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코수르, EU와 FTA협상 연내 서명 추진

FTA는 중남미 좌파의 진보를 향한 꿈일까

2024-09-30     루이스 알베르토 레이가다 | 기자

올해 6월 28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Mercosur)과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이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에 잠정 합의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국제 상황에서 더 많은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
이 FTA는 양측이 협상을 시작한 지 약 20년 만에 타결되는 것으로 최종 합의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양측 모두 일부 산업 보호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산업 부문의 시장 개방과 경쟁 심화의 우려로 이견을 좁히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30여 년 전 아순시온 조약을 통해 탄생한,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를 아우르는 메르코수르는 EU와의 FTA 협정을 계기로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됐다.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중남미를 해방하여 통일하기를 꿈꿨다. 1991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브라질리아, 아순시온, 몬테비데오가 연합했으나 이번에는 목적이 달랐다. 바로 “(중남미의) 시장 규모를 키우는 것”이었다.

당시 이 네 국가에는 전부 보수 성향의 정부가 집권했고, 이들이 그해 3월 26일 아순시온 조약에 서명하면서 남미공동시장(스페인어 약어로는 Mercosur, 포르투갈어 약어로는 Mercosul)이 탄생했다.

이 시장의 목표는 “거시경제적 정책 공조”와 “경제 부문의 더 큰 상보성”을 통해 “국제 상황의 변화”에 발맞춰 “국제사회로의 성공적인 통합을 공고히 함”으로써 4년 내에 공유 경제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다.(1)

 

메르코수르, 중남미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된 통합계획

그 후 “국제 상황”은 큰 변화를 겪었다. 1990년대 초반, 대세는 붉은색이 아니라 달러의 색이었다. 소련 진영의 붕괴는 미국과 신자유주의 모델에 승리를 안겨줬다. 1990년 7월 16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모스크바에서 행한 연설에서 “효율적인 시장경제로 이행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단극화가 예상되는) 세계의 새로운 균형은 자유무역의 주창자들(세계은행, IMF, GATT 사무국 등)이 세운 “경제 법칙”에 따라 정치적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했다.

중남미는 경제성장의 “잃어버린 10년”을 대가로 부채라는 함정에 갇혔다. 이제는 “워싱턴 컨센서스(민영화, 규제완화, 공공투자 축소 등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 발전 모델)”의 영향을 받은 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할 시점이다. 즉 개발 위주의 지역화 사이클(1950~1980)에서, 시대와 조화를 이루는 또 다른 사이클로 전환할 시점이었다.

라틴아메리카카리브경제위원회(ECLAC)는 원자재를 생산하는 주변국을 희생하여 산업화된 ‘중심’ 국가들에 유리한 국제 시스템의 결점들을 비판하면서, 관세 보호를 내세워 산업화에 유리하며 자력에 의한 지역 통합을 권장했다.

1990년부터 ECLAC는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을 수용하고 “개방적 지역주의”(2)를 추진했다. 수입 대체에 의한 산업화 정책을 퇴출시킴으로써, 이제 “역내 국가들의 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개방과 규제완화”를 기대하며 지역 통합을 수출 증대의 수단으로 고려하는 것이 중요해졌다.(3)

이처럼 메르코수르가 무역자유화 정책을 시행하고 나서 1995년 1월 1일 관세동맹을 맺은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메르코수르는 불완전한 측면이 있지만, 중남미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통합계획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된 사례다.

회원국들은 1994년 12월 오루프레투 의정서(Ouro Preto)에 서명함으로써 먼저 확립된 제도적 구조와, 관세품목분류표의 85%에 효과를 발휘하는 대외공통관세(common external tariff)의 적용을 받았다. 이로써 월등하게 활성화된 국가 간 교역에 발맞춰 대외무역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미국 주도의 ‘미주 이니셔티브’에 맞선 메르코수르

4년 만에 대외무역 증가율이 눈에 띄게 상승했고(수출 53%, 수입 114%), 역내 무역량은 104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로 3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는 역내 무역량은 조약 체결 전에는 10% 선을 넘지 못했으나, 곧 하위 지역 국가 전체 교역량의 1/4까지 차지했다(1998년에 최고치).

1947년에 미국 외교관들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조성한 “반구의 통합을 위험에 빠뜨릴” “‘남미블록’의 형성에 유리한 (…) 모든 것에 반대하는” 분위기를 조장했는데,(4) 메르코수르의 탄생을 바라본 신자유주의 진영은 워싱턴을 안심시켰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브라질이 아순시온 조약에 기초해 남미자유무역지대를 추진하자 상황이 변했다. 남미자유무역지대는 조지 H. 부시 대통령이 지지한, 미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자유무역협정 계획인 ‘미주 이니셔티브’에 맞서는 것이었다.(5)

이후 남미자유무역지대는 미주자유무역지대(Free Trade Area of the Americas, FTAA)로 이름을 바꾸어 부시의 후임인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 의해 (미주기구[OAS]의 지휘 아래) 1994년 12월 마이애미에서 대대적으로 출범했다. (쿠바를 제외하고) 알래스카에서 남미 남단의 티에라델푸에고에 이르는 이 프로젝트는 몇 년 뒤 좌파 진영이 집권하고 메르코수르가 체결되면서 명맥을 잇기 힘들어진다.

