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빌리지의 눈속임, 회색 콘크리트를 녹색으로 가려
과학기술과 센서가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
최근 프랑스의 여러 지자체에서는 대규모 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연환경을 존중하고 첨단 기술을 활용한 프로젝트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연을 되찾은 도시’ 등의 콘셉트를 내세우며 ‘자연보호주의’를 표방하는 발언을 쏟아내지만, 실상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 사는 주민들이 겪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중하류층이 생활하는 도심 인근의 낙후 지역에 상류층의 주거 지역이나 고급 상업가가 새롭게 형성되는 현상—역주)을 가리는 눈속임일 뿐이다.
프랑스 동부의 브장송 플라누아즈 구역에서 첫 번째로 해체된 건물 자리에는 수북한 잔해만 남았다. 이곳은 공간의 90%를 공공 임대 주택으로 사용했던 건물이었다. 도시정비청(ANRU)과 시가 합의한 계획에 따라, 2025년까지 브장송 지도에서 1,200개의 주거 공간이 사라진다. 도심으로 이어지는 길에 세워진 광고판에는 “플라누아즈를 새롭게”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마약 밀매와 범죄가 들끓는 동네라는 오명도 이제 끝이다. 주민의 절반 이상이 빈곤 한계선 아래에서 살아가는 이 ‘도시 정책 우선 구역’은 ‘디지털 선도 구역’이자 무엇보다 ‘에코 빌리지’로 거듭날 예정이다.
2023년 3월, 유럽생태녹색당 소속의 안 비뇨 브장송 시장은 국회의원, 공공 임대 주택 사업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이 방문한 자리에서 자신의 야망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우리는 이 구역이 에코 빌리지로서의 모든 이점을 갖췄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 시 관계자들은 이곳에 ‘에코 빌리지’라는 인증마크를 부여함으로써 “지난 30여 년 동안 악화했던 이 구역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이미지 쇄신을 희망하고 있다.”
안 비뇨 시장은 비판을 예상하는 듯, 국가가 인증하는 에코 빌리지가 “부르주아들만을 위한 곳이 돼서는 안 된다. 부자들만의 거주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때 대표단 사이에 섞여 있던 한 주민이 시장에게 물었다.
“플라누아즈 주민이라면 누구나 거주할 수 있다는 뜻인가? 이 동네에 사는 사람치고 매달 800유로에서 1,000유로를 집세로 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리고 이주를 달가워하는 주민들도 없다. ‘에코 빌리지’라는 그 말 때문에 우리 생활이 달라지는 게 무엇인가?”
안 비뇨 시장은 “플라누아즈 주민이 거주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소득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와서 거주할 수 있다. 다음 순서로 넘어가겠다”라며 황급히 답변을 마무리했다.
대표단은 견학을 이어갔다. 플라누아즈는 태양광 패널, ‘실험용 재활용 차량’, 식물 광장, 디지털 스타트업 유치를 위한 제3의 공간 등 에코 빌리지 도입을 위한 스무 가지 항목 중 여러 가지를 충족하고 있다.
에코 빌리지 인증은 그르넬 환경 회의에서 채택한 ‘지속 가능한 도시’ 계획 중 하나로 2012년부터 시행됐다. 그르노블 본(Bonne) 구역의 계획 정비 구역(ZAC)이 에코 빌리지 대상을 받은 이후, 다른 지자체 수십 곳에서도 동일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업 시행자들이 “신재생 에너지를 장려한다”, “폐기물을 재활용한다”, “책임감 있는 디지털 전환을 보장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된 약속 헌장에 서명해야 한다.
‘사회적 다양성’이란 명분 위해 다른 곳으로 주민 이주시켜
그런 다음, 공사 단계에서 주택부가 지정한 전문가가 첫 번째 평가를 시행한다. 공사 완료 단계에서는 정부 부처, 전문가 단체, 국회의원 그리고 환경에너지청(ADEME) 같은 공공 기관의 대표들로 구성된 국가 위원회가 두 번째 평가에 나선다. 3년 후 이뤄지는 마지막 단계에는, 정비 사업을 시행한 지자체에서 약속된 규정을 잘 준수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주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에코 빌리지에서 ‘살아가는지’를 소개해야 한다.
