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노니머스, 익명·보복·위반의 정치 플랫폼

2013-05-13     조동원

드디어 국제 해커단체 어노니머스(Anonymous)가 지난 4월 8일 북한의 대남 선전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해킹과 회원 정보 대량 유출이라는 '북한작전'(OpNorthKorea)을 통해 한반도에 등장했다. 그러나 한국의 어노니머스는 특정 국가의 명칭과 국기를 사용하고 '종북세력 색출'을 주장한 탓에 '진짜 어노니머스인가'라는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 게다가 내부 분열과 해체 소식이 전해지면서 의혹이 더욱 증폭됐다. 이들은 왜 어노니머스로 인정받지도 환영받지도 못한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온라인에서 몰려다니며 짓궂은 장난을 일삼던 말썽꾼들이 어떻게 일련의 세계적 사건에 개입하고 정치적 집단행동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익명·보복·위반의 정치였다.

익명의 정치: 우리는 군단이다

어노니머스는 미국에서 2003년 개설된 익명의 이미지 공유 게시판 '4챈'(4chan.org), 특히 '비'(/b/)라는 이름의 게시판에서 탄생했다. 이 게시판은 페이스북과 정반대로 모든 이용자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그들이 올린 이미지나 댓글을 오래 보관하지도 않는다. 좀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이용자들은 재미있고 충격적이고 기괴한 내용을 올리는 데 앞다투게 되었고, 이내 비 게시판은 유명한 온라인 난동(Trollings)의 진원지가 되었다. 대체로 게시판에 올린 글들은 웃기고 웃어보자는 말장난(Lulz)의 발로였다. 2006년부터 비 이용자들은 동물 학대를 일삼는 이들이나 네오나치에 대해 수백 통의 장난전화와 대량의 피자 배달로 응징하는 사이버테러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이후 지구적 온라인 정치의 한복판에 출몰하면서, 어노니머스는 역설적으로 이름 없는 자들이 공동행동을 조직하고 조율하기 위한 집단의 이름이 되었다.

익명성의 적극적 표명은 국가권력의 감시와 통제 차원, 그리고 페이스북 같은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의 과잉 공유 문화 차원에서 익명성이 축소되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에 대한 이용자들의 반격이었다. 더 나아가 어노니머스는 서로 다른 개인이 같은 이름과 같은 얼굴(가면)을 씀으로써 작고 약한 개인들이 곧바로 한 집단을 이루게 되면서 거대하고 강력한 것에 맞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응축하게 됐다. 그렇게 익명으로 장전된 군중의 힘은 이내 정치적 스펙터클로 폭발하게 됐다.

첫 스펙터클은 2008년 정보 자유를 막아서고 폐쇄·독점·독단·검열을 일삼는 사이언톨로지교에 반대한 일련의 집단행동이었다. 이를 위해 인터넷 채팅방 '어논넷'(Anonnet)을 중심으로 반(反)사이언톨로지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누군가 그에 전쟁을 선포하는 일련의 비디오가 제작돼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극적인 재미(Lulz)와 선동을 도왔다. 그와 동시에 진지하고 과감한 행동으로서 거리시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토론을 거쳐 지구적 공동행동의 날로 정해진 2008년 2월 10일, 북미·유럽·남반구의 주요 도시에서 6천여 명이 동시다발으로 시위를 벌였다. 그야말로 이름 없는 개인들이 익명성을 앞세워 '군단'(We are legion)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보복의 정치: 우리는 용서하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 '해킹행동주의'과 함께 조직적으로 정치적 해킹이 나타난 것은 정부와 기업이 인터넷을 난도질하기 시작한 때다. 인터넷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2000년대 초반 디지털천년저작권법(DMCA)과 9·11 테러 이후의 애국자법에 의해 감시·검열·통제의 인권침해가 도를 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분노와 저항은 해커 문화에 이어 보통 이용자들의 정서로 확대됐고, 어노니머스는 바로 이런 해킹 전통과 억압적 현실이 교차하며 돌출됐다. 처음에는 재미와 장난을 위해 모였지만 '우리의 인터넷'을 망가뜨리는 자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반감과 복수의 정서는 어노니머스가 2010년 영화와 음반의 저작권 수익을 챙기는 협회들에 벌인 일련의 '보복작전'(OpPayback)에서 잘 나타났다. 이 협회들이 파일 공유 웹사이트 '해적만'(Pirate Bay)에 대한 사법적 조치를 취하는 중에 다른 한편에서 인도의 보안업체를 고용해 디도스 공격을 가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어노니머스가 저작권협회나 기관에 똑같이 디도스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보복의 정치적 에너지는 2010년 12월 '위키유출'(Wikileaks)에 대한 엄호로 이어져, 그 후원 계좌와 서버를 차단한 페이팔과 마스터카드, 아마존에 분노한 새로운 익명의 군단이 대거 결합해 며칠 동안 그들을 인터넷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는 어노니머스가 세계적 기업에 대항해 해킹을 감행한 초유의 사건이었다.

