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장르 속에 도발적인 스토리텔링 돋보여
2024년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던 ‘영평 10선’
영화의 위기, 영화산업의 위기, 영화관의 위기 같은 말들이 더는 생경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감지하는 위기는 실체를 가지고 영화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영향을 행사한다.
한국 영화의 지형도 역시 매번 바뀌는 중이다. 큰 규모의 작품들이 여전히 제작되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만큼의 활력을 극장가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주목해야 할 영화들을 다시 발굴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무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영화가 무엇일지 고민하고, 창작자의 야심과 영화의 조건이 만나 경합하며, 현실과 영화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도록 만드는 작품들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매년 ‘영평 10선’을 선정해 그해 한국 영화의 지형을 가늠하고, 비평의 시선이 가닿는 지점을 살펴왔다. 지난해 가을 이후 1년간 개봉한 영화를 대상으로 선정한 올해 ‘영평 10선’은 다음과 같다.(가나다 순)
<거미집> (김지운)
<괴인> (이정홍)
<딸에 대하여> (이미랑)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김다민)
<서울의 봄> (김성수)
<세기말의 사랑> (임선애)
<잠> (유재선)
<장손> (오정민)
<파묘> (장재현)
<핸섬가이즈> (남동협)
인상적인 장편 데뷔작들이 눈에 띄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다음 작품을 기다렸던 창작자들의 복귀 역시 특기할 만하다. 올해 영평 10선에 이름을 올린 영화들은 코미디, 스릴러, 공포, SF 등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통해 스토리텔링의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고, 다채로운 스타일을 펼쳐 보이는 한편, 사회, 역사적 틈새에서 부지런히 서사를 발굴했다. 각각의 개성이 돋보이는 10편의 영화를 단일한 흐름 위에서 조망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겠으나, 지난 1년을 가늠하며 열 개의 점을 느슨하게나마 이어보고자 한다.
역사는 여전히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채 영화의 무대로 되돌아오는 중이다. 두 편의 ‘천만 영화’ <서울의 봄>과 <파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인이 공유하는 역사를 소환한다.
<서울의 봄>, 역사를 마주하는 인물상에 대한 탐구
1979년 10월 26일부터 12월 12일까지, 매우 구체적이고 촘촘한 시간 선을 배경으로 삼는 <서울의 봄>은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고 신군부가 군 세력을 장악하기 위해 모의하고 준비하며 실행을 시작하는 과정을 상세한 기록과 영화적 상상으로 그려낸다. 굴곡 많은 한국의 근현대사는 그간 심리극과 액션물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영화의 무대가 돼왔다.
여기서는 원리와 원칙을 중시하는 이태신 소장(정우성)과 기회주의적이며 승부사 기질이 있는 전두광 보안사령관(황정민), 상반되는 두 캐릭터가 그러한 무대 위에서 맞붙는다. 영화는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를 토대로 삼으면서도, 촌각을 다투는 시간을 긴장감 있게 그리며 장르 영화의 면모를 마음껏 드러낸다.
<서울의 봄>은 역사의 무대에서 스펙터클을 찾는 한국 영화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역사를 마주하는 인물상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파묘>, 역사에 대적하는 캐릭터가 관객의 공감 얻어
<파묘>는 역사 그 자체를 무대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서사가 전개되고 사태가 매개되는 과정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라는 거대한 역사가 개입한다. 개성적인 오컬트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은 그러한 바탕 위에서 무당, 풍수사, 장의사 등 각자의 영역에서 실력을 뽐내는 전문가들을 모아 역사에 대적하는 캐릭터 영화를 만들었다.
상황 파악과 문제 해결의 과정을 주축으로 삼는 <파묘>는 매혹적인 퍼포먼스와 믿음이라는 테마에 대한 특유의 접근으로 많은 관객의 관심과 공감을 얻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도 원한을 부르는 원인이 이 땅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리라는 예감, 달리 말하면 역사적 시리즈물의 감각이 여기에 깔려있다.
<거미집>, 한국영화사에 대한 창작자의 자의식 보여줘
한편 <거미집>은 1970년대의 한국 영화 제작 현장을 무대로 삼는다. 한편에는 검열이, 다른 한편에는 TV 드라마가 벽을 세운 시기, 영화감독 김열(송강호)은 최근 촬영한 영화의 결말을 다시 찍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결국 문을 닫아건 스튜디오는 감독, 제작자, 배우, 스태프 등 다양한 인물이 각자의 욕망을 내뿜는 소동극의 장이 된다. 앙상블 코미디의 면모를 지닌 <거미집>은 한국영화사(史)에 대한 현시대 창작자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창작의 활기와 어둠을 두루 다루는 작품이다.