플라누아즈 구역은 현재 첫 번째 단계인 약속 헌장 서명을 마친 상태다. 70대인 아녜는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월세 500유로를 내며 45년째 거주 중이다. 하지만 이 아파트가 있는 건물 역시 곧 철거를 앞뒀다. 아녜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변화하는 플라누아즈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건물을 조금만 손보고 보수하면 끝날 일을 이렇게 만들고 있다!”라고 분노했다.
공공 임대아파트 사업체의 한 대리인은 “철거한 임대아파트 건물들 상태가 특별히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축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람들은 공공 임대 주택 건설 등 도시 개발 때문에 질이 안 좋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 구역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아녜는 쫓겨나는 기분이다. 아녜의 아파트 건물이 자리한 거리에는 도심 농장이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토양 오염 문제로 취소됐다. 아녜가 사는 공공 임대 아파트 건물 관계자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지금 상황은 ‘강제 이주’가 아닌 ‘새로운 거처 마련’이다”라고 설명했다. 살던 집에서 쫓겨난 플라누아즈 주민 대부분은 ‘사회적 다양성’이라는 명분으로, 원래 살던 곳이 아닌 다른 거주지에서 살게 된다.
‘에코 빌리지’란 도장으로 정치적 논쟁을 피하려는 속셈
사실, 브장송에서 인증마크를 받은 구역이 플라누아즈가 처음은 아니다. 유럽 에코 빌리지의 선구자로 불리는 보봉 마을이 위치한 독일 프라이부르크 임브라이스가우와 오랜 시간 자매결연 관계를 맺어 온 브장송은 2010년대 초반부터 이미 지속 가능한 최첨단 유럽 도시의 면모를 갖추려 노력했다.
건축가 프랑수아 그레테르는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많이 뒤처진 분위기였다.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도시 개발에 힘써왔기 때문이다”라고 회상했다. 2012년 도시계획 대상을 받은 건축가는 에코 빌리지 모범 사례로 소개된 브장송의 베트 구역 프로젝트를 맡았다. 베트는 2014년에 에코 빌리지 인증마크를 받았다.
브장송시는 도시 북동부 23㏊에 신규 주택 1,150호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레테르는 “도시 속의 전원, 가족을 위한 그린 빌리지”를 구상했다.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는 고효율 건물”, 보행자와 자전거, 자동차가 안전하게 함께하는 “공유 거리”,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환승 센터” 주차장 두 곳, 유치원과 학교 등을 포함하는 교육 지구, 텃밭과 숲, 산책로를 포함한 “그린벨트”가 예정됐다.
이 모든 새로운 시설이 들어설 곳은 본래 집과 농가, 온실, 주민들이 가꾸는 정원, 녹지가 자리한 곳이다. 관계 부처의 승인 후 사업은 순탄히 흘러갈 것처럼 보였다. 에코 빌리지 인증 홈페이지에도 베트 구역을 소개한 내용이 올라와 있지만, 에코 빌리지 건설은 아직이다.
베트 주민들은 에코 빌리지 조성 사업에 관한 첫 번째 안내지를 받자마자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항의의 뜻으로 발코니에 붉은색 천을 내걸었고, 서명 운동을 벌였다. 주민 참여 공개회의가 열렸지만, 분위기는 어수선했고, 주택 소유주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조제는 그 당시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받은 서류에는 이미 계획이 다 완료된 것처럼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었고, 나중에 열린 회의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다기보다는 앞으로 어떤 단계가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하는 자리였다.”
에코 빌리지 미니어처 모형에서 찾아낸 조제의 집은 거대한 건물 두 채에 둘러싸여 있었다. 주민 반발 때문에 공사는 중단됐으나, 사업이 전면 백지화된 것은 2023년 2월이 돼서였다.
