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언제나 이기는 건 아니다
미국의 노동전문기자 샘 피지개티가 쓴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원제 The Rich Don’t Always Win, 부자가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알키 펴냄)는 이 문제에 대한 풍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그 해답을 추구한다. 그리고,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이룬 풍요로운 중산층 천국의 사회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도 제시한다. 특히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전후를 계기로 미국 사회가 슈퍼리치와 금권주의가 지배하는 20세기초로 완벽하게 복귀한 것을 보고, 50~60년대 미국이 이뤘던 진보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추적한다.
1929년 대공황 이전 미국의 최상위 1% 슈퍼리치들은 전체 국민소득의 4분의 1을 거머줬다. 1950년대 이들의 몫은 10분의 1로 줄었다. 특히 최상위 0.1%는 1920년대 후반 국민소득의 12%를 가져갔으나, 1953년에는 3%에 불과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전야인 2007년 상위 1%는 전체 소득의 23.5%를 다시 긁어갔다. 대공황 직전인 1928년에도 이들 1%는 23.9%를 가져갔다. 미국은 다시 ‘대저택에서 하룻밤에 1인당 1만달러의 연회를 즐기는 슈퍼리치들이 있는 반면, 미국에 장미꽃이 있는지도 모르는 초저임금 노동자들이 공존하는’ 20세기 초로 완벽하게 후퇴한 것이다.
피지개티는 망가진 미국의 중산층 사회를 복구하려면, 자신이 누렸던 50~60년대의 풍요와 평등의 시대를 가능케 했던 제도와 투쟁을 반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지적하는 제도적 장치는 첫째, 최고 91%까지 이르는 누진소득세율이다. 둘째, 미국 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노조이다. 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새로운 중산층으로 진입하게 해주는 공공서비스에 예산을 지원했고, 노조는 전후 경제가 창출한 부를 고용주와 고용인이 적당한 비율로 공유하도록 강제했다. 이런 제도적 장치가 그냥 주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20세기초부터 일기 시작한 광범위한 대중들의 평등 투쟁과 부자 등 기존 지배층 내의 선각자들이 합세한 결과이다.
미국은 현재 서방 선진국 중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가장 미미하지만, 20세기초에는 가장 왕성한 사회주의 운동세력이 존재했다. 이런 사회주의 운동세력이 펼쳤던 사회 전반에서의 평등을 향한 투쟁, 그리고 이 세력의 힘을 간파한 루이스 브랜다이스 같은 지배층 내 선각자들의 ‘예방혁명’ 조처가 결합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연방대법원장이 된 브랜다이스 같은 이들은 자신들이 두려워하던 사회주의 운동세력의 평등 투쟁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세력의 성장을 막았다.
미국에서 평등을 향한 개혁이 불붙기 시작한 때는 1900년대초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이다. 그는 자신이 추진한 독점방지법 등 개혁이 좌초되는 것을 보고 우역곡절 끝에 다시 대통령에 출마한 1912년 출마선언에서 “천연자원이 일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독점되어서는 안되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업의 자금을 유용하는 것이 불법화돼야 하며”, “공동채 이익을 대변할 경우에만 재산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이러한 제재가 없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소유한, 경제적으로 강력한 소수 계층이 형성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그는 누진소득세와 대규모 재산에 대한 상속세를 마련해야 한다며 “국가가 소수를 위한 엄청난 재산보다 더 나은 것도 제공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의 패망은 “불가피한” 결과라고 경고했다. 공산당 선언에 준하는 내용이다.