2003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와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각각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메르코수르는 정치적 문제들을 내세우며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를테면 생산적 발전이나 사회 문제들을 고민하고, 메르코수르 의회인 파를라수르(Parlasur), 사회 참여를 위한 지원 단체 및 사회 기관, 인권문제를 다루는 공공정책연구소, 구조적 공조를 위한 기금 등을 마련함으로써, 제도적인 구조 내에서 대의제도와 대중 참여의 채널을 구축했다.

언론인 클레디스 칸델라레시에 따르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두 대통령이 일궈낸 ‘부에노스아이레스 합의’는 남미공동시장을 지정학적 활동 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즉 지역 통합과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을 촉진하는 “새로운 힘의 극”이었다.(6)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가입 이후, 미국은 메르코수르를 ‘반미 정치조직’으로 간주

2000년대 초, 좌파의 물결이 중남미를 휩쓸었을 때 ‘진보적인’ 메르코수르는 우루과이에서 타바레 바스케스(2004년)가, 파라과이에서 페르난도 루고(2008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층 강화되었다. 2006년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가 다섯 번째 회원국으로 편입되면서, 미국은 메르코수르를 ‘반미 정치조직’으로 보기 시작했다.(7)

그러자 워싱턴은 2011년 태평양 동맹의 창설을 지지하고 나섰다. 태평양 동맹은 이미 워싱턴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칠레, 콜롬비아, 멕시코, 페루 등 4개국의 보수 정부가 설립했다.

중남미에서 진보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파라과이(2012년), 아르헨티나(2015년), 브라질(2016년)에서 다시 우파가 득세하면서 메르코수르는 2017년까지 회원국 자격을 정지하여 베네수엘라를 배제한 채 철저하게 본래의 상업적 성격으로 돌아갔다.

아순시온 조약에 서명한 지 30년이 지난 뒤,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는 “회원국 간의 관계를 완화하고, 순수하게 상업적 관계만을 유지하며, 정치적 기반을 제거하는 것이 시급하다”(8)라고 판단했다. 현재 우루과이 대통령인 그의 아들 루이스 라카예 포우(2019년 11월 당선)는 1991년 조약 파기를 임무로 삼았다.

각 회원국이 일방적인 무역협정을 맺을 수 있는 ‘유연화’를 내세우면서, 이미 중국 및 튀르키예와 협상 중이었던 우루과이 정부는 관세동맹을 무너뜨리고 메르코수르를 단순한 자유무역지대로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또 그는 칠레, 멕시코, 페루가 이미 참여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2022년 말 가입 신청서를 공식 제출하면서 회원국들의 분노를 유발하기도 했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성장 리듬을 숨기지 못해

2008년 지역통합기구로 창설된 이후 보수 정부들에 외면당한 남미국가연합(UNASUR)의 전 사무총장 에르네스토 삼페르는 이렇게 분석했다.

“이것은 통합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개념이다. 하나는 각 나라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미국과 직접적이며 궁극적으로 종속적인 관계를 맺는 보수적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무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통합적 지역주의를 구축하려는 진보적 개념이다.”

정확히 상업적인 수준에서 메르코수르 기술위원회는 (최근 연례보고서에서) 2021년 블록 내 무역 증가(37% 상승, 총 6,000억 달러, 약 5,500억 유로)를 과시했는데, 이 규모는 거의 800억 달러(730억 유로)에 달하는 긍정적 무역 균형으로, 팬데믹 이전의 수치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는 주로 수출의 80%에 집중된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기인하며,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 경제위원회(ECLAC)가 보고한 ‘구조적으로 취약한’ 성장 리듬을 숨기지 못한다.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 경제위원회는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의 하락과, 회원국 간 무역이 11% 하락하는 “상업적, 성장 생산적 붕괴”를 경고했다.(9)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메르코수르와 EU 간 자유무역협정 비준 절차 재개를 지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의 최측근 협력자들은 미-중 무역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업적 파트너의 다양화와 함께 ‘다극 게임’을 추진하면서, 이를 서던콘(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세 국가를 지칭)의 산업 및 기술 부문의 지렛대로 보았다.(10)

그러나 파를라수르 내 진보 진영 소속 우발도 아이타(우루과이)는 이렇게 설명했다.