베트에서 원예가로 일하며 ‘베트의 정원’협회 공동 대표를 맡은 클레르 아르누는 ‘에코 빌리지’라는 식의 정부 인증을 받은 도시 정비 계획에 반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소연했다. “환경친화적”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려고 프로젝트 관련 문서와 지도들을 꼼꼼히 살펴야 했고, 도로와 건물 용지를 상세히 구분하고, 보존 공간을 파악하며, 생물 다양성 파괴가 예상되는 이유를 증명했다고 클레르는 설명했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프랑스 앵수미즈(LFI,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 후보로 나섰던 아르누는 “우리 투쟁의 환경적 타당성을 입증하고자 큰 노력을 기울였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연구원이자 『도시의 자본(Le Capital dans la cité)』(Éditions Amsterdam, 2020)의 공동 저자인 마티외 아담은, 이러한 도시 프로젝트의 특징은 “이해하기 힘들고 함부로 비판하기 어려운 ‘모호한’ 아이디어들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것처럼 소개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에코 빌리지’라는 도장을 찍는 것도 도시를 발전시키는 방식에 관한 정치적 논쟁을 피하려는 속셈”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러나 2020년부터 유럽생태녹색당 출신 시장이 이끄는 브장송시는 베트의 정원들을 정비하겠다는 의지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재해석한” 에코 빌리지를 내세운다. 주택 수를 반으로 줄이고, 공공 임대 주택 규모를 소량 늘리고(기존 20%에서 30%로), 도시화 공간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나머지 공간은 “브장송 시민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녹색 공간이 될 것”이라고 시는 발표했다.
도시계획 담당 국회의원이자 브장송 도시권 커뮤니티 ‘그랑 브장송 메트로폴’ 부대표를 맡은 오렐리앵 라로프는 “그곳에 주택을 안 만들면 어디에 지으라는 소리인가?”라고 항변했다. 곧 철거 예정인 공터와 숲, 공원들을 지나면서 라로프는 “사람들이 왜 이 공간들을 바꿔야 하느냐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욱 복합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되면, 직장에 오가느라 자가용을 이용해야 하고 그러면 탄소 배출량도 늘어날 텐데 베트에 주택을 건설하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듯 환경적인 관점과 시의 입장이 상충한다.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이들은 반드시 녹지와 농경지를 보호하고, 기존 건물들을 보수하는 데에 중점을 둬야 하며, 필요하다면 빈 주택들을 수용하는 등 강력한 조치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시에서는, 건물을 새로 짓고, 토지를 인위적으로 개발해야 할 정도로 주택 수요가 높지만, 가장 ‘간소한’ 정비 계획과 보상을 통해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한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어느 편에 설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실상은 예전과 똑같은 도시 개발이 계속될 뿐”
몽펠리에 폴발레리 대학교의 공간 개발 및 도시계획 전공 프랑수아 발레자 교수에 따르면, “정부에서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며 건축을 한다. ‘에코 빌리지’라는 용어는 새로운 건축을 합리화하는 데 쓰이는 경우가 많다. 에코 빌리지는 도시를 확대하고 토지 자원 약탈을 지속하는 방식이다. 지속 가능한 도시로 변화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실상은 도시 확대의 기본 원칙은 달라지지 않은, 예전과 똑같은 도시 개발이 계속될 뿐이다.”
도시 개발 및 확대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지만, “도시 개발자들은 환경을 언급하고, 친환경적인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베트 사례 외에, 낭트 동부 둘롱고아르, 몽펠리에 파크마리안, 라리슈 플레시스보타니크, 렌 쿠루즈 등 다른 지역에서도 비옥한 토지를 인위적으로 개발하는 에코 빌리지 사업이 주민과 환경 운동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2023년 에코 빌리지 마크 인증 방식이 바뀌었다. 사업을 추진하는 이들은 더는 단순한 의지만으로 인증마크를 획득할 수 없다.