'아랍 민주화의 봄'의 진원지가 된 튀니지는 어노니머스의 다음 전장이 되었다. 어노니머스를 연구해온 미국 뉴욕대 교수 개브리엘라 콜먼에 따르면, 민주화 시위가 아직 국제뉴스로 보도되기도 전에 이들의 튀니지아작전(OpTunisia)이 시작됐는데, 2011년 1월 초 튀니지 정부가 위키유출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어노니머스는 정부와 관광 웹사이트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퍼부었다.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폭력 진압 비디오를 퍼날랐으며, 정부의 감시와 통제를 우회하기 위한 보안 기술을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전수했다. 이전까지의 작전이 주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검열 반대와 표현의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면, 튀니지아작전을 시작으로 어노니머스는 아랍 곳곳의 민주화 시위 현장을 거쳐 월가 점령 시위로 이어지는 세계적 사회운동 현장의 한복판에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어노니머스가 벌인 일련의 해킹 작전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더라도 일말의 통쾌함은 느꼈다. 그 분노와 보복의 정서에 동감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어노니머스 코리아의 이번 북한작전에는 대담하고 가차 없는 공격은 있었을지 몰라도, 대중적 공감의 정서는 깔려 있지 않았다.

위반의 정치: 기대하시라

어노니머스는 정보와 표현의 자유를 실천하는 것이 법제도를 개정하는 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권력에 분노하고 대항하며 익명성을 복원하려는 어노니머스의 진면목은 표현의 자유를 막아서는 실정법조차 대담하게 넘어서는 위반의 정치에 있다. 콜먼 교수가 보기에 수많은 어노니머스 참여자는 법의 경계에서 놀고, 심지어 위반의 방식으로 그것을 문제 삼고 있다. 동시에 공동체 내부적으로도 계속 좀더 민주적인 규범과 질서를 만드는 정치를 실천한다. 단적으로 익명의 집단성은, "서로에게 '지도부나 유명 인사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상기시키면서 권력의 중앙집중화를 지양하는 내부의 정치적 역동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고 콜먼 교수는 말한다.

특히 그들이 채택하는 행동 전술은 어느 누군가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언제나 논쟁과 토론의 산물이다. 디도스 공격은 그들에게 가상 연좌 시위의 의의를 갖기 때문에 채택된다. 하지만 급진적 해커들은 이 전술에 반대한다. 이것이 실정법을 위반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해커 윤리에 반하기 때문이다. 어떤 웹사이트를 접속 차단시키는 일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정보의 자유를 막는 일이다. 정보 유출은 더욱 큰 논란거리인데, 그에 뒤따르는 엄청난 피해와 역공 때문에 수많은 반대 의견이 제기된다. 2011년 4월 초 소니사가 플레이스테이션(게임기)의 저작권 보호 장치를 우회한 해커를 고소한 사건에 맞서, 소니사를 공격하면서 일부 어노니머스가 1억 명의 고객 정보를 유출한 일은 대대적 비판에 직면했다. 모두가 알아야 할 정보가 권력의 유지와 강화를 위해 비밀에 부쳐 정보 흐름이 통제될 때, 위키유출이 잘 보여주었듯이 내부고발과 폭로 차원에서 정보 유출은 상당히 유효한 전술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적재산권 침해나 기밀 유출의 프레임에 갇혀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거나, 무엇보다 무고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유출을 동반할 때 어노니머스로서는 자살 행위에 가까운 전술이 되기 십상이다.

일베니머스?

그런 차원에서 이번 북한작전은 회원 정보를 대량 유출하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더군다나 '어노니머스 코리아'라고 밝힌 한 트위터 이용자가 "이 땅에서 반세기가 넘게 표현의 자유와 학문·사상의 자유를 억압해온 국가보안법으로 그 회원을 처벌해달라"는 주장까지 하게 됐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어노니머스가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와 만났다. 열린 구조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누구나 어노니머스가 될 수 있더라도 반민주주의, 지역 감정, 여성 혐오를 일삼는 일베 커뮤니티가 어노니머스가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어노니머스 코리아가 나타나 북한작전을 펼쳤고, 북한 웹사이트의 회원 정보가 유출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베의 마냥사냥식 신상털기가 이어진 정황을 놓고 볼 때, 한국의 특수한 정세를 반영하듯 어노니머스가 한반도에서는 '일베니머스'라는 변종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격렬한 반대의 목소리가 당연히 터져나왔고, 진정 어노니머스라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개인 정보 유출을 저지른 탓에 진위 논란이 뒤따른 것이다.

이번 북한작전이 구조적 억압에 대한 분노와 보복이라는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차원에서, 그와 반대로 무고한 개인 정보의 대량 유출과 이념 탄압적 신상털기로 귀결됐다는 점에서 한국의 어노니머스는 처절한 실패로 시작됐다. 그러나 북한작전의 실패나 일베니머스라는 변종(가능성)이 말해주는 것은, 한국에서는 어노니머스나 정치적 해킹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어노니머스 현상과 사건, 그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있는 그대로 적용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어노니머스, 정치 플랫폼

어노니머스는 한국의 역사적·지정학적 특수성에 따라 여전히 계속되는 냉전의 정치와 군사적 긴장, 극우적 온라인 커뮤니티의 출현, 새로운 정치적 표출 형태의 필요성이 교차하는 어느 지점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노니머스의 진위 논란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맥락과 조건에 맞는 좀더 다양한 정치적 의제와 목소리를 내는 어노니머스를 감행할 필요가 있다. 어노니머스는 한 집단이 전유하며 독점할 수 있는 조직 형태가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논쟁과 토론, 그리고 직접 행동을 통해 자기 조직화해나가는 일종의 정치적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그것을 짓누르는 지배적 힘에 맞서는 일이라면 누구든지 올라서서 익명·보복·위반을 수행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네트워크화한 정치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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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원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청개구리제작소(fabcoop.org), 문화/과학(cultural.jinbo.net), 정보공유연대(IPLeft.or.kr)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