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의 문화톡톡] 책과 영화: 싫음의 가능성과 부정의 희망 <한국이 싫어서>(2024, 장건재)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 '책과 영화' 추천(02) 영화 <한국이 싫어서>(장건재, 2024)와 소설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2015)

2024-09-30     이지혜(문화평론가)
장건재

미완성 문장을 제목으로 삼은 소설과 영화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는 동명의 원작 소설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2015)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완결되지 않은 문장을 제목으로 삼았다. 영화의 내용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계급화된 '한국이 싫어서', 무정한 '한국이 싫어서', 추운 '한국이 싫어서' 끝없이 떠나, 다시 정착할 곳을 찾는 주인공 계나의 모습이 제목의 미완성 문장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완결되지 않은 문장은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첫째, 여운을 남긴다. 둘째, 불확실한 느낌을 준다. 사전적 의미에서 '여운'이란 "아직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운치나, 떠난 사람이 남겨 놓은 좋은 영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설명을 다시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가능성'으로 갈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완결되지 않은 문장은 완결의 가능성을 갖는 대신, 불확실함을 소거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완결'이라는 목표를 갖게 된다. 그리고 여러 종결어미를 대입해 보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한국이 싫어서>는 끝도 없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그런데 이 작품이 말하는 가능성은 좀 특별하다. 온전히 무언가를 싫어하는 힘에서 파생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소설과 영화 속에는 계나가 한국을 싫어할 만한 당위가 끊이지 않고 나열된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묘사와 서술'이라는 소설 문법을 사용해 창작된 원작의 고난들을 장건재 감독이 어떤 영상문법으로 스크린 위에 실현시켰냐는 것이다.

 

소설의 문장, 영화의 장면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서 계나의 가정환경은 아래와 같이 서술된다.

"보일러 설정 온도를 최고로 높이고 자리에 누웠는데 몸이 따뜻해지지가 않더라. 동생 예나가 내가 누워 있는 옆에서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했어. 딴에는 나를 배려한다고 헤드폰을 쓰고 있었지만 컴퓨터에서 나는 폭발음이랑 비명 소리가 똑똑하게 들렸어. 예나한테 게임은 PC방 가서 하라고 잔소리를 할 기력도 없었어. 울면서 예나를 바라봤더니, 예나가 장갑을 끼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거야. 보일러를 아무리 돌려도 바닥만 뜨거워질 뿐, 실내는 여전히 썰렁했던 거지. 추위를 타지 않는 예나가 손이 곱아서 게임을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로."(97)

원작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계나의 가정환경이 공들여 묘사되고 있다. 계나가 기거하는 공간은 부모님 소유의 낡은 집으로 보일러가 고장 난 상태다. 성실하지만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그의 부모님은 재건축 인가만 기다리는 중이다. 한겨울이지만 고장 난 보일러를 수리할 여력이 없다.

 

장건재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이러한 장면을 집안에서도 캠핑용 침낭을 사용하는 계나의 모습으로, 또 새벽녘 방 안에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명확하게 피어오르는 계나의 입김으로 표현한 후 관객의 눈앞에 내던진다. 또한 원작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된 교포 가족을 영화의 주요 주변 인물로 부각시킨 후 몰살시킨다.

장건재 감독은 소설의 내용을 각색하고 함축하는 과정 중 발생한 쇼트와 씬 사이에 언뜻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미지와 사건들을 일부러 포함시킨 듯 보인다. 이러한 장면들은 모호하게 충격적이고 감각적인 동시에, 계나의 가능성, '~() 싫어서'의 마땅한 이유로써 기능한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집안의 하대가 싫어서, 친구의 죽음에 대한 무정이 싫어서, 추위가 싫어서 한국을 떠난 계나는 뉴질랜드에 도착한다. 그리고 '좋음'을 찾아 밑바닥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일상을 보낸다. 그러나 곧 뉴질랜드의 '싫음'을 발견한다. 뉴질랜드에도 계급에 대한 차별(인종)이 있고, 사람이 죽고(무정), 침낭(추위)을 써야 한다. 이쯤 되면 계나가 매사 불평불만이 앞서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계나는 다시 떠날 수밖에 없다. 계나의 진술에 의하자면 그는 '싫음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행복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중'(소설 167쪽 참조)이기 때문이다.

 

장건재

좋음과 싫음에서 비롯되는 가능성의 힘

그러므로 계나에게, 또는 계나의 여정에 몰입했다면 계나가 느끼고 있는 좋음과 싫음 사이의 막연한 불안을 함께 느낄 수밖에 없다. 계나는 주어진 공간에 순응하지 않고, 상황에 꺾이지 않는 사람이다. 따라서 계속 떠나길 시도한다. 그런 계나를 바라보는 동안 그를 응원하는 좋음의 감정이,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정박하길 거부하는 계나를 힐난하고 싶어지는 감정이 든다면 당연하다. 이러한 불확실함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확실함이 영화와 소설을, 똑같은 장면이나 문장을 몇 번이고 떠올리고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된다.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처음 읽은 것은 9년 전이었고,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제28회(2023)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다. 그로부터 약 일 년 뒤 정식 개봉했다. 그 사이 소설을 한 번 더 읽었고, 그렇게 이 영화를 두 번째 봤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봤을 때 더 좋게 느껴지는 영화가 있다. 이런 영화들은 감상할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다시 보인다. 장건재 감독은 관객이 계나의 '싫음'에 공감하기를, '싫음'에서 추동된 계나의 '가능성'에 전도되기를, 그래서 '마침내 좋음', '행복'에 닿기까지 과정들을 타인의 삶을 통해 견뎌보기를 권유한다. 여러 번 탐관하고 원작을 탐독하기를 노골적으로 권유한다. 그러므로 <한국의 싫어서>는 가능성의 영화다.

 

 

*이 글은 [이지혜의 문화톡톡] 책과 영화 시리즈로 계속 이어집니다.

 

 


·이지혜(이해이)

문화평론가. 2022년 문화전문지 쿨투라16회 영화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글쓰기를 강의하며 문화현상을 연구한다. 월간 쿨투라와 영화전문매체 <코아르>에 영화평론을, 르몽드 문화톡톡에 문화평론을, 서울책보고 웹진 <e-책보고>에 에세이를 기고 중이다.

· 인스타: @leehey_cine · 이메일: leehey@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