현재, 에코 빌리지 사업을 추진한 580개 구역 가운데 단 18곳의 사업만이 최종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해서 개발업자들이 사업 홍보에 마법의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 기반 시설까지 이동 시간”이나 “면적별 비오톱 지수” 등의 수치화된 지표를 개발자가 제출하도록 하는 새로운 규정도 생겼다.
토지를 제한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인위적 토지 개발 제로(ZAN)’ 목표 등 에코 빌리지가 무엇보다 도시 보수 사업이 되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목표들도 추가됐다. 그러나 신규 건설 프로젝트에 에코 빌리지 인증마크가 부여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재활용 가능한 토지가 없거나, 가까운 거리에 보수를 거쳐 사용할 주택이 충분치 않거나, 파리와 파리 근교처럼 주택 공급이 부족한 곳에 높은 주택 수요가 있을 경우”에는 말이다. 파리 지역처럼 주택 공급이 수요보다 턱없이 모자라는 곳에서는 제약 사항들을 피해갈 수 있는 애매한 규정이다.
2010년 이후 일드프랑스 지역에서는 관련법에 따라 연간 7만 호를 목표로 주택 건설이 한창이다. 이 지역은 이미 고도로 도시화가 이뤄졌고 토지가 부족해 주택난이 심각하다. 가장 많은 주택이 지어지고 있는 곳은 바로 센생드니와 오드센인데, 에코 빌리지 인증을 받은 정비 사업이 가장 많이 집중된 곳이기도 하다. 수도에서 7㎞ 떨어진 오드센 남부 샤트네말라브리(인구 3만 5,000명)의 라발레 구역은, 2017년 사클레 고원으로 이전한 에콜 상트랄의 옛 부지 20㏊에 에코 빌리지를 조성한다. 현재, 2단계 건설이 진행 중이다.
공공 임대 주택 비율이 45%에 달하는 이 도시는 현재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정원 도시 뷔트루주에서 공공 임대 주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작은 분홍색 건물 일부는 점차 폐쇄되고 있다. 서민층의 복지를 고려한 20세기 초 도시계획의 유산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미래의 에코 빌리지 이웃인 이 구역에서는 많은 주민이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한다.
“현실과 거리가 먼 이상적인 도시를 그려 놓았다”
시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공공 임대 주택 비율을 98%에서 40%로 줄여 사회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사회적 결속을 촉진하며, 역동적이고 생산적이며, 복지와 고용의 원천이 되는 21세기형 정원 도시” 건설을 목표로 한다. 환경 단체 ‘샤트네 환경 유산’의 바르바라 귀트글라스 대표는 “이곳은 파리에서 가깝다. 그래서 투기꾼들이 65㏊의 이곳에 훨씬 고급스러운 주택 단지를 짓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전차가 지나간 건너편 공사 현장에서는 타워 크레인이 하늘에서 춤을 추고, 콘크리트 믹서는 땅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라발레의 거리에는 “샤트네말라브리에서 주택을 소유하세요”, “생활의 질이 향상됩니다”, “생물 다양성이 존재하는 공원 도시” 같은 문구가 쓰인 홍보 포스터가 물결치고 있었다. 온라인 홍보도 적극적이다. 열대 지방의 테라스를 닮은 이미지를 내보이며 “특별한 삶의 공간”이자 “환경적으로 모범이 되는 곳”이라 소개하고, 미래의 에코 빌리지 주민들은 “어디에서나 자연과 녹지를 배경처럼 누릴 수 있다”고 광고한다.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파크 드소와 쿨레 베르트 사이에 자리한 공간에 주택 2,200호가 새로 들어서고, 주민 4,600명이 거주할 수 있게 된다. 완공된 일부 에코 빌리지 건물들에는 이미 주민들이 거주 중이다. 수도에 비하면 집값은 여전히 매우 낮은 편이지만, 오름세가 가파르다. 부동산 관계자들에 따르면, 6개월 만에 1㎡당 가격이 6,800유로에서 7,500유로로 훌쩍 뛰었다.