루스벨트는 이 선거에서 낙선했으나, 당선된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행정부와 의회는 1913년 10월 역사적인 연방누진소득세를 통과시키는 것으로 대변혁이 시작됐다. 당시 최고세율이 7%에 불과했던 연방누진소득세는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공화당 대통령 시절 최고 91%까지 상승했다. 또 1950년 10월 전미자동차노조가 지엠 등 디트로이트의 대형 자동차회사를 상대로, 노동자의 퇴직 후 연금까지 보장하는 ‘디트로이트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미국의 중산층 사회를 완성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 디트로이트 협약이 미국 자동차회사들을 파산시키고, 최근 디트로이트 시의 파산까지 이끌었다는 보수층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치열하다. 피지개티의 역사증 예증은 이를 주객이 전도된 주장으로 일축한다. 디트로이트 시 파산은 디트로이트 협약이 아니라, 이 협약을 만들었던 중산층 사회의 붕괴에서 연유됐다. 미국의 중산층 사회 붕괴는 1950년대 반공매카시즘으로 시작됐다. 매카시즘 자체는 중산층 체제를 떠받드는 제도적 장치들을 파괴하지 못했으나, 이를 방어할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정신적 내상을 입혔다. ‘부의 분배’ 같은 말은 공산주의와 동일시되며,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념적인 무장해제를 당했다.
물질적 공세는 텍사스의 석유부자들에서 나왔다. 엄격한 누진세율에도 불구하고 당시 석유업에 대해서는 관대한 공제혜택이 존재했다. 이 공제혜택으로 떼돈을 번 텍사스 석유부자들은 미국 최상위 부자들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자신들의 부를 더욱 배가시키려고 이데올로기 공세를 위한 물질적 지원을 시작했다. 2000년대 조지 부시 행정부를 장악한 네오콘 세력의 이데올로기를 태동한 윌리엄 버클리와 그가 창간한 <내셔널 리뷰>는 텍사스 부자들의 물질적 지원을 받았다. 버클리 자신도 텍사스 오일맨의 아들이며, 부시와 네오콘이 텍사스에 기반한 것도 이런 배경을 갖는다. 결국 1964년 2월 케네디 행정부는 누진소득세의 최고세율을 91%에서 77%로 내리는 세제개편을 하며, 중산층 사회 해체의 시동이 걸렸다. “높은 세율은 소비를 줄이고 경제의 활력을 해친다. 세율이 낮으면 국민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투자도 계속할 것이다”라는 당시 논리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 논리는 또 ‘낮은 세율은 경제를 활성화해서, 세수도 늘린다’로 발전한다.
1976년 하버드대학 마이클 젠슨 교수 등 2명은 <기관에 관한 이론, 재산권에 관한 이론, 그리고 기업의 소유구조에 관한 이론 개발을 위한 재정 이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을 위해 봉사시키려면, 양자의 이익을 하나로 묶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요즘 말로 경영진에게 스톡옵션 등 제공을 통한 ‘주주의 가치 극대화’를 의제로 설정한 것이다. 재계는 열광했고, 이 와중에서 미국 노조의 파괴가 시작됐다.
피지개티는 50~60년대에도 경이적인 누진세와 평등 체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부자들의 절대 부는 오히려 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상위 부자들의 실효세율도 각종 공제 등으로 30~40%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부자들에게 몰려가는 과도한 부를 나눠줌으로써, 중산층이 부흥해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부자들도 더욱 부자가 됐다는 의미이다. 당시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어떤 정당이 사회보장제도와 실업보험을 폐지하고 노동법과 농장 프로그램을 없애려고 한다면, 미국 정치사에서 둘도 없는 한심한 정당이 될 것이다”며 “슈퍼리치들이란 공화당을 공성기로 착각해 뉴딜의 유산을 깨뜨리겠다고 덤벼드는 한심한 무리들”이라고 경멸했다.
피지개티는 최고세율 세금 구간의 진입 문턱을 최저 임금과 묶는 방안 등을 통해 부자들의 저항과 이데올로기를 부수는 현실적 대안도 촉구한다. 20세기 중반 일반 근로자 임금과 최고경영자의 평균 임금 차이는 25배였다. 최저임금 부부가 한해 벌수 있는 3만달러의 25배인 75만달러를 최고 세율 구간을 설정한 뒤, 최저임금이 오르면 최고세율 구간도 오르는 세제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미국 사회를 다시 중산층 사회로 재편하려면 먼저 “부자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믿음을 갖고, 부의 재분배를 위한 투쟁에 다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글·정의길
<한겨레> 국제부 선임 기자