<잠>, 빙의와 몽유병, 미스터리와 동거하는 부부관계의 속성을 통찰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돌아보며 지난 1년을 되짚는 건 즐거운 일이다. <잠>은 기묘한 일을 겪는 부부의 일상을 통해 공포, 스릴러, 오컬트 등 여러 장르를 징검다리 넘듯 유연하게 건넌다. 몽유병 증상을 보이는 남편의 기행이 심해지면서 부부의 일상은 점차 무너지고 믿음은 붕괴된다.
빙의와 몽유병, 무속적 믿음과 이성적 합리성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영화는 각종 장르의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해 관람의 즐거움을 안기는 한편 끝내 해소되지 않는 미스터리와 동거하는 부부관계의 속성에 관한 통찰도 깊이 심어둔다.
<핸섬가이즈>, 배우들이 호연한 경쾌한 장르적 유희
즐기는 티가 역력한 배우들의 호연으로 완성된 <핸섬가이즈>는 호러 코미디를 표방한다. 험상궂은 외모를 가졌으나 선하고 여린 두 남자가 한적한 오두막으로 이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 이 영화에는 겹겹이 쌓인 오해가 만드는 점입가경의 상황에 더해 종국에는 악귀까지 출현한다.
지나친 과장과 엄숙한 몰입 대신 경쾌한 장르적 유희의 길을 택한 영화는 사태를 조망하는 시선을 영리하게 활용하며 호쾌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명랑하고 결연하게 결말을 향해 뚜벅뚜벅
SF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과도한 입시 세태 속에서 고단한 삶의 이유를 찾는 초등학생 동춘에게 기상천외한 답을 내놓는다. 막걸리가 발효되며 내뿜는 기포 소리를 모스 부호로 해석하는 동춘은 세상의 알 수 없는 원리에 자기도 모르게 성큼 다가간다.
교훈적 의미를 길어내는데 사로잡히지 않고 명랑하고 결연하게 결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영화의 태도가 미덥다. 언급한 세 작품은 모두 감독들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딸에 대하여>,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 더 큰 공동체의 속성을 이야기
각자의 욕망에 솔직하고, 삶을 대하는 독자적인 태도를 지닌 여성들이 빚어내는 관계의 드라마도 있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 <딸에 대하여>는 어느 날 갑자기 딸의 동성 연인과 한집에서 살게 된 엄마의 시간을 담는다.
김혜진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돌봄, 관계, 혐오 등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우리 사회의 굵직한 키워드를 스크린에 새긴다. 기왕의 가족제도가 더는 돌봄의 안착지가 되지 못하는 시대, 우리는 어떤 고민을 새롭게 해나가야 할까.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세 여성의 관계를 통해 더 큰 공동체의 속성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그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세기말의 사랑>, 외톨이 두 여자가 서로의 거리를 좁혀
<세기말의 사랑>은 새천년으로 향하는 길목에 선 두 여자의 예상치 못한 만남과 변화하는 관계를 다룬다. 짝사랑한 남자의 아내와의 만남이라니, 얼핏 치정극을 연상케 하는 전개지만 여기서 두드러지는 건 취약성을 지닌 개인들의 삶의 모습이자, 그들의 관계 맺기다.
못난 외모와 신체적 장애 등 주류적 세상에서 쉽게 외톨이가 되고 마는 특성을 지닌 두 여자는 서로의 거리를 성큼 좁히며 고단한 세상을 함께 걷는다.
<장손>, 화면 깊이 새겨진 가족의 조건과 심연
두 편의 장편 데뷔작 <장손>과 <괴인>은 창작자의 뚝심과 집요함이 영화적 세계에 독특한 리듬과 활기를 불어넣은 예다. 대구에 자리 잡은 어느 대가족을 진득하게 바라보는 영화는 전통적 가부장제와 다음 세대의 고민을 고루 담는다. 하지만 엄숙하게 문제점을 골라내 비판하거나, 섣불리 냉소하지는 않는다.
<장손>은 세월이 켜켜이 쌓인 가족의 공간을 부드럽게 응시하고, 한국의 전통 제례와 풍습을 기록하며, 한 가족이 품은 어둠 역시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렇게 가족의 조건과 심연은 화면 깊이 새겨진다.
<괴인>, 모호함으로 관객을 낯선 지대로 이끌어
<괴인>은 보고 나면 무언가 말하고 싶어지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체를 더듬는 일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독특한 작품이다. 인테리어 일을 하는 한 목수가 차 지붕을 찌그러뜨린 범인을 찾는 이야기라고 내용을 정리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한들 영화의 모호한 면모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사건 사이의 인과성을 명료히 제시하지 않는 이 영화는 때로 인물을 희미한 어둠 속에 두어 그 얼굴마저 뚜렷하게 볼 수 없게 한다. 그 모호함이야말로 <괴인>을 관습적 작법에서 슬며시 이탈하게 하며 영화를 낯선 지대로 이끈다. 그곳에서 관객 역시 낯선 감각을 마주하며 ‘영화’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글·손시내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