한 젊은 임대 주택 투자자가 1㎡당 8,000유로가 넘는 아파트를 구매하려고 부동산 업체와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샤트네말라브리의 평균 시세(1㎡당 약 4,750유로, 출처: Meilleurs Agents 웹페이지)보다 훨씬 높은 금액이다. 인프라 건설 기업 에파주 그룹의 자회사 에파주 부동산개발의 한 직원에 따르면, 에코 빌리지에는 “젊은 임원이나 전문직” 중에서 “수준 높은 멋진 고객”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요소들이 즐비하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집세나 공과금을 제때 지불하고, 필요한 수리를 한다. 따라서 동네가 잘 관리되고, 부동산 가치도 높아질 것이다.”
프로젝트 홈페이지에서 소개한 그래픽 이미지에는 미소를 띤 활기찬 분위기의 젊은 주민들이 도보로 또는 자전거나 킥보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상점가를 활보한다. 쇼핑백을 손에 든 행인들은 에코 빌리지에 들어설 서른여 개 상점 유리 진열대 앞을 한가로이 거닐고, 푸드 트럭 옆에 자리한 벤치에서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다.
바로 옆, 에콜 상트랄의 체육관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제3의 공간은 “협업, 단기 전시, 댄스나 요가 수업 등을 위한 장소”로 쓰인다. 발레자 교수에 따르면, 도시 개발자들은 “친환경적이고 현대적인 생활 방식을 언급하면서 부자들이나 상류층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방식으로” 에코 빌리지를 설명한다.
이런 소개 방식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방법이다. 크리스틴 르콩트 건축가 협회장은, 에코 빌리지 인증마크가 처음으로 부여되던 시기, 후보 구역들은 “미래 주민들의 전형적인 하루 일상을 상상해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AMAP(농민 농업 보존 협회, 소비자와 농민 공동체로, 농산물 직거래가 가능함)와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주민 모두가 야외 공간이 있는 주택에 거주한다. 사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상적인 도시를 그려놓았다.”
다양한 배경의 새로운 주민들을 유치하고, 세수와 투자를 증대시키고자 하는 코뮌에 인증마크는 강력한 마케팅 도구다. 발레자 교수는 “에코 빌리지는 눈에 보이고, 실제로 건물이 지어진다. 사람들이 방문할 수도 있고, 마케팅을 해서 팔 수도 있다.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결과를 도출할 수 없는 기후나 환경 정책들과는 다르다. 국회의원 임기와도 밀접하게 엮여있어, 임기 동안 친환경 건물을 올려 유권자들의 신임을 얻을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샤트네말라브리 코뮌장도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쇼핑 거리의 첫 번째 가로수 앞에서 삽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코뮌장은, 스마트 시티 기술과 에코 빌리지 원칙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만들겠다는 에파주 측의 제안에 감명받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새로운 대로에 설치된 세련된 가로등에는 스마트 LED가 장착돼,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빨간색으로 깜빡였다.
에파주는 큰 노력을 기울인 만큼 그 결과가 구체적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 학교 식당에 식재료를 공급할 수 있는 1㏊ 규모의 도시 농장도 계획했다. 당시 에파주에서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줄리앵 사르트는, 도시 농장 아이디어는 프로젝트 제안서에 담겼던 내용이라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더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기업의 전략이었다. “사람들의 반대가 클 수 있는 프로젝트지만, 반대 의견은 전혀 없었다. 주민들이 도시 농장 계획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에파주 그룹은 빗물 저류 침투 시스템 설계로 수자원청의 보조금도 받았다. ‘순환 경제’에 대한 의지도 드러내 보이며 에콜 상트랄 건물을 “무너뜨리는” 대신 현장에서 “해체했다.” 해체 후 나온 각종 설비와 집기 120t은 재가공 후 ‘레아비’ 협회 온라인 사이트에서 판매했다.
협회 대표는 에파주 건설에서 일드프랑스 지역 현장 감독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건물 잔해 6만㎥는 콘크리트 재료와 도로포장 기층으로 재활용해, 트럭 운행을 6,000회(업체 추산) 줄일 수 있었다. 작업 1단계 건설에 사용한 콘크리트 골재의 30%는 기존 건물을 해체해서 나온 자재를 사용했다. 콘크리트 재탄산화 실험도 진행 중이다. 재탄산화란, 시멘트를 사용해 재활용 콘크리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 콘크리트에 고압 CO₂를 주입하는 기술을 말한다.