“시장은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에 단독으로 맞설 수는 없다. 반면 국제적 분업은 우리 지역을 부가가치가 턱없이 낮은 상품 생산에 국한시킨다.”

구대륙과의 무역의 수문을 열면 메르코수르 국가들은 자신이 처한 경제적 한계에서 정말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의문을 품는다. 파를라수르의 아르헨티나 대표단장은 삼림벌채, 기후변화, 콩 경작지 문제에 민감한 유럽의 환경주의 동료들을 향해 “중남미는 산업화를 꾀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우리 경제의 파탄을 공고히 하는 데만 관심 있는 EU와의 협정을 바라지 않는다”라고 경고했다.(11)

 

“메르코수르의 창설보다 중남미에 더 중요한 일은 없어”

유럽 측에서도 다양한 사회, 보건, 환경 규범들 및 불공정 경쟁과 관련하여 특히 농업 부문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으며, 환경운동가들 역시 ‘농업의 심각한 산업화’(12)를 걱정하고 있다.

이미 자유무역주의자들에게 굴복당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룰라 다 실바의 브라질 정권 복귀가 진보적 메르코수르의 부활에 기여할 수 있을까? (세계 8위) 중남미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상회하고 대륙 전체에 맞먹는 2억 7,000만 명으로 구성된 경제 블록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중요하다.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와의 동맹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브라질리아의 전략적 동맹 강화에 기대고 있는 진보적 메르코수르의 한계에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정치적 변화와 유럽 자유주의자들의 요구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EU와의 협정은 전통적인 남북 교류를 대표하고, 중남미 블록 내의 비대칭성을 강조한 ‘자동차 대(對) 소(cars for cows)’ 협정으로 일컬어졌다.

라플라타 대학교수 알레한드로 시모노프는 “메르코수르는 ‘연대적 정신’으로 접근한다면 그 회원국들이 국제 시스템 내에서 더 많은 자율성과 행동의 여지를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도약대가 될 수 있다. 메르코수르가 정치적 협력 수단으로서 다른 중남미 국가들에 모범이 된다면, 끈끈한 지역 통합을 통해 구조적으로 종속적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중남미의 주변 국가들이 그 위치에서 투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의미에서 아르헨티나의 지식인 호르헤 아벨라르도 라모스의 제안은 옳았다고 볼 수 있다.

“여러 차례의 독립전쟁 이후 메르코수르의 창설보다 중남미에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글·엑토르 에스트룩 Hèctor Estruch & 블라디미르 슬론스카말바우트 Vladimir Slonska-Malvaud
기자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단락의 인용문은 모두 1991년 3월 26일 아순시온에서 체결된 공동시장 구성을 위한 조약에서 발췌한 것임.
(2) Baptiste Albertone & Anne-Dominique Correa, 「L’institution qui a inventé l’Amérique latine 남아메리카의 난제, 창의성을 잃어버린 발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3월호, 한국어판 3월호.
(3) 「El regionalismo abierto en América Latina y el Caribe : la integración económica al servicio de la transformación productiva con equidad 중남미와 카리브해의 개방적 지역주의: 생산적 변화를 공정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경제 통합」,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 경제위원회(ECLAC), 칠레 산티아고, 1994년 9월.
(4) 미 국무부 기록 보관소, 「아메리카 공화국 사무국장의 비망록」, 1947년 5월 20일
(5) Ricardo Seitenfus, 「Washington manoeuvre contre le Mercosur 메르코수르에 대한 워싱턴의 공작」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8년 2월호.
(6) Cledis Candelaresi, 「El Consenso de Buenos Aires, una forma de decirle no a Estados Unidos 부에노스아이레스 합의, 미국에 반대하는 방식」, <Página 12>, Buenos Aires, 2003년 10월 17일.
(7) 2007년 5월 17일 미국 대사관에서 아순시온으로 온 통신. 2011년 3월 <위키리크스> 발표.
(8) 2021년 9월 18~20일, 메르코수르 의회 언론 리뷰.
(9) ECLAC, 메르코수르 무역 회보, 2022년 6월, 제5호.
(10) “새로운 국제 지정학 속의 중남미”, 룰라 다 실바의 첫 번째 대통령 재임 기간 외교부 장관을 지낸 세우스 아모링과, 현재 실바의 주요 외교 자문과의 인터뷰, <Nueva Sociedad>, n° 301, Buenos Aires, 2022년 9~10월 호.
(11) 2023년 3월 15일 메르코수르 의회 웹사이트에 게재된 프레스 노트, www.parlamentomercosur.org
(12) 「EU와 메르코수 간 협정의 목적은 무엇인가?」, Greenspace, www.greenpeac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