3월 22일
(10)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에티오피아, 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