에파주는 샤트네말라브리 프로젝트에 이러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실현하려고 이시트퓌튀르(I-Site Future)와 협력했다. 이시트퓌튀르는 파리기술대학교와 귀스타브 에펠 대학교가 공동으로 이끄는 지속 가능한 도시 연구 컨소시엄으로, 2020년 구성된 이후 도시 연구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이번 협력은, 도시계획 분야에서 대학과 기업의 협력이 점점 더 긴밀해지는 상황을 잘 보여줬고, ‘E3S(스마트·에너지 절약·세이프 에코 빌리지)’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에파주와 이시트퓌튀르는 이 프로그램에 약 200만 유로를 지원했다. 또한, 에파주 직원 25명과 이시트퓌튀르 연구원 57명이 라발레에서 복지, 수자원 관리, 순환 경제, 책임 있는 도시 건설 현장, 신기술 사용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형광 페인트와 자전거 전용 도로
귀스타브 에펠 대학교의 시스템·구성요소(Cosys)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니콜라 오티에르는, 대학 건물들을 지나 파란 큐브 모양의 거대한 ‘기후 홀’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영화 배경이라 해도 믿을만한 250㎡ 크기의 시설은 ‘센스 시티’라 명명됐고, “미래 도시의 유기적 작용을 모의실험한다.”
이 미니 도시에는 오염도, 수질, 공기 질, 온도 및 습도를 측정하는 센서들이 달려있다. 예산 900만 유로를 지원받아 만든 이 ‘기후 홀’에서는, 극한의 기후 상황에 따른 새로운 기술과 콘크리트 대체재들의 효율성을 실험한다. 열섬 현상 연구를 위한 두 번째 미니 도시도 외부에 설치했다.
오티에르 소장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을 위한 테스트 인프라가 필요했다”라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올리크롬과 도로 전문 회사 에파주 루트가 개발한 형광 페인트 ‘뤼미노크롬’도 이곳에서 테스트를 마쳤다. 뤼미노크롬은 에코 빌리지의 보도와 자전거 전용 도로에 사용할 예정이다. 규격화된 미래 도시를 만들기 위해 공적 자본과 민간의 실행력이 합쳐진 것이다.
파리에스트 도시·영토 건축학교 졸업생들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라발레 에코 빌리지에는 새로운 기술들이 사용됐지만, 여전히 여러 문제가 존재한다. 연구보고서에서는 라발레 에코 빌리지를 “완성되지 못한 도시계획 사례”로 평가했다.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너무나 도시적인” 환경이라는 비판이다.
“콘크리트 건물이 지배적이고” 공공 공간은 여전히 자동차 위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골재를 재사용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600t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면적이 8만 5,000㎡에 달하는 에콜 상트랄의 건물 일부를 보존했다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은 양의 CO₂를 배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영향 평가에 따르면, 옛 건물 보수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서 사업에 수익성이 없다.” 에코 빌리지 조경사인 클레망 빌맹은 “옛 건물들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원래 있던 건물을 보수하는 것보다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게 비용이 덜 든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경제적인 논리 때문에 환경적인 측면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명확한 지식 없이 만들어진 ‘에코 빌리지’ 콘셉트
지속 가능한 도시 분야에서 도시 마케팅과 인증마크는 “정책적으로는 정확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다. 빌맹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은 “빗물 침투 도랑”, “연결”, “식물을 대하는 태도”, “전환”, “블루 네트워크 또는 그린 네트워크”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알자스, 브르타뉴, 릴, 마르세유 등 에코 빌리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곳에서는 모두 획일화된 규정서와 발언을 사용한다.
오티에르 소장은 “에코 빌리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나 지식 없이 에코 빌리지라는 콘셉트부터 만들어졌다. 실제 공사는 인증마크 기준에만 따르고 있고, 지속 가능한 도시에 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라고 덧붙였다.
에파주 그룹의 발레리 디오레 개발부서장은, 에코 빌리지 인증마크 덕분에 도시계획 관계자들 사이에서 에파주 그룹의 이미지가 좋아졌다며 흐뭇해했다. 발레리 디오레는 칸에서 열린 국제 부동산 박람회(Mipim) 같은 국내외 대규모 행사에서도 라발레 에코 빌리지 프로젝트를 “명함”처럼 열심히 소개했다.
이 다국적기업의 오랜 자랑거리였던 ‘스마트세유(스마트+마르세유)’ 프로젝트 대신 이제 라발레 에코 빌리지 프로젝트가 홍보의 최전선에 서게 된 것이다. 스마트세유 프로젝트에서는 마르세유 도심 3.5㏊를 정비하고, 바닷물을 이용한 난방 및 냉각 네트워크를 설치했다. 에파주 그룹은 자사 도시 개발 연구소 포스포르의 혁신 기술을 적용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기업 신뢰도를 높이고자 했다.
목적은 분명했다. 바로, 프랑스 지자체와 해외에 에파주의 “솔루션”을 판매하는 것. 이를 위해 에파주는 디스플레이 도구도 개발해 각 도시가 자신들만의 에코 빌리지를 미리 그려볼 수 있도록 했다. 애플리케이션 사이트에서는 “사용자가 구역을 설정하고, 프로젝트 유형을 선택하면 에파주가 제안하는 솔루션들을 탐색해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라발레를 찾는 프랑스와 유럽의 대표단들도 줄을 잇고 있다. 이날도 프로젝트 홍보관에는 포르투갈 대표단이 와 있었다. 이들은 먼저 에코 빌리지의 미니어처 모형을 둘러본 다음 3D 영상을 관람했고, 줄리앵 사르트가 소개한 새로운 디지털 모형(City Information Modeling, CIM) 애플리케이션을 살펴봤다. 이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지자체 담당자가 태블릿 PC만으로 공공장소를 관리할 수 있다. 곳곳에 설치된 센서가 가로등, 대형 쓰레기 수거함, 지하에 매립된 각종 전기·전화선망, 가스망, 상하수도망 등의 이상을 감지하거나 지면의 온도를 측정한다. 스마트 시티로 향하는 에코 빌리지의 첫걸음이다.
작전은 성공적이다. 포르투 인근 도시 가이아 산하 도시계획 전문회사인 가이우르브의 대표는 벌써 에파주의 모델과 비슷한 에코 빌리지를 건설할 마음을 먹었다. 그는 미국인 지리학자 리처드 플로리다가 제시한 “창조적 계층”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창조적 계층이란, 일정 자격을 갖췄고, 혁신적이며, 인터넷을 사용하고, 영토가 가진 매력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는 “스타트업이나, 세계와 연결된 대도시에 거주하며 친환경적이고 스마트한 생활 방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능력 있는 청년층”을 유치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지리학자 플라미니아 파되는 이러한 모델은 도시에 적용된 “과학기술 만능주의”라고 비판했다. “과학기술과 센서가 환경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을 감시하면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통제의 환상이다.”
에코 빌리지 인증은 벌써 전 세계로 퍼졌다. 일본의 후나바시, 콜롬비아의 칼리도 인증을 받았다. 최근에는 세네갈 다카르에서 여성들을 위한 ‘에코 빌리지’를 조성하려고 프랑스 사례를 참조하기도 했다. “지속 가능한”, “회복력 있는”, “스마트한” 미래의 도시는 “여성들을 위한” 도시이기도 할까? 도시 개발 전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만큼, 향후 몇 년 안에 프로젝트 홍보에도 틀림없이 이 문구가 등장할 것이다.
글·레아 구에즈 Léa Guedj
기자. 여러 언론사에 기고했고, 현재 <BBC Paris>에서 영상 기자로 활동 중이다.
번역·